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90
당문전생 (189)
송양지인(宋襄之仁)
“어이쿠!”
곽칠이란 도박판의 전주를 골목길로 거칠게 몰아붙인 당찬일이 손을 내밀었다.
“차용증.”
“그, 그게 무슨 말씀인지?”
빡!
곽칠의 뒷머리를 가격한 당찬일이 무심한 어조로 되뇌었다.
“차용증.”
“이, 이러시면 저도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곽칠이 뒷머리를 부여잡으며 반항했지만 당찬일의 어조는 처음 그대로였다.
“차용증.”
결국 당찬일의 압력에 굴복한 곽칠이 품을 뒤적거렸다.
“나중에 재미없을 텐데요. 그래서 어떤 분의 것을 원하십니까?”
“당욱.”
순간 곽칠이 몸을 굳혔지만 당찬일은 그의 반응을 일부러 무시했다.
“왜? 당욱의 차용증이 없나? 다른 사람에게 넘겼어?”
“아, 아니, 그분은 빚을 좀 많이 지셔서…….”
당찬일의 눈치를 열심히 살피며 곽칠이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정말로 본인 때문에 우리가 당욱을 작업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건가?
곽칠의 눈동자가 쉼 없이 움직였지만 당찬일은 무심할 뿐이었다.
“그래서, 안 주겠다고?”
“아, 아니, 가액이 천 냥 이상인 차용증을 누가 가지고 다니겠습니까요? 따로 보관하지.”
“흐음. 일리가 있군.”
턱을 쓰다듬던 당찬일이 곽칠의 어깨를 잡았다.
“당욱이 진 빚이 정확히 얼마야?”
“사, 삼천사백 냥…….”
“뻥치지 말고.”
“정말입니다! 정말로 삼천사백 냥이라고요!”
“정말?”
기가 막힌다는 듯 얼굴을 짚은 당찬일이 곧 한숨을 토했다.
“그래서 그 양반의 안색이 그랬군. 뭐, 좋아.”
팔로 곽칠의 목을 감은 당찬일이 그에게 자신의 얼굴을 가져갔다.
“그래서 얼마에 합의 볼래?”
“합의라니, 그 무슨 말씀을?”
“선수끼리 이거 왜 이래? 그거 작업 친 결과잖아? 호구 하나 문 액수치고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당찬일의 목소리가 진득해지자 곽칠이 입을 닫았다.
“물론 이곳까지 제 발로 기어들어 온 당욱의 잘못도 있지. 그래서 말인데.”
당찬일이 전표 한 장을 꺼냈다.
“이걸로 퉁 치자고.”
“에엑? 백 냥? 지금 장난하십니까? 가액 백 냥짜리 전표로 삼천사백 냥을 없던 걸로 하자니요? 완전 날강도가 따로 없구먼!”
빠악!
또다시 곽칠의 뒤통수를 갈긴 당찬일이 씹어뱉듯 입을 열었다.
“날강도는 순진한 호구 하나 물어서 삼천사백 냥을 편취하려는 너희들이지. 잡소리 말고 이거라도 먹고 떨어질래, 아니면 한 푼도 못 받고 말래?”
“지금 협박하시는 겁니까?”
곽칠이 호기롭게 대들었다.
“여긴 성도부가 아닌데 너무 막 나가는 것 아니오?”
“성도부라서 당문이 무서운 걸까?”
당찬일의 입꼬리가 기이한 호선을 그렸다.
“당문이라서 성도부가 무서운 건 아니고?”
당찬일의 얼음장 같은 눈이 곽칠의 폐부를 찌르고 들어왔다.
‘으윽!’
뱀의 눈길을 받은 먹잇감처럼 굳어진 곽칠을 뚫어지게 응시하던 당찬일이 곧 표정을 풀었다.
“뭘 또 그리 졸고 그래?”
곽칠의 어깨를 탁탁 두드리며 당찬일이 자못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튼 내 제안을 잘 생각해 보라고. 나도 당욱의 건을 소리 소문 없이 해결해야 대가주님의 눈도장을 찍는단 말이지.”
“만약 제가 안 받으면 어쩔 거요?”
“우리는 서안부에서 개쪽을 파는 대신, 너희는 이 근방에서 장사를 접어야겠지.”
“무, 무슨 수로 우리의 영업에 어깃장을 놓겠다는 거요?”
“갖은 수로.”
당찬일이 재미나다는 듯 빙글거렸다.
“우리는 당문이야.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당문은 정파가 아니라지만 그래도 정도를 견지한다고 들었는데!”
“나는 양공(襄公)이 아니거든. 우리 당문은 송나라가 아니고.”
“그게 무슨 소리요?”
