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84
당문전생 (183)
서안비림을 나서는 당찬일의 발길은 무거웠다. 능운비를 만나면 그가 쌓아 두었던 산적한 문제들 중에서 최소한 두어 개는 풀릴 거라고 기대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두 개의 난제만 얻어 왔다.
우선 천마왜의 정체.
지금까지 알려진 바와 달리 천마왜는 마교주의 장난감도 아니었고, 인간 병기는 더더욱 아니란다.
천마왜는 마교주의 대역이었다.
이것만 해도 경천동지할 일인데 동방존자는 또 하나의 우려를 제기했다.
그것은 바로 사호법이 외부 세력과 결탁해서 모종의 움직임을 도모한다는 점이다.
동방존자는 마교의 명맥을 완전히 끊어 버리려고 사호법과 외부 세력이 손잡았다고 여기지만 당찬일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사호법은 마교를 배신했다. 그래서 사호법은 그들과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처지라서 마교를 멸망시키는 데 필사적일 테지만 외부 세력은 다르다.
외부 세력이 사호법과 어떻게 거래를 맺었는지 모르지만 천하의 마교를 상대하려면 자신들도 어느 정도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어정쩡하게 마교를 건드렸다가 역공을 당해서 자신들이 멸망할 수도 있지. 정마대전으로 약해졌다지만 그래도 마교는 마교니까.”
마교는 마교니까.
하여 외부 세력으로서는 전심전력을 다해서 마교를 멸망시킬 이유가 없다. 적당히 사호법을 돕는 척하면서 한 걸음 빼는 게 상책이다.
적어도 자신이라면 그럴 것이다.
“그런데 외부 세력이 마교에서 탈취한 사옥정으로 천마왜를 양성한다고?”
이건 마교와 전면전을 벌이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한마디로 외부 세력은 실익도 없는 싸움에 모든 걸 걸겠다고 나서는 격이다.
대체 그들의 정체가 무엇이기에?
“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서 고개를 가로젓던 당찬일이 자신에게로 날아드는 섬뜩한 기운을 감지했다.
적당히 익숙하면서 지독하게 싫은 기세.
“오늘은 날인가 보군.”
멀리서 자신들 응시하는 사내를 발견한 당찬일이 고개를 들었다.
아무런 특징이 없어서 드러나지 않는 사내. 무표정한 얼굴만큼이나 평범한 체구와 분위기로 자신의 존재를 가리는 사람.
그러나 타고난 살기까지는 감추지 못해서 고약한 기운을 밑자락처럼 까는 남자.
백호였다.
주지하디시피 백호는 마교에 반기를 들었던 사호법 중 하나이다. 마교의 적통과 회합을 가진 직후에 백호가 자신을 가로막는다면 이유는 뻔하다.
‘미행당했군.’
백호는 은잠술에 특화된 호법이었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뒤를 밟히지 않는 당찬일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런 경우, 스스로를 책망하거나 자신을 미행한 이에게 화를 내야 정상이다. 누군가 자신을 몰래 따라다니면 기분이 좋을 리 없을 테니까.
하지만 당찬일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백호의 불법적인 방문이 고마울 정도였다.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로군.’
속내를 감추면서 당찬일이 전방을 응시하자 길목을 막아선 백호가 특유의 시린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그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느냐?”
“언제부터였지?”
곧바로 당찬일이 받아쳤다.
“언제부터 나를 따라다녔나?”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백호가 별 시답지 않은 걸 묻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지.”
백호의 의견에 동의하며 당찬일이 질문의 내용을 바꾸었다.
“당신들이 천마왜를 각성시켰지?”
뜻밖의 질문을 받은 백호가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들이 그러더냐?”
당찬일이 답변을 내놓지 않자 백호의 얇은 입술이 기이한 호선을 그렸다.
“그랬군.”
실실 웃던 백호가 당찬일에게 다가왔다.
“전에는 코흘리개더니 이제는 어엿한 장부가 되었구나. 아주 잘 자라 주었어.”
대견하다는 건지 비웃는 건지 모를 조소를 입가에 띠며 백호가 덧붙였다.
“마치 당년의 그를 보는 것과 같구나.”
당년의 그가 누구일까?
짚이는 바는 있다.
아마도 그분을 말함이리라.
저벅―.
당찬일의 눈동자가 무겁게 가라앉자 백호가 그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하룻강아지의 딱지를 뗀 건 축하한다. 그렇지만 아직 멀었느니라.”
