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93
당문전생 (192)
대차호(大茶壺)
당찬일의 손에서 백옥처럼 새하얀 새가 날갯짓하자 유랑사십숙의 눈동자가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어디서 저런 새가 나타났단 말인가!
하얀 새가 당찬일과 유랑사십숙의 사이를 자로 잰 것처럼 가르고 지나가자 둘 사이에는 황하보다도 넓은 거리가 벌어진 것만 같았다.
척!
둘 사이를 가른 새의 정체는 암기였다.
암기를 받아 든 당찬일이 유랑사십숙과 자신의 거리를 가늠하듯 눈동자를 굴렸다.
그리고…….
츠츠츠츠―.
또다시 흘러내리는 마기. 눈동자에서 시작된 마기가 어깨를 타고 허리까지 내려와 발목 부근에서 한 번 퉁기더니 눈가로 되돌아갔다.
번쩍!
투회반살(鬪回返殺)!
투기를 내쏘아 살기로 되돌려 받으니 그 기세는 달마라도 무릎 꿇리리라!
당찬일이 무지막지한 살기를 발산하자 유랑사십숙이 방심하지 않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십팔나한진의 기세에 억눌려 금방이라도 두 손 두 발을 들 것만 같았는데 금세 다시 기운을 차였다. 아니, 차린 정도가 아니라 이전보다 몇 배는 기운을 증폭시켰다.
‘역시 걸물!’
상대가 권모술수로 무림을 좌지우지하는 괴물 당과로의 손자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무공적으로도 이런 힘을 발휘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자신들에게는 십팔나한진이 있다.
천년 무림의 태두라는 소림사가 자랑하는 절학 중의 절학을 자신들이 익히고 있단 말이다.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유랑사십숙이 십팔나한진의 십팔나한진을 이루려는 듯 일사불란하게 이동했다.
처처척―.
유랑사십숙이 봉두(棒頭)로 당찬일을 가리키자 그들의 주위로 엄청난 압박감이 파생되었다. 하지만 조금 전과 달리 당찬일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사아악―.
당찬일이 사라진다!
구름 한 점 없는 백주(白晝)라서 몸을 숨길 곳이 없는데도 당찬일의 신형이 햇빛을 머금고 서서히 모습을 감추자 유랑사십숙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 기경할 순간에도 유랑사십숙은 신음 소리 하나 토하지 않았다, 그들은 붉은 태양에 몸을 묻으려는 당찬일의 움직임을 주시할 뿐이었다.
고도로 훈련된 살수들은 어지간한 일에 동요하지 않는다. 살수는 자신의 목숨 줄이 끊어지는 순간까지도 흔들려서는 안 된다.
서서히 옅어지던 당찬일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려는 순간!
파바박!
유랑사십숙이 일제히 날아들며 봉을 활처럼 내쳤다.
땅! 따당!
단단한 금속 재질의 봉일진대 탄성 좋은 나무로 만들어진 막대처럼 당찬일에게 휘어져 들어왔다.
스스슥―.
하지만 이미 그 자리에 당찬일은 없었다. 마치 유랑사십숙이 이런 공격을 퍼부을 것을 예상한 것처럼 그는 그 자리에서 사라진 뒤였다.
‘뭐지?’
‘어디로 간 거야?’
분명 코앞에 있었는데 눈처럼 녹아 버려서 유랑사십숙이 당황했다.
사아악―.
먹잇감을 노리는 뱀이 혀를 감아 채듯 어디선가 당찬일의 사이한 기세가 퍼졌다.
빙글! 몸을 돌린 유랑사십숙이 어디선가 섬뜩한 예기를 폭발적으로 터트리는 당찬일을 쫓았다.
징징징징―.
본래 예기란 은밀하고 조용하다. 예기의 정점이라는 살기라면 더더욱. 그래서 살수들은 인기척을 지우는 훈련부터 받는다.
그런데 당찬일은 살기를 감추거나 숨기는 법이 없다. 단기필마로 적군을 밀어붙이는 장수처럼 살기를 버젓이 드러내 놓고 유랑사십숙을 압박한다.
‘대체 어디?’
‘어디야?’
자신들에게 폭사(爆射)되는 살기의 근원을 찾아 유랑사십숙이 오감을 동원했다.
‘없다!’
‘없어!’
오감까지 동원했지만 당찬일이 완전히 사라졌기에 유랑사십숙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니까. 사람이 이런 식으로 자취를 감출 수는 없으니까. 피륙으로 이루어진 인간이라면 흔적은 남겨야 하니까.
그런데 당찬일이 사라졌다.
삽시간에 찾아든 정적.
그리고…….
꽝!
유랑사십숙의 오른쪽에서 폭발적인 굉음이 들리며 세 명의 살수가 튕겨 나갔다.
