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91
당문전생 (190)
서북(西北)의 결루봉(結縷峰)
관제묘는 중원 어디에나 존재하는 대표적인 사당이다.
사람과 물자가 넘쳐나는 경시에도,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돈과 꿈을 좇아 도회로 떠난 시골에도 관제묘 하나 정도는 있다.
대교가 안내한 관제묘는 흥류문에서 백리 밖에 위치한 곳이라서 서안부라기보다 여산(驪山)에 가까웠다.
“그럼.”
여산 인근의 관제묘까지 당찬일을 안내한 대교가 고개를 숙였다.
“행운을 빌어요.”
묘한 말을 남기고 대교가 사라지자 그녀를 힐끗 쳐다본 당찬일이 사당을 응시했다.
너무 낡아서 지금 당장 쓰러져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사당. 관제묘라기보다 폐가에 가까웠기에 참배객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기고한 사당.
“적어도 방해꾼은 없겠군.”
관제묘는 인가에서 완전히 벗어난 장소에 있었기에 고즈넉하면서도 을씨년스러웠다. 단지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당 자체가 발산하는 기세가 그랬다.
사람뿐 아니라 건조물도 시간이 흐르면서 자아를 가지게 되는지도.
다소 엉뚱한 상상을 하며 관제묘를 바라보던 당찬일이 눈을 감았다.
‘열, 열다섯, 스물, 스물일곱.’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사람의 숫자.
조금 전까지 관제묘의 주변엔 아무도 없었거늘 대교가 모습을 감추자마자 암중에서 인영들이 모여든다.
삽시간에 무려 마흔 명가량의 인원이 집결했지만 조금의 인기척도 내지 않는다. 그 흔한 숨결 하나 내뿜지 않고, 옷깃 스치는 소리도 없다.
이로 미루어 이들은 전문 살수들이다.
당찬일이 계산하는데 사당 밖에서 늙수그레한 음성이 들렸다.
“공자가 나를 찾으셨는가?”
음성의 주인이 얼굴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당찬일은 그녀가 누구인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그녀로군.’
전각안은 단지 그림만을 기억하지 않는다. 얼핏 들은 음향까지도 각인하기에 당찬일은 대부분의 사건과 사고 그리고 인물을 떠올릴 수 있었다.
용파를 만나러 흥류문을 방문했을 때를 떠올리며 당찬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이다.”
“당문의 귀하신 공자님이 우리 같은 잡초들을 어인 일로 수소문하셨을꼬?”
피식―.
간을 보겠단다.
“피차 낭비할 시간이 없을 테니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비로소 당찬일이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지난 며칠 동안 나에 대해서 충분히 보고받았을 것 아니오.”
당찬일의 날카로운 힐난에 음성의 주인이 말문을 닫았다. 그의 지적은 통렬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정확해서 어떠한 변명도 붙일 틈이 없었다.
“언제 깨달았지?”
‘우리가 서안 지부에 세작을 심은 사실을’이란 앞머리를 빼고 음성의 주인이 묻자 당찬일이 숨도 쉬지 않고 답했다.
그런 걸 왜 묻느냐는 듯.
“서안 지부로 복귀한 날부터.”
다른 말로는 처음부터.
“부처님 손바닥 안이었다는 건가?”
암중 음성의 주인이 당찬일의 요모조모를 뜯었다.
그들과의 협업을 진행하는 와중에 필연적으로 당찬일이란 청년을 감시하게 되었다. 당찬일이란 청년은 이번 일의 열쇠를 쥐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니까.
그런데 당찬일은 자신들의 움직임을 훤히 들여다보았단다.
‘생각해 보니!’
당찬일에 관한 보고가 올라올 때마다 이질적인 느낌이 들어서 몇 번이고 보고서를 재탕했다. 그러고도 마음속의 찜찜함을 해소하지 못해서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그랬는데, 그렇게 골머리를 썩었는데.
이제야 이유를 알겠다.
‘저 청년은 지나치게 노회해.’
마치 수십 년은 강호에서 뒹굴어 먹은 노강호처럼 당찬일이란 청년은 말부터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노련하다 못해 노숙(老宿)했다.
지금도 마찬가지.
당찬일은 드러난 상태이고 자신은 어둠 속인데 대화의 주도권은 줄곧 당찬일에게 있다.
“좋소. 그건 그렇다 치고,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시오? 공자에 대한 감시를 거두라는 말씀이라면 꺼내지도 마시구려. 우리도 사정이란 게 있거든.”