여전히 사람을 벌레 취급 하는 말투였지만 지금의 백호는 당찬일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백호는 아직까지 삼 년 전의 시간을 살고 있었다.
불행히도.
“그들과 어떤 공모를 했느냐?”
여인의 섬섬옥수처럼 가느다란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백호가 물었다.
“협박인가?”
미주산에서 된통 당했던 지공이 떠올라서 당찬일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백호가 기분 좋다는 듯 웃었다. 그러나 그의 미소는 사람의 신경을 건드리는 무엇이 있어서 당찬일로서는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처음부터 나는 너에게 적의가 없었다. 그러니 묻는 말에만 순순히 답하면 우리는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데 무엇하러 너를 겁박하겠느냐?”
당찬일에게 다가서며 백호가 덧붙였다.
“그처럼 중간에 배신만 하지 않으면 된다.”
자꾸만 언급되는 그.
“낙화수를 말하는 건가?”
움찔!
천천히 다가선 백호가 못 박힌 듯 멈춰 섰다.
“당신이 오매불망 잊지 못하는 사람이 낙화수 당협이었느냔 말이야.”
잠시 당찬일을 응시하던 백호가 재미있다는 듯 또다시 웃었다.
“십수 년 동안 당문의 주변을 배회한 보람이 있어. 그의 숙질이 이토록 흥미로운 인간으로 자라다니.”
이로써 그의 정체가 당협이란 사실을 인정한 백호가 당찬일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를 기억하느냐?”
“그런 건 됐고.”
백호의 말을 자른 당찬일이 다시 물었다.
“천마왜를 각성시킨 자가 당신인가?”
휘이잉―.
대화의 주도권을 계속해서 뺏기자 기분이 상한 백호가 검지를 신경질적으로 내리그었다.
쫘아악!
비단 폭이 찢어지는 소리가 파생되며 당찬일의 앞으로 예리한 균열이 그어졌다.
쾅!
당찬일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서자 그 자리에 길고 날카로운 선이 아로새겨졌다.
일지유성수,
미주산의 동굴에서 선보였던 백호의 끔찍한 지공 가운데 하나.
“그를 생각하면 지금 당장 너를 갈가리 찢어 죽여야 마땅하지만 잔소리꾼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참아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라. 하지만 더 이상 경거망동한다면 그땐 용서치 않을 것이야.”
비웃음의 탈을 벗고 백호가 고약한 살기를 사방에 흩뿌렸다.
“이제부터 나는 묻고 너는 답한다. 이것이 규칙이다.”
당찬일을 가리키며 백호가 선언하듯 입을 열었다.
“알겠느…….”
뻐―억!
와당탕!
기세 좋게 말하던 백호의 얼굴이 옆으로 젖혀지면서 무려 열 번이나 바닥을 나뒹굴었다.
“규칙 같은 소리.”
백호가 서 있던 자리를 빼앗은 당찬일이 볼품없이 처박힌 그를 내려다보았다.
“아직도 당신에게 규칙을 만들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
혈광을 일렁이며 당찬일이 다가서자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얼른 알아차리지 못하고 당황해 있던 백호가 서둘러 일어섰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네 이놈!”
휘익!
또다시 당찬일의 주먹이 날아들자 그의 권역에서 재빨리 벗어난 백호가 양 손가락을 활짝 폈다.
“십지겁화수(十指劫火手).”
쿠르릉!
당찬일의 주변으로 열 개의 불기둥이 동시에 솟아났다.
그렇지만 당찬일은 불기둥이 지면에서 머리를 들이밀기 직전에 자리를 벗어나서 열 개의 화룡들은 그의 그림자도 태우지 못했다.
“으윽!”
당찬일은 삼 년 전에도 충분히 위협적이었지만 고작해야 또래 중에서 빼어난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기도면 기도, 분위기면 분위기에 이르기까지.
지금의 당찬일은 백호를 씹어 먹고도 남음이 있었다.
‘혹시?’
백호의 뇌리에서 커다란 의문부호 하나가 생겨날 무렵!
스르륵―.
당찬일이 유령처럼 접근하며 백호의 사방을 막아섰다.
“규칙은 간단해.”
기세가 바뀌자 모든 것이 변했다.
지금까지 당찬일은 다소 냉정하고 무뚝뚝한 성격이었는데 힘을 발산하고부터 포악하고 권위적으로 바뀌었다.
“강한 자가 묻고 약한 자가 답한다. 그것이 무림의 율법이야.”
