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63
당문전생 (162)
몸이 아픈 게 아니야
통상적으로 발굽 소리를 내지 않는 말은 없다. 바퀴 소리가 나지 않는 수레도 존재하지 않고.
한마디로 지금 모습을 드러낸 마차는 특수한 무언가의 보호를 받는다는 소리다. 단순한 보호 정도가 아니라 무척이나 특수한 방법으로.
마차를 보며 눈살을 찌푸리던 남방존자가 고개를 까딱 움직였다.
슈슈슉.
풀숲에서 대기하던 일군의 무인들이 마차로 쇄도했다.
그들의 속도는 그야말로 절륜해서 몸을 날렸다 싶었는데 어느새 마차에 다다라 있었다.
콰직!
섬광인가.
무언가 거대한 것이 허공을 반으로 가르자 대열의 선두에 섰던 무인들이 바람 빠진 소리를 냈다.
“끄으으.”
털썩! 털썩!
일수에 다섯 명의 무인을 가른 이는 놀랍게도 마부였다.
쿠쿠쿠.
거대한 죽립을 눌러쓴 마부가 몸을 일으키자 그의 그림자가 길에 드리워졌다.
마부가 거대한 창을 한 바퀴 돌리며 사선으로 몸을 틀자 일군의 무인들이 그를 포위했다.
츠츠츠.
무려 사십여 명의 무인들이 자신을 에워쌌지만 마부의 기세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오히려 이런 상황을 즐기는 것처럼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처척!
자신의 측면에 위치한 무인들이 반보 전진하자 마부가 곁눈으로 그들을 주시했다.
쿠우우.
마부의 창은 무척이나 특이했다.
창이란 통상적으로 찌르기에 특화되기 마련인데 그가 소지한 무기는 찌르기와 베기 이외에 멀리 있는 적을 끌어당기는 것까지 가능했다.
그렇다. 마부가 사용하는 무기는 극(戟)이었다.
극(戟)은 과(戈)와 모(矛)의 기능을 두루 갖춘 무기다.
과는 갈고리 모양으로 된 무기로, 적을 후려치거나 끌어당길 때 사용한다. 반면 모는 양날검 형태의 찌르기가 가능한 장병기지만 창보다 두껍다.
마부의 극은 모의 기능을 담당하는 끝부분인 자(刺)를 날카롭게 다듬어서 어지간한 도검보다 적을 관통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또한 과의 역할을 맡는 손잡이 부분의 원(援)을 예리하게 갈아 내어 어지간한 도검보다 적을 효과적으로 도륙하게 설계했다.
찌르기와 베기를 모두 겸하는 무기를 앞세운 마부의 기세에 잠시 주춤했던 무인들이 곧 서로를 마주 보았다.
자신들이 누구인가? 한때는 모습을 드러내는 것만으로 무림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죽음의 조직이 아니었던가?
마부의 충격적인 신위에 잠시 주춤했던 무인들이 곧 전열을 가다듬고 일제히 날아올랐다.
솨솨솨솨.
무인들의 연수합격은 훌륭했다.
마부의 전면으로 쇄도하던 무인들은 그가 지닌 극의 사정거리를 감안해서 일정 거리 이상을 접근하지 않았다.
직접적인 공세를 감행하지 않더라도 다수의 상대가 위협적으로 나오면 공격을 감당하는 쪽은 몸이 굳어질 수밖에 없다.
이때를 노렸을까?
마부의 측면에서 도사리던 무인들이 그의 옆구리 방향으로 짓쳐 들었다.
전면으로 달려드는 무인들을 신경 쓰느라 잠시 멈칫했던 마부로서 측면의 공세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
그렇다고 측면을 상대하자니 잠시 멈춘 전방의 공격수들이 재차 공세를 감안할 터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
걸렸다.
측면의 공격수들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고.
움직여라.
전방의 공격수들이 마부의 다음 동작을 기다렸다.
그 순간 마부가 거짓말과도 같은 움직임을 보였다.
서걱!
전면으로 향하던 마부의 극이 한순간 절반으로 뚝 잘리며 원의 칼날로 측면에서 달려들던 무인들을 반 토막 내 버렸다.
“어어?”
당황한 전방의 무인들이 곧 재차 달려들었지만 마부는 뾰족한 자 부근으로 그들을 상대했다.
“이익!”
