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02
당문전생 (201)
역시 너를 불러낸 녀석은
안다. 자신들의 자질이 오존자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그래서 사호법이란 신분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래도 생면부지에 가까운 타인이 둔재라니까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인상을 구기는 백응에게 당찬일이 예민한 질문을 연이어 던졌다.
“당신들 중에서 규화보전을 대성한 사람이 있소이까?”
“끄응…….”
“없지요?”
마치 ‘자질이 떨어지는 너희 사호법들은 규화보전을 절대로 대성하지 못했을 것이야.’라고 하는 것만 같아서 백응이 눈을 가늘게 떴다.
“비록 우리가 오존자에 미치지 못한다고는 하나, 그런 식으로 폄훼당하니 씁쓸하군.”
“그래서 있습니까, 없습니까?”
당찬일이 다그치자 더욱 기분이 나빠진 백응이 눈을 감았다. 화를 내자니 속 좁은 인간이 되고, 넘어가자니 너무 기분이 나쁘다.
“있었다.”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울화를 억누른 백응이 묵직하게 입을 열었다.
“못난 우리 중에서도 규화보전을 대성한 이가 있었단 말이야.”
“물론 그가 규화보전을 대성한 시기는 정마대전이 벌어지기 이전이었지요?”
“음?”
어리둥절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백응에게 당찬일이 무언가를 내밀었다.
《만상요람 – 마교편》
* * *
스슷―.
언제나 그렇지만 적무연은 연기조차 치우지 않으면서 나타났다. 모르긴 몰라도 신법 하나만으로 놓고 본다면 중원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 것이다.
당찬일의 뒤편으로 나타난 적무연이 권태로운 표정을 지었다.
삼 년 만에 깨어나더니 부쩍 일을 많이 맡긴다. 케케묵은 작업을 한꺼번에 처리하겠다는 듯 엄청난 무언가를 벌이는데 그것이 무언지는 모르겠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이지?”
혈적인 입장에서는 처리하는 건마다 돈이 벌리니 나쁠 건 없지만 뭔 일을 벌이는지 궁금하다. 그렇다고 작업 내용을 의뢰자에게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한 사람을 찾아 줘.”
“이름, 나이, 용모파기.”
적무연이 사무적으로 물었다. 사람을 찾는 데 이름과 나이 그리고 용모파기(容貌疤記)는 기본 중의 기본이니까.
당찬일이 반으로 접힌 종이를 내밀자 적무연이 그것을 받았다.
“실종자는 언제 사라졌나?”
만약 납치됐다면 사람을 찾아 달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을 테니까.
“십구 년 전.”
십구 년 전이라면?
적무연이 눈을 빛내며 접힌 종이를 폈다.
‘역시.’
종이에 적인 이름을 확인한 적무연이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당찬일이 당협을 찾으려는 이유는 알겠는데, 문제는 너무 예전의 일이다.
“이건 좀……. 아무리 우리가 사람을 잘 찾는다고 해도 십구 년 전에 사라진 인물이라면…….”
“어려운가?”
“솔직히.”
고개를 끄덕이는 적무연을 응시하던 당찬일이 엄지와 검지를 입에 넣었다.
삐익―.
언제나처럼 날아드는 하얀 새. 놀랍게도 백조(白鳥)는 적무연의 소매에 부리를 비볐다.
“여전히 귀엽군. 본래 주인은 오래전에 사망했는데 말이야.”
“이 녀석의 주인을 아는가?”
“말했을 텐데? 비천 삼대장 유평월이라고.”
“과연 그럴까?”
“음?”
적무연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백조는 유평월과 늘 함께였다. 하여 유평월이 자신의 새라고 하지 않았지만 적무연은 당연히 그가 기른다고 생각했다.
“그럼 아니라는 건가?”
“백조는…….”
당찬일이 신비로운 미소를 지었다.
“낙화수, 다시 말해서 나의 셋째 사숙이 기르던 새다. 유평월과는 쿵짝이 맞아서 동행했을 뿐이지.”
당찬일이 설명하자 적무연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런 건 당사자가 아니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사실이다.
자신이 태어나던 해의 비화(祕話)를 직접 겪은 사람처럼 술술 읊는 청년.
과연 이자는 누구일까?
‘역시 이 녀석은…….’
적무연의 눈매가 가늘어지자 당찬일이 딴청을 부렸다.
“아무튼 이 녀석이라면 셋째 사숙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다. 그리고 이것.”
당찬일이 적무연에 반으로 접힌 종이를 건넸다.
