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06
당문전생 (205)
천마왜의 진정한 용도
“아하하하!”
백리무극이 발작적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그따위 황당무계한 헛소리를 누가 믿을까?”
광소를 터트리며 백리무극이 주변을 돌아보았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추측으로 사람을 살인교사범으로 만들더니, 그것이 여의치 않자 세상 물정에 어두운 어린애를 앞세워서 월하노인인지 뭔지에 취직을 시켜?”
웃음을 뚝 그친 백리무극이 무시무시한 기세를 토했다.
“천아가 좋게 보았다고 해서 좋게, 좋게 넘겼더니 끝 간 데 없이 망동을 부리는구나. 이제는 더 두고 볼 수 없겠어. 내 친히 너에게 가르침을 내리리라.”
쿠르릉!
백리무극의 장포가 미친 듯이 펄럭이자 주변의 흙먼지와 나뭇가지들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군웅들의 눈 때문인지 그 이상의 행동은 벌이지 않았다.
사군자 측은 혼란했다.
당찬일이 제기한 문제들은 너무나 충격적이라서 그것들의 진위 여부를 섣불리 판단 내리기 어려웠다.
그의 말대로라면 백리무극은 희대의 위선자란 소리인데, 그렇게 되면 어떤 경로로든 무림맹주의 자리에 오른 인물을 탄핵해야 하는 결과를 낳는다.
“으음.”
이서악이 나지막이 침음하자 벽려군의 눈이 가늘어졌다.
반면 오존자들의 반응은 특이했다.
사군자를 끌어들여 정마대전을 일으켰으니 백리무극에 대한 시선이 고울 리가 없겠지만 그들의 얼굴엔 또 다른 감정이 드러났다.
그것은 바로 결의. 달리 표현하자면 각오.
어째서 이들이 이런 마음가짐을 품는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군웅들이 당찬일에게 적극적으로 호응하지 않자 백리무극이 그것 보라는 듯, 턱을 들었다.
“당 공자, 자네가 써 내려간 소설은 나름 재미있었다. 충격적인 소재에 화려한 등장인물까지 동원했으니 흥미롭지 않을 도리가 없었지.”
만면 가득 너그러운 웃음을 지으며 백리무극이 몸을 돌리자 도왕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저것이다.
사형인 무한 진인이 타인을 기만할 때면 짓던 미소가 저런 형태였다.
“내용 또한 기승전(起承轉)까지 물 흐르듯 이어졌어. 아주 훌륭해.”
백리무극이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야. 정황밖에 없단 말이지. 의혹이야 아무나 제기할 수 있지만 그것을 뒷받침할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한낱 공염불에 불과하다네.”
“그런가요?”
“그래.”
승리를 확신했는지 백리무극이 넉넉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라도 사과한다면 천아를 봐서 지금까지의 무례를 불문에 붙이겠네. 그렇지만 계속해서 되지도 않는 누명을 씌우겠다면.”
으드득―.
백리무극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무고죄를 물 수밖에 없네.”
당금 강호에서 무고는 방화에 버금가는 중범죄에 해당한다.
잘못된 사실관계로 죄 없는 이들이 고통받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내린 조치였는데, 이는 무림맹이 설립된 이후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였다.
백리무극이 강경하게 나오자 당찬일이 눈썹을 찡그렸다.
“결정적인 증거라고 하셨습니까?”
“물론일세. 허위로 타인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행위는 지탄받아 마땅하지. 이는 당사자를 사회적으로 살인하는 격이니 발본색원해야 한다네.”
백리무극이 판관처럼 근엄하게 선언했다.
그의 모습에 감복했을까?
당찬일이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옳습니다. 무고는 최악의 범죄 가운데 하나지요. 수많은 범죄 가운데 무고는 사기와 더불어 인간의 정신을 파괴하는 악질적인 죄악입니다.”
당찬일이 자신의 말에 적극적으로 찬동하자 백리무극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놈이 왜 또…….’
백리무극의 눈에서 경계의 빛이 번뜩였지만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당찬일은 무심히 고개를 돌렸다.
“상대방의 죄를 입증하려면 정황 가지고는 안 되지요. 무림맹주님의 말씀처럼 결정적인 증거를 들이밀어야 범죄자들이 대가리를 박거든요.”
일부러 대가리라는 속된 표현을 입에 올린 당찬일이 탄식했다.
