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32
당문전생 (32)
전장 인수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도인의 신분으로는 절대 할 수 없는 싸움이라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갔건만, 꼬마 도우는 아주 능숙하게 처리했다.
하지만 어쩐지 찔린다.
분명 뜬소문을 처리하는 방법으로 기발하면서 획기적이었지만 깨달음을 추구하는 도인의 입장이라 조사들께 살짝 죄스럽다.
“무량수불, 무량수불.”
도호를 연발하는 상외자의 음성에서 청량감이 잔뜩 묻어 있다고 느낀 건 당찬일만의 착각이 아니니라.
“사제의 도호, 오랜만에 듣는군.”
“아, 사형!”
“평소에도 그렇게만 지낸다면 참 좋을 텐데 말일세.”
갑작스러운 사형 상리자의 등장에 상외자가 급히 도관을 정제했다.
“고의는 아니오나, 내 지나가다 두 분의 대화를 언뜻 들었소이다.”
당찬일이 웃음으로 상리자에게 옆자리를 양보했다. 상리자가 자리에 궁둥이를 붙이며 탄식을 토했다.
“소도우의 도움으로 풍문이 많이 사라졌다 들었소. 참 고마운 일이오.”
당찬일이 방긋 웃었지만 상리자의 걱정스러운 표정은 펴지지 않았다.
“하지만 미봉책이 아닌가 싶은데.”
당찬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미봉책이지요. 사람들은 또 오늘 일을 금세 잊고 원망할 대상을 찾을 테니까요.”
당찬일의 말에 상리자와 상외자가 서로를 돌아보았다.
―저 소도우, 정말로 열세 살일까요?
―허! 그러게나 말이다.
어지간한 연륜이 없으면 나오기 어려운 말인데 당사자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하니 두 도인이 도리어 당황하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저건 관록에서 우러나온 술회인데.
“당장은 변설자들의 신뢰가 떨어졌지만, 또 다른 계기가 생기면 이전과 같아질 여지가 있지요.”
“바로 그걸 염려하는 거요. 근본적으로 해결이 어려우니 말이오.”
잠시 말을 끓었던 상리자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당찬일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말인데.”
“에?”
“이번 싸움.”
당찬일과 상외자가 고개를 돌려 자신을 주목하자 상리자가 시린 음성으로 말을 맺었다.
“확실히 끝내 줄 수 없겠소?”
당찬일의 입꼬리가 기묘하게 비틀렸다.
“청성에서 조금만 도와주신다면 가능하죠.”
* * *
다음 날
당찬일은
전장 하나를
통으로 인수했다.
* * *
“이거 어찌 된 거야!”
“전표의 지급이 중단됐다니?”
화복 사내의 집으로 쳐들어온 다른 변설자들이 소란을 부렸다.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이야? 네 말만 믿고 그런 더러운 소리까지 해 왔는데!”
“내 평생의 떳떳함을 네놈 때문에 버렸다. 그렇게 번 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종이쪼가리란 말이냐?”
변설자들이 난동을 피우자 적이 당황한 화복 사내가 마구 손사래를 쳤다.
“자, 잠깐만! 이게 다 무슨 소리요!”
“무슨 소리긴!”
화복 사내의 멱살을 움켜쥐면서 변설자들이 입에 침을 튀었다.
“천화전장이 문을 닫았어!”
쿵!
“천화전장이 문을 닫았다니, 이게 무슨 소리야?”
화복 사내가 입을 떡 벌리자 변설자들이 그를 흔들었다.
“이것 놔!”
신경질적으로 변설자들의 손을 털어 낸 화복 사내가 양팔을 벌렸다.
“내가 제일 많이 물렸어! 여기서 나보다 천화전장에 돈 많이 물린 사람 있어?”
당연한 말이겠지만 화복 사내는 자금의 중간 전달자였기에 어느 누구보다 천화전장에 많은 돈이 묶인 상태였다.
“일단 천화전장으로 가세나!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보자고!”
* * *
“전장을 매입했더구나.”
“네, 그렇게 되었습니다.”
당찬일이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뭐, 생각 없이 한 일은 아닐 거라 생각은 한다만 그래도 은 팔백 관은 지나친 지출로 보이는데, 어떠냐?”
“지나친 감이 없진 않습니다만 포석을 위해 필요했고, 무엇보다 일 년이면 원금을 회수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흐음…….”