“셋째 사숙께 이것을 드려라. 절대로 움직이지 않으려고 들겠지만 이걸 보시면 달라지겠지.”
“흠.”
종이를 품에 갈무리하면서 적무연이 물었다.
“낙화수를 찾는 이유를 물어도 될까?”
심유한 눈으로 적무연을 응시하던 당찬일이 몸을 돌렸다.
“경극이 끝나면 출연한 모든 배우들이 인사를 하려고 다시 한 번 무대에 오른다. 주인공이든 악역이든. 심지어는 단역까지.”
당찬일이 닿을 수 없는 곳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그게 관객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단역까지 말이지.”
“그래.”
현실로 시선을 이동시킨 당찬일이 몸을 돌렸다.
“생각난 김에 나는 단역을 데리러 가야겠군.”
* * *
무림맹의 총단이 위치한 하남성의 신양주(信陽州).
춘추시대 이후로 유서 깊은 도시로서 남쪽의 대별산맥(大別山脈)을 가로지르는 무승(武勝), 평청(平靖), 황현(黃硯)의 3관을 의양 삼관(義陽三關: 의양(義陽)은 신양주(信陽州)의 옛 이름)으로 불렀다.
대별산맥 자체가 하남(河南]), 호북(湖北) 그리고 안휘(安徵)의 경계를 북서에서 남동 방향으로 가르면서 나 있는 산맥이다.
그래서 신양주는 하남의 소림사와 호북의 무당파와 제갈세가 그리고 안휘의 남궁세가와 두루 교류할 수 있는 요지라고 하겠다.
하남성 무승관(武勝關).
화중(華中) 지역으로서, 하남(河南)과 호북(湖北)의 경계선상에 위치한 고개였다. 이곳으로 일군의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제일 처음 모습을 드러낸 인물은 오관이 단정한 중년인이었다. 허리춤의 칼만 없다면 한림원의 학사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중년인은 군자연했다.
검군 이서악. 무림사군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천하에서 가장 검을 잘 쓴다는 사람이었다.
무승관을 오르던 이서악이 문득 발길을 멈췄다.
‘이건?’
이서악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에게로 묵직한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다.
콰―앙!
이서악이 서 있던 자리를 반으로 갈라 버린 거대한 도끼.
대저 도끼리면 날을 벼렸어야 하거늘 이서악을 공격한 물건은 잔뜩 녹이 슬어서 도끼라기보다 철퇴에 가까웠다.
부―웅!
다시 시작된 공격.
옆으로 한 걸음 비켜서 공격을 피한 이서악에게 도끼의 주인이 다시 철부(鐵斧)를 휘둘렀다.
쾅! 쾅!
가로막는 건 무엇이든 박살 낸다.
철로 만들어진 도끼는 걸리적거리는 것들을 모조리 분쇄하면서 이서악을 노렸다.
쾅― 꽈드득!
아름드리나무도 도끼질 한 번에 허리를 반으로 접어야만 했고,
콰지직!
우뚝 솟아난 바위도 철부를 감당하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철부가 주변의 모든 것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지만 이서악은 용케도 공격을 피했다. 그는 도끼질과는 상관이 없는 사람처럼 여유롭게 공격을 비껴 냈다.
얼마나 더 피했을까?
도끼의 반대편으로 신형을 이동시키던 이서악이 탄식하듯 입을 열었다.
“그만하셔도 되겠습니다.”
이서악이 몸을 돌려 도끼의 주인과 마주했다.
“북부작(北斧斫) 어르신.”
쾅!
도부수(刀斧手)보다도 무지막지한 공세를 펼치던 도끼의 주인이 철부를 바닥에 꽂았다.
“날 아직도 기억한다는 건가.”
도끼의 주인이 묻자 이서악이 허허로운 웃음을 지었다.
“제가 어찌 북부작 어르신을 잊겠습니까? 아, 북부작이란 별호가 영 내키지 않는다고 하셨지요?”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이서악이 묵례를 보냈다.
“이서악이 북방존자 어르신을 뵈오이다.”
북방존자!
마교의 오존자 가운데 가장 파괴적인 무공을 사용한다는 사람이 바로 북방존자였다.
그는 마교에서의 위치보다 한 자루의 도끼로 쌓은 핏빛 이름[血名]이 더 유명해서 사람들은 북방존자를 북쪽의 도끼[北斧斫]라고 불렀다.
슥―.
손을 내저어 이서악의 예를 거절한 북방존자가 그를 직시했다.
“어디를 그리 급하게 가시는가?”
