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68
당문전생 (167)
이별이 많은 날
콰지직!
명정시 아닌 다른 눈빛을 밝히지 않았다. 여하한의 수단을 동원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기세만으로 백색 사내의 무염겁을 짓누른 당찬일이 그에게 다가섰다.
“눈자위 희번덕거리는 재주 말고는 없나?”
무적을 자랑하던 자신의 눈빛이 먹혀들지 않아서 가뜩이나 화가 치밀어 오른 백색의 사내에게 당찬일의 다그침은 기름을 끼얹은 격이었다.
“크아악!”
마침내 터져 버린 백색의 사내가 양손을 풍차처럼 휘둘렀다. 잔뜩 화가 치민 성성이처럼 마구 손을 휘저으며 앞으로 나서는 백색의 사내는 사람이 아니라 야수였다.
“딱한 녀석이로군.”
슬픈[哀] 당찬일이 애잔한 눈으로 자신에게 달려드는 백색의 사내를 응시했다.
어쩌면 저자도 수많은 천마왜들 중에서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천마왜가 몇이나 존재하는지 모르지만 저자는 다수의 기들처럼 인성을 제거당한 채로…….
사육!
갑자기 그 말이 떠올라서 당찬일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어쩌면 천마왜들은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서 강제로 사육당한 실험용 쥐가 아닐까? 그래서 그들은 인간이라기보다 동물에 가까운 행동 양식을 보이는 것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이는 천인공노할 만행이다.
수많은 아이들을 자신의 목적 때문에 짐승처럼 길렀다면 이는 묵과할 수 없는 악독한 범죄다.
콰드드드.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서인지 몰라도 백색 사내의 천마악은 완연히 사나워졌다. 이전까지는 생기를 흡수하는 수준이었는데 이제는 강탈하려고 들었다.
츠츠츠츠.
기해(氣海)라고 했다.
풀자면 대기의 바다라는 뜻이니 만물을 잉태하고 기른 바다를 공기에 빗댄 말이다.
만약 기해에서 생기가 증발되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사막화.
공기 중의 활력이 모조리 빠져나간다면 이 세상은 사람이나 짐승은커녕 풀 한 포기도 자라지 못하는 사막으로 변할 것이다.
백색 사내의 거친 손짓에 달빛과 녹음(綠陰)과 풀벌레의 울음소리로 풍성하던 산하의 공기가 타들어 가며 주변 공기가 급격히 건조해졌다.
‘이런 식이란 건가?’
지금 백색의 사내는 당찬일과 자웅을 결하고 있지 않았다.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대결을 벌이는 것도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 당찬일은 풍성한 수확을 망치는 잡초일 뿐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잡아 뽑아야만 하는 대상. 당찬일은 그런 존재였다.
‘그렇군.’
백색 사내에게 모든 존재는 이런 식이었다.
굴복, 아니면 제거.
그의 머릿속은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약육강식의 논리가 온통 지배했기에 타협이라든가 설득이라는 사회적인 관계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백색 사내의 뇌리에 강자존의 논리가 틀어막힌 건 어쩌면 당연했을지도.
백색의 사내를 비롯한 천마왜들은 누군가에 의해서 짐승으로 사육되었기에 인성(人性)보다 야성(野性)의 지배를 받았을 테니까.
그래서 이들은 이성보다 본능에 충실한 한 마리의 맹수가 되었으리라.
주변의 생기를 마구 갈취하는 백색의 사내를 지켜보는 당찬일의 눈에 착잡함이 어렸다.
그 역시 전생에 백색 사내의 전철을 밟을 뻔했다.
태어나자마자 당문에 팔려 와서 사물을 분간할 수 있을 때부터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인간이 아니라 도구.
그렇게 길러졌기에 전생의 그는 성인이 될 때까지 사회성을 습득하지 못하고 짐승처럼 길러졌다.
만약 당과로가 백색의 사내를 사육한 존재처럼 모질게 굴었다면 전생의 죽을 때까지 인간성을 갖추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것도 자비라고 해야 하나.’
잠시 당과로를 떠올렸지만 지금은 상념의 강가에서 헤엄칠 계제가 아니라서 급히 생각을 거둔 당찬일이 유려하게 신형을 뽑았다.
백색의 사내가 생기를 사멸시키는 기세는 자못 무시무시했다.
쩌억― 쩌억―.
백염정을 무염겁으로 바꾸고 나서부터 백색 사내의 천마악은 가일층 사이해져서 주변의 생기는 물론이고, 대지의 지기(地氣)마저 뽑아 올렸다.
‘이런!’
이렇게 되면 곤란하다.
대기와 대지의 생기를 모조리 빨아들이고 나면 백색 사내의 마수는 백염정의 포로가 되어 한 치도 움직이지 못하는 젊은 교관들을 노릴 터.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
파박!
