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86
당문전생 (185)
당찬일이 추궁하자 백호가 신경질적으로 그를 외면했다.
“시건방진 애송이.”
백호가 경멸 어린 말을 뱉었지만 당찬일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답해.”
“지금 강요하는 게냐?”
“아니.”
당찬일이 하얗게 웃었다.
“명령이다.”
“고얀…….”
쿠우우―.
다시금 기세를 끌어올린 백호가 손가락을 활짝 폈다.
“조금 전의 싸움으로 뵈는 게 없나 본데.”
오른손을 오므렸다 펴기를 반복하며 백호가 씹어뱉듯 입을 열었다.
“이참에 그 버르장머리를 고쳐 주마.”
“잠깐, 잠깐.”
당찬일과 백호가 금장이라도 맞붙을 기세를 보이자 백상이 끼어들었다.
“그대가 착각했나 본데, 백호는 고약한 첩보를 입수해서 미주산으로 갔었다.”
“귀하도 백 중 백 신뢰할 수는 없소.”
“음?”
“성도부 관아의 동혈에서 자행된 실험의 주체가 누구인지는 아직까지 밝혀진 바가 없으니까.”
“으음.”
희한하게도 성도부 관아의 지하 동혈과 미주산 동굴에서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끔찍한 광경이 펼쳐졌고, 그곳에는 백상과 백호가 나란히 있었다.
이런 판국이니 당찬일이 두 사람을 의심하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귀하도 저 사람처럼 관아의 지하 동혈에서 끔찍한 짓거리가 자행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겠구려?”
당찬일이 백호를 가리켰다.
“우연히?”
“비꼴 것 없다.”
백상이 나지막이 탄식했다.
“믿어 달라고 강권하지 않겠다. 우연치고는 지나치게 공교로운 것이 사실이니까.”
“아니, 그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백상이 이렇게 나오니까 가슴이 답답해서 당찬일이 양팔을 벌렸다.
“정말로 이상하지 않소? 하필이면 두 사람이 동시에 생체 실험의 현장에서 목격되었다는 것이?”
“그건…….”
“또한.”
백상의 말을 자르며 당찬일이 의문 하나를 추가했다.
“귀하의 말대로라면 오존자 측에서 외부 세력과 결탁하여 천마왜를 전용하고, 기타 여러 가지 나쁜 짓을 벌인다는 이야기잖소?”
애당초 백상의 답변을 기대하지 않고 던진 질문이라서 당찬일이 그대로 말을 이었다.
“그럴 거면 자신들의 근거지인 서안부에서 일을 도모하지, 무엇하러 성도부까지 왔느냐는 거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던 당찬일이 백호에게 시선을 집중시켰다.
“이행행이라는 의원.”
백호를 응시하며 당찬일이 입꼬리를 올렸다.
“들어 본 이름일 거다.”
백호의 답변은 즉각적이었다.
“그래서?”
“당신이 이행행을 마약 중독자로 만들었지?”
“내가?”
백호가 제 머리를 짚으며 피식 웃었다.
너무나 재수 없어서 한 대 올려붙이지 않으면 직성이 풀릴 것 같지 않은 미소를 지으며 백호가 턱을 들었다.
“난 그 멍청이에게 오석산을 건넸을 뿐이다. 취사 선택은 오롯이 그자의 몫이었지.”
그리고 의지박약한 이행행은 오석산을 향음(鄕飮)했을 테고.
“성도부의 사람들을 점혈로 살해한 이유는 무엇인가?”
“뭐라고?”
당찬일이 추궁하자 백상이 깜짝 놀랐다.
“설마……!”
백상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의 눈길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기며 백호가 심드렁하게 답했다.
“뱀을 끄집어내려면 약간의 자극이 필요하거든.”
씨익―.
또다시 터져 나온 백호의 잔인무도한 미소.
“그렇다고 무고한 민간인을 희생양으로…….”
“이거 봐.”
백호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여긴 무림이야. 그리고 우리는 무림인이란 말이지. 언제부터 무림인이 그런 사소한 걸 신경 썼다는 거야?”
신경질적으로 투덜거리던 백호가 한마디 툭 내뱉었다.
“도덕적인 충고를 늘어놓고 싶다면 다른 사람을 알아봐라, 애송이.”
“좋다. 그건 본질이 아니니까 일단은 넘어가도록 하지.”
