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8
당문전생 (28)
야시럽게 춤추면 놔줄게
배가 태산보다 높게 솟은 관현의 수령인 왕씨 성의 지현(知縣)이 검지를 입에 가져다 붙이며 강조하다 당인과 당찬일의 행색이 범상치 않음을 그제야 느꼈다.
분명 나라에서 녹을 받고 사는 집안의 행렬은 아니다.
그렇지만 범부로 보이지도 않으니 결론은 무림의 행차라는 건데.
이때 주부 하나가 왕 지현에게 쪼르르 다가와 귀띔했다.
“무엇이라고? 당문!”
화들짝 놀란 왕 지현이 두 손을 비비며 다소 비굴한 미소를 지었다.
“아하하! 당가의 행렬이었다면 진작 말씀하시지 그랬나? 본관이 알았더라면 조금 더 신경을 썼을 텐데!”
갑자기 호인으로 둔갑한 왕 지현이 당인에게 친한 척을 하자 당찬일은 속이 불편해졌다.
관리라는 족속들은 돈이나 지위를 지닌 사람 앞에서 왜 이리 작아지는지. 하지만 당찬일은 평정심을 잃지 않고 관아의 분위기를 살폈다.
자고로 관아에서 흐르는 기류를 파악하면 해당 지방이 어찌 운영되는지 짐작할 수 있으니까.
‘잔뜩 녹이 슨 무기고. 태평성대라서 개방할 필요가 없었다면 몰라도 사람이 이토록 대량으로 죽어 나가는데 저런 형태라니.’
무기고에서 눈을 돌린 당찬일이 왕 지현의 뒤에 시립한 관원들을 살폈다.
‘새로 산 신발이로군. 바삐 움직이는 관원들의 신은 항상 지저분한 법이지. 즉, 보고는 받았지만 움직이진 않았다고 봐야겠어.’
하긴, 당문에서 조금 전에 시신 여덟 구를 인계했음에도 불구하고 관원들은 즉시 조사에 착수하기보다 노골적으로 귀찮아했을 정도니까.
‘마지막으로 관리들의 피로도.’
이러한 중차대한 범죄가 벌어진다면 의당 관원들은 낮밤을 가리지 않고 수사에 매진해야만 한다.
그 결과 관원들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피곤에 찌들어 있어야 하거늘.
‘얼굴에 흐르는 개기름이 아예 살을 타고 뚝뚝 떨어질 지경이로군.’
즉, 왕 지현을 위시한 관원들은 매일 밤 ‘꿀잠’을 즐기신다는 소리겠다.
관할에서 무슨 난리가 나든 본인의 낮잠이 소중한 놈들임이 분명했다.
당찬일의 입꼬리가 사선으로 치켜 올라갈 무렵, 왕 지현이 당인에게 물었다.
“그런데, 당가에서 우리 관현에는 무슨 일로 방문하셨는지 물어도 되겠는가?”
“청성파에 들러 인사나 나눌까 합니다.”
당인이 답하자 왕 지현이 어림도 없다는 듯 두 손을 홱 내둘렀다.
“아서게! 거길 왜 가시나?”
“예?”
“지금 청성이 얼마나 개판인 줄 아시는가! 장문 하나 잘못 뽑았다가 문파가 작살 나게 생겼다고!”
뒤이어 왕 지현은 청성이 얼마나 허접한 문파로 전락했는지에 관해서 장광설을 늘어놨다.
무려 반 시진을 허비해서.
“그러니 어서 성도로 돌아가게나. 청성과 교류는 무슨.”
콧방귀를 날리는 왕 지현을 뒤로하고 당인 일행이 관아를 나섰다.
“명심하시게! 거긴 망해 간다고!”
끝까지 청성을 욕하는 왕 지현이었다.
“이것 참, 곤란하게 되었군. 현의 수령이 극구 말리니 청성파에 방문하기도 그렇고…….”
일단 객잔에 짐을 풀은 당인 일행이 점심을 주문했다.
“그래도 한 지역의 수령인데 무작정 무시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고심하는 당인과 당찬일의 귓전으로 식사하는 손님들의 투정이 들려온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또 시신이 나왔다면서?”
“벌써 몇 번째야? 이번 달만 세 번째 아닌가?”
“우리 현의 사람들이 전부 죽어 나가야 끝나는 것 아냐?”
예상대로 흉수는 한두 번이 아니라 지속해서 살인을 자행했음이 틀림없다.
그렇게 불안감을 호소하던 손님들의 화살은 놀랍게도 관이 아니라 청성을 향했다.
“이전 장문 때는 이런 일이 없었구먼.”