“너희 놈들은 송양지인(宋襄之仁)의 고사도 모르나?”
춘추전국시대에 천하의 패권을 놓고 초나라와 격돌하던 송나라가 전면전을 벌이게 되었다.
두 나라는 홍수(泓水)라는 강을 사이에 두고 격돌하게 되었는데 초나라는 군사적으로 우위에 있었고, 송나라는 진을 먼저 쳤다.
당연히 수적으로 열세인 송나라의 입장에서는 이제 홍수를 건너기 시작한 초나라를 기습했어야 옳았다.
그러나 송나라의 군주였던 양공은 상대가 미처 준비를 하기 전에 기습하는 것은 인(仁)의 군대가 할 일이 아니라는 한가한 소리나 늘어놓으며 초나라가 도하(渡河)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이어 강을 건넌 초나라가 진을 치기 시작하자 이때라도 공격해야 한다는 대사마(大司馬) 자어(子魚)의 권고를 또다시 인의를 내세워 거절했다.
결국 초나라의 전열이 완비되고 두 나라가 전쟁에 돌입했는데 승자는 당연히 군사적으로 우위에 있던 초나라의 몫이었다.
반면 지리적인 이점을 알량한 도덕심 때문에 활용하지 못했던 송나라는 대패했고, 양공은 부상으로 병사한다.
이 일화를 일컬어 송나라의 양공이 베푼 그릇된 인의(仁義)라고 하여 사람들이 두고두고 비웃었다.
“양공이란 인물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지켰으니까 자기만족을 누렸을지 몰라도 그만을 바라보던 송나라 백성들은 무슨 죄냔 말이지.”
인상을 구기던 당찬일이 다시 손을 쳐들었다.
“돈도 좋지만 공부 좀 하고 살아라. 어째 너희들은 송양지인도 모르냐?”
따악!
“아, 자꾸 왜 때립니까? 우리도 알 건 안다고요!”
“그래?”
피식 웃은 당찬일이 일부러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말이야, 자신의 도덕심 때문에 가문에 손해를 끼치는 바보, 멍청이가 아니거든. 알량한 정당성 따위보다 실질적인 효율을 우선시한단 말이다.”
곽칠에게 윽박지르듯 으르렁거리던 당찬일이 못내 아쉽다는 듯 전표를 들여다보았다.
“금쪽같은 백 냥이 나가는 것도 속 쓰려서 죽겠는데 자꾸 자극하지 말란 말이야.”
명심하라는 둥, 내일까지라는 둥, 계속해서 으름장을 놓으며 당찬일이 사라지자 그때까지 움츠러들었던 곽칠이 고개를 들었다.
“내일까지라…….”
휘영청 떠 있는 달을 응시하던 곽칠이 천천히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내일까지 그쪽 숨이 붙어 있다면 말이지.”
* * *
곽칠의 말을 충실히 따르려는 심산이었을까?
당찬일은 서안 지부로 복귀하지 않고 그 길로 어딘가를 향했다.
그곳은 바로…….
으리으리한 전각을 올려다보던 당찬일이 그림자 사이로 몸을 묻었다.
“컥!”
“헉!”
정확히 여섯 명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사위는 무심할 정도로 고요했다.
그렇게 여섯 명의 입을 막은 당찬일이 익숙한 움직임으로 어둠과 어둠 사이를 넘나들며 자신을 숨겼다.
마치 목표물을 암살하러 이동하는 자객처럼.
그렇게 그가 이른 곳은 거대한 전각에 위치한 규방(閨房)이었다.
“흠.”
잠시 주위를 둘러본 당찬일이 곧바로 규방을 들어가지 않고 전각의 측면으로 돌아들었다.
픽!
서쪽 방향에서 규방을 지키던 사내의 수혈을 짚은 당찬일이 이번에는 동쪽으로 향했다.
픽! 픽!
규방을 지키는 여섯 명의 무인을 조용히 잠재운 인영이 주변을 둘러보고 그제야 안으로 들어갔다.
잠을 자던 대교가 기이한 느낌을 받고 실눈을 떴다.
‘음?’
창문에 앉아서 어둠보다 더한 어두움을 발산하는 묘한 형체.
“누구?”
“쉿!”
깊은 어둠을 뚫고 나온 당찬일이 자신의 입을 막자 대교가 이불 속에 숨겨 두었던 단도를 잡았다.
“손가락 잘못 놀리지 마.”
당찬일이 하얗게 웃었다.
“자칫 잘못하다간 내 손이 미끄러질 수 있거든.”
당찬일의 나지막한 으름장에 단도를 내려놓은 대교가 짐짓 놀랐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공자님은 본가로 돌아가셨다고……?”
