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98
당문전생 (197)
너는 당협보다도 역겹다
“커헉!”
정신없이 뒤로 밀린 무한 진인이 핏발 선 눈으로 자신의 앞에서 무표정하게 서 있는 백발의 청년을 응시했다.
이럴 수는 없다. 자신의 공격이 단 하나도 먹히지 않다니.
“이익!”
앞꿈치에 힘을 실으면서 무한 진인이 재차 나섰다.
복호장법!
항마력이 으뜸이라는 복호장법은 마교와의 싸움에서 발군의 위력을 발휘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백발의 청년은 간단한 발놀림으로 무한 진인의 공격을 회피했다.
으드득―.
무한 진인이 연이어 화산의 절학이랄 수 있는 육합검법(六合劍法)을 펼쳤으나 백발의 청년은 무심한 얼굴로 그의 공격을 막았다.
회피하고, 막아 내고, 그러다 다소 강한 공격이 들어오면 흘려내고.
무한 진인의 공격은 장황하고 복잡해서 일견 위력적으로 보였지만 실속이 없었다. 한마디로 효율적이지 않았다는 소리다.
반면 백발의 청년은 필요한 만큼 공격했고, 필요한 만큼 수비했다.
적재적소,
무한 진인과 백발 청년의 움직임은 모든 면에서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백발의 청년이 오랜 기간 사옥정의 힘을 다루었다고는 하지만 실전 경험이라고는 고작 열 번이 넘지 않는 신진이다.
이에 맞서는 무한 진인은 화산파의 정수에 해당하는 창궁우전검을 익힌 관록의 무인이거늘 어찌 강호 초출에 가까운 백발의 청년에게 밀리는 걸까?
해답은 운용하는 내력에 있었다.
백발의 청년은 오로지 사옥정만을 이용해서 내력을 돌렸고, 사옥정에 걸맞은 몸놀림으로 사옥정에 어울리는 무학을 사용했다.
그러나 무한 진인은 화산파에서 사십 년이 넘도록 참오한 도인이다. 그렇기에 그의 근본은 화산파의 심법인 자하신공(紫霞神功)을 기초로 한다.
자하신공은 파사(破邪)와 제마(制魔)를 기본으로 하는 심법이다. 여기 사옥정이라는 마기가 끼어들었으니 자하신공과 섞일 리가 없었다.
‘이럴 수가 없는데? 자하신공을 사옥정이 증폭시켜서 나의 내력을 몇 배 더 상승시켜야 하거늘!’
순간적으로 그런 효과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내력이 깎인다.
한 되의 물과 한 되의 기름을 섞는다고 해서 두 되의 물기름이란 새로운 액체가 창조되지 않는 것처럼 자하신공과 사옥정은 각기 따로 놀 수밖에 없다.
양립하지 못하고 제각기 뛰노는 두 개의 기운은 종국엔 몸을 갉아먹을 터.
“형편없군.”
백발의 청년이 혀를 찼다.
“어떻게 너 같은 자가 구파일방의 장문인일 수가 있지?”
‘이익!’
무한 진인이 다시 한 번 사옥정을 동반한 자하신공을 일으켰다.
우우웅―.
턱 끝까지 차오르는 내력! 이것이야말로 자하신공과 사옥정이 합쳐진 위력이리라!
“타아아아!”
사자후를 내지르며 무한 진인이 백발의 청년에게로 날아들었다.
저런 애송이 하나 처리하지 못하고 이렇게 허둥대다니, 창피해서 견딜 수 없다.
무한 진인이 성난 황소와도 같이 씩씩거렸지만 백발의 청년은 여전히 무심했다. 아니, 백발의 청년이 무심했다기보다 무한 진인이 허둥거렸다.
수양과 정진을 기본으로 하는 화산파의 장문인이 왜 이리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일까.
대답은 또다시 사옥정이었다. 스멀스멀 자라난 사옥정의 기운이 어느새 자하신공을 잠식해서 청명하던 무한 진인의 내력을 붉게 물들였던 거다.
몸 안을 돌아다니는 내력과 몸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마음이 연동되는 건 당연한 노릇.
그래 성품이 점차 폭급(暴急)하게 변해 버렸지만 정작 당사자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쁜 생각은 그런 식으로 마음을 좀먹는다.
조금씩, 조금씩.
“언제까지 피할 수 있을 성싶으냐! 썩 나서라!”
무한 진인이 침을 흘리며 바락바락 외쳤다. 화산의 제자들이 보았더라면 두 눈을 씻을 광경이었지만 다행히도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말 했잖아.”
힐끗!
스치듯 무한 진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백발의 청년이 읊조리듯 입을 열었다.
“서서히 죽여 주겠다고.”
