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07
당문전생 (마지막 회)
당신의 시대는 끝났다
“뭐라고?”
이서악과 백려군, 백상과 백호를 비롯한 모두의 눈이 부릅떠졌다. 반면 오존자와 능운비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 그렇다면?”
“저기 능운비 교주가…….”
당찬일의 탄식은 지저(地底)의 끝까지 이를 정도로 깊었다.
“첫 번째 천마왜입니다.”
“헉!”
“이럴 수가!”
벽려군과 도왕이 놀람을 표시했다.
“으음.”
태산이 무너져도 흔들리지 않을 것만 같던 이서악마저 침음으로 놀라움을 표시하자 이를 곁눈질로 확인한 당찬일이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말을 이었다.
“황룡은 천마왜로 교주의 보위를 잇겠다는 오존자의 독단적인 결정에 항의했겠지요. 그러나 호법은 존자를 넘을 수 없다는 율법을 어길 수는 없었을 겁니다. 그때 맹주님께선 생각했겠지요.”
오존자를 넘지 못한다면 내가 직접 교주를 옹립하겠다!
사호법은 오존자를 넘지 못한다. 그리고 오존자는 교주를 모신다. 결국 오존자를 모시는 교주를 세운다면 오존자를 넘게 된다.
“백응을 비롯한 다른 사호법과 사군자들은 오존자가 천마왜를 인간 병기 삼아서 무림전복(武林顚覆)을 꾀한다는 맹주님의 말씀에 깜빡 속았을 겁니다. 반면 오존자 측은 정통성의 문제가 불거질까 두려워서 변변한 변명조차 못 했겠지요.”
마교주의 자리를 천마왜로 잇는다고 한다면 이를 수긍할 마도인이 누가 있겠는가?
“극존, 다시 말해서 능운비를 주살하려 총단으로 진입한 황룡 측은 진정한 오존자의 힘 앞에서 무기력했습니다.”
이때 백상이 당협에게 사옥정과 천마왜를 딸려서 내보내자는 의견을 제안하고 황룡은 두 번째 기회를 엿보게 된다.
“한 시대에 천마왜는 무조건 셋. 그중 첫 번째는 이미 극존으로 등극했고, 두 번째 천마왜는 확보했으니 세 번째마저 낚아채면 마교는 결국 내 손에 떨어진다.”
지금이야 오존자가 강성하니 물러나겠지만 이들의 힘이 쇠해지면 능운비를 죽이고 자신이 확보한 천마왜들 중에서 하나를 세우면 된다!
“세 번째 천마왜는 알겠다.”
이서악이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천마왜를 응시했다.
“그렇다면 두 번째는 천마왜는 누구지?”
당찬일이 양학…… 아니, 백응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잠시 주저하던 백응이 비탄에 젖은 어조로 입을 열었다.
“우리 사호법의 무학은 규화보전이라오. 그러나 누구도 규화보전을 극성까지 익히지 못했지. 하지만 황룡께선 이것을 대성(大成)하셨소.”
“그만.”
황룡이 나지막이 외쳤다.
“원래 규화보전은 일월신공과 더불어 교주지공(敎主之功)이었으나 결정적인 결함 때문에 우리에게로 넘어왔지.”
“그만하라고 했다.”
“결함이란 바로…….”
“그 입 닥치지 못할까!”
황룡이 대붕처럼 날아올라서 백응을 덮쳤다.
이때.
피―슉!
허공에 거짓말처럼 예쁜 선 하나가 아로새겨지며 황룡이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이, 이건!”
당거정이 남긴 마지막 유품.
당문의 혈리표였다.
“계속하시지요.”
“으음.”
한때의 지도자이자 우상이 볼품없는 몰골로 처박히자 씁쓸한 표정을 지었던 백응이 말을 이었다.
“규화보전을 대성하면 사내구실을 상실하게 된다오.”
순간 모두의 시선이 백리천아에게로 집중되었다.
“마, 말도 안 돼.”
“아니.”
황당해서 좌우를 돌아보는 백리천아의 앞으로 나선 당찬일이 작심한 듯 입을 열었다.
“귀하야말로 바로 두 번째 천마왜요.”
그래서 능운비와 천마왜가 닮은꼴이었다. 그래서 능운비와 천마왜 그리고 백리천아가 모두 비슷했다.
“백리천아 공자는 정교대전 직전에 민가로 빼돌려서 길렀던 거요. 그래서 능운비와 천마왜에 비해서 백리천아 공자는 유사성이 떨어졌던 거지.”
외(外)탁이 아니라 민(民)탁으로 두 번째 천마왜에게서 천마왜의 색깔을 적당히 뺀 것이다.
“우리 맹주님께선 이런 식으로 두 번째와 세 번째의 천마왜를 확보했던 거요.”
언젠가 첫 번째 천마왜를 죽이고 이들 가운데 하나를 앉히려 했겠지, 하며 말을 맺은 당찬일이 숨을 헐떡이는 백리무극에게 물었다.
“이 정도면 기승전에 어울리는 결(結)인가요?”
휘이잉―.