당돌한 당찬일의 답변에 당인이 물잔을 찾았다.
전권을 가지고 움직이는 중이나 은 팔백 관의 지출은 내당의 감찰을 감수해야 할 정도의 사건이다.
조사가 두렵다거나 저어되는 건 아니다.
사실 전장을 인수하고 그것의 필요를 증명하는 것쯤이야 문제 될 것도 없다. 하지만 이런 큰일을 서슴없이 벌이는 아들의 속내만큼은 알고 싶었다.
“네가 청성 장문께 호감을 느낀 건 알고 있다만…….”
과하지 않으냐?
당인의 표정을 보며 큰 우려가 아님을 당찬일도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부친이 뭘 궁금해하는지 알고 있는데 대답을 하지 않을 만큼 뻔뻔한 그도 아니었다.
“호감만으로 한 건 아닙니다.”
“그러면?”
“단기적으로는 청성을 돕는 것에 주력하겠지만, 장기적으로 우리 당문에 힘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어째서 그러냐?”
당인이 웃으며 묻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당찬일이 품을 뒤졌다.
“여기.”
당찬일이 내민 종이는 일종의 보고서였다.
무려 일곱 장에 달하는 보고서를 꼼꼼히 검토한 당인이 고개를 들었다.
“허.”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보고서와 당찬일을 번갈아 쳐다보던 당인이 턱을 들었다.
“이 계획을 그사이에 준비했다는 게냐?”
“달리 도움받을 곳도 없었죠.”
“허, 참!”
또다시 당인이 탄식을 터트렸다.
“이건 따진 내 꼴이 너무 우습게 되어 버렸구나. 알았다, 나머진 네 알아서 하려무나. 뒤는 내가 어떻게든 수습하마.”
순간 당찬일도 당인에게 감탄했다.
이번 계획은 장기적으로 분명 이득이 된다.
그렇지만 단기적으로 은 팔백 관은 손해가 분명하다.
자신의 의도대로 상황이 흘러가더라도 자금이 회수되려면 적게 잡아서 일곱 달 이상, 늦춰지면 일 년이란 기나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자칫하다가 내부 감찰에서 문제가 될 사안인데,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당인은 주저하지 않고 자신을 지지한다.
물론 이는 아들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밑바탕에 깔아 두어서 가능하리라.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닐 터.
당인은 자신의 계획이 가진 가능성을 알아봤을 것이다.
역시 당인은 단순한 무골호인 맹탕이 아니었다.
“그럼.”
당찬일이 일어서자 지필묵을 주섬주섬 꺼내던 당인이 지나가는 투로 물었다.
“또 어딜 그리 급히 가려고?”
방문을 잡으며 당찬일도 지나가는 투로 답했다.
“누굴 좀 만나려고요.”
단번에 은 팔백 관을 써 버린 사람치고 무척이나 태평한 답변이라서 당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인의 반응을 예상했을까?
“자금을 쉽게 회수하려면 미리 작업을 좀 해 둬야죠.”
* * *
“이제 어쩔 거야!”
“적어도 한 달, 늦으면 두 달이 넘게 걸릴 수도 있다는데 그동안 손가락이나 빨라는 거야?”
천화전장의 인수자는 전표의 진위 여부를 식별한다는 명목하에 은자 백 냥이 넘는 모든 전표의 현물화를 한시적으로 거부했다.
물론 그에 대한 보상책으로 진짜 천화전장의 전표로 판별이 나면 가액의 일 할을 얹어 준다는 조건을 달았다.
그래서 돈 좀 만지는 부호들이나, 당장 급전이 필요하지 않은 계층은 큰 불만을 달지 않았다.
또한 일반인들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가액이 백 냥 넘는 전표를 유통하는 서민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문제는 화복 사내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천화전장의 자금 동결 조치는 치명적인 것이었다.
“어서 우리 돈 내놓으라고!”
천화전장의 실망스러운 답변 그리고 기약이 없는 약속 때문에 잔뜩 골이 난 변설자들이 투덜거리며 화복 사내를 몰아붙였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내가 제일 많이 물렸다고! 나도 억울해!”
화복 사내가 제 가슴을 치면서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변설자들에게 별다른 설득력을 주진 못했다.
“그딴 거 관심 없어!”
“네 돈이 무슨 상관이야! 우리 돈이나 뱉으라고!”