예상은 했지만 백호가 너무도 뻔뻔하게 나와서 당찬일이 입술을 깨물었다. 역시 이자는 너무나 재수가 없다. 한 대 올려붙이면 속이 다 시원하겠다.
백상도 백호에게 할 말이 많은 모양이었지만 꾹 눌러 참는 기색이 역력했다.
역시 이 둘은 친하지 않다.
“끄집어내고 싶었던 뱀이란 우리 당문인가?”
“설마.”
여전히 빙글거리면서 백호가 입을 열었다.
“조금 전에 이야기하지 않았느냐?”
백호가 이죽거렸다.
“중간에 배신한 자에 관해서 말이다.”
실실 웃는 백호를 향해서 백상이 책망의 눈짓을 보냈다.
―그에 관해서 이야기했나?
백상이 눈짓으로 질책했지만 백호는 태연했다.
―왜? 뭐가 잘못되었나?
도리어 백상을 쏘아보면서 백호가 이를 드러냈다.
―나는 네가 아니야. 너의 방식을 내게 고집하지 마라.
백상에게 경고의 눈짓을 날리고 백호가 냉정하게 고개를 돌렸다.
역시 뜻이 같다고 해서 결마저 같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오존자 측에서 성도부를 기점으로 생체 실험을 자행한 이유가……?”
“일부러 그러는 거냐, 아니면 정말로 돌대가리냐? 왜 자꾸 먼 거리를 돌아서 오려고 해?”
자신의 옆머리를 툭툭 건드리면서 백호가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네가 가진 여러 의문이 한 방에 풀릴 답변이 있는데 어째서 외면하는 거냐?”
백호가 자못 재미난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오존자와 연대한 세력이 모처라면 의문이 한순간에 해소되지 않나?”
그 모처는…….
당문!
“전 무림을 통틀어서 당문만큼 인체에 관한 연구를 진척시킨 세력은 없다. 그리고 관의 진간접적 도움을 받으며 비윤리적인 실험을 감행할 수 있는 집단도 당문밖에 없지.”
백호의 추론은 반박할 수 없는 것이라서 당찬일이 굳은 듯 서 있었다.
“그러니 오존자 측에서도 당문의 터전인 성도부에서 ‘그 실험’을 벌이는 데 동의했겠지.”
그 실험이란?
“천마왜의 완전한 인간 병기화, 다른 말로는 사옥정의 내재된 힘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실험.”
백호가 단정 짓자 당찬일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추리는 그럴 듯했다.
주지하디시피 당문은 독과 암기로 천하를 오시하는 세가다. 독술로 천하제일이란 뜻은 의술로도 천하제일이란 말과 같다.
독을 공부하려면 의술을 밑바탕에 둬야 하니까.
당문의 의술과 마교의 사옥정이 결합한다면? 거기에 천마왜라는 결과물까지 견본으로 제시된다면?
‘끔찍하군.’
완성품이 없는 실험은 더딜 수밖에 없다.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모르기에 무작정 시도해야 하니까.
‘될 때까지’라는 말처럼 사람 미치게 하는 것도 없다.
그러나 천마왜라는 결과물을 보면서 실험한다면 연구의 속도는 비약적으로 빨라진다.
“그들이 서안부를 놔두고 성도부에서 실험을 자행한 이유를 이제야 알겠느냐? 성도부가 당문의 권역이기 때문이다.”
실험에 필요한 제반 시설을 갖추었고, 지역의 치안을 담당하는 관리들까지 구워삶았으니 성도부는 천마왜를 인간 병기로 탈바꿈시키는 천혜의 장소였을 터.
“흥미롭군.”
당찬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리하자면, 교권(敎權)을 틀어쥐고 있던 오존자가 외부 세력을 끌어들여 무리하게 교세를 확장하려 했다. 대역으로만 존재해야 하는 천마왜를 인간 병기로 재탄생시켜가면서.”
당찬일이 백호와 백상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하여 교권에서 멀리 있던 당신들, 사호법이 그것만은 막아 보고자 나섰지만 교권파의 힘에는 역부족이라서 무림사군자와 연대했다.”
백호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마도 당찬일이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개입하지 않으려는 심산인 듯했다.
“반전에 반전이 꼬리를 무는군. 정말 재미있어.”
척!