그제야 무인들은 알았다. 마부의 극이 한순간 반으로 나뉜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두 개의 무기를 하나로 합쳤었다는 사실을.
원래 마부의 극은 각기 다른 자와 원을 결합시켜서 사용했던 거다.
슈슉!
장거리 무기였던 극이 자와 원으로 나뉘자 길이가 짧아졌지만 기동성은 배가되었기에 마부의 몸놀림은 비약적으로 쾌속해졌다.
오른손으로 적을 찌르면서 왼손으로 상대를 당기기도 하고 베어 내는 마부의 신위는 압도적이었다.
‘이, 이자는……!’
전쟁의 귀신이다!
당황한 무인들이 뒤로 물러서는데 마부의 앞으로 다가온 남방존자가 혀를 찼다.
“여기서 그대를 다시 대하다니. 그대마저 그쪽과 붙었나?”
남방존자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극제(戟帝).”
남방존자의 입에서 터져 나온 별호, 극제.
극제 조율립은 무림사군자 한 사람이다.
극의 귀신, 극의 제황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만큼 극을 잘 다루어 조율립의 손에 극이 들리면 사마외도는 필사의 도주를 감행한다던가?
남방존자가 자신의 별호를 부르자 조율립이 왼손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오랜만이오, 남방존자.”
조율립이 자신의 애병인 천지무극(天地無戟)을 한 바퀴 돌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대는 무림사군자 가운데 유난히 소요를 싫어해서 정교대전 당시에도 중립적인 태도를 취했다고 알려졌는데.”
뒷짐을 풀며 남방존자가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츠츠츠.
남방존자의 장심에 푸른 기색이 어리자 이를 지켜보던 조율립이 탄식처럼 중얼거렸다.
“세월이 여류하니 사람도 흐를 수밖에 없지 않겠소.”
“그런가?”
조율립은 무림사군자 가운데서 가장 패쇄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한적하고 고즈넉한 삶을 즐기기로 유명해서 어지간한 일에도 무림 출사를 극구 피했었다.
“정교대전(正敎對戰)은 우리 교의 배신자가 군자연하던 무림의 인물 몇몇을 충동질해서 벌인 일종의 반역 행위였다. 그걸 알면서도 그들과 붙었다는 건가?”
정교대전.
정파에서는 정마대전일지 몰라도 마교 쪽에서는 정교대전이었다. 당연한 것이, 정파에서나 마교지, 교를 믿는 이들의 입장에서 마교일 리가 없으니까.
남방존자가 질책하듯 입을 열자 조율립이 고개를 돌렸다.
초겨울이다. 이십 년 전에도 이런 날씨였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자신들은 마교의 추악한 진실을 고발한 호법들의 증언을 받아들여 행동했다.
“다른 건 몰라도 귀하들은 비밀이 너무 많았소. 오죽하면 교의 중추랄 수 있는 호법들에게도 사옥정의 존재를 함구했을 정도였지.”
호법들에게조차 비밀이었던 사옥정.
“충신 중의 충신이라고 할 수 있는 호법들에게도 숨길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사옥정이란 물건이 떳떳하지 못해서가 아닐까?”
조율립의 물음에 남방존자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편한 대로 생각하는군.”
“그럼 아니란 말씀이오?”
“이미 확신에 가득 차 있는데 무슨 말을 보태든 사족일 테지. 그게 좋으면 그렇게 여기게.”
파직!
남방존자가 손바닥을 활짝 펴자 불길한 기운이 넘실거렸다.
“더 이상 주고받을 말은 없으니 이제 행동으로 가 보세.”
남방존자가 기세를 돋우자 조율립이 눈을 가늘게 떴다.
천하의 무림사군자라도 마교의 남방존자라면 한 수 접어 줘야 하니까. 거기다 남방존자의 직속 부대인 남두사십사성(南斗四十四星)까지라면 절대적으로 열세다.
조율립이 눈으로 남방존자와 그의 직속 부하들을 죽 훑는데 돌연 마차의 문이 열렸다.
삐걱.
마차의 문을 열고 천천히 나선 사내는 십 대 후반의 호남형 청년이었다.
새하얀 장삼처럼 희고 고운 피부를 지닌 청년은 워낙에 위풍당당해서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특이점으로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검은 머리 사이를 가로지르는 은발이었다.
정수리를 관통하는 몇 가닥의 은발 때문에 어쩌면 희미했을지도 모를 청년의 인상은 전체적으로 강렬해지는 효과를 얻었다.