“설마요.”
당찬일이 양팔을 벌렸다.
“그따위 사소한 부탁을 늘어놓을 요량이었다면 천사련의 결루봉을 청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천사련!
드디어 정사마에서 사(邪)를 대표한다는 단체를 당찬일이 거론하자 일순간 주변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천사련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단체니까. 입에 올리긴 쉬워도 뒷감당은 어려운 이름이니까.
그러나 당찬일은 태연했다.
“결루봉이란 명칭을 알 정도니 공자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와도 이상할 것이 없지. 하지만 우리 식구가 아니라 타인이 천사련이라고 하니까 어쩐지 낯설구려.”
“그럼 조심하시던가.”
싸악―.
당찬일의 말투가 딱딱하게 변했다. 그에 따라 온화하던 그의 분위기도 완전히 바뀌었다.
“행동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 움직인 만큼 주목을 받게 됨은 정한 이치이거늘 천사련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까?”
당찬일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그토록 세인의 입방정이 두려웠으면 이전처럼 은인자중(隱忍自重)했어야지.”
우우웅―.
당찬일의 송곳 같은 지적에 주변의 공기가 한껏 부풀었다.
충고를 가장한 비난을 듣는 입장에선 당연히 기분 나쁠 법도 한데 음성의 주인은 침묵을 지켰다.
잠시 후, 음성의 주인이 입을 열었다.
“우리에게 바라는 바를 말하시구려. 단 하나…….”
음성의 주인이 축축하게 덧붙였다.
“우리에게 연수를 제안한 이들의 정체를 알고 싶다면 마음속에 묻어 두시구려.”
당연하다. 거래자와의 비밀 엄수는 시전의 불량배들도 따르는 무림 최고의 불문율인데 천하의 천사련이 어찌 그것을 어기겠는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인 당찬일이 답했다.
솔직하게 말해서 천사련에게 손을 내민 쪽이 교권파인 오존자였는지, 모반의 기치를 들었던 사호법인지 궁금하긴 했지만 일단 참았다.
천사련은 천사련대로의 사정이 있을 테고, 무리해서까지 그것을 깨트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나는 천사련이 수면 아래로 다시 잠들었으면 합니다.”
“공자는 이 사람을 언제 보았다고 이런 제안을 하지요?”
당돌하게?
“삼 년 전 흥류문에서 뵈었지요.”
“그게 무슨……?”
당찬일이 음성의 주인 쪽으로 눈동자를 돌렸다.
“삼 년 전에 흥류문 인근 취우객잔(翠羽客棧) 앞에서 취객 둘하고 화대를 흥정하지 않으셨습니까? 대설(大雪; 24절기 중 하나)인데도 불구하고 녹색의 포삼(布衫)을 입으셨더군요.”
음성의 주인이 말문을 닫아야만 했다.
그녀는 날씨와 상관없이 포삼을 즐겨 입곤 한다. 특히 녹색의 포삼을. 삼 년 전의 대설이라도 그녀는 녹색 포삼을 입었을 것이다.
그런데 당찬일은 어찌 그것을 기억할까?
“공자는 참으로 알 수 없는 사람이구려.”
당찬일의 말을 곱씹던 음성이 주인이 화제를 전환했다. 지금은 개인적인 호기심을 논할 자리가 아니었기에.
“우리가 또다시 침잠(沈潛)을 선택해서 얻을 건 무엇인가요?”
“지난 십구 년 동안 자행한 천사련의 행위를 일소에 붙이도록 하지요.”
“십구 년 동안 우리가 벌인 일을 묻어 주시겠다…….”
다람쥐의 꼬리처럼 말을 북실하게 부풀리던 음성의 주인이 목소리를 살짝 높였다.
“공자의 제안을 당문의 뜻으로 간주해도 되겠소?”
“아니.”
당찬일이 칼같이 잘랐다.
“내 뜻입니다.”
“음…….”
다소 의외라는 듯 음성의 주인이 침묵을 유지했다.
“우리의 지난 행적을 묻을 요량이라면 아주 쉬운 방법이 있다오.”
음성의 주인이 던진 말의 함의는 너무도 노골적이라서 당찬일이 손을 늘어트렸다.
“그 방법은 별로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만?”
“그건 우리 문제요.”
스륵―.