“네가 이 년 전에 우리 마을 들어와서 이만큼 정착하게 된 게 다 누구 덕인데!”
“맞아! 은혜를 갚진 못할망정 손해는 끼치지 말아야지!”
지난 일까지 들먹이면서 변설자들이 힐난을 퍼부어 대자 화복 사내가 어깨를 늘어트렸다.
“알았네, 알았어.”
“뭘 알아?”
“집안 비품이라도 내다 팔아서 돈을 마련할 테니 그만 진정들 하시게.”
화복 사내가 손을 내저었지만 변설자들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만한 돈이 될까?”
“돈 될 만한 건 어디에 짱박아 두려는 수작 아니야?”
“허어, 사람들. 정 못 미더우면 따라오게.”
화복 사내가 성큼성큼 앞서 걷자 변설자들이 쪼르르 그의 뒤를 따랐다.
잔뜩 심통이 난 사람들처럼 볼을 부풀린 변설자들을 힐끔거리던 화복 사내가 신경질적으로 발길을 돌렸다.
“어? 어디 가?”
“여긴 너희 집으로 가는 방향이 아니잖아!”
변설자들이 항의하자 화복 사내가 귀찮은 표정으로 소리쳤다.
“지름길!”
구불구불한 골목길로 열심히 걸음을 옮기는 화복 사내를 따르던 변설자들은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야, 이거 암만 봐도 이상해.’
‘맞아. 지름길이라면서 어째 더 도는 거야?’
‘혹시 저놈……?’
눈빛을 교환한 변설자들이 두다닥 달려서 하복 사내를 막아섰다.
“너, 이대로 튀려는 거지?”
“어디서 짱구를 굴려!”
자신의 앞을 막은 변설자들이 으름장을 놓자 화복 사내가 고개를 떨어트렸다.
그 모습을 자신들의 생각대로 해석한 변설자들이 화복 사내를 마음껏 비웃었다.
“들켰지?”
“우리 앞에서 잔머리가 통할 성 싶었냐?”
기세등등해진 변설자들이 화복 사내에게로 쿵광거리면서 다가서는 순간!
“아니.”
고개를 들면서 화복 사내가 손을 쭉 내밀었다.
“어?”
일행을 독려하던 변설자가 목이 뜨끔해져서 손을 가져갔다.
“피……?”
자신의 몸에 맺힌 핏방울을 손바닥으로 확인한 변설자가 고목나무처럼 나동그라졌다.
푸아앗!
쓰러진 사내의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뭐지?”
“왜 저래?”
느닷없이 급변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서로를 보던 변설자들이 곧 눈을 치떴다.
“사! 사……!”
“살인이다아!”
“나 살려! 나 좀 살려 줘!”
지금껏 의기양양하던 기세를 싹 내던지고 변설자들이 줄행랑을 놓으려 하자 화복 사내가 사막처럼 건조한 미소를 머금었다.
피식.
웃음을 바닥에 내려놓기 무섭게 희뿌연 안개가 되어 버린 화복 사내가 변설자들에게로 쇄도했다.
쫘아악.
우왕좌왕하는 변설자들에게로 달려든 화복 사내가 무감정하게 손을 내쳤다.
털썩― 털썩―.
일수일명(一手一命).
단 한 번의 손짓으로 목숨 하나를 빼앗았으니 불필요한 동작을 일체 배제한 살인이라 하겠다.
털썩!
마지막 변설자마저 살해한 화복 사내가 다소 귀찮다는 듯 투덜거렸다.
“짜증 나게 됐군.”
작은 칼에 묻은 피를 닦으며 화복 사내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천화전장의 주인이 갑자기 바뀐 것도 그렇고, 시체가 갑자기 쏟아진 것도 그렇고…….”
지금까지의 얍삽하고, 비열한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사무적이면서도 차디찬 기운을 흘리며 화복 사내가 눈동자를 아래로 모았다.
“괴상한 거지 꼬마 놈도 그렇고.”
여섯 구의 시신을 한곳으로 모은 화복 사내가 돌계단에 걸터앉았다.
“일이 묘한 곳에서부터 틀어진다. 대체 뭐가 잘못된 거지?”
화복 사내는 분명 짜증을 부렸다.
하지만 목소리의 높낮이가 일정해서 누가 본다면 넋두리를 늘어놓는 정도로 보였으니 화복 사내의 자제력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일단 복귀하자. 복귀해서 거지 꼬마부터 찾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