휘르릉―.
두 눈에서 시뻘건 혈광을 뚝뚝 흘리며 당찬일이 모습을 드러내자 유랑사십숙은 일제히 몸을 돌렸다. 하지만 당찬일이 이들보다 반 박자 빨랐다.
쾅!
또다시 폭음이 들리며 유랑사십숙의 후미로 이동한 당찬일이 두 명의 살수를 어깨로 들이받았다.
훌훌―.
무기력하게 날아간 두 명의 살수가 지면에 처박히자 이를 지켜보던 대숙의 얼굴이 하얘졌다.
저건 사람의 움직임이 아니다. 피의 본능에 눈을 떠 버린 야수의 몸짓이다.
“전(展)!”
당찬일은 포악했고 유랑사십숙은 허약했다.
지금의 형국은 양 떼 사이로 뚝 떨어진 늑대가 마음껏 활개를 치는 격이라 일단 대숙이 유랑사십숙을 분산시키려 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당찬일은 이들보다 빨랐다.
콱!
흩어지려는 유랑사십숙의 덜미를 잡아챈 당찬일이 팔꿈치로 그를 날려 버렸다.
쾅!
이렇게 되면 분산도 역효과다. 산개하는 순간은 공수의 움직임 자체가 어렵기에 유랑사십숙은 당찬일의 먹잇감으로 전락한다.
그렇다고 뭉쳐 있으면 그 나름대로 문제가 발생하니 난감한 노릇.
유랑사십숙도 속절없이 당할 수만은 없어서 빙글 몸을 돌려 당찬일을 상대했다.
짜악!
후미의 살수들이 철봉을 내치자 바람이 종이쪽처럼 찢어졌다. 그러나 당찬일은 살수들의 어깨 부근으로 치고 들어왔기에 철봉은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했다.
콰직!
살수의 가슴께까지 접근한 당찬일이 전사의 수법으로 어깨를 비틀었다.
콰당!
힘없이 나가떨어지는 살수의 어깨를 밟으며 거대한 새처럼 도약한 당찬일이 봉두를 세운 살수들에게 내리꽂혔다.
우지끈!
유랑사십숙의 사이로 떨어진 당찬일이 양손을 쭉 뻗어 살 수 둘의 목덜미를 잡았다.
“끄으으.”
두 명의 살수가 기절하자 그들을 내던진 당찬일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뚝뚝―.
피가 흐르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당찬일의 눈에서 혈광이 핏물처럼 줄줄 흘러내렸기에 유랑사십숙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이렇게 되면……!’
유랑사십숙이 일방적이다 못해 처참한 지경까지 내몰리자 대숙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상대는 강하다.
물론 지금까지 유랑사십숙이 상대한 무인들 가운데 당찬일보다 강한 이는 많았다. 하지만 당찬일보다 강력한 살기로 유랑사십숙을 압박한 인물은 없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동귀어진!
대숙과 음성의 주인이 같은 생각을 품자 이를 감지했는지 당찬일이 스산한 웃음을 지었다.
저승으로 가는 길에 동무라도 하자는 모양인데…….
‘어림없지.’
핏빛의 살기를 흘리며 당찬일이 깃털 모양의 암기를 다시 꺼냈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미 한 번 저승길을 다녀왔다. 다시 또 한 번 가라면 못 갈 것도 없지만 아직은 갈 때가 아니다.
그곳은…….
‘너희들부터 가라.’
전방의 살수들을 보며 당찬일이 암기를 들어 올리는데 어디선가 강력한 기세가 느껴졌다.
‘이건?’
암기를 쥔 손에 힘을 주며 당찬일이 몸을 돌렸다.
쿠쿠쿠쿠―.
느릿하게 걸어오는 인영 하나. 초라하기 짝이 없는 행색이라서 개방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판이었지만 등장한 이는 거지가 아니었다.
파박!
암중에서 유랑사십숙을 지휘하던 대숙이 인영의 앞으로 나서며 무릎을 꿇었다.
“유랑사십숙이 대차호(大茶壺)를 뵈옵니다!”
대숙이 나서자 어둠이 일렁이더니 음성의 주인마저 모습을 드러냈다.
“서북의 잔디가 대차호를 뵈나이다.”
유랑사십숙에 이어 서북을 총괄하는 결루봉까지 무릎 꿇리는 사내.
그는 대체 누구인가?
대차호라고 명명된 오십 대 중반의 사내가 대숙과 결루봉을 일별하고 당찬일에게로 몸을 돌렸다.
우웅―.
엄청난 압박감.
조금 전까지는 평범하기 이를 데 없었는데 뒷짐을 지는 순간부터 분위기가 싹 바뀌었다.
당찬일을 말없이 응시하던 대차호가 오른손을 폈다.
“잠시 이야기하지.”
