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03
당문전생 (202)
저 역시 누군가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때 묵직한 한마디가 장내를 가로질렀다.
“좋은 주먹 놔두고 왜들 입으로 싸우시는가?”
북방존자가 날아들자 노파가 고개를 돌리며 그를 외면했다.
“무식한 인간이 왔군.”
하지만 북방존자의 뒤를 따르는 중년인을 보고서 냉정한 노파의 안색에 화색이 돌았다.
“오호, 저자는 검군이 아니더냐? 역시 너를 불러낸 녀석은 검군이 맞으렷다?”
“아, 글쎄, 아니라니까 그러시네!”
짜증을 팍팍 부리면서 벽려군의 시선은 이서악을 좇기에 바빴다.
오매불망(寤寐不忘).
벽려군의 심정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딱 이 말이 어울렸다.
“오랜만이로군, 검군.”
노파가 싸늘한 인사를 건네자 이서악이 정중하게 포권했다.
“이서악이 유성모(流星母)를 뵈오이다.”
“너는 십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재미없구나.”
“그렇습니까?”
허허롭게 웃는 이서악을 곁눈질한 유성모가 북방존자에게 따지듯 물었다.
“사군자 놈들을 만나면 팔다리 중에서 한군데 정도는 부러트려서 데려온다면서 저놈의 사지 육신은 왜 저리 멀쩡한 거야?”
“그러는 유성모는? 사신의 육신도 무척이나 멀쩡해 보이는구먼.”
“이야기 중이었잖아!”
입씨름에 여념이 없어서 가벼워 보일지 몰라도 유성모는 그리 간단한 인물이 아니었다.
천원존자(天元尊者). 오존자 가운데 홍일점이자 한때는 무림을 쥐고 흔들었던 공포의 무인이 그녀였다. 천원존자가 유성모라 불리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건…….
여러모로 벽려군의 완성형에 가까운 천원존자가 북방존자에게서 왈칵 몸을 돌렸다.
“네가 사군자를 다시 무림맹으로 불러 모으는 이유가 무엇이냐? 드디어 무림맹에서 우리를 무림공적으로 선포하기로 했더냐?”
“저 역시 부름을 받고…….”
“됐네.”
이서악이 입을 열었지만 당치도 않다는 표정으로 그의 말을 막은 천원존자가 짜증을 부렸다.
“우리가 천마왜를 조종해서 화산파를 때렸다고? 그게 말이 돼?”
정마대전은 마교가 재건이 불가능할 정도의 타격을 받고 끝났다, 그러나 오존자와 마교주를 어찌하지는 못했으니 휴전이라고 봐야 옳다.
그렇게 살아남은 오존자와 마교주를 사람들은 마교의 잔당들이라고 칭했지만 누구도 그들을 무시하지는 못했다.
“천원존자의 말이 옳다. 우리는 지금 다른 문파를 공격할 상황이 아니야.”
자존심 높은 북방존자가 변명처럼 입을 열자 천원존자의 역정은 극에 달했다.
“별 병신 같은 소문 때문에 이게 무슨 짓이람?”
있는 대로 성질을 부리던 천원존자가 홱 고개를 돌렸다.
“검군마저 시중에서 나도는 헛소문을 믿는 건 아니겠지?”
“잘 모르겠습니다.”
“잘 몰라? 우리를 겪어 봤으면서 그런 소리가 나와?”
천원존자가 길길이 날뛰었지만 검군의 표정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자로 잰 듯한 공사 구분. 사소한 정리(情理) 따위에는 치우치지 않는 판단력.
역시 검군이었다.
“사안의 중대성에 비해서 주어진 정보가 너무 적습니다. 그래서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기 어렵군요.”
“하면 자네는 무한 진인을 살해한 천마왜를 우리가 사주했다고 보지 않는다는 소리로군. 그런데 어째서 사군자를 소집한 건가?”
북방존자가 눈살을 찌푸리자 이서악이 탄식했다. 대체 몇 번을 말해야 믿을 건지.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 역시 누군가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정말로?”
무림사군자는 딱히 우두머리를 두고 있지 않았다. 그렇지만 세간에선 이서악을 지휘자라고 보고 있다.
천원존자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검군, 네가 불러 모으지 않았다고?”
