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6
당문전생 (26)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생면부지의 소공자? 어떻게 생겨 먹었는데?”
젊은 거지의 물음을 받은 졸개가 천천히 몸을 돌리더니 누군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기 있구먼요.”
졸개가 지목한 사람은 당연하게도 당찬일이었다.
“진짜로?”
깜짝 놀란 젊은 거지가 당찬일에게로 다가섰다.
“소공자가 우리 애들한테 비단에 관한 교육을 하셨나?”
젊은 거지의 물음에 당찬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지요.”
거지들이 자신에게 받은 것들을 펼치자 당찬일이 비단을 주렴 삼아 밟으며 천천히 걸어 나왔다.
“이것은 만한포목, 이건 유한포목, 이건 제일포목. 태평포목은 이쪽.”
당찬일이 바닥에 깔린 비단들을 툭툭 차며 말했다.
“제가 한 필당 은자 오십 냥을 주고 구매한 비단들이지요.”
눈을 돌린 당찬일이 혜윤을 직시했다.
“어떠십니까?”
도천 스님이 창백해진 표정으로 혜윤을 돌아봤다.
“너! 대체 포목점 관리 감독을 어찌했기에!”
울상이 되어 버린 혜윤이 말을 더듬었다.
“아, 아니옵니다, 사숙! 분명 제가 방문했을 때는 최고급을 취급했어요!”
“네가 방문했을 때? 그럼 네가 방문하지 않을 때는!”
“그, 그것이……!”
당황한 혜윤이 포목점주들을 바라볼 때 당찬일이 결정타를 날렸다.
“이게 혜윤 스님의 잘못은 아니지요. 열 장정이 도둑 하나 잡기 어렵지 않습니까. 속이려 들면 아니 속을 방법이 없지요.”
망연자실.
넋을 놓고 당찬일을 쳐다보던 도천 스님이 탄식을 터트리다 포목점주들에게 눈을 돌렸다.
“시주들은…….”
“히끅!”
활활!
도천 스님의 등 뒤로 활화산이 이글거리는 듯한 착각이 들어 하태평을 비롯한 포목점주들이 목을 움츠렸다.
“나중에 죄를 물을 터이니 돌아가시게!”
“예, 옛!”
잽싸게 일어선 포목점주들이 엉덩이를 털며 도주하려는 순간이었다.
“잠깐!”
우뚝!
도천 스님이 포목점주들을 불러 세웠다.
“누명을 씌우려던 사람에게 사죄는 하고 가야지 않겠는가!”
도천 스님이 일갈하자 식은땀을 뻘뻘 흘리던 포목점주들이 당찬일 쪽으로 몸을 돌렸다.
“소, 소공자, 미안하…….”
마지못해 잘못을 인정하는 포목점주들을 못마땅한 시선으로 응시하던 도천 스님이 당찬일에게 물었다.
“나중에 우리 아미가 저들에게 죄를 물을 터이니 소처주께선 이제 저들을 용서해 주시구려.”
“소처주……요?”
슬그머니 고개를 드는 하태평에게 혀를 차며 도천 스님이 고개를 저었다.
“시주들이 모함한 사람의 정체도 몰랐는가?”
하태평을 비롯한 포목점주들이 눈동자를 굴렸다.
‘스님이 왜 저러신데?’
‘저 꼬마가 얼마나 대단하다고 저리 말씀하시는 거야?’
서로 눈짓하는 포목점주들을 보며 도천 스님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알았으면 처음부터 이런 일이 없었겠지. 저 소공자가 당문 하독처주의 자제인 당찬일 공자일세.”
콰쾅!
“다, 당문!”
“하독처주의 자제라면……?”
당과로의 손자다!
당과로는 옥황상제다. 무림의 하늘과 동격이란 말이다.
그 말인즉슨 당과로의 손자가 바로 무림 옥황상제의 손자라는 소리 아니겠는가!
‘우, 우린…….’
‘이제 망했다.’
하태평을 비롯한 포목점주들이 바지에 오줌을 지렸다.
젊은 여승들이 고개를 돌리며 손사래를 치자 도천 스님의 눈썹이 크게 휘었다.
“볼썽사나운 꼴 그만 보이고 썩 꺼지시게!”
“예, 옙!”
바지를 가리며 포목점주들이 사라지자 도천 스님이 당인과 당찬일에게 다가왔다.
“당인 시주, 앞뒤도 모르고 탓한 빈니의 잘못이오.”