당찬일의 목소리에서 시뻘건 핏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듯한 착각이 일어서 백호가 어금니를 깨물었다.
‘이, 이 녀석…….’
믿기지 않는 상황에 직면하면 사람들은 일단 그 사실을 부정하고 본다.
당찬일을 주시하던 백호가 그의 눈을 찌를 기세로 손가락 두 개를 펴서 찌르듯 내밀었다.
“이지연환수(二指連環手).”
슈우욱!
두 개의 지력(指力)이 당찬일을 향해서 똬리를 틀며 날아가다 어느 순간부터 한 지점으로 모였다.
슈각!
이것은 지공이 아니다!
이것은…….
지강(指罡)!
탄환처럼 쏘아진 지강이 자신을 꿰뚫어 버릴 기세로 날아들자 당찬일이 팔을 치켜들었다.
‘주먹질로 지강을 상대하겠다고?’
강기는 오로지 강기로만 상대할 수 있다. 강기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하고 정순한 힘이라서 여타의 힘으로 맞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먹으로 지강을 상대하겠다니.
어이가 없어서 백호의 눈매가 가늘어지는데 당찬일의 주먹이 그의 지강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콰지직!
당찬일의 주먹이 지강을 여지없이 박살 내면서 전진하자 백호의 눈이 더할 나위 없이 커졌다.
‘이럴 수가!’
이론적으로는 당찬일의 주먹이 바스러져야 마땅했다. 금석도 가루로 만드는 강기를 어찌 피륙으로 이루어진 주먹이 감당할까?
하지만 당찬일의 주먹은 강기를 수수깡처럼 부수며 자신에게로 전진했기에 백호가 서둘러 피했다.
“너, 너는……!”
백호가 당찬일을 가리켰지만 그의 주먹은 고삐 풀린 야생마처럼 멈출 줄 몰랐다.
쾅!
“허억!”
백호가 위치했던 자리의 아름드리나무를 작살내고서야 당찬일이 주먹을 거두었다.
“이제 대답할 준비가 되었나?”
전설상의 아수라왕처럼 변신한 당찬일이 두 눈에서 핏줄기와도 같은 기세를 뚝뚝 흘리며 다가왔다.
“여, 역시 너는…….”
백호가 뭐라고 입을 열려는데 또다시 당찬일의 주먹이 뒤로 젖혀졌다.
“이놈!”
일단 뒤로 물러선 백호가 모질게 마음을 먹었다.
웬만해서는 목숨까지 거두지는 않으려 했는데 사정을 봐주다간 자신이 위태로워질 지경이다. 전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낭패를 볼 판이다.
“할 수 없지.”
츠츠츠츠.
백호가 전력을 기울이기로 마음먹자 그의 기도가 대번에 바뀌었다.
스으으으.
본래도 존재감이 희미했는데 묻어 두었던 힘을 방출하자 백호는 마치 이 세상에 없는 사람처럼 옅어져만 갔다. 분명 당찬일의 눈앞에 떡 하니 서 있는데도 말이다.
이 정도면 비천대에서 전해 내려오는 적상구소법보다도 한 수 위다.
적상구소법은 인위적으로 체취를 지워 버려서 자신의 흔적을 옅게 하는 기법인데 백호는 냄새가 아니라 존재를 투명화시킨다.
팍!
서서히 자신을 영원의 뒤안길로 보내던 백호가 어느 순간 꺼지듯 사라졌다.
사호법 가운데 잠입과 암살에 특화된 무인답게 백호가 순간적으로 모습을 감춰 버리자 당찬일의 주변에는 소슬한 바람만이 맴돌았다.
그렇게 너울너울 춤사위를 벌이던 바람의 귀퉁이에서 손가락 세 개가 번쩍 튀어나왔다.
“삼백지(三魄指).”
쫘악!
부지불식간의 기습이었기에 미처 방비하지 못한 당찬일이 백호의 삼백지를 얻어맞았다.
쾅!
하지만 당찬일은 멀쩡히 서 있었다. 미주산의 동굴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그였는데 이번의 삼백지는 당찬일을 어쩌지 못했다.
분명 적중했는데 무슨 수로 백호의 공세를 버텼을까?
“거기 있었군.”
해답은 당찬일의 어깨였다. 당찬일은 순간적으로 흡(吸)자결을 운용해서 백호의 삼백지를 오른쪽 어깨로 받아 냈던 것이다.
자신의 어깨를 힐끗 엿본 당찬일이 심연보다 어두운 음성으로 뇌까렸다.
“약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