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94
당문전생 (193)
천사련에게 협력을 제안한 곳
곤룡자의 말이 끝난 후, 잠시 궁리하던 무한 진인이 천천히 복기했다.
“전신이 눈처럼 새하얀 사내가 불현듯 모습을 드러내서 너희의 앞길을 막았다는 것이냐?”
“예.”
“그의 무학은 만부막적의 수준이라 너희가 감당할 수 없는 성질이었고?”
“그러합니다, 사부님.”
“너희 넷을 모조리 쓰러트리고 그가 네게 이 서신을 주었단 말이지?”
곤룡자가 건넨 편지를 흔들면서 무한 진인이 물었다.
[사옥정에 관해서 논하고 싶다.이틀 뒤, 축시(丑時; 새벽 1시~3시) 척운평.
삼화보검(三華寶劍)을 지참하라.
동행과 함께라도 상관없지만 사옥정을 생각하라.]
삼화보검이라면 화산에서 장문령검 다음으로 귀한 보물이다. 그런 삼화보검을 가지고 오라는 건 사옥정과 맞바꾸자는 뜻일까?
서신을 몇 번이고 읽던 무한 진인이 곤룡자에게로 눈을 돌렸다.
“그자는 어떤 무학을 쓰더냐?”
“그자는…….”
곤룡자가 백발인의 무시무시한 무위를 반추했다.
일검이면 대해를 가르고 일장이면 천지를 나눈다는 화산의 일대제자를 상대로 백발인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비단 동요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여유로웠다.
“분하지만 그자는 여유가 넘쳐흘렀습니다. 그래서 저희 넷은 더욱 다급했지요.”
정말로 분했는지 곤룡자가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이어진 백발인의 공격.
“이대로는 곤란하다고 판단한 대사형께서 사상검진을 펼치자고 제안하셨습니다.”
“건룡이 일반인을 상대로 사상검진을 펼치자고 했어?”
이건 뜻밖이다. 무학으로는 곤룡에게 밀리지만 자존심 하는 최고라는 건룡자가 변변한 명호조차 없는 범인을 상대로 사상검진을 펼치자고 했다니.
사상검진은 대 일인 합격진으로는 오행검진과 더불어 최고로 평가받는 절진이다. 하물며 화산의 대제자들이 펼치는 사상검진이라면 그 위력을 논할 필요도 없을 터,
“그자는 결코 평범한 무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대사형께서도 사상검진을 제안하셨던 것이지요.”
“그래서? 사상검진으로도 그자를 막지 못했느냐?”
이상하다. 어느 순간부터 무한 진인의 질문이 궤도를 이탈하는 느낌이다.
무한 진인은 곤룡자가 편지를 보여 주기 전까지 백발인에 대한 분노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그러나 편지를 읽은 후부터는 백발인의 일거수일투족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심지어는 백발인을 응원하는 느낌마저 받는다.
‘사부님?’
착각일 것이다. 어찌 무한 진인이 백발인에게 흥미를 기울일까?
무한 진인이 백발인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애제자인 관옥사룡을 초주검으로 만든 적을 분석하려는 의도일 터.
떨떠름한 기분을 애써 감추며 곤룡자가 사상검진으로 백발인과 맞섰던 상황을 설명했다.
“사부님께서도 아시겠지만 저희의 사상검진은 이제 완숙의 경지를 바라봅니다.”
사실이다. 관옥사룡이 펼치는 사상검진은 천하제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제법 완성도가 높아서 어지간한 무인이라면 힘 한번 변변히 써 보지도 못하고 당할 것이다.
“그런데 그자에게는 무용지물이었습니다. 그자는 저희가 검진을 발동시키길 기다렸다 공격하는 대범함을 보였기에 승리를 확신했지만 결과는…….”
곤룡자가 어금니를 깨물었다. 하지만 무한 진인의 관심사는 따로 있었다.
“그자가 발산하는 기세가 어떻더냐? 너무도 강력해서 숨이 막힐 정도였더냐? 아니면 살기가 지나치게 짙어서 짓눌릴 것만 같았더냐?”
“그것이, 그…….”
“답답하구나.”
발을 구르던 무한 진인이 내공을 끌어올렸다.
쿠르릉!
“이렇더냐?”
아니다. 무한 진인의 기세는 충분히 위력적이었지만 너무 웅혼하다.
“그러하다면…….”
고개를 숙이고 잠시 생각하던 무한 진인이 화산 본연의 정순한 내력에 사옥정의 기운을 조금 빌었다.