“오해가 풀렸으니 그걸로 족합니다. 그렇지, 찬일아?”
당인이 당찬일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혜윤, 너도!”
도천 스님이 고리눈을 뜨자 황급히 다가온 혜윤이 고개를 조아렸다.
“앞뒤 없이 의심부터 한 점 정말 죄송합니다.”
몸을 숙인 혜윤이 당찬일을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그런데 넌 그 나이에 어찌 그리 비단을 잘 아니?”
“벌이 누에처럼 고치를 틀어서 왜 그런가 살피다 비단까지 공부하게 되었네요.”
“벌이 누에가 되었다고?”
“그런 게 있습니다. 그보다 포목점들은 어찌하실 겁니까?”
통상적으로 각 문파는 자파의 문제에 타인이 관여하는 걸 병적으로 싫어한다. 그렇지만 지은 죄가 있는지라 혜윤이 건성으로 답해 주었다.
“그러게. 점포를 전부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고.”
“놔두면 문제가 될 텐데요?”
“맞아. 그래서 걱정이지.”
시큰둥한 혜윤을 보며 당찬일이 나직이 물었다.
“비단 검수를 우리에게 맡기시죠?”
“뭐?”
어안이 벙벙해진 혜윤이 도천 스님을 쳐다보았다.
비단 검수를 당문에게 맡기라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스님들께서 비단 검수를 모두 하긴 어려우실 거 아니에요.”
“그건…… 그렇지.”
“매일 포목점 감사를 하기도 어려우실 테고요.”
“당연히.”
“그 과정을 저희가 대행하면 되지 않을까요? 과정만 대행하는 거니 아미에도 전혀 문제가 없을 테고, 상권도 지금과 달라질 거 없고요.”
“아, 아니…….”
“당문에서 아미의 포목점에 영향력을 키우려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가 있겠지만, 아시다시피 저흰 이미 충분할 정도로 전 중원에 판매처가 있거든요. 이제 와서 굳이 아미의 것에 욕심을 낼 이유도 없죠. 문제는 서로의 관계랄까?”
“아, 아니, 그게 아니고…….”
이런 중차대한 문제는 내가 결정할 사안이 아니야!
혜윤과 도천 스님이 난감한 표정으로 당인을 응시했다.
당황스럽기는 당인도 마찬가지였다.
‘이 아이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건가!’
세 사람이 어쩔 줄을 몰라서 아무런 대응도 내놓지 못하는데 구수한 음성이 장내에 내려앉았다.
“대외적으로 당문은 아무런 생색을 내지 않겠다는 것이로구나?”
“태사조!”
혜윤이 급급히 고개를 숙이고,
“장문 방장까지 오시었소이까?”
도천 스님이 정중히 예를 표하며 한 걸음 물러섰다.
“됐다, 됐어. 우리끼리 예는 무슨.”
오십 대 후반의 여승, 현 아미파의 방장인 도현 스님의 안내를 받으며 모습을 드러낸 비구니는 낙락장송이란 말이 어울렸다.
낙산사태(落山師太).
낙산사태는 아미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라서 당대의 방장마저 그녀 앞에서는 고개를 들지 못한다고 했다.
혜윤의 뒤로 나타나 그것이 최선이냐고 물었던 노승.
그녀가 바로 낙산사태였다.
“서로의 관계……. 당문이 우리 아미와 어떤 관계를 맺고 싶어 그리 말을 할꼬?”
낙산사태가 자애로운 미소를 짓자 당찬일이 어깨를 으쓱였다.
“먼저 수익의 일 할 정도가 필요할 것 같아요.”
“수익의 일 할로 포목점의 모든 과정을 대행해 주겠다면 우리로서도 손해는 아니지.”
낙산사태가 옅은 웃음을 띠었다.
“그것 말고는?”
재롱부리는 손자를 바라보는 심정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낙산사태에게 마주 미소를 띠며 당찬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중얼거렸다.
“봉축행사에 초대장을 발송해 주세요.”
순간 낙산사태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당문을 초대하라?”
“설마 저를 청해 달라고 하겠어요?”
당찬일이 이물 없이 웃자 낙산사태가 눈을 가늘게 떴다.
요놈 봐라?
속내를 감춘 낙산사태가 역시 지나가듯 물었다.
“매년?”
“그래야 정이 들지요.”
너무 뻔뻔한 대답이라서 하마터면 웃음을 터트릴 뻔했지만 꾹 눌러 참고 낙산사태가 고개를 돌렸다.