백색의 사내가 갈취하는 생기의 틈바구니로 몸을 비집고 들어간 당찬일이 주먹을 내뻗자 지옥마저 태울 겁화로 물들었던 그의 정권에 풀색이 맺혔다.
풀의 색깔. 다른 말로는 비췻빛.
검붉었던 당찬일이 주먹이 초록으로 일렁이자 백색의 사내가 그것을 잡겠다는 듯 손을 크게 벌렸다.
팍!
분명 주먹이었다. 하지만 백색의 사내가 바위를 잡으려는 보처럼 손을 활짝 펴자 당찬일의 손도 그에 맞추어 만개했다.
콱!
쌍장을 맞대고 내공 대결을 펼치듯 당찬일과 백색의 사내가 오른손을 붙이고 대치했다.
콰르릉!
일견 평화로워 보였지만 두 사람의 대립은 살벌한 것이었다.
생기(生氣)와 사기(死氣)의 대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한 사람과 모든 것을 마무리 지으려는 자의 대치.
‘무시무시하구나!’
백색 사내의 사악한 기운은 죽음의 기운까지 더해져서 당찬일의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사기(邪氣)에 더해진 사기(死氣).
이중의 사기는 온 누리에 존재하는 모든 악을 모아서 당찬일을 엄습했다.
‘으으윽.’
백색의 사내가 퍼붓는 죽음의 기운을 가까스로 버티던 당찬일이 점차 뒤로 밀렸다.
이때…….
화아악!
당찬일의 하단전에서 기이한 꿈틀거림이 시작되었다.
때로는 염룡(炎龍)처럼, 때로는 빙룡(氷龍)처럼.
하단전에 머물렀던 정체불명의 기운이 기지개라도 켜듯 꼼지락거리자 당찬일의 전신으로 뜨겁고 차가운 기운이 쭉쭉 퍼져 나갔다.
“하압!”
기세가 충만해진 당찬일이 손바닥을 서서히 밀어내자 백색 사내가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백색 사내의 얼굴이 미미하게 변했지만 당찬일은 그의 표정 따윈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받아들인 기운을 발산하기에 바빴다.
이대로 하단전의 기세를 자신의 몸 안에 풀어 두었다가는 불타거나 얼어 죽을 판이니까.
콰르릉!
당찬일이 냉온의 두 가지 기운을 동시에 발출하자 백색 사내의 죽음과 사악함을 머금은 이중 사기가 차츰 밀리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한평생 죽음과 증오로 점철된 삶이었기에 당찬일이 전달하는 냉정과 열정을 이해할 수 없어서 적이 당황하던 백색의 사내가 결국 손바닥을 뗐다.
“크흑!”
단단히 손해를 본 백색의 사내가 퉁기듯 뒤로 물러섰다 사자의 갈기처럼 머리를 세우며 당찬일을 덮쳤다.
이를 기다렸을까?
당찬일이 또 한 번 주먹을 불쑥 내밀었다. 그의 주먹에 어린 비췻빛은 너무도 영롱해서 아침 이슬을 머금은 풀잎처럼 반짝였다.
그래서 이란 정경을 취음(翠陰)이라고 부르는 걸까?
당찬일의 주먹에 잔뜩 맺힌 초록의 생기가 거슬린 백색의 사내가 마주 주먹을 뻗었다.
음과 양의 대결. 생명과 사멸의 대립.
이대로 두 개의 권력이 충돌한다면 어느 한쪽은 반대편의 기운에 잠식당할 터.
마주 보고 달려오는 마차처럼 두 주먹이 격돌할 찰나!
“……!”
분명히 직선이었던 당찬일의 공격이 백색 사내의 면전에 이르러 부드러운 호선을 그렸다.
당찬일의 주먹이 태연하게 비껴가자 크게 헛손질한 백색의 사내가 몸을 틀었다.
휘르릉!
그 순간 이미 지나쳤어야 마땅한 당찬일의 주먹이 아직도 마치지 않았다는 것처럼 백색 사내에게로 천천히 육박해 들어왔다.
미처 헛친 손을 거둬들이지 못한 백색의 사내가 허공으로 몸을 띄우자 옆으로 크게 돌아오던 당찬일의 주먹이 위로 솟구쳤다.
“이, 이익!”
궁지에 몰려서인지 인간의 언어를 뱉으며 백색의 사내가 태산압정의 수법으로 주먹을 내리쳤다.
하지만 당찬일의 주먹은 언제 상승했냐는 듯 이미 하강하고 있었다.
뻐억!
“크헉!”
내리쳐진 당찬일의 주먹에 옆구리를 강타당한 백색의 사내가 중심을 잃었다.
이런 단순한 공격을 막지 못하다니!
옆구리를 강타당한 백색의 사내가 낭패의 빛을 띠었다.