콰콰콰!
“이것은 어떠냐?”
역시 아니다. 조금 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지금의 기세도 백발인의 그것에 미치지는 못한다.
“백발인은 지금까지 봐 왔던 여타의 기운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그가 발산하는 기세는 누구보다 원초적이고 원색적이었습니다.”
“원초적이고 원색적이라.”
턱을 쓰다듬던 무한 진인이 마침내 사옥정의 기운을 전부 방출했다.
츠츠츠츠―.
무한 진인이 화산파의 장문인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사이한 기세를 흘리자 곤룡자의 눈이 커졌다.
저것이다, 백발인의 기세는.
정파의 형식적이면서 구태의연한 기운을 완전히 버리고 오직 적을 주살하겠다는 본능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백발인의 모습을 자신의 사부가 재현하고 있다.
“이것이란 말이지? 정녕 이런 형태였단 말이지?”
환호작약하는 무한 진인과 달리 곤룡자는 이제야 생각난 것처럼 사방을 둘러보았다.
“대사형과 사제들은 어디 있습니까? 다른 방에서 치료 중이지요?”
하지만 무한 진인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곤룡자의 물음에 답변이 없었다. 아니, 애당초 곤룡자의 말 자체를 신경 쓰지 않았다.
“사부님.”
“아…… 뭐, 뭐라고 했느냐?”
퍼뜩 정신을 차린 무한 진인이 고개를 돌렸는데 그의 얼굴에서 약간의 귀찮음과 조금의 짜증이 엿보인 건 곤룡자만의 착각일까.
“대사형과 사제들은 어디 있습니까?”
“곧 올 테지.”
“예?”
“사제들이 찾으러 갔으니 걱정하지 말고 쉬어라.”
“사부님?”
“난 준비를 좀 해야겠구나.”
벌꺽 일어선 무한 진인이 의국을 나서려다 곤룡자에게로 몸을 돌렸다.
“오늘의 일은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발설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알겠느냐?”
“아, 예.”
“명심해라. 나 이외에 어느 누구에게라도 말해서는 안 돼. 어느 누구에게라도.”
“아, 알겠습니다.”
몇 번이고 비밀 엄수를 신신당부하고 무한 진인이 의국을 나서자 홀로 남은 곤룡자가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아니, 그보다 대사형과 사제들은 신변에 이상이 없는지 모르겠다.
* * *
“앉지.”
대차호가 자신의 옆을 내주자 당찬일이 잠시 갈등했다.
‘이들까지 나설 줄이야.’
천사련은 일곱 개 권역의 결루봉들이 주축이 되어 움직이는 일종의 결사체라서 무림맹이나 마교와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그리고 일곱 결루봉들의 위로는 세 명의 절대자들이 존재하니 이들을 하삼란(下三爛)이라고 부른다.
하삼란. 흑도 무림의 시작점이자 암흑 무림의 대부와도 같은 존재들.
당연한 말이겠지만 하삼란들의 신분은 철저한 비밀이라서 칠루봉을 제외한 천사련의 사람들 가운데 이들을 직접 대한 이는 극히 드물다.
천하가 발칵 뒤집힌다고 해도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하삼란.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일단 앉으라니까. 지금 당장 싸울 생각은 없으니 안심해도 좋네.”
대차호가 거듭 권하자 당찬일이 그의 옆에 엉덩이를 붙였다.
“술 한잔 할 텐가?”
이런 순간에도 술이라니. 어지간히 술을 좋아하나 보다.
당찬일의 마음을 읽었을까. 대차호가 껄껄 웃었다.
“유곽에서 잡일하는 놈이 술을 싫어해서야 쓰겠는가? 조방꾸니들에게 술은 활력소이자 감로수일세.”
조방꾸니, 말 그대로 오입판에서 남녀 사이의 일을 주선하고 잔심부름 따위를 하는 사람이다. 한마디로 몸 파는 여자들 밑에서 개평으로 먹고사는 군상이란 소리다.
천하에서 가장 천대받는 직업 가운데 하나인 조방꾸니, 다른 말로 대차호.
그렇다면 사내는 신분을 감추기 위해서 조방꾸니로 위장하는 걸까.
아니다. 사내의 직업은 정말로 조방꾸니다. 또한 사내의 뒤를 이어 하삼란의 한 자리를 이을 사람도 조방꾸니여야만 한다.
그런 식으로 하삼란은 각자의 직업을 이어 왔다. 무려 수천 년 동안.
“손님을 접대하는 자리니 특별히 귀한 놈으로 준비했네.”