“방장께선 어찌 생각하시는가?”
낙산사태의 물음을 받은 도현 스님이 자못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
“숙고해 보겠습니다, 사숙.”
도현 스님의 답변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당찬일이 덧붙였다.
“절대로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당인과 당찬일이 하산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낙산사태가 혀를 빼물었다.
“문제를 만들었기에 대체 어떤 트집을 잡으려 하나 궁금했더니 도리어 혜윤의 허물을 말로 덮고, 우리에겐 재미있는 제안을 하는군. 정말 여시가 따로 없어.”
“그러게 말입니다. 어르고 뺨치고. 조그만 놈 뱃속에 구렁이가 백 마리는 넘게 똬리를 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꺼억!
거하게 트림을 한 젊은 거지가 술병을 입에 거꾸로 물었다가 떼며 말했다.
“난데없이 나타나서 거래를 트자고 하지 않나, 재밌는 일이 있을 거라며 이곳으로 불러들이지 않나. 나 원, 한판 거하게 이용당한 느낌이면서도 그게 기분은 나쁘지 않지 뭡니까.”
당찬일을 보며 젊은 거지가 쿡쿡 웃었다.
“시쳇말로 골 때리는 녀석입니다, 정말.”
“자네 입에서 골 때리는 녀석이란 말이 나오니 좀 우습군.”
젊은 거지의 말을 되새기던 낙산사태가 갑자기 생각난 듯 물었다.
“무결개 사형은 잘 계시고?”
“영감님이요?”
젊은 거지가 심드렁하게 고개를 젖히며 말했다.
“잘 계시는 정도가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정정해지신다니까요.”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젊은 거지가 탄식했다.
“무슨 노인네가 밥을 서 말씩 자시질 않나, 시시때때로 술 심부름을 시켜서 후학 양성에 매진하는 제자를 생고생시키지 않나.”
술이 다 떨어진 것을 확인한 젊은 거지가 호리병을 휙 던졌다.
“내가 이러려고 개방 식구가 되었나, 자괴감 들고 괴롭습니다.”
개방은 여타 문파와 달리 허리춤의 매듭으로 신분을 가늠한다.
매듭 하나는 일결 제자로서 가장 아래 신분이고, 분타주, 다시 말해서 지역의 우두머리급은 일곱 개의 매듭, 칠결 그리고 장로들은 팔결을 맺는다.
마지막으로 개방의 방주는 아홉 개의 매듭, 구결을 원칙으로 한다.
여기에 예외적인 인물이 하나 있었으니 그가 바로 매듭이 없는 거지였다.
개방의 정신적 지주이지만 개방마저 초월한 자유로운 영혼.
그가 바로 무결개다.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만끽하던 무결개가 십 년 전, 이십 대 초반의 청년을 데리고 와서 제자라고 소개하자 개방은 발칵 뒤집혔다.
왜? 무결개가 방주의 사숙이었으니까.
무결개가 애송이를 제자랍시고 들이면 개방의 항렬이 완전히 꼬이게 되는 건 불 보듯 뻔한 노릇 아닌가?
원로부터 방주까지 극구 말렸지만 무결개는 이들의 간언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 결과 애송이가 개방의 방주와 같은 항렬이 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그 애송이가 바로 눈앞의 젊은 거지다.
아미 장문 도현의 동기인 도천이 젊은 거지를 쉽게 상대하지 못했던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다.
젊은 거지가 자신과 같은 항렬이자 개방에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실세라서 나이가 적다는 것만으로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여튼 사형도 여전하시군.”
쿡쿡 웃던 낙산사태가 문득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저 소시주가 어찌 자네를 움직였을꼬? 고작 그 정도로 자넬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말이야.”
“사태께서도 저 녀석이 여우라고 하셨잖습니까.”
젊은 거지가 고개를 살레살레 저었다.
“그 진단에 백 번 동감입니다.”
내공이라도 모으려는 듯 가슴을 부풀리던 젊은 거지가 입맛이 쓰다는 듯 쩝쩝거렸다.
“저 꼬마가 저한테 왔으면 냅다 엉덩이를 차 버렸을 텐데 말입니다.”
“그럼?”
“저놈이 글쎄…….”
이를 부득부득 갈며 젊은 거지가 당찬일이 사라진 방향을 노려보았다.
“영감님을 공략했지 뭡니까.”
“무결개 사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