어디선가 한 줄기 바람이 불어온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이건 전부 거짓말이야.”
넋두리처럼 중얼거리는 아무런 죄 없는 청년 하나와.
“나 때문에…… 알량한 나의 죄책감 때문에 제수씨가 목숨을 잃었다.”
주저앉아서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는 중년인.
백리천아와 당협의 서글픈 읊조림이 장내를 쓸쓸히 맴돌았다.
괴로워하는 두 사람과 달리 누군가는 당당했다.
“그래! 내가 그랬다!”
발작적으로 외치며 백리무극이 목에 핏대를 세웠다.
“누구 마음대로 천마왜에게 교주 자리를 넘겨? 이건 오존자가 교를 사유화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어떻게든 명맥을 잇겠다는 충정이었네. 우리가 교를 사유화했다는 생각은 당치 않아.”
동방존자가 고개를 저었지만 백리무극은 핏발선 눈으로 오존자를 둘러보았다.
“그렇다면 우리와도 상의를 했어야지! 당신들 멋대로 결론지어 놓고 그마저도 비밀에 붙이려 하지 않았는가! 그래 놓고도 사유화가 아니야?”
양손을 벌리면서 백리무극이 낄낄거렸다.
“지엄하신 오존자들께서 결정하셨으니 천한 너희 사호법은 무조건 따라라? 호법은 존자를 넘지 못하니까 당연히 쫓아와라?”
백리무극의 눈에서 화광이 일었다.
“규화보전을 대성하면서 당신들을 아득히 뛰어넘었는데 내가 왜 따라야 하나?”
파아앙―!
마침내 백리무극이 전공력을 발출하자 그의 곁에 있던 백응이 나뭇잎처럼 나가떨어졌다.
실로 무시무시한 내력!
“흐흐흐흐.”
전신에서 실 같은 강기를 뿜어내면서 백리무극이 괴소를 흘렸다.
“이렇게 된 이상 너희 모두를 죽이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 무림맹과 마교를 아우르는 조직을 창조할 것이야.”
백리무극이 패도적인 기세를 마구 뿜어냈지만 군웅들은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개개인이 능히 천하를 오시할 고수들인데 어찌 백리무극에게 겁을 집어먹겠는가.
“무슨 개소리?”
눈에 쌍심지를 켠 벽려군이 성큼 나섰고.
“이런 미친놈을 보았나.”
도왕이 어깨에 멘 육중한 도를 꺼냈으며.
“당신의 행위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군.”
이서악마저 눈을 빛냈다.
뒤이어 극제와 백상 그리고 백호를 비롯한 모두가 백리무극에게로 다가서려는데 동방존자가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
“잠시만 기다리시오.”
“……?”
발길을 멈춘 군웅들이 고개를 돌리자 동방존자가 한 걸음 나섰다.
“황룡의 거듭된 만행으로 모두가 분노하셨을 거요. 우리도 황룡이 벌인 짓거리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오.”
동방존자가 능운비에게 시선을 던졌다.
“허나 우리 오존자와 극존께선 이번 일의 마무리를 당 공자에게 일임하기로 결정했소.”
우웅―.
아련히 맴도는 마교의 권위.
비록 황룡이라는 배신자의 농간에 철저히 놀아났지만 마교는 천 년 동안 이어진 힘과 관록으로 무림이란 거친 대지를 굽어본다.
그들의 위력은 이런 것이다.
잠시 잠깐 닥친 시련으로 상처를 입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딛고 일어선다.
“우리에겐 시간이 필요하오이다.”
동방존자가 몸을 돌리자 그의 옆으로 북방존자와 천원존자가 나란히 섰다.
“오르시지요.”
감회 어린 시선으로 십육인여를 응시하던 능운비가 마차에 올랐다.
“이것으로 진정한 대관식이 이루어졌군.”
이서악이 감회를 담아 중얼거리자 벽려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요. 능 공자…… 아니, 능 교주는 이 순간부터 진정한 마교주로 거듭났어요.”
능운비가 십육인여에 착석하자 가마의 선두에 선 동방존자가 당찬일을 향해 포권했다.
“당 공자가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황룡이 쳐 놓은 정통성이라는 덫에 빠져서 지금도 무기력하게 숨어 지냈을 거요. 우리를 개안시켜 주어서 정말로 고맙소이다.”
“별말씀을.”
십육인여 안에서 능운비가 당찬일에게 말을 건넸다.
“모든 일이 정리되면 찾아와요. 그때는 허리띠를 풀고 한번 대취해 봅시다.”
“그럴까요?”
당찬일이 싱긋 웃자 능운비가 환한 미소로 포권을 대신했다.
“그럼.”
십육인여가 구름과 구름 사이를 밟으며 떠나가자 사군자와 사호법이 약속한 것처럼 뒤로 물러섰다.
“나서지 않는구려.”
이서악이 묻자 도왕이 쓰게 웃었다.
“우리 모두는 이제 한 발자국 물러서도 된다. 안 그래, 벽 누이?”
“동의해요, 오라버니.”
벽려군이 특유의 스산하면서도 똑 부러진 어조로 화답했다.
