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6
당문전생 (16)
당과로가 쓰러졌다!
“푸헤헤헤!”
“우겔겔겔!”
자기들 세상인 양 시끄럽게 떠들면서 패거리가 작은 골로 들어서는 순간 당찬일의 손이 히끗 움직였다.
털썩! 털썩! 털썩!
요혈에 암기를 얻어맞은 패거리가 고목나무처럼 쓰러지자 그들의 앞으로 나선 당찬일이 우두머리를 사뿐히 짊어지고 사라졌다.
어차피 깍두기는 관심 없다.
대가리만 조진다.
“뭐, 뭐야?”
정신을 차린 패거리의 우두머리, 조광이 주변을 둘러보며 소리 질렀다.
“어떤 망할 새끼가 날 묶었어! 이거 당장 안 풀어!”
빛 한 점 새어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주변이 완벽한 어둠이라 조광은 살짝 무서웠지만 짐짓 호기를 부렸다.
“야! 안 나와! 내가 누군 줄 알고!”
그러나 당찬일은 나서지 않았다.
원래 공포란 고독 속에서 점점 커지다 종국에는 자신마저 집어삼킨다.
그렇기에 굳이 나설 이유가 없다.
“아이, 상놈의 새끼들아아아!”
한 식경이 흐르고 조광의 음성이 갈라질 무렵, 어둠 속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바스락!
“누구야, 앙? 얼굴 한번 비쳐 봐! 너 이 새끼, 사람 잘못 건드렸어!”
조광이 고함을 질렀지만 당찬일은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내 말 안 들려? 너 정말 뒈지고 싶어?”
퍽! 퍽! 퍽!
그래서 조광은 뒈지도록 맞았다.
다음 날.
여전히 독기가 빠지지 않은 조광이 난리를 부렸다.
“이 몸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는데, 난 죽어도 안 불어, 이 새끼야!”
퍽! 퍽! 퍽!
그래서 조광은 죽을 때까지 맞았다.
만약 구경하는 이가 있었더라면 우스꽝스러운 전개였겠지만 조광으로서는 매 순간이 공포라서 그의 독기는 완전히 빠졌다.
“자, 잘못했습니다! 살려만 주십시오! 뭐든 하겠습니다!”
퍽! 퍽! 퍽!
그래도 맞았다.
닷새가 되던 날, 당찬일이 창고로 들어서자 조광이란 놈은 조건 반사처럼 구석으로 이동했다.
한 대라도 덜 맞으려고.
이런 한심한 인간에게 시달렸을 상인들을 떠올리니 절로 화가 났지만 이를 애써 누른 당찬일이 가져온 종이와 붓을 내던졌다.
“뭐, 뭡니까?”
번뜩!
어둠 속에서 하얀색의 몽둥이가 번뜩이자 사색이 된 조광이 붓을 잡았다.
“예, 예! 제가 개새끼였습지요! 아니, 아닙니다! 지금도 개새낍니다!”
알면 됐다.
당찬일이 묵묵부답, 아무 말을 하지 않자 조광은 붓을 들어 자신의 지난 잘못을 적기 시작했는데…… 세상에!
네 살 때 어머니 호주머니를 털어서 엽전 한 냥을 도둑질했던 일에서부터 일곱 살 무렵에 동네 아이들의 주전부리를 갈취한 이야기는 약과였다.
동네 부녀자들 희롱한 전적,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를 따돌렸던 사실에 이르기까지 온갖 악행이 기술되었기에 당찬일이 속으로 혀를 찼다.
쓰레기. 조광이란 놈은 정말로 쓰레기였다.
종이가 무려 일곱 장이 넘어가기 시작하자 드디어 조광은 이 마을의 고리 사채에 관한 일화를 적었다.
문제는 조광이란 놈 역시 자신을 부리는 조직의 수뇌가 누군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고리 사채 집단은 철저하게 점조직으로 이루어져서 상부의 정체는 아무도 모른다며 조광이 징징 짰다.
그나마 건진 건 상인들에게 돈을 걷는 하부 조직의 계보에 관한 것이었다.
‘이놈들만 일망타진하면 일단 수뇌부의 수족을 끊는다는 거지?’
조광이 작성한 하부 조직도를 주시하던 당찬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놈들의 손발을 잘라 내는 거다.
그러자면 필연적으로 이편의 희생도 뒤따를 터.
이에 대비할 좋은 방도가 있다.
* * *
“이럴 수가!”
한 달 뒤, 이자로 회수된 액수를 확인한 장삼이 입을 떡 벌렸다.
“예상은 했지만, 이건 예상보다 많아도 너무 많군요. 도박장 전체와 비슷한 수준이라니…….”
추 대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나도 놀랐네. 처음에 들어가는 돈이 많아 걱정을 좀 했는데 말이야.”