* * *
관옥사룡은 화음현(華陰縣) 일대에서 월례적으로 봉사활동을 벌인다. 이번 달에는 화음현의 길주(桔州)에서 서민들과 무너진 재방을 다시 쌓고, 물길을 냈다.
“당분간은 걱정 없겠지요?”
이룡자의 물음에 감룡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이번 재방은 특별히 신경을 썼으니 어지간한 물난리에도 버텨 줄 거다.”
두 도인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앞서 걷던 곤룡자가 손을 들었다.
“잠깐.”
이곳은 화산의 초입, 향화객들의 발길이 분주한 시기가 아니라서 사위는 적막했다. 그런데 곤룡자는 무엇 때문에 발길을 제지한 것일까?
“왜 그러세요, 이사형?”
이룡자의 물음에 곤룡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분명 내밀하면서도 끈덕진 살기가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렸는데 한 박자 쉬고 보니 사라졌다.
‘착각인가.’
고개를 갸웃거린 곤룡자가 다시 걸음을 떼려는데 그 살기가 다시 찾아왔다.
“피해!”
쾅!
곤룡자 일행이 사방으로 흩어지자 그들이 머물렀던 자리에 날벼락처럼 떨어진 사내.
“도우는 누구시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하얀 사내가 숙였던 고개를 쳐들었다.
“너희들이 무한 진인의 제자들이지?”
관옥사룡을 응시하던 사내의 눈동자가 새하얗게 변했다.
번―쩍!
화산파의 정문을 지키던 도사가 입이 찢어져라 하품했다.
종일을 우두커니 서 있자니 심심하다. 거기다 달빛마저 교교해서 지루하기까지 하다.
이런 날엔 사형들과 낙화생을 까먹으면서 옛이야기를 나누면 좋으련만.
지겨움에 몸을 떨던 위사가 멀리서 다가오는 형상을 발견하고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은 술시(戌時: 오후 7시~오후 9시) 말엽. 향화객이 올 시간이 아닌데 누구일까?
비틀거리면서 꾸역꾸역 다가오는 사람을 바라보던 위사가 곧 입을 떡 벌렸다.
“곤룡 사형!”
의국으로 이송된 곤룡자의 상태는 위중하기 짝이 없었다. 오장육부는 제자리를 이탈했고, 내력은 고갈되었으며, 전신은 크고 작은 상처로 말이 아니었다.
“어떤가?”
무한 진인이 묻자 의국을 책임지는 구화자(求華子)가 고개를 숙였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하지만 원정내단이 손상을 입어서…….”
원정내단은 근원 진기에 다름이 아니라서 한 번 손상되면 영원히 복구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원정내단이 상했다는 것은 무인으로서의 삶이 끝났다는 얘기다.
“으음.”
무한 진인이 어깨를 부르르 떠는데 곤룡자가 나지막한 신음을 터트렸다.
“끄으으.”
“곤룡! 곤룡! 정신이 드느냐?”
눈꺼풀을 들어 올리려고 무진 애를 쓰던 곤룡자가 가까스로 눈을 떴다.
“사, 사부님…….”
“그래! 나다! 몸은 좀 어떠냐? 어디 아프진 않고?”
무한 진인이 곤룡자를 내려다보며 말을 쏟아 냈다. 궁금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지만 일단은 제자의 안위가 우선이다.
“면목이…… 으윽!”
또다시 고통이 치밀어 올라서 곤룡자가 신음을 터트렸다.
“무리하지 마라. 일단은 몸부터 돌봐야 하느니.”
곤룡자를 다독이던 무한 진인이 그의 다음 말에 동작을 멈춰야만 했다.
“그가…… 사옥정을 언급했습니다.”
곤룡자가 속삭이듯 입을 열자 무한 진인이 반사적으로 의국 책임자인 구화자를 힐끔거렸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런가 보네.”
태연한 표정으로 몸을 돌린 무한 진인이 구화자에게 일렀다.
“어떤 일을 겪었는지 몰라도 곤룡이 이상한 소리를 늘어놓는군. 아무래도 안 되겠네. 곤룡에게 지금 즉시 소화단(小華丹)을 복용시켜야겠어.”
“소, 소화단을 말씀입니까?”
구화자가 대경해서 물었다. 소화단은 화산의 무가지보 가운데 하나로서 원로전의 승인이 없으면 반출되지 않는 신비의 영약이다.
구화자가 눈을 끔뻑이자 무한 진인이 다탁 위의 지필묵을 들었다.
슥슥―.
일필휘지로 문서 하나를 작성한 무한 진인이 구화자에게 내밀었다.
“원로전에 가져다주게.”
“아, 예.”
종이를 받아 든 구화자가 자리를 비우자 무한 진인이 입을 열었다.
“사옥정을 입에 올린 자가 누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