대차호가 술병을 내밀었다.
벌컥벌컥―.
“쓰군요.”
소매로 입가를 닦으며 당찬일이 눈썹을 찡그렸다.
“그렇지만 향은 좋습니다.”
“당연하지. 이래 봬도 이놈 하나 얻으려고 고낭들에게 얼마나 아부를 떨었는데.”
껄껄 웃으며 술병을 돌려받은 대차호가 기세 좋게 술을 들이켰다.
“자, 안주일세.”
대차호가 안주랍시고 내민 건 낙화생 서너 알이 전부였다. 물론 당찬일은 그조차도 감사했기에 아무런 말 없이 낙화생을 받았다.
모르긴 몰라도 오늘 대차호는 평생 쓸 인심 가운데 큰 몫을 떼어 냈을 거다. 어쩌면 전쟁이 될 수도 있는 이 자리를 위해서.
“우리더러 그들과의 연대를 접으라고?”
낙화생을 우물거리면서 대차호가 지나가는 투로 물었다.
“그렇습니다.”
“이유는?”
“얼핏 보기엔 매력적일지 모르나 장기적으로 천사련에 이롭지 않을뿐더러, 단기적으로는 현 무림의 질서를 깨트리기 때문입니다.”
당찬일이 간단명료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호오. 그렇다면 우리는 완전히 잘못된 결정을 내렸었다는 소리로군?”
“다시 말씀드리지만 얼핏 보기엔 매력적이었을 테지요.”
“그건 우리를 두 번 죽이는 말이야. 결국 눈앞의 작은 이득에 정신이 팔려서 사안을 대국적으로 보지 못했다는 소리 아닌가?”
“해석은 제 몫이 아닙니다.”
얄미울 정도로 빈틈이 없는 대답. 당찬일의 응대는 매우 치밀해서 흠을 잡기 어려웠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대차호의 얼굴에 스산함이 깔렸다.
“자네는 우리와 연대하는 세력이 누군지 알고 이러는가?”
“어림짐작할 뿐입니다.”
“고작 어림짐작으로 무림과 우리 천사련의 장단기적인 앞날을 재단한다는 건 무리일 텐데? 그건 예측이 아니라 예언이야.”
대차호가 꾸짖듯 말하자 당찬일이 곧바로 수긍했다.
“예언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당찬일이 태연하게 인정하자 대차호가 오른쪽 눈을 찡그렸다.
지금 장난하자는 건가?
“다만 아무런 근거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바라본 미래가 아니라 앞으로 벌어질 사건에 관해서 개략적(槪略的)으로나마 분석해서 내린 결론입니다.”
“우리와 연대하는 세력을 모른다면서?”
“모른다고 하지 않았지요. 어림짐작한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지금까지는 천사련에게 손을 뻗은 곳이 둘 중 하나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추론이 뭔가 이상하다는 확신이 강하게 드는군요.”
이 대목에서 대차호가 강력한 관심을 표했다.
본디 대차호는 호기심 덩어리였다. 그가 세상만사에 얼마나 관심이 많았냐 하면 강호상에 떠도는 온갖 야사들을 섭렵할 지경이었다.
“어디 그 이상한 추론을 들어 볼까?”
주지하다시피 당문의 주인인 당과로는 무림의 괴물이다. 괴물의 손자인 당찬일도 만만치 않은 걸물이라고 소문이 자자하다.
그런 당찬일의 추론이라면 대차호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지 않겠는가.
“우리에게 손을 내민 곳이 어디라고 생각했나?”
“마교의 오존자, 아니면 사호법.”
“매우 합리적이야. 그런데 추리가 이상하다는 건 무슨 의미지?”
당찬일의 이야기에 회가 동했을까. 대차호가 또 하나의 병을 꺼냈다.
그가 술병을 따자 서북의 결루봉이 탄식하듯 입을 열었다.
“대차호께서 외인과 한 병 이상의 술을 드시다니. 정말로 기사(奇事)로구나.”
서북의 결루봉이 지금까지 대차호를 접견한 건 고작 다섯 번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대차호를 잘 안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대차호의 성정과 습관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는 파악한다고 자부한다.
허허실실.
대차호를 표현한다면 딱 제 네 글자로 압축할 수 있다.
그런데 대차호가 생면부지의 타인과 한 병 이상의 술을 마신다고?
“정말로 기사야.”
또 하나의 술병을 딴 대차호가 그것을 당찬일에게 내밀었다.
“추리가 잘못되었다는 건 어떤 뜻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