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4
당문전생 (24)
무엇을 원하는 게냐?
“스님! 스님!”
쳐들어오듯 아미파를 찾은 일군의 무리들이 산문을 넘자마자 오체투지했다.
다수의 남성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문을 지키던 아미파의 고수들이 제지하지 않은 걸로 보아 이들은 아미파와 연이 있는 모양이었다.
“스님! 도천 스님! 우리의 억울함을 풀어 주십시오!”
“뭐지?”
당인과 당찬일에게 차를 대접하던 도천 스님이 인상을 구겼다.
정문과 거리가 멀어서 정확히는 들리지 않았지만 뭔가 소란이 일었음은 분명했다.
“나가 보셔야 하지 않소이까?”
도천 스님은 아미파의 대외적인 업무를 총괄하는 직무를 맡고 있었다.
당문으로 치자면 외당주인 당문랑군, 당진이랄까?
그렇기에 산문 앞에서 벌어진 소란은 도천 스님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닙니다, 당인 시주.”
도천 스님이 차를 따르며 고개를 저었다.
“만약 정문의 아이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였더라면 진작 종을 울렸을 터. 사안이 그렇게 중하지는 않은 모양이니 괘념치 마십시오.”
“그럼.”
당인이 찻잔을 들자 이번에는 당찬일에게 차를 따라 주며 도천 스님이 곱게 웃었다.
“소처주에 관해서는 이 늙은 비구니도 들은 바가 있지요.”
자신에 관한 이야기마저 파악할 정도라면 아미파는 당문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는 뜻이다.
비록 지금은 당문에 밀려 뒷방 늙은이 신세라지만 한때는 사천을 넘어 무림을 호령했던 아미파다.
육백 년이란 기나긴 시간 동안 무림의 태두라는 구파일방 가운데 당당히 한자리를 지켰던 아미파.
전통은 그 가치가 눈 녹듯 소멸하지 않는다.
‘아직 권토중래를 꿈꾸고 있는 건가?’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당찬일이 도천 스님에게 물었다.
“저요? 저는 그냥 어린애인데요?”
“어린애라니? 요즘의 열세 살은 절대 어린애라고 부를 수 없지요.”
뒤이어 도천 스님이 자신에 관해서 이것저것 늘어놓자 당찬일이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예, 제가 떡을 좀 좋아하지요. 그리고 일꾼들과 술판을 벌인 건…….”
“일꾼들과 술판이라니! 이게 다 무슨 소리야?”
대경한 당인이 찻잔을 내려놨다.
“아니, 일꾼들과 술판을 벌였다니? 그것도 하루가 멀다 하고. 그게 사실이냐?”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얼굴로 당인이 다그치자 당찬일이 머리를 긁었다.
당인이 당찬일을 더 다그치려는데 젊은 비구니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외당스님! 외당스님!”
“허어, 웬 소란이냐? 귀빈과 함께한 자리임이 보이지 않느냐?”
도천 스님이 나무랐지만 젊은 비구니는 안절부절,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 그게…….”
“무슨 일인데 그러느냐?”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도천 스님이 노기를 꺾자 젊은 비구니가 그녀에게 귀띔했다.
“그것이…….”
젊은 비구니의 귓속말을 듣던 도천 스님이 당인을 거쳐 당찬일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정말이더냐?”
“그렇습니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사실이렷다?”
“저들이 한결같이 그렇게 말합니다!”
“알았다.”
젊은 비구니를 물린 도천 스님이 당인에게 정중히 합장했다.
“산문 앞으로 가 봐야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당인 시주도 함께요.”
“저요?”
당인이 검지를 거꾸로 구부려 자신을 가리켰지만 도천 스님은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리고 소처주도 동행해야겠어요.”
“어헝헝! 스님!”
“도천 스니임!”
산문 앞은 난장판이었다.
젊은 남정네가 소리 높여 우는 건 꼴불견임에 틀림이 없다. 하물며 스무 명 남짓 떼로 몰려와서 목이 터져라 곡을 하는 꼴은 더더욱 보기 싫다.
하지만 산문 앞의 장정들은 타인의 시선 따윈 아랑곳없다는 듯 더욱 소리를 높였다.
“제발 저희의 억울함을 풀어 주세요!”