“하하하.”
이서악이 맥없는 웃음을 터트리는데 장내로 두 사람이 다가왔다.
“본격적으로 배신자들이 강림하는구나.”
나타난 백상과 백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으면서 천원존자가 사정없이 비꼬았다.
“십구 년 전의 난역(亂逆)을 무림맹에서 재현해 보겠다는 것이냐?”
“백상이 두 분 존자를 뵈옵니다.”
한껏 빈정거리는 천원존자와 떨떠름한 표정의 북방존자에게 백상이 예를 표했다. 그렇지만 백호는 백상과 달리 심유한 표정으로 이서악과 벽려군을 살폈다.
마치 무언가를 캐내려는 듯.
사호법 가운데 둘 그리고 사군자 중에서 두 사람이 가세하자 수적으로 열세였지만 천원존자와 북방존자는 다급해 보이지 않았다.
사호법과 사군자가 사달을 일으킬 요량이었으면 진작 일을 벌였을 것이고, 무엇보다 이서악이란 사내는 빈말을 하지 않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대치하는데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힘차게 들려왔다. 한두 필이 아니다. 무려 여덟 마리가 일제히 질주하면서 내는 소리였다.
“드디어 등장인가.”
북방존자가 허망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런가 보군요.”
이서악이 담담하게 받았다.
두 사람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여덟 필의 말이 끄는 화려한 마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황금빛 깃발엔 무림맹이라는 세 글자가 선명하게 아로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마부는 오연한 표정으로 여섯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워, 워.”
마부가 마차를 세우자 여섯 명의 시선이 일제히 마차로 향했다.
“오랜만이로군.”
마부가 인사를 건네자 이서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무림맹의 마차를 끄는 사람은 무림사군자 가운데 극(戟)으로 천하제일을 노렸던 극제였다. 그는 정마대전이 마무리되고 유랑생활에 염증을 느껴서 무림맹 사람이 되었다고 했다.
극제가 고개를 돌렸지만 북방존자와 천원존자는 그를 안중에 두지 않았다. 두 사람의 관심은 오로지 마차 안의 인물에게 있었다.
벌컥.
마차의 문이 열리고 훤칠한 신장을 자랑하는 사내가 내렸다.
“백응.”
북방존자가 탄식하듯 입을 열었고.
“못난 놈. 고작 허드렛일이나 하자고 이따위 일을 벌였느냐?”
천원존자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두 사람의 시선을 외면하며 양학이 문을 바라보았다.
쫘―악!
붉은 주단이 깔리자 기다렸다는 듯 그것을 밟으며 모습을 드러내는 청년.
백리천아였다.
특유의 오연한 표정으로 군웅들을 돌아본 백리천아가 모두에게 일일이 포권했다.
“무림맹의 백리천아라 합니다. 마교와 사군자 여러분을 뵙게 되어서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백리천아가 인사했지만 사람들은 그에게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모두의 반응이 떨떠름했기에 살짝 인상을 구긴 백리천아가 헛기침을 터트렸다.
“아버지는 오지 않습니다.”
“뭐?”
천원존자가 뾰족한 음성을 내질렀다.
“그가 왜 오지 않는다는 거야?”
“저로도 충분하니까요.”
만면에 웃음을 띤 백리천아가 양팔을 벌리며 군웅들을 돌아보았다.
“저도 며칠 전에 들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마교의 사호법 가운데 수장인 황룡이었다는 것을.”
북방존자에 이어 천원존자를 바라보며 백리천아가 가벼운 눈웃음을 지었다.
“저도 처음에는 몹시 놀랐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 정도의 절대고수가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렸을 리가 없으니까 그러려니 했지요.”
무림맹주 백리무극은 십구 년 전에 정마대전을 실질적으로 승리로 이끈 황룡이었다. 어째서 실질적인 승리냐 하면, 마교의 맥을 완전히 끊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정마대전의 승장으로 맹주에 추대된 백리무극은 지금까지 큰 문제 없이 무림맹을 이끌었다.
“여기서 오존자 어르신들이…….”
군웅들을 돌아보던 백리천아가 북방존자와 천원존자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아, 거기 계셨군요.”
이제야 발견했다는 듯 웃으면서 백리천아가 말을 이었다.
