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36
당문전생 (36)
우연이 잦으면 운명일까?
고심하는 당찬일을 곁눈질하며 그의 상처를 돌보던 당인이 지나가는 투로 중얼거렸다.
“원하던 바는 이루었느냐?”
“예?”
“청성 말이다. 또 뭔가를 도모했던 눈치던데.”
“아아.”
당찬일의 입꼬리가 슬며시 위로 올라갔다.
“아마도요.”
“아마도라.”
고개를 갸웃거리던 당인이 약품 상자를 닫았다.
딸깍!
“그래서 무엇을 얻었느냐?”
“아직은 아무것도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고?”
은 팔백 관을 쓰고, 몸까지 망쳐 가면서 매달렸는데 손에 쥔 것이 전무하다고?
그런 표정으로 당인이 고개를 홱 돌렸다.
“원하지 않았으니 줄 방법을 모를 테지요.”
그 말뜻은?
“청성파에 무엇을 요구할까요?”
의뭉스러운 당찬일의 물음에 당인의 표정이 환해졌다.
“녀석.”
대견하다는 듯 당찬일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린 당인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죽을 좀 쒀 올 테니 일단 쉬어라.”
당찬일을 침상에 눕힌 당인이 문을 잡았다.
“네가 어떤 일을 벌이든 아비는 모든 여력을 동원해서 도울 것이다.”
양쪽으로 문을 훤히 열어젖히면서 당인이 힘주어 덧붙였다.
“다만 너무 일찍 기지개를 켜지는 마라.”
* * *
당문으로 복귀한 당인 부자를 가장 먼저 맞이한 건 예상대로 당숙정이었다.
“무슨 짓을 벌이고 다니는 거야?”
당문의 정문을 막아선 그녀를 발견하고 급히 다가온 당인에게 당숙정이 차가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무슨 일이라니?”
“무슨 말인지를 정녕 몰라?”
기가 막힌다는 듯 콧방귀를 날린 당숙정이 허리춤에 양손을 착 받쳤다.
“아미파와 청성파의 동태 정도나 살피라고 내보냈더니 하루아침에 은 팔백 관을 거덜 내고서 무슨 말인지 모른다고 시치미를 떼는 게야!”
“아아.”
당숙정이 길길이 날뛰는 이유를 이제야 알아차린 당인이 고개를 숙였다.
“그건 거덜 낸 것이 아니라 사업을 위해…….”
“대단하다는 사업이 고작 다 쓰러져 가는 전장을 매입하는 거라고?”
버럭 고함을 지른 당숙정이 당인에게 마구 손가락질했다.
“좋아! 그 잘나 빠진 전장이 은 팔백 관의 값어치를 한다고 치자고!”
당인에게 얼굴을 바짝 붙인 당숙정이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그럼 거금을 들여 사 놓은 전장의 문은 왜 닫았는데?”
“그건 이유가…….”
“그 이유가 뭐냐고 묻는 것 아니야!”
당숙정이 마구 신경질을 부리려는데 봄바람처럼 훈훈한 음성이 그녀의 입을 막았다.
“지금 막 귀가한 막내오라비에게 너무하는 것 아니냐?”
부채를 살랑살랑 부치면서 두 사람에게로 다가오는 한량 같은 사내.
당진이었다.
“둘째 오라버니.”
당숙정이 한발 물러섰지만 여전히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당인을 쏘아보았다.
“따질 것이 있더라도 옷은 갈아입은 후에 해야지. 행장도 풀지 않은 사람인데 너무하지 않느냐.”
당진은 분명 당숙정을 나무라는 중이었다.
그렇지만 당진은 당문낭군이란 별칭처럼 당숙정을 꾸짖으면서도 잔잔한 어조였다.
앞뒤 모르는 이가 본다면 당숙정과 한담을 나눈다고 여겼을 거다.
“하지만 하독처주는 우리 가문에 큰 손실을 야기했다고요! 은 팔백 관이란 거금을 하루아침에 거덜 냈어요!”
당진에겐 오라버니, 당인에겐 하독처주.
실권자는 가족, 권력에서 멀어지면 사무적인 관계.
호칭 하나만으로도 당숙정의 기회주의적인 성정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야 대가주님께서 따로 조치를 취하시겠지. 너까지 나설 일은 아니다.”
“제가 왜요!”
반짝 약이 오른 당숙정이 당진에게 대들었다.
“저는 하독처를 관할하는 독물부주라고요! 그러니 의당 저에게도 하독처주를 심문할 권한이 있지요!”
“그래?”
턱을 쓰다듬던 당진이 오른쪽 눈을 찡긋거렸다.
“하면 이 둘째 오라비는 우리 세가에서 벌어지는 모든 대외 활동을 감독하는 외당의 책임자니까 다섯째와 우선 면담권이 주어지겠구나?”
“그, 그건!”
말인즉슨 옳은지라 말을 버벅이는 당숙정을 짓궂게 바라보던 당진이 당인에게 손짓했다.
“자자, 가자꾸나!”
당진의 부름에 이도 저도 못 하던 당인이 결국 그를 따르자 당숙정이 빼액 소리쳤다.
“둘째 오라버니! 하독처주를 어쩌시려고요!”
“어쩌긴.”
당진이 싱글싱글 웃으면서 당인과 어깨동무했다.
“심문해야지.”
당찬일이 떡을 얻으러 자주 찾는 당문의 대식당으로 당인 부자를 이끈 당진이 술과 안주를 청했다.
“자아, 일단 한잔하자꾸나.”
늘 그러하듯 안주보다 술이 먼저 나왔고, 당인과 잔을 부딪친 당진이 단숨에 술잔을 비웠다.
쨍!
“카아.”
소매로 입가를 닦은 당진이 당인에게 술 한 잔을 더 부어 주며 부자의 대외 활동을 치하했다.
당인 또한 당진의 칭찬에 화답하는 의미로 아미와 청성에서 벌어진 사건을 간략하게 이야기했다.
“아미파의 위명을 팔아서 마을 일대의 의류 시장을 장악하던 악덕 업주를 고발했다?”
“어쩌다 보니 그리되었습니다.”
“투자 가치가 있는 전장을 매입했는데 그곳이 관현 일대를 중심으로 암약하던 무림 집단의 돈줄이었다?”
“예.”
“다행히 청성파가 직접 나서서 토벌했기에 우리와 그들의 마찰은 없었고.”
“들으신 그대로입니다.”
당인은 아미와 청성에서 벌어진 사건의 표면적인 부분은 비교적 소상히 설명했다. 하지만 이면의 진실, 다시 말해서 당찬일이 관여한 사항은 철저히 배제했다.
“그랬구나. 수고가 많았어.”
술잔을 빙글빙글 돌리며 고개를 끄덕이던 당진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우연이 꽤 겹친 것 같긴 하다만…… 어쨌든 놀라울 정도로 잘 해결이 되었구나. 그렇지?”
뜨끔!
글을 쓸 때도 주어가 빠지면 문장이 애매해진다.
실제 사건에서 이야기의 주인공을 쏙 빼놓으면 얼개가 허술해지는 건 당연한 노릇.
일련의 사건을 계획하고