제 가슴을 두드리며 난리를 부리는 자.
“이대로는 못 삽니다! 어찌 이런 꼴을 당하고 아안 땅에서 장사를 합니까!”
엎어져서 손발을 허우적거리는 자.
“제발, 스님! 도천 스님!”
도천 스님이란 법명이 나무관세음이라도 되는 양, 반복해서 부르짖는 자.
아무튼 각양각색으로 난리를 부렸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억울함이었다.
이들의 소란이 극에 달할 무렵, 산문 앞으로 당도한 도천 스님이 엄하게 꾸짖었다.
“청정한 서찰 앞에서 이 무슨 난리인가?”
도천 스님의 일갈을 들은 장정들이 구세주라도 만난 것처럼 그녀에게 몰려들었다.
“스님! 어이구, 스님!”
“이제야 오셨군요, 스님!”
도천 스님이 발치로 기어온 장정들이 먹이를 기다리는 새끼 새처럼 입을 열었다.
“$#@#$$#%!”
“@!#$#@^&%^&!”
“가만! 가만!”
스무 명이 넘는 인원이 일제히 말문을 열자 무슨 소리인지 알 도리가 없어서 도천 스님이 손을 내저었다.
“누가 대표로 이야기를 하시게!”
“그럼……!”
손을 번쩍 들어 올린 사내가 용감히 앞으로 나섰다.
“아시다시피 저희는 대아미의 이름을 걸고 장사하는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런데 어디서 굴러먹었는지 모를 소악귀(小惡鬼)가 나타나 행패를 부렸습니다!”
“소악귀가 행패를 부려? 그게 사실이오?”
“물론입니다! 저 말고도 여기 모두가 당했지요!”
사내가 뒤를 돌아보자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그렇다며 맞장구를 쳤다.
“정확히 어떤 소란을 부렸는가?”
“놈이 옷감을 보겠다며 저희를 겁박하고 실컷 구경하고는 질이 안 좋네, 사기네, 하며 생트집을 잡지 뭡니까?”
“옷감의 질을 트집 잡았다?”
“물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아미파를 대리하는 점포니까 소란은 그만 부리고 고이 가시라 일렀건만…… 아, 글쎄, 완력을 행사하더라고요!”
“소악귀가 완력을?”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행패를 부렸다는 소악귀가 몇 살 정도로 보였는가?”
“대략 열셋에서 넷…….”
사내가 과거를 반추하는데 도천 스님의 등 뒤에서 당찬일이 모습을 드러냈다.
“소악귀다!”
하소연하던 사내, 태평포목의 점주인 하태평이 당찬일을 가리키며 벌러덩 엉덩방아를 찧었다.
“저놈입니다, 스님! 저놈이라고요!”
하태평이 엉덩이로 땅을 밀며 물러섰다.
“저놈이 바로 우리 태평포목에서 패악질을 부렸던 소악귀입니다!”
뜨악!
입을 떡 벌린 당인이 도천 스님을 제치고 당찬일에게 다가섰다.
“찬일이, 네가? 아니지? 저자들이 스님께 거짓부렁을 고하는 게지?”
당인이 어깨를 잡고 흔들자 바람 앞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나부끼던 당찬일이 고개를 들었다.
“아니요.”
“뭐?”
“제가 맞습니다.”
쿵!
도천 스님 그리고 당인이 눈을 한껏 치뜨자 하태평에게로 한 걸음 다가선 당찬일이 그를 직시했다.
“태평포목과 기타 아미파를 대리하는 포목점에서 주먹을 쓴 사람은 제가 맞는다는 소리지요.”
“그렇다고 하잖습니까!”
“저 미친 어린 악귀가 자백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구동성으로 난리를 부리는 포목점주들의 말을 자른 당찬일이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생트집을 잡지는 않았습니다.”
“생트집을 잡지 않았다니!”
“우리 포목점의 옷감이 어디가 어때서!”
포목점주들이 벌떼처럼 들고일어나자 도천 스님의 얼굴이 자못 침중해졌다.
“그렇단 말이지?”
“도천 스님도 아시잖습니까? 제 부친이 어떤 분이신지!”
여전한 아버지 타령.
무릇 성인이라면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야 마땅하지만 개중에는 호가호위를 일삼는 자들이 있다.