“하지만 지능적인 범죄자들은 증거를 남기지 않아요.”
피식―.
백리무극이 웃었다.
피식―.
당찬일도 웃었다.
“그런데 가끔은 결정적인 증거 대신 딱 떨어지는 증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
백리무극이 입을 열었지만 당찬일은 관심 없다는 듯 백응과 극제에게 시선을 던졌다.
“우리 맹주님께서는 정마대전의 전우였던 두 분 말고는 무림맹 사람들을 한 사람도 대동하지 않았으니 이곳까지 오는 데 시간이 촉박했거나, 내심 걸리는 것이 있었나 봅니다.”
“걸리는 것이라니? 사적인 일로 맹의 인원을 차출하기 싫었다네.”
“꿈보다 해몽이로군요. 아무려면 어떻겠습니까? 이쪽도 십구 년 동안이나 질질 끌었던 일이니 한시라도 빨리 처리하고 싶군요.”
이제부터 백리무극의 표정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증인의 증언만이 전부였다.
“사부님.”
당찬일이 허공에 대고 외치자 벽려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신을 부르네?”
“내가 아니라니까.”
벽려군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자 이서악이 허허롭게 웃는데 당찬일의 오른편에서 일군의 무리가 다가왔다.
우선 선두에서 일행을 이끄는 이는…….
“옥군?”
그리고 옥군의 뒤에서 초췌한 중년인을 부축하며 모습을 드러낸 적무연과 혈적인의 무인들을 군웅들이 못 알아볼 도리가 없었다.
군웅들의 눈을 사로잡은 이는…….
“이럴 수가!”
“저 사람은?”
그는 십구 년 전에 모습을 감춘 당협이었다.
처처척!
옥군과 혈적인의 무인들이 하강하자 당찬일이 그들에게 다가섰다.
“이번엔 우리 혈적인 전부가 투입되어 고생을 톡톡히 했다. 보수를 올려 받아야겠어.”
나지막이 투덜거리는 적무연을 보며 당찬일이 환하게 웃었다.
왜 모르겠는가.
이번 사안에 혈적인은 가용 인원의 대부분을 투입했을 것이다. 한마디로 전부 아니면 전무의 도박을 감행했을 거란 소리다.
그렇다면 의당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에 맞는.
“원하는 액수를 말해라.”
당찬일이 신뢰 가득한 눈으로 적무연을 응시했다.
“최대한 맞춰 줄 테니까.”
“흐음.”
당찬일과 군웅들 그리고 누군가를 살핀 적무연이 몸을 돌렸다.
“급한 불부터 꺼라.”
적무연이 혈적인의 무인들을 이끌고 물러서자 당찬일이 당협에게 다가섰다.
“소질이 셋째 숙부님을 뵈옵니다.”
“응?”
얼굴이 핼쑥한 중년인이 멍한 당찬일을 말없이 들여다보았다.
“제가 찬일이라고요!”
“으응?”
이때 백리무극이 대소를 터트리며 당협에게 다가섰다.
“당 대협, 이게 얼마 만이오!”
척!
자연스레 백리무극의 앞길을 막아선 당찬일이 서늘한 웃음을 지었다.
“재회의 기쁨은 차후에 나누도록 하고,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권유가 아니다. 명령이다.
당찬일이 입을 열자 백리무극의 얼굴에 노기가 서렸다. 하지만 이서악을 비롯하여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모였기에 백리무극은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정녕 알아보지 못 하시겠…….”
“그렇구나.”
굳어 버린 장내를 가르는 가녀린 한마디.
“네가 찬일이로구나.”
흐릿하던 초점이 서서히 잡히면서 흐리멍덩하던 당협의 안면에 생기가 돌아왔다.
“네가…… 찬일이었어.”
당협의 음성은 너무도 가냘파서 언제 끊어져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한때는 천하를 호령하던 영웅이었다. 호협한 기상으로 중원 십팔만 리가 좁다며 거침없이 활보하던 호걸이었다.
그런 그가 어쩌다 이런 모습으로 전락한 걸까.
천천히 내민 손. 그 손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알기에 당찬일이 당협의 손을 맞잡았다.
“미, 미안…….”
“숙부님께선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당협의 말을 막은 당찬일이 왈칵 몸을 돌렸다.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자가 이 자리에 있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당찬일이 외치자 당협의 눈망울이 더욱 뚜렷해졌다.