“저도 걱정 많았습니다. 이번 달에 회수가 안 됐으면 도박장들을 팔아야 할 판이었거든요.”
“그러니까 말이야. 정말 다행이지 뭔가.”
추 대인이 당찬일을 뿌듯하게 보았다.
“모두 대주의 판단 덕분입니다.”
“금칠은 고맙지만 그렇게 공을 다 넘길 정도는 아니지.”
당찬일의 말에 추 대인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대주의 말이 아니었다면 초반에 그리 많은 돈을 쏟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그건 저 역시 동감입니다.”
장삼도 거들었다.
“대형께서 그렇게 말씀을 하지 않으셨으면 저 역시 도박장 운영비까지 전부 던지진 못했을 테니까요.”
“맞아, 어찌어찌 키워 나갈 순 있었겠지만, 이렇게 단번에 송왕헌의 기반을 손에 넣진 못했을 걸세.”
“맞습니다! 그러니까 이건 전부 대형 덕이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대주!”
둘의 말에 당찬일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참! 그대들이 그리 말하니 내 낯이 뜨거워 여기에 있질 못하겠다.”
“하하하하!”
장원이 떠나갈 듯 기쁜 웃음소리가 퍼졌다.
“그나저나…….”
추 대인이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사실 중리를 돌리고 나서 하루가 멀다 하고 고리 하던 놈들의 행패가 접수되었지요.”
추 대인이 당찬일을 차마 직시하지 못하고 그를 곁눈질했다.
“그런데 요 며칠 사이부터 그런 일이 뚝 잦아들었지 뭡니까?”
“생각해 보니!”
장삼도 추 대인의 의견에 적극 동의 했다.
“진짜로 시전에서 으스대던 어깨 놈들이 싹 자취를 감추었네요?”
서로를 마주 보던 둘의 시선은 자연스레 당찬일에게로 모였다.
“혹시?”
“대주께서 암암리에?”
두 사람의 눈길을 한 몸에 받았지만 당찬일은 창틀에 앉아서 서산으로 기우는 해를 응시할 뿐이었다.
“잘됐군.”
한참이 지나서 당찬일이 던진 말은 이 한 마디가 전부였다.
잘됐다.
너무도 많은 의미가 담겨서 역설적으로 무슨 뜻인지 모를 말을 내뱉은 당찬일이 창틀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놈들이 사라져서 다행이란 소리 아닌가? 내가 잘못 이해했나?”
그건 그렇다. 너무 잘 흘러가서 이상할 뿐.
어쩐지 분위기가 묘해지자 눈치 빠른 추 대인이 짐작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대주께서 지금의 화제를 원하지 않는 느낌이다.
이럴 땐 국면 전환이 필요하다.
“정말 잘 돌아오셨습니다, 대주.”
“지난번에 그렇게 했으면 됐지, 뭘 또…….”
“제가 그간 어떤 마음이었는지, 대주는 정말 모를 겁니다. 여기 장삼이도 그렇고요.”
“맞습니다! 내가 정말 당문 이 새끼들 볼 때마다 얼마나 가슴을 쳤는지, 정말!”
잠시 예전 일들을 이야기하다가 장삼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그런데…… 대형, 대체 돈 빌려줄 사람들은 어떻게 선정한 겁니까? 솔직히 형님이 시킨 대로 하긴 했지만, 그 사람들이 이렇게 제때 이자를 낼 거라곤 정말 생각도 못 했습니다.”
“그 양반들, 애초부터 악성 채무자들은 아니었어.”
당찬일은 소위 중리 사채를 시작하면서 노름, 술 좋아하는 자, 가족에 소홀한 자는 배제하라고 했다.
노름하려는 자 그리고 술추렴하려고 돈 빌리려는 자를 가리는 건 쉬웠다.
장안의 사설 도박장은 장삼이 꽉 틀어쥐고 있었고, 대부분의 객잔과 노천 주점도 그의 패거리들의 이목을 피할 방법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돈을 빌리려는 사람들은 정말로 형편이 어려워서 장삼은 과연 빌려준 돈만으로 이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우려했었다.
“사채라는 게 꼭 문제만 양산하는 건 아니거든.”
접시에 담긴 떡 하나를 집은 당찬일이 그것을 주욱 늘어트렸다.
찰기가 좋아서 길게 늘어졌지만 용케도 끊어지지 않는 떡.
“삶이 끊어지지 않게 이어 주는 역할도 하지.”
“예…….”
“고리로 그 짓을 하는 놈들은 그런 사람들에 달라붙어 한 방울 피라도 더 빨려고 하니까 문제가 되는 거고. 우린 그들의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한다. 그게 중요한 거였어. 다행히 장주의 이름도 도움이 됐고.”