“다시 왔잖아.”
피식 웃으며 당찬일이 대교의 입에서 손을 뗐다.
“용건만 마치고 떠날 테니 소란 부리지 않는 게 피차 좋을 거야.”
나지막이 명령하는 당찬일을 응시하던 대교가 까르륵 웃었다.
“삼 년 만에 뵈니 기태가 현양해지셨네요.”
달콤한 미소를 베어 물며 당찬일에게 머리를 기댄 대교가 속삭였다.
“그때의 만남이 너무 짧았지요?”
당찬일의 가슴에 머리를 비비던 대교가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가다듬지도 않고 몸을 돌렸다.
“늦었지만 술이라도 한잔 올릴까요?”
인영이 아무런 답변을 내놓지 않자 살며시 몸을 일으켰다.
출렁!
급히 일어난 탓인지 대교의 웃옷이 반쯤 내려가면서 달덩이처럼 찬란한 젖가슴 하나가 어둠을 산산이 찢어발기며 드러났다.
사방을 온통 적시는 대교의 염기.
“아니면 그냥 소녀와 이야기를 나누실래요?”
사박사박.
풀 먹인 이불을 밟으며 인영에게 다가선 대교가 꽃처럼 붉은 입술을 나풀거렸다.
“자, 오세요.”
대교의 끈끈한 속삭임은 너무도 유혹적이라서 철석간장을 지닌 장부라도 한순간에 녹아내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당찬일에겐 전혀 유혹적이지 않았다. 그녀의 색기는 화미랑에 비한다면 하품 나는 수준이었다.
“지겨우니까 그만해.”
뚝!
이렇게 지겨울 수 있을까?
당찬일의 음성에 담긴 권태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라서 자신도 지겨워진 대교가 급히 웃옷을 끌어 올렸다.
“창피한 척도 하지 마라. 선수끼리 왜 이래?”
따분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당찬일에게서 섬뜩함을 넘어서는 호기심이 치밀어 오른 대교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확실히 재미난 사람이로군요?”
완연히 바뀐 분위기.
더 이상의 연기는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대교가 눈동자만 돌려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기척도 없이 비살십삼대 전원을 제압할 실력이라면 능히 절정이다. 삼 년 전에도 빼어났지만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잠시 궁리하던 대교가 곧 사무적으로 입을 열었다.
“당욱 공자님 때문에 오셨나요?”
“그것만이라면 야밤에 출두하지도 않았겠지.”
피식 웃으며 당찬일이 의자에 앉았다.
“나를 감시하라고 사주한 이가 누구야?”
당찬일이 곧바로 치고 들어오자 대교가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 대체 뭐지요?”
대교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오는 순간 당찬일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는 이번일의 주모자급이 아니라는 것을.
단순한 행동대원 측에나 겨우 낀다는 사실을.
이렇게 되면 만화루가 서안에 위치한 오존자, 혹은 사호법이 끌어들인 외부 세력의 분점(分店)일지도 모른다는 가정도 폐기다.
그렇다면 당찬일이 유추한 오존자, 혹은 사호법이 끌어들인 외부 세력은 어디일까?
“너와는 이야기할 게 없군.”
대교를 털어 내면서 당찬일이 일어섰다.
“송사리에게 괜한 시간을 들였어.”
당찬일이 사라지려는데 대교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맞아요. 나는 조직의 하수인 측에나 겨우 끼는 신세지요. 그렇지만 책임자 정도는 소개시켜 줄 수 있어요.”
“그가 서북(西北)의 결루봉(結縷峰)인가?”
서북은 섬서성과 감숙성 그리고 청해성을 아우르는 지역이다.
“에?”
당찬일의 질문에 화들짝 놀란 대교가 저도 모르게 이상한 소리를 냈다.
잔디의 우두머리, 결루봉이란 명칭은 자신들끼리만 통용되는 별칭이다. 절대로 외부 사람이 알아서는 안 되고, 알 수도 없는 호칭이다.
그런데 자신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당문의 공자님 입에서 비밀스러운 별칭이 자연스레 터져 나오다니.
“결루봉이라면 만날 용의가 있지만 그 아래라면 사절이다.”
당찬일이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나머지는 결정권이 없을 테니까.”
꿀꺽―.
마른침을 삼킨 대교가 조금 전의 질문을 반복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게 전부인 모양이었다.
“당신, 대체 뭔가요?”
고개를 든 당찬일이 달빛을 응시했다.
당거정이 바라본 무림은 지금처럼 혼탁했을까? 오백여 년 후의 무림이 격동기에 접어들까 우려해서 당거정은 《만상요람》을 남긴 것일까?
“천사련의 태동과 성장을 간접적으로나마 엿본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