태평포목을 운영하는 하태평이란 작자가 바로 그런 경우인데, 그는 입버릇처럼 자신의 부친을 팔아서 도천 스님도 썩 마땅치 않게 여겼다.
하지만 태평포목이 아미파를 대리하는 업소인지라 그녀도 손을 놓을 수만은 없는 처지였다.
“끄응.”
잠시 숙고하던 도천 스님이 당인과 당찬일을 불렀다.
“대체 이게 어찌 된 것이요?”
“으음.”
당인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자 도천 스님이 입술을 깨물었다.
난감하다.
자신들의 이름을 걸고 운영하는 포목점에서 행패를 부렸다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처벌해야 옳지만 상대가 하필 당문의 직계라니.
고심하는 도천 스님의 곁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사부님, 잠시만.”
도천 스님을 청한 이십 대 중반의 여승은 혜윤이란 비구니로서 여느 승려들과 달리 야심만만하고, 도전을 좋아하는 인물이었다.
또한 그녀는 계산이 빠르고, 안목도 훌륭해서 아미파의 포목점 대리 운영을 실질적으로 총괄했다.
“이 바쁜 와중에 무슨 일이냐?”
혜윤이 사람들의 이목을 피할 수 있는 구석으로 자신을 이끌자 도천 스님이 짐짓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경황없는 중에 모셔서 죄송하지만, 할 말은 해야만 할 것 같아서요.”
용모 단정하고 영기 발랄한 혜윤이 눈을 반짝이자 도천 스님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 아이, 또 무슨 수작을 꾸미려고 이러나.
아니나 다를까, 혜윤의 입에선 잘 벼린 날보다도 시린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손님에게 결례가 될 수 있겠으나 이번 일은 묵과하시면 안 됩니다.”
“묵과하지 않으면, 치죄라도 하자는 소리냐?”
“경우에 따라서는 그래야겠지요.”
혜윤의 서늘한 응대에 도천 스님이 또 한 번 장탄식했다.
“저들의 신분을 알고서 하는 소리냐?”
“당문의 하독처주와 그의 자제가 아니겠습니까.”
“그 사실을 뻔히 알고서도 그런 말이 나오느냐? 만약 우리 파에서 저들의 털끝이라도 건드린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어!”
도천 스님이 꾸짖었지만 혜윤은 물러서지 않았다.
“하독처주의 자체가 정말로 난동을 부렸다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지요.”
말인즉슨 옳다.
하독처주의 자제가 아니라 무림맹주라도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건 결국 말에 불과할 뿐, 상대는 당문의 직계다.
당문의 직계에게 죄를 묻는다는 건 자칫 당문에 싸움을 거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아니요. 오히려 이것이야말로 우리 아미파에겐 기회일 수 있어요.”
“기회?”
“당문의 가주인 당과로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라지요.”
“그야…….”
“또한 그는 행사가 치밀하고 트집 잡히는 걸 병적으로 싫어해서 가문에 방해가 된다면 자기 자식이라도 주저 없이 내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만약 하독처주의 자제가 실수를 했고, 우리 파에서 그에게 죄를 묻는다면…….”
헤윤의 입가에 득의만만한 미소가 어렸다.
“아마도 당과로는 우리 파를 건드리기보다 이번 사태를 봉합하려 들 것입니다.”
잠시 도천 스님을 응시하던 혜윤이 비릿한 조소를 베어 물었다.
“당과로는 가문의 권위를 위해서라면 우리가 자신의 손자를 벌한 사실을 능히 덮을 위인이란 소리지요.”
“흐음.”
물론 그럴 수도 있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당과로의 품성은 혜윤이 언급한 그대로니까.
하지만 만약에라도 당과로가 다른 결정을 내린다면?
“명분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당과로가 실력 행사로 나선다 해도 우리 문파는 손해 볼 것이 없어요.”
“너…….”
혜윤을 직시하던 도천 스님이 고개를 옆으로 꺾었다.
“궁극적으로 무엇을 원하는 게냐?”
“당연히 우리 아미파의 세를 지금보다 확장시키려는 것이지요.”
기다렸다는 듯이 답하는 혜윤의 눈에 새파란 불꽃이 반짝 일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