“맞습니다!”
흡족한 미소를 짓는 장삼과 달리 어딘가를 바라보던 당찬일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물론 그래 봐야 희망의 대가로 단물을 빠는 건 똑같지만 말이다.”
그의 씁쓸해 보이는 모습에 추 대인과 장삼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아, 그리고 흑점의 명목상 점주들은 네 동생들이 맡고 있지?”
“그렇지요.”
“이거.”
당찬일이 종이 한 장을 내밀자 그것을 받아 든 장삼이 오만상을 구겼다.
종이에 대략 열 명가량의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이자들로 명목상 점주들을 갈아 치워.”
“예?”
“수익의 일 할을 떼어 준다고 하면 침을 질질 흘리면서 달려들 거다.”
“아니, 이자들은 천하의 개쌍놈들……!”
“아삼(兒三).”
당찬일이 내리누르듯 장삼을 불렀다.
아삼이란 장삼의 애칭이다.
그리고 당찬일이 성인이 된 장삼을 아삼이라고 부를 때는 뭔가 중요한 이야기를 꺼낼 때뿐이다.
“이번만큼은 내 말대로 해.”
당찬일의 엄명을 거부할 도리가 없어서 장삼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형께서 까라면 까야지, 별수 있겠는가?
* * *
다음 날도 습관처럼 외출 준비를 하던 당찬일이 헐레벌떡 뛰어오는 총관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아침부터 뭐 그리 바쁘다고 저러는 건지.
“소, 소공자님!”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수련으로 매일이 바쁜 일상이기에 이렇게 잡히는 건 싫었지만, 속내를 숨기고 당찬일이 태연하게 물었다.
“헉! 헉!”
얼마나 다급히 달려왔는지 숨이 턱밑까지 차올라서 말을 잇지 못하던 총관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
“지, 지금 이러실 때가 아닙니다! 이런 판국에 한가로이 외출이라니요!”
“무슨 일인데 그러세요?”
“제갈세가에서 돌아오신 가주님께서 그만, 그만……!”
“그만?”
의아해서 눈알을 굴리던 당찬일이 총관의 다음 말에 몸을 굳혀야만 했다.
“쓰러지셨답니다!”
* * *
당과로가 쓰러졌다!
전 무림을 떨쳐 울리는 전설적인 거인의 와병(臥病) 소식이 전해지자 당문 사람들은 물론 모든 강호의 세가와 무림인들이 들썩였다.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철벽의 빈틈.
그래서 모든 이들이 충격을 받았는지도.
‘뭐지?’
벌써 일주일이 흘렀지만 당과로는 자리에서 일어날 줄을 몰랐다. 아니, 오히려 상태가 안 좋아졌는지 모든 문병을 거절했다.
친자식의 문안 인사까지도.
‘단순히 과로로 인한 와병이라면 벌써 자리를 털었어야 하는데?’
고개를 갸웃거리던 당찬일이 시름에 잠겨서 밥상을 외면하는 아버지, 당인에게로 다가갔다.
“아버지, 아무리 마음이 불편하시더라도 한술 뜨셔야지요. 이러시면 몸 상하세요.”
“밥이 입에 들어가겠느냐.”
억지로 들었던 숟가락을 다시 탁자에 내려놓은 당인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 아니지, 가주님께서 몸져누우셨다. 우리 가문의 발전을 위해서 불철주야 뛰어다니시다 저리되신 게 아니냐. 자식들이 너무 못나 도움도 되지 못하니…….”
어깨를 축 늘어트리는 당인을 보며 당찬일이 속으로 혀를 찼다.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이해를 못 하는 건가?’
효심이 차고 넘쳐흐른다고 해도 지금은 저리 심약하게 굴 때가 아니다. 어떻게든 중앙으로 가기 위해 조금이라도 움직여야 할 때이거늘!
역시 천성은 바뀌지 않는 모양이다.
“병문안까지 거절하실 정도라니 너무 걱정되는구나.”
장탄식을 터트리는 당인을 뒤로하고 당찬일이 방에서 나섰다.
예상보다 길어지는 당과로의 자리보전.
‘뭔가 꿍꿍이속이 있어!’
가주가 부처님과 동급인 당문의 특성상 당과로가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나지 않는 한 외출은 금지다.
특히나 친족이라면 더더욱.
당과로의 정확한 상태를 탐문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어설픈 움직임이 만들 결과가 두려워 당찬일은 참기로 했다.
‘정말 아픈 건 아닐 거야.’
당찬일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다만 늙은 괴물이 둥지에서 뭔가를 도모하는 모양인데 도통 그 의중을 알 길이 없으니…….
잠시 숨을 고르던 당찬일이 마을 쪽으로 눈을 돌렸다.
이제…… 무언가가 시작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