사군자와 사호법이 물러선 자리에 홀로 남은 당찬일이 고개를 들었다.
결국 여기까지 왔다.
유평월에서 당찬일로 거듭난 이유가 무엇인지 몰랐는데 이제야 알 것 같다.
“오시오.”
탁한 목소리로 백리무극을 청하며 당찬일이 주먹을 쥐었다.
“당신이 그토록 원하던 소운이의 사옥정이 이곳에 있으니 얼른 오란 말이오.”
당찬일이 제 가슴을 탕탕 두드리자 백리무극의 얼굴이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그랬구나?”
화르륵!
두 손에 불꽃을 피워 낸 백리무극이 이를 갈았다.
“나의 심모원려를 산산이 부숴 버린 것으로도 모자라 증폭된 사옥정마저 갈취했단 말이지?”
당찬일의 뒤로 늘어선 군웅들을 확인한 백리무극이 그들과 자신의 거리를 쟀다.
일단은 후퇴해야 한다.
당찬일이 가졌다는 증폭된 사옥정을 얻었다면 모르되, 그것도 없이 무림사군자 전원과 옥군 그리고 백상과 백호를 당해 낼 재간은 없다.
이럴 때는 주위상이 최고다.
‘십구 년을 기다렸다. 몇 년 더 숨는다고 달라질 건 없어.’
빠르게 머리를 굴린 백리무극이 갑자기 양손을 번쩍 들었다.
“아아, 항복일세. 이대로는 내가 너무 불리하지 않은가.”
사군자와 사호법이 고개를 돌려 서로를 바라보는 순간, 백리무극이 거짓말처럼 몸을 뽑아서 당찬일을 덮쳤다.
“이리 와!”
당찬일을 인질로 삼아 이 자리를 빠져나가겠다는 백리무극의 계략. 하지만 당찬일은 이를 훤히 예상했기에 백리무극보다 먼저 움직였다.
스르륵.
비단결이 풀어지듯 발을 놀린 당찬일이 자신에게로 육박해 들어오는 백리무극을 스치고 지나쳤다.
―차라리 진심으로 부딪쳤으면 나았을 것을.
―뭐라?
―고착화된 신분제와 싸우고 싶었다면 비열한 술수를 동원하지 말고 진심을 다해서 들이받았어야 했다.
―발칙한 애송이가!
백리무극의 눈동자에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가 용솟음친다.
대체 누구에게? 누구를 향한 격분일까?
다른 건 모르겠지만…….
당신의 시대는 끝났다.
피―슛!
날카롭게 회전하는 당문의 혈리표를 받아 든 당찬일이 무너지듯 쓰러지는 백리무극을 확인하지도 않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인자한 표정의 이서악, 여전히 쌀쌀맞은 벽려군, 듬직한 도왕. 그리고, 그리고…….
땅거미는 누군가의 기쁨과 누군가의 슬픔 그리고 다른 누군가의 회한을 숨기려는 듯 짙게 깔렸다.
종장(終章) – 이른 술 한 잔
“낙화수에게 건넨 쪽지엔 무슨 내용이 적혀 있었나?”
“숙부님의 탓이 아닙니다, 간단하지?”
“그게 무슨 뜻인가?”
“오채지에서 셋째 숙부님이 발작을 일으킨 건 사실이지만 가문의 식구들에게 결정적인 상해를 가하진 않았을 거야.”
“흐음.”
“가문 사람들을 공격한 건 황룡에게 세뇌당한 천마왜였지. 하지만 죄책감으로 말미암아 셋째 숙부님은 천마왜가 날뛰는 것을 방임하다…….”
천마왜의 손에 어머니께서 목숨을 잃는 것을 목도하신 거지.
“낙화수가 십구 년 동안이나 잠적한 이유도?”
“본인의 손으로 제수씨를 죽인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셨을 거야. 지긋지긋한 죄책감이 또 한 번 셋째 숙부님을 짓눌렀겠지.”
“그것참…….”
“이제는 본가로 모시고 가야지. 그간 충분히 괴로우셨으니까 털어 내실 때도 됐어.”
“백리무극이 무승관에 조력자 하나 없이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낸 이유가 무엇일까? 자신의 계략이 완벽하다고 생각해서?”
“그는 마지막까지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래서 그토록 자신만만했던 거야.”
“믿는 구석? 누구?”
“강호에서 가장 오래된 조직.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 있는 집단.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더욱 위험하고 치명적인 단체.”
“그런 조직이라면?”
“천사련이지. 백리무극은 마교를 나오자마자 천사련부터 포섭했다. 성도부에서 인위적인 천마왜를 키우려는 시도도 천사련의 조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면 천사련이 무승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건?”
“내가 선수를 쳤지. 생각보다 천사련의 우두머리는 유연한 인물이었다.”
“그렇군. 그런데 지금 어디를 가는 건가?”
“어떤 녀석에게 술 한 잔 올리려고.”
“어떤 녀석이라면……?”
―나중에 우리 가문의 짱을 먹으면 잊지 말고 내 무덤에 술 한 잔 따라 줘.
……조금 일찍 따른다고 나무라지는 않겠지?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