“그렇게 말일세. 어디서 등신 같은 작자를 앉혀 놔서는.”
일 층에서 청성을 열심히 씹어 대는 손님들에게 눈길을 던지던 당인이 혀를 찼다.
“본래 치안은 관아가 담당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렇지만 예외적으로 해당 지역에 행세깨나 하는 무림 문파가 존재하면 그들의 영향권이 되곤 하지.”
이곳, 관현도 마찬가지.
청성이라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문파가 있는지라 사람들은 관아보다 이들을 믿고 따랐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해결이 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관아보다 청성파를 탓하는 것이다.
“청성의 현 장문이 그리도 욕을 먹을 사람인가요?”
당찬일이 묻는 순간 일 층 식당의 중앙에 간소한 무대가 만들어졌다.
“오호라, 변설자가 들른 모양이로군.”
변설자란 기루나, 식당, 또는 시전을 떠돌면서 온갖 이야기를 파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강호를 종횡하며 천하를 호령하던 영웅들의 무용담이나 남녀상열지사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가끔은 현 세태를 풍자하기도 하며, 때로는 백성들이 잘 모르는 정보를 넌지시 흘려주곤 한다.
이른바 정보 전달자.
그래서 변설자들은 백성들에게 꽤나 괜찮은 대우를 받았다.
“오늘 변설자는 누구신가?”
사람들의 기대를 받으며 등장한 인물은 기골이 장대한 노인이었다.
하지만 허우대만 멀쩡할 뿐, 노인은 앞을 못 보는 봉사였고, 허리마저 굽어서 걸음조차 제대로 못 걸었다.
그런 그를 부축하는 소녀.
“아이고. 저것, 저것…… 미색 좀 봐!”
“서너 해만 더 지나면 사내 여럿 홀리겠는데.”
“나는 당장이라도 홀려 줄 마음이 있구먼!”
“예끼, 이 사람!”
남정네들이 음탕한 소리를 지껄일 만도 했던 것이 노인을 이끄는 소녀는 당찬일 또래였는데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아름다웠다.
소녀의 부축을 받은 노인이 가까스로 의자에 궁둥이를 붙였다.
“흘흘, 다들 기다리시느라 수고 많으셨소이다. 오늘 날씨가 괜찮지요?”
좌중을 둘러본 노인이 인자한 미소를 머금으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욕이란 욕은 모조리 먹는 청성 현임 장문의 도명을 아느냐?”
노인이 묻자 소녀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분의 도명은 현월(賢月)이라는 분으로서 고매한 인품의 소유자란다.”
노인의 설명을 들은 소녀가 눈을 말똥말똥 떴다.
“아, 그런 훌륭한 분이 왜 욕을 먹느냐고?”
소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노인이 장탄식을 터트렸다.
이른바 문답 화답인데 특이하게도 소녀는 몸짓이나 눈짓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다.
더욱 놀라운 점은 노인은 분명 앞을 보지 못하면서도 손녀의 몸짓을 정확하게 간파하는 눈치였다는 것이다.
이로 미루어 노인과 손녀는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서 이심전심(以心傳心)의 지경까지 도달했나 보다.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사람이 죽어 나간다는 흉흉한 소문이 돈단다.”
노인의 말을 뱉자마자 왁자지껄하던 식당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우리 관현은 인근 마을보다 치안이 좋기로 소문이 났던 곳이라서 그 여파가 더욱 컸지. 그래서 사람들은 어서 빨리 범인이 잡히길 바랐단다.”
점점 더 침전되는 대중들의 시선.
그렇지만 노인은 작심이라도 했는지 거침없이 이야기를 쏟아 냈다.
“하지만 범인은 꼬리를 감춘 신룡처럼 종적이 표홀하여 그자의 그림자조차 목격했다는 사람이 없어. 그러다 보니 이 마을엔 방문객마저 끊길지도 모를 지경이란다.”
“아, 씨.”
“뭐라는 거야, 저 영감탱이!”
이제 식당의 손님들은 노인과 소녀에게 노골적으로 적개심을 드러냈다.
당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건 자체엔 관심이 없는 거란다. 그 사람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지. 그저 씹을 거리가 필요할 뿐.”
사건의 내면에 숨겨진 함의.
마을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있으며 범인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그리고 범인이 검거되지 않았기에 언제든지 다시 살인이 벌어질 수도 있다.
결국 치안에 구멍이 뚫렸다는 뜻이고, 흉수가 잡혀야 마을 주민들의 불안이 해소된다는 건데 어째서 사람들은 관아를 탓하지 않고 청성파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걸까?
대중들의 살기에 가까운 시선을 의식할 법도 한데 노인은 관심 없다는 듯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기에 바빴다.