음성의 주인이 어둠 속으로 완전히 숨어들자마자 당찬일을 둘러싼 사십 인이 기이한 대오를 그렸다.
쩌―엉!
당찬일을 중앙에 두고 순식간에 펼쳐지는 다대일의 진법.
‘구궁영(九宮影)?’
무인들의 진법은 무당파의 구궁영을 거푸 네 차례 겹쳐 놓은 형태였다. 그리고 건(乾), 곤(坤), 간(艮), 손(巽)의 사유(四維)에 네 사람을 분산 배치했고.
이들이 무슨 재주로 무당파의 비전을 입수했는지 몰라도 네 겹의 구궁영이라면 상대하기 매우 까다로울 터.
하지만 당찬일은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순간을 반기는 눈치였다.
―너는 투기와 광기 사이에서 교묘하게 줄타기를 하는 모양이니 양쪽을 잘만 저울질하다 보면 커다란 성과를 이룰 수 있을 거야.
‘호민, 너는 한 가지를 잊었다.’
마기에서 치환할 수 있는 원시적이면서 원초적인 투쟁심은 투기와 광기만이 아니다. 투기보다 훨씬 직접적이면서 광기보다 훨씬 절제된 싸움의 본능.
그것은 바로 살기(殺氣)!
당호민의 충고대로 투기와 광기라는 양극단을 조절하면서 그 사이에 살기라는 본능을 끼워 넣을 수 있다면 그의 무력은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문제는 이런 실험을 감행할 마땅한 싸움 상대가 없다는 거다.
적당히 강하면서 적당히 자극적인 무공으로 당찬일을 몰아붙일 상대가 필요했다. 그래야 그가 마기를 투기로 치환하여 광기의 초입까지 끌어낼 테니까.
그 와중에 투기와 광기의 접점인 살기를 깨달으면 금상첨화(錦上添花)이겠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만한 상대를 구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때마침 네 겹의 구궁영을 펼치는 천사련의 살수들과 싸워야 한다면 마기를 실험하기에 그만이 아니겠는가.
‘좋아.’
눈을 감은 당찬일이 마기라고 일컬어지는 기세를 끌어올렸다.
츠츠츠츠.
백발인의 그것처럼 끈적끈적한 살기가 당찬일의 몸에서 발현되자 천사련의 살수들이 서로를 돌아보았다.
아마도 음성의 주인에게서 명령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봐줄 것 없다.
음성의 주인이 고개를 사선으로 내리자 천사련의 살수들이 당찬일을 중앙에 두고 서서히 원을 그렸다.
너울너울.
또 윤무일까?
아니다. 천사련의 살수들이 보이는 움직임은 원형의 춤사위였지만 윤무는 아니었다.
스르륵.
흉성이 발현되어 날뛰는 야수를 달래는 사육사처럼 살수들이 포위망을 차근차근 좁혀 갔다.
그들이 자신에게로 접근하자 당찬일이 돌연 옆으로 몸을 돌렸다.
“헉!”
그저 몸을 틀었을 뿐인데 삼 장의 거리를 격하고 우측의 살수들에게 도달한 당찬일이 양손을 쭉 뻗었다.
“컥!”
목이 잡힌 살수들이 잠시 잠깐 괴로워하다 축 늘어지자 그대로 한 발 더 직진한 당찬일이 뒤쪽에서 대기 중인 이들에게로 쇄도했다.
“마, 막아!”
콰직!
오른쪽 어깨로 살수들의 진형을 분쇄한 당찬일이 주먹을 쭉 뻗었다.
우지끈!
마의 억강일초…… 아니, 투기의 억강일초로 오른편 아홉 명의 대오를 무너트린 당찬일이 뒤쪽에서 밀려드는 살기에 비룡번신의 수법으로 몸을 틀었다.
처처척!
광기에 눈을 뜬 공성벽?
왼편에서 들이닥치던 살수들이 수십 명으로 분열한 당찬일의 잔상에 가로막혔다.
‘뭐, 뭐야?’
‘이런 신법도 있었나?’
당황한 살수들이 뒤로 물러서자 분열된 잔상들이 앞으로 나아갔다.
통상적으로 잔상은 그 자리를 지키다 꺼지듯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당찬일이 파생시킨 형체는 사라지지 않았을뿐더러 전진까지 감행했다.
파박!
인기척에 놀란 토끼처럼 살수들이 사방으로 흩어지자 중앙으로 성큼 나선 당찬일이 안광을 번뜩였다.
번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