이제는 완연히 기운을 되찾은 눈으로 당협이 모두를 돌아보았다.
이서악과 도왕에게는 친근함을 담은 눈인사를, 언제나 차갑지만 그때처럼 아름다운 벽려군에게는 예의 바른 묵례를 보낸 당협이 오존자 측을 지나 누군가를 응시했다.
“저 청년은?”
“천마왜입니다. 십구 년 전에 숙부님이 데리고 나왔던 그 소년입니다.”
“아아.”
당협이 비틀거리며 천마왜에게 다가섰지만 그는 아직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내가 너무 늦었구나. 너무 늦게 왔어.”
털썩 무릎을 꿇은 당협이 축 늘어진 천마왜를 쓰다듬었다.
“내가 너무 늦었어.”
회한의 탄식으로 뼈아픈 심경을 대신한 당협이 돌연 고개를 쳐들었다.
“그날의 일장은 가슴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그 무슨…….”
백리무극을 쏘아보며 당협이 어금니를 물었다.
“이 아이를 데리고 마교에서 탈출할 때, 당신은 우리를 호위한답시고 따라왔지. 최고의 고수가 동행한다니까 우리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고.”
당시를 회상하며 당협이 입술을 푸들푸들 떨었다.
“왕망협에 접어들자마자 당신이 나를 불러내더군. 근처에 마교의 추적대가 상시 대기하니까 우리가 먼저 기습하자고. 그래서 저 아이를 협곡에 숨기고 나섰지.”
―잠시만 기다려라. 곧 돌아오마.
하지만 천마왜에게 당협은 돌아올 수 없었다. 그는 황룡의 기습을 받고 왕망협의 차디찬 절벽으로 떨어졌기에.
“맹주님께선 우리 당문의 구명신공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모르셨다는 거지요.”
당문은 여느 문파들보다 유난히 구명신공에 매달렸다. 오죽하면 삼조 당거정이 구명신공만을 따로 정리해 두었을까.
삼수삼보 가운데 대부분의 보법은 당거정의 구명신공에 착안한 무공이었다.
“나는 가전의 구명신공으로 목숨을 부지했지. 하지만 절벽에서 떨어질 때 받은 충격으로 정신이 반쯤 나갔다.”
한 달간 몸을 추스른 당협이 연어가 회귀하듯 본능적으로 가문에 복귀하자 당문에 심어 둔 세작의 보고를 받고 황룡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당협의 정신이 온전하지 않다는 정도?
“이때 우리의 맹주님께선 본인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숙부님을 처리할 방법을 고심합니다. 그러다 떠올린 인물이 바로…….”
천마왜를 바라보며 당찬일이 탄식했다.
“맹주님의 차도살인지계는 이렇게 시작되었지요.”
사옥정의 힘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당시 천마왜는 일곱 살이었다. 그런 그가 사군자에 필적하는 무위를 지닌 당협을 이길 수는 없는 노릇.
“맹주님께서는 숙부님의 죄책감을 이용했습니다. 지켜 주겠노라는 다짐을 어겼기에 어린 천마왜에게 독수를 쓰지 못하리라고 봤을 겁니다.”
반면 천마왜에게는 당협에 대한 복수심을 부추겼을 테고.
“내가 무엇 때문에 그런 번거로운 짓을 벌였다는 것이지?”
“천마왜가 필요했잖아요?”
당연하다는 듯 당찬일이 되물었다.
“셋 모두를 소유할 수 없지만 남은 둘이라도 가지자. 그러면 훗날을 기약할 수 있다.”
당찬일이 차가운 시선을 던졌다.
“그런데 셋째 숙부님은 가장 큰 걸림돌이었잖아요?”
순간 이서악과 벽려군이 서로를 돌아보았다.
“셋 모두를 소유할 수 없지만…….”
“남은 둘이라도 가지자?”
두 사람을 곁눈질한 당찬일이 동방존자와 능운비를 바라보았다.
끄덕―.
동방존자와 능운비의 양해를 구한 당찬일이 숨을 들이켰다.
“우리는 사호법이 모반을 일으킨 이유를 오존자가 천마왜를 전용했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지요. 인간 병기로의 전용.”
세간에 알려진 사실이다.
“마교 측에서 천마왜를 전용한 것은 맞지만 인간 병기로가 아니었습니다.”
오존자 모두와 능운비가 눈을 감았다.
“맥이 끊긴 마교의 보위를 잇는 것이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