의연한 표정으로 모습을 드러낸 청년이 고개를 돌려 남방존자를 응시했다.
“호오.”
청년에게로 눈을 돌린 남방존자가 자못 흥미롭다는 얼굴이 되었다.
“네가 반역의 주모자인 황룡의 자식이로구나.”
남방존자의 눈에서 불꽃이 일었다.
“백리천아.”
순간 마차의 지붕이 ‘쾅!’ 하고 뚫렸다.
“뭐야?”
오연하기 이를 데 없던 백리천아가 뒤돌아서며 입을 떡 벌렸고,
“저것이 소옥!”
백리천아를 응시하던 남방존자가 아뿔싸, 하는 표정으로 몸을 날렸다.
바닥에서 숨을 고르던 양학도 깨진 단편 안경을 수습하지도 않고 마차의 지붕을 뚫고 빛살처럼 사라지는 인영을 쫓았지만 역부족이었다.
어떻게 저런 속도가.
말은 하지 않았다. 다만 표정과 몸짓으로 양학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고, 조율립과 백리천아도 어안이 막힌 듯한 표정으로 사라지는 물체를 주시했다.
“대옥과 감응했나.”
다시 뒷짐을 진 남방존자가 입술을 깨물었다.
“소옥이 잠재적인 권능을 해제하는 경우라면 대옥과 교감을 나눈 경우일 터.”
남방존자가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대옥이 출몰했을지도 몰라.”
* * *
휘이잉―.
진소운과 마주한 당찬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림맹으로 가는 길이 아니었니?”
묵묵부답.
“백리천아가 가도 된다고 했어?”
여전히 묵묵부답.
“여기까지는 어떻게 왔는데?”
아무리 물어도 진소운은 어떠한 대답을 내놓지 않아서 당찬일이 난감한 얼굴로 인상을 찌푸렸다.
뭐든 말을 해야 저간의 사정을 짐작할 텐데 조개처럼 입을 다물고 있으니 답답하다.
자신의 물음에 표정으로라도 반응한다면 의사소통이 될지도 모르나 진소운은 그조차 거부하는 눈치라서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소운아.”
진소운에게 한 걸음 다가선 당찬일이 무릎을 굽혀 그와 눈높이를 맞췄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니? 혼자 온 거야?”
친근하게 물었지만 진소운은 여전히 입을 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에휴.’
벽을 보고 이야기해도 이보다는 덜 답답할 것이다. 애당초 벽에게 대답을 기대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사람은 다르다. 그가 비록 아이라도 사람인 이상, 어느 정도의 교류가 가능하다는 가정하에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바란다.
그런데 진소운은 인간의 아이가 아닌 것처럼 당찬일과의 모든 교류를 거부하고 있다.
“흐음.”
억지로 눈은 맞추고 있지만 속으로는 난감해서 오른쪽 눈을 찡그리던 당찬일이 무척이나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달빛 할아버지가 아니야. 그렇지만 나도 달빛 할아버지가 언제나 중얼거리는 시구를 알고 있지.”
진소운이 반응을 보이든 말든 아랑곳없이 당찬일이 말을 이었다.
“달빛이 시리도록 새하얀 밤이면…….”
당찬일의 입에서 호월가가 시작되자 무표정하던 진소운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그의 변화를 곁눈질로 감지한 당찬일이 두 번째 구절을 읊었다.
“옥아대우(玉兒大噳), 옥의 아이가 크게 웃는다…….”
물론 원래는 옥아도루(玉兒掉淚)였다. 그렇지만 당찬일은 짚이는 바가 있어서 눈물을 흘린다는 부분을 대소를 터트린다고 바꾸었다.
“사옥…….”
그래도 별다른 반응이 돌아오지 않자 당찬일이 세 번째 구절로 접어드는데 지금까지 침묵으로 일관하던 진소운이 돌연 입을 열었다.
“아프면서 웃을 수는 없어.”
음?
이게 무슨 말일까? 아프면서 웃지 못한다니?
진소운이 보인 첫 대응은 의외의 것이라서 당찬일은 일부러 그를 외면했다. 여기서 격하게 묻거나 다그친다면 가까스로 개봉한 진소운의 말문이 또다시 닫힐지도 모르니까.
“당연히 아프면 웃지 못하지. 그건 아이나 어른이나…….”
“몸이 아픈 게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