“누가 청해서 말이지요.”
“누가?”
북방존자가 캐물었지만 이서악은 답변할 마음이 없었다. 대답할 이유도 없었고, 의무도 아니었다.
“십구 년 전의 구원(舊怨) 때문이라면 다른 구실은 필요 없을 텐데요?”
싸울 거면 그냥 싸우자는 이서악의 말에 북방존자가 지면에 박혀 있던 도끼를 뽑았다.
“십구 년 전의 군자는 어디로 가고 싸움닭만이 남았는가.”
북방존자가 이서악을 돌려서 비난했다.
“이토록 거친 수인사가 선행되었으니 제아무리 군자라도 투사로서 대꾸할 밖에요.”
이서악이 대놓고 북방존자를 비난했다.
“말로는 못 당하겠군. 정말로 수인사였거늘.”
북방존자의 도끼질이 거칠었던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이서악의 털끝 하나 건들 수 없으리라는 계산 하에서 휘둘렀다.
그런데 이리 뻣뻣하게 나오니 조금은 섭섭하다.
‘전보다 여유가 없군.’
십구 년 전에는 그 대단하다는 마교를 상대하면서도 이런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바짝 긴장한 모습으로 북방존자를 대한다.
대체 왜? 무슨 이유로 이서악이 이러는 걸까?
“정말로 수인사였다면 저를 붙잡으려는 의도가 아니었다는 뜻이니 이만 가 보겠습니다.”
서늘한 대꾸를 남긴 이서악이 몸을 돌리자 북방존자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잠깐.”
“하…….”
이서악이 짧은 탄식을 터트렸다.
“변한 건 존자로군요. 십구 년 전의 호기(浩氣)는 어디로 갔습니까?”
촤―앙!
“계속해서 저의 앞길을 막겠다면 곧바로 상대해 드리지요.”
이런 사람이 화나면 무섭다. 이서악처럼 사리 분별이 정확하고 공사 구분이 뚜렷한 이가 성을 낸다는 건 이유가 있다는 소리다.
둘 사이에 전운이 감도는데 어디선가 날카로운 교갈이 들려왔다.
“정히 막겠다면 할 수 없군요!”
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려군?’
파박!
벽려군과 대치하는 사람은 훤칠한 키의 노파였다. 대게 늙은 여인을 떠올리면 허리가 잔뜩 굽어서 지팡이 없이는 한 걸음도 못 떼는 노파를 그린다.
하지만 벽려군과 눈싸움을 벌이는 노파는 벽려군보다도 키가 컸고, 벽려군보다도 허리가 꼿꼿했으며, 벽려군보다도 살벌한 기세를 자랑했다.
“할 수 없다면? 무엇을 하겠다는 게냐?”
목소리마저도…… 벽려군보다 사나웠다.
“부득불 무례를 범해야겠지요.”
“사신의 이름으로? 아니면 무림사군자의 허명으로? 어떤 것으로 내게 무례하겠다는 거지?”
모든 면에서 벽려군을 능가하는 노파는 무림사군자라든가, 사신이라는 이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눈치였다.
사실 노파는 늙수그레한 목소리와 달리 엄청난 동안이었다. 그래서 입만 열지 않으면 벽려군과 동년배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벽려군을 가볍게 무시하며 노파가 고개를 모로 틀었다.
“고집부리지 말고 묻는 말에나 답해라. 그럼 피차 무례할 일도 없을 것이야.”
“싫군요.”
벽려군이 스산한 미소를 지었다.
“대답을 하느니 피차 무례하는 편이 낫겠어요.”
팽팽한 신경전.
……이라고는 했지만 사실 똥고집의 경합이었다.
“그래?”
노파가 말끝을 올렸다.
이쯤 되면 많이 참아 준 거다. 누가 감히 자신 앞에서 뱀 대가리처럼 목을 뻣뻣이 세우겠는가.
버르장머리 없이 말이다.
“사신이란 허명을 지나치게 믿나 본데.”
“사신이란 아름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벽려군이 나지막이 콧방귀를 날렸다.
“나는 오로지 나 자신만을 믿는다고요.”
“요행을 믿는 것이 아니고?”
노파가 콧방귀보다 한 차원 고강한 빈정거림을 토했다.
“내가 볼 때는 십구 년 전의 요행이 오늘까지 이어질 거라는 믿음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데?”
“하!”
벽려군이 기가 차다는 듯 탄식했다.
“십구 년 전에 사정을 봐드린 쪽은 우리라고요.”
“아아, 그러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