“이런 건방진 놈!”
콰앙!
무한 진인이 검을 횡으로 그었다.
요란한 폭음. 산산이 찢어지는 대기. 이리저리 나부끼는 낙엽들과 나뭇가지들.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다. 무한 진인의 검은 수변만 철저하게 망가트릴 뿐, 백발의 청년에겐 조금의 타격도 입히지 못했다.
심지어는 백발의 청년에게 위해마저도 주지 못했으니 무한 진인의 칼질은 화권수퇴에 다름이 아니었다.
“언제까지…….”
씨근덕거리면서 무한 진인이 칼을 중단으로 들어 올렸다.
“언제까지 숨바꼭질을 하려느냐…….”
빠르다. 백발의 청년은 너무나 빨라서 눈으로도 잡기 힘들었다. 간간이 엿듣는 파공성(破空聲)으로 그의 자취를 쫓았지만 수박 겉핥기였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썩 나서!”
스각!
발을 구르며 외치는 무한 진인의 곁에 다시금 출몰한 백발의 청년.
퍽!
무한 진인의 어깨를 가격한 그가 연기처럼 다시 모습을 감추었다. 아스라한 한마디를 남기면서.
“다음은 허벅지다.”
“어딜 감히!”
파직!
입을 벌리는 순간 허벅지를 강타당한 무한 진인이 꺾이는 무릎을 가까스로 바로 했다.
“이, 이 새끼가!”
화산을 책임지는 도장의 입에서 나올 언사가 아니었지만 무한 진인의 정신은 서서히 망가지는 중이라서 그런 걸 가릴 계제가 아니었다.
무한 진인의 정신을 온통 지배하는 건 백발의 청년이었다.
턱!
무한 진인의 욕지거리를 듣자마자 신형을 멈춘 백발의 청년이 오연하게 고개를 쳐들었다.
더 해봐라.
“이런 상놈의 새끼!”
발작적으로 뛰쳐나온 무한 진인이 검을 마구 휘둘렀다.
슝슝슝슝!
마구라고는 했지만 화산의 장문인이 휘두르는 검이다. 움직임 하나하나가 위력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훈련했고, 그렇게 교육받았다.
“사옥정이 그리도 탐났나?”
무시무시한 무한 진인의 검초 사이를 유영하듯 헤엄치면서 백발의 청년이 그를 직시했다.
“아무런 은원도 없는 아이들을 죽여서까지 얻고 싶었느냔 말이다.”
“은원이 왜 없느냐.”
무한 진인이 으르렁거렸다.
“그 소악귀들은 나의 섬서를 어지럽혔느니라. 사옥정이라도 곱게 내줬다면 목숨 정도는 부지해 줬을 테지만 그마저 거부했으니 의당 벌을 받은 게야.”
나의 섬서.
이 한마디로 무한 진인이 섬서성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엿볼 수 있었다.
“그 아이들이 ‘너의’ 섬서를 어지럽혔다고?”
백발의 청년이 처음으로 키득거렸다.
“정말로 멋대로가 아닌가.”
킬킬거리던 백발의 청년이 웃음을 뚝 그쳤다.
“머리 조금 굵은 것들은 제 마음대로 결정하고 행동하거든.”
화르륵!
백발의 청년이 자신의 기운을 전부 방출하자 그의 머리가 사자의 갈기처럼 나부꼈다.
부우웅―.
지면에서 삼 장가량 떠오른 백발의 청년이 무한 진인을 굽어보았다.
마치 지옥에서 강림한 야차처럼.
무언가를 올려다보면 자신이 왜소한 존재라고 느끼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늘이나 별 그리고 해와 달이 아니라면 우러르고 싶어 하지 않는다.
특히나 자신보다 열등한 존재라고 여겼던 대상을 우러른다는 건 참기 힘들다.
그건 모독이다. 그건 자기부정이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고함을 지르며 무한 진인이 마침내 사옥정의 모든 기운을 쏟아 냈다.
와드득!
결국 자하신공이 사옥정의 마기에 완전히 잡아먹혔고, 그 자리에는 투기(鬪氣)를 가장한 투기(妬忌)만이 남았다.
“건방진 놈.”
서서히 검붉어지는 무한 진인의 눈동자. 그래도 지금까지는 한 가닥의 현기가 남아 있었지만 사옥정이 전부를 잠식하자 마지막 청명함은 촛불처럼 꺼졌다.
“감히 나를 내려다봐?”
드드드―.
몸이 쳐들려진다. 온유한 화산의 기운이 아니라 찐득한 전투의 기운과 비릿한 피의 내음으로 무한 진인의 몸이 떠받들려진다.
뭉클뭉클―.