“소문대로라면 현월 장문은 남에게 험담을 들을 이유가 전혀 없단다. 또한 살인사건과 청성파와도 하등 관계가 없고.”
소녀가 예쁘장한 눈망울을 끔뻑거리자 노인이 서글프게 웃었다.
“어처구니없게도 사람들이 그분을 물어뜯는 이유는 오로지 하나란다. 욕받이.”
순간 분위기가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노인은 대중들의 반응 따윈 아랑곳없이 목소리를 돋우었다.
“사람들이 죽어 나가도 백성들은 나라를 탓하지 않고, 애먼 도인들에게 원망을 퍼부어. 국법이 지엄한데 나라의 치안을 어찌 무림의 문파에게 묻는…….”
쨍그랑!
“뭔 개소리냐!”
“당장 집어치워라!”
분기탱천한 사람들이 동전 대신 젓가락이며 음식물을 변설자 노인에게 던졌다.
“결국 이렇게 흐르는가.”
당인의 눈에 진한 안타까움이 어렸다.
“진실을 말하는 게 참 어렵죠.”
당인이 심유한 눈빛으로 당찬일을 바라봤다.
그 와중에도 일 층 식당의 소란은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었다.
“썩 꺼져!”
“다신 오지 마!”
사람들의 비난과 야유를 받으며 노인과 소녀가 쫓겨나듯 객잔을 나섰다.
그런 그들의 뒤를 사내 몇이 슬그머니 뒤따랐다,
한눈에도 음험한 기운을 물씬 풍기는 자들은 서로에게 눈짓하며 노인과 소녀가 사라진 방향으로 향했다.
그들을 주시하던 당찬일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소피라도 마려운 게냐?”
“아마도요.”
일 층으로 내려서는 당찬일을 쳐다보지도 않고 당인이 지나가듯 중얼거렸다.
“너무 힘을 쓰지는 말아라.”
“예?”
“힘 조절 잘못하면…….”
술잔을 빙글빙글 돌리며 당인이 피식 웃었다.
“측간 무너진다.”
소녀의 몸으로 덩치가 자신보다 두 배는 커다란 사람을 부축해서 걷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소녀는 용케도 노인을 이끌고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그들이 객잔을 나와서 작은 골목으로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 뒤따르던 장정들이 튀어나왔다.
“어이, 영감!”
느닷없는 부름에 노인이 걸음을 멈추자 막아선 장정들이 콧김을 뿜었다.
“왜 그런 개소리를 지껄여서 우리 밥줄을 끓으려는 거야?”
“영감이 여기저기에서 헛소리를 해 대니까 우리 부르는 객잔이 줄어들잖아!”
이들은 노인과 같은 변설자들이었다.
본래 시국이 뒤숭숭하면 오히려 변설자들은 잘 팔린다.
세태에 어둡고 정보를 취득할 방법이 전무한 백성들에게 변설자들의 한마디는 광명과도 같았으니까.
하지만 변설자들은 자신이 취합한 정보들을 그대로 전하지 않는다. 당인의 말처럼 백성들은 자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만을 원했기에.
그래서 변설자들은 진실을 대중들의 입맛에 맞도록 가공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어차피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대중이나, 변설자 모두.
“나, 나는 어디까지나 진실을……!”
“진실은, 무슨 놈의 얼어 죽을 진실!”
“그게 뭐가 중요한데!”
노인에게 삿대질을 하며 장정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그놈의 진실 때문에 우리 수입이 얼마나 줄었는지 알아!”
장정들이 노인을 벽으로 몰아붙이고 거칠게 외치자 소녀가 그들의 소매를 붙들고 늘어졌다.
“어버, 어버버!”
“뭐야? 이거, 농아였어?”
“어버버버!”
“뭐라는 거냐? 안 들려!”
일부러 소녀에게 귀를 가져간 장정들이 그녀를 희롱하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버버!”
“안 들린다니까?”
“크하하하하!”
소녀를 둘러싼 장정들이 그녀에게 입에 담지 못할 비속어를 쏟아 냈다.
“벙어리면 벙어리답게 입을 닥치고 있어야지! 꼴에 지 할아비 구하겠다고 나서기는!”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소녀의 이마며, 머리를 툭툭 치던 장정들이 곧 흉물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이년, 농아치곤 꽤 반반하지 않냐?”
“맞아. 나이도 어린 게 벌써 장난이 아니군.”
장정들이 음탕한 시선으로 몸을 훑자 잔뜩 겁을 집어먹은 소녀가 뒤로 물러섰다.
“야, 이리 와 봐.”
“한번 야시럽게 춤추면 놔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