“정마대전으로 마교의 위상과 세가 급격히 위축된 점에 관해서는 심심한 위로를 전하겠습니다.”
짐짓 안타깝다는 표정을 짓던 백리천아가 돌연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해서 화산의 장문인을 공격할 생각을 하시다니요? 그건 최악의 선택이었습니다.”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니까!”
천원존자가 발작하듯 소리치자 북방존자가 그녀를 말렸다.
“참으시게.”
가까스로 천원존자를 제지한 북방존자가 묵직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너와는 상관이 없다. 우리는 황룡에게 볼일이 있으니 이만 빠지거라.”
“제가 중재하겠다니까요?”
백리천아가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어르신들의 곤궁한 처지를 십분 이해합니다. 잘못을 인정하신다면 아버지와 무림맹의 원로들께 선처를 호소하겠어요. 그러니…….”
“닥쳐라!”
결국 폭발한 천원존자가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보자 보자 하니까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구나! 물정 모르고 나대는 너부터 징치한 연후에 반역자 황룡도 손봐 주겠노라!”
휘리링―.
천원존자가 기다란 줄을 꺼냈다. 줄의 길이는 무려 다섯 장이 넘었고, 끝에는 다면체의 금속이 매달려 있었다.
“천원존자, 그렇다고 어린아이에게 무기를 꺼내 들 것까진 없지 않나?”
유성추(流星錐)가 하늘을 가르면 생명 하나가 유성처럼 진다고 하여 유성모라고 불렸던 천원존자. 그녀가 진정으로 분노를 드러내자 북방존자가 탄식했다.
“저런 아이가 뭘 알겠나?”
“버릇을 가르치지 않은 아비의 죄를 대신 받아야겠지. 어차피 저 녀석의 아비도 그냥 넘길 생각은 없었으니까.”
천원존자가 노기를 거두지 않았지만 백리천아는 태연했다.
“오존자께서 저러시는 것도 이해할 만하지. 그렇지만 이건 실수라고.”
혀를 차던 백리천아가 양학을 돌아보았다.
“양학, 너의 신분도 사실은 사호법 가운데 백응이었지? 그렇다면 저분들을 설득해서 잘못을 인정하라고 해. 그래야 내가 중재를 하든가 하지.”
양학, 아니, 백응이 별다른 대꾸 없이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진심이 통하지 않자 백리천아가 통탄스러운 심정을 장탄식으로 대신했다.
비록 건방지고, 버르장머리가 없어 보이지만 백리천아는 평화주의자였다. 그래서 오존자와 사호법의 대립도 부드럽게 풀어 보고자 나왔거늘.
“오존자 어르신들, 진정 무림맹과 맞서려고 하십니까? 그건 파멸밖에 남지 않는다고요. 전 무림을 상대로 어찌 자웅을 결하려 하십니까?”
백리천아가 절절하게 호소했지만 천원존자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사정은 북방존자도 마찬가지라서 그도 눈을 감고 아무런 응대를 내놓지 않았다.
“다른 분들은 사군자나 사호법이지요? 오존자 어르신들과 구면일 테니 어서 저분들을 말려 주세요.”
난데없는 화해 요구에 백상과 백호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런 중차대한 사안에 제삼자가 나서서 감 놔라 배 놔라 타령을 하니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백리천아는 이번 건을 자신의 손으로 해결하고 싶었다. 무림의 골칫덩이인 오존자를 설복시킨다면 앞날이 탄탄대로가 아니겠는가.
문제는 모두의 반응이었다.
사심 가득한 백리천아의 중재는 오존자나, 사군자 모두에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했다.
“그만하면 되었소.”
보다 못한 이서악이 나섰다.
“지금까지 노력했으니 이제부터는 우리와 그대의 부친이 해결하겠소.”
“실례지만 성함이…….”
“이서악이라고 하오.”
“검군 선배님이셨군요!”
백리천아가 반색하며 이서악에게 포권했다.
“선배님이라면 정도와 마도에서 두루 인정을 받으시니 오존자 어르신께 제대로 간(諫)해 주세요!”
“글쎄, 그 문제는 그대의 부친과 상의할 문제라니까.”
이서악의 음성이 살짝 올라가는데, 또 한 명의 등장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