분명 까다롭지 않고 쉬운 투로였다. 또한 잔재주를 가미하지 않은 통상적인 공격이었다. 그래서 못 피할 리가 없는 공격이었는데 맥없이 당했다.
분노와 당황이 교차한 백색의 사내가 잔뜩 성이 난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크아아악!”
움찔!
백염정에 정신과 행동을 통제받는 입장이었는데도 백색 사내의 포효는 무시무시한 것이라서 굳어 있던 젊은 교관들의 어깨가 꿈틀거렸다.
하지만 당찬일의 주먹질은 이제 시작이었다.
백색 사내의 옆구리를 가격해서 공세가 마무리되는 모양새였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공격법이었고 당찬일의 투로는 아직이었다.
스르륵.
뒤로 돌아갔던 당찬일의 손이 햇살처럼 활짝 펴져서 다시 날아들자 백색의 사내가 천마벽을 끌어올리며 어깨로 그것을 받아 냈다.
쾅!
“크헉!”
천마벽을 무력화시키며 적중한 당찬일의 손바닥!
창졸간에 당한 어마어마한 타격에 백색의 사내가 무려 세 걸음이나 물러섰지만 당찬일은 끝장을 보겠다는 것처럼 계속해서 따라붙었다.
아니, 끝장이고 뭐고 없었다. 애당초 이 공격은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았으며 이미 끝나 버린 공세였다.
여류일초(如流一招)!
삼수삼보의 마지막 수법!
본래 여류일초는 이론상의 무학이었다. 세월의 무상함을 일수에 담아낸다는 건 천하제일인이라는 백리무극이라도 불가능할 테니까.
그래서 형태만 잡아 뒀는데 사옥정에 잠식당한 제갈청청을 상대하느라 급한 대로 펼쳐서 그때의 여류일초는 그녀의 이목을 분산시키는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의 여류일초는 다르다.
처음 선보이면서 검군의 지혜를 녹였고, 제갈청청의 눈과 귀를 사로잡으면서 변설자 노인의 충고를 받아들였으며, 재차 펼치는 순간 삼조의 가르침이 자연스레 녹아든다.
‘이런 것이었구나.’
결정적으로 진소운이 건넨 사옥정의 기운은 다소 처져 있던 당찬일의 내력을 급반전시키는 효과를 가져왔기에 그의 여류일초는 이전과 판이해졌다.
쾅!
초식이고 뭐고 없었다. 아니, 여류일초가 초식이니 형태는 존재하는데 정해진 투로가 없다는 표현이 옳으리라.
장구한 세월의 무상함을 노래하는데 어찌 솜털 같은 형식의 유무가 끼어들까.
무초식이 초식이고, 초식 자체가 허무한 여류일초가 발현되자 백색의 사내는 고양이 앞의 생쥐처럼 일방적으로 몰렸다.
너도 나도 무심한 세월의 희생양이다.
너와 나의 차이라면 나는 누군가의 장난으로 윤회를 가장한 삶을 부여받았고, 너는 누군가의 장난에 의해서 현생의 삶을 박탈당했지.
그래서 동병상련을 느끼지만 안쓰러워하느니 차라리 너의 걸음을 멈추는 편을 택하겠다.
지금 제지하지 않으면 결국 너는 폭주해서 이 세상을 불태울 테니까.
퍼버버벅!
당찬일의 주먹에 무수히 난타당한 백색의 사내가 연신 뒤로 밀렸다.
“크에엑!”
만약 그를 보호하는 천마벽이 없었더라면 백색의 사내는 진작 파괴되었을 거다.
“커헉! 커헉!”
쉴 사이 없이 피를 토하며 백색의 사내가 하얀 눈을 번뜩였다.
고통스러울 텐데 표정의 변화가 없다. 입으로는 연신 피를 게워 냈지만 그것이 전부였을 뿐, 백색의 사내는 인간적인 감정을 도통 표출할 줄을 몰랐다.
자신도 저린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가슴 한구석이 시려서 당찬일이 주먹을 쥐었다.
저건 아니다. 저런 삶은 여기서 마무리되는 편이 옳다.
저자와 당찬일 자신 그리고 모두를 위해서.
당찬일이 끝을 내려고 주먹을 치켜드는데, 상단전에서 꿈틀거리던 냉온의 기운에 푸르도록 시린 기세가 얽혔다.
“으윽!”
가슴을 부여잡은 당찬일이 와락 인상을 구겼다.
아직까지 완전히 녹여 내지 못한 청성에서 얻은 사옥정의 기세가 진소운의 사옥정과 합쳐지지 못하고 격렬히 부딪쳤던 것이다.
쾅!
결국 청성의 사옥정과 진소운의 사옥정이 충돌하자 당찬일의 무릎이 꺾었다.
‘하필 이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