걸음을 멈춘 당찬일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동자는 기이하게 일렁여서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찌륵― 찌륵―.
이야기가 길어지다 보니 어느새 밤이 찾아왔다.
풀벌레는 오늘도 어제처럼 익숙한 울음을 토했지만 어쩐지 낯설어서 당찬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어제와 같은 정경, 어제와 같은 음향이다. 풀벌레도 여전했고, 달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켰으며, 바람은 그 정도의 세기로 불었다.
그런데 왜 이리 불편할까?
사물은 그대로인데 그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니 아무래도 사람이 문제인가 보다.
“그럼 셋째 숙부님은 이 난장판에서 어떤 배역을 맡았다는 거지?”
“본래 낙화수는 정교대전에서 무림사군자와 더불어 우리를 돕기로 했었다. 또 그랬었고,”
백호가 백상을 돌아보았다. 이제는 네가 말하라는 듯.
“문제는 우리가 극존……을 시해하려 총단으로 밀고 들어갔을 때 벌어졌다.”
사호법과 사군자는 최우선 목표를 마교주의 암살로 정했다. 마교주만 사라진다면 구심점이 없어진 오존자도 결국 뜻을 접을 테니까.
“그러나 총단에는 오존자의 본진이 버티고 있었지.”
오존자의 저력은 사호법과 사군자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이라서 총단으로 잠입했던 이들은 마교주를 암살하겠다는 뜻을 이루기는커녕 퇴로를 걱정할 지경까지 내몰렸다.
“그때 사신이 추격자들을 막아서겠다고 나섰다.”
“숭고한 희생이었지.”
백상의 말에 백호가 빈정거림을 얹었다.
그렇게 시작된 탈출.
사호법을 추종하던 마교의 정예들이 속속 목숨을 잃고 무적에 가까운 신위를 자랑하던 사군자들도 힘에 겨워할 무렵, 사호법은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그건 바로 천마왜 하나를 낙화수와 함께 탈출시키는 것이었다. 우리가 이 자리에서 전멸할지라도 낙화수라면 본가로 귀환해서 오존자의 음모를 저지할 수 있으리라 여겼지.”
“듣기로 셋째 숙부님은 사신과 더불어 저지조를 맡은 걸로 아는데?”
“사군자 측은 그리 알았겠지. 하지만 우리의 생각은 달랐다. 당협이야말로 오존자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고 생각해서 그에게 천마왜를 딸려 보냈으며…….”
잠시 숨을 멈추었던 백상이 백호를 돌아보았다.
피식!
백호의 처연한 웃음은 당찬일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언제나 타인을 비웃고, 세상을 향해서 조소의 시선을 던지기만 하던 그가 저토록 서글프게 웃을 수 있다니.
“수많은 사옥정 가운데 가장 순수한 녀석까지 안겨 주었다. 사군자들에게 당협을 탈출시킨 것을 비밀에 붙인 이유도 이것이었지.”
처연하던 웃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대신한 건 완전히 뒤틀려서 보기 싫은 미소.
“사군자, 사군자, 잘만 떠들어 대더니 사옥정을 보더니 눈이 뒤집히더군.”
당시를 회상하는지 백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도도하던 사신이며 물욕 따윈 없어 보이던 극제와 자신감 하나는 천하제일이던 도왕까지. 무림사군자의 태반이 사옥정을 하나씩은 챙기더군. 그나마 검군은 초연했지만.”
왜 부끄러움이 본인 몫일까?
괜히 창피해서 당찬일이 고개를 돌렸다.
“이런 자들에게 어찌 천마왜와 순수한 사옥정을 지닌 낙화수의 탈출 사실을 알리겠느냐? 그들이 알았더라면 낙화수를 가만두었을까?”
찌릿.
가슴 한구석에 대못이 박히는 것만 같아서 당찬일이 인상을 구겼다.
다시금 부상하는 인간의 추악한 욕망.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사람들은 견물생심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진다. 물건이 없을 때는 고고한 척을 다 해도, 막상 욕망의 대상이 보이면 순식간에 몸과 마음을 빼앗긴다.
인상을 구기는 당찬일을 넌지시 응시하며 백호가 회고를 이어 갔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결과물이 있으면 실험은 가속이 붙는다. 우리가 딸려 보낸 두 가지라면 능히 오존자와 대적할 수 있으리라 여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