정체를 알 수 없는 핏빛 기운을 뿜어내면서 백발의 청년과 눈높이를 맞춘 무한 진인이 칼을 꺼냈다.
츠츠츠―.
언제나 영롱하게 빛을 발하던 매화취검이었다. 그러나 주인인 무한 진인이 사옥정에 자신을 내맡기자 검마저도 동화되어 죽음의 울림을 토해 낸다.
“그 못된 버르장머리를 고쳐 주마.”
낄낄거리면서 백발의 청년에게 검을 겨눈 무한 진인이 반 치가량 더 떠올랐다.
우우웅―.
무한 진인이 칼을 들자 검첨(劍尖)으로 땅거미처럼 불길한 기운이 모여들었다.
“흐흐흐흐.”
뛰논다! 질주한다! 용솟음친다!
오십 평생 느껴 보지 못했던 강력한 기운이 몸속에서 불컥불컥 숨을 내쉰다! 탈출구를 찾지 못해서 이곳저곳을 들이받는 성난 기세를 아낌없이 배출하고 싶다!
천천히 몸을 돌린 무한 진인이 자신을 지그시 바라보는 백발의 청년을 마주했다.
“거기 있었구나.”
마치 백발의 청년을 처음 발견한 사람처럼 반기는 무한 진인. 기세가 표변하자 정신마저 이전과 완벽하게 유리(遊離)되는 것일지도.
“이제부터 보여 주마, 사옥정과 결합된 화산의 위대함을.”
쩡―!
검의 소리인가? 아니면 검의 발악인가?
매화취검이 기이한 소리를 토하자 무한 진인이 그것을 힘차게 휘둘렀다.
쫘아악!
기수식에 불과한 창궁무한(蒼穹無限)일진대 사옥정의 힘을 받자 기이한 위력으로 백발의 청년을 압박했다.
스슥―.
창궁무한을 간발의 차이로 피하며 백발의 청년이 팔을 내쳤다.
쾅!
채 펼쳐지지 않은 창궁무한의 변초만으로 백발 청년의 장력을 받아 낸 무한 진인이 희열의 미소를 지었다.
다르다! 관옥사룡의 앞에서 펼칠 때와 또 다른 힘이 느껴진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사옥정의 힘이란 말인가!
‘이 힘으로 창궁천추를 구사한다면!’
창궁우전검의 마지막 심득, 창궁천추(蒼穹千秋).
오리무중처럼 희미해서 아직까지 갈피를 잡기 어려웠는데 이제는 펼칠 수 있을 것만 같다.
“으흐흐흐.”
어깨와 입술을 푸들푸들 떨며 무한 진인이 매화취검을 만지작거렸다.
그의 모습은 흡사 어린아이가 새로운 장난감을 앞에 두고서 정신을 못 차리는 꼴이라서 백발의 청년이 눈을 가늘게 떴다.
완전히 미쳤다. 저자는 사옥정에 몸과 마음을 완전히 내주었다.
무한 진인의 손에 목숨을 잃은 두 아이를 잠시 떠올린 백발의 청년이 주먹을 쥐었다.
“고작 저런 놈에게…….”
“뭐?”
힘을 만끽하던 무한 진인이 백발 청년의 독백을 듣고 고리눈을 떴다.
팔백 년 역사에 빛나는 화산의 정기와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마교의 마기를 한 몸에 녹일 위대한 자신에게 고작이라니.
“불경하구나.”
완전히 힘에 취한 무한 진인이 제왕처럼 선언했다.
“천 년 마교의 마기와 팔백 년 화산의 정기가 이 몸 안에서 융합되었느니라. 이제부터 합쳐진 정마의 기운을 네게 실험하겠노라.”
무한 진인이 자신을 가리키자 백발 청년의 얼굴이 기이하게 비틀렸다.
“역겨워.”
“뭐라? 감히 정마의 무학을 합일한 이 몸에게 그 무슨 불손한 언사더냐?”
무한 진인이 대갈일성을 터트렸다.
드디어 정사마종주의 자리에 오를 자신에게 이런 불온함이라니.
“이놈 저놈 다 매스껍지만 특히나 너는 역겨워.”
파아악―.
전백안이 일렁이고,
화르륵!
눈보다 하얀 눈이 타오른다.
잊었던 배신감과 눈앞의 노여움이 겹쳐지자 백발의 청년은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어금니를 갈았다.
“너는 당협보다도 역겨워.”
자아도취에 빠져 있던 무한 진인이 백발의 청년이 내뱉은 이름을 듣고 흠칫 놀랐다.
“당협?”
“그래. 당협.”
츠츠츠츠―.
전신에서 백색의 실과도 같은 강기를 뽑아내던 백발의 청년이 무한 진인에게로 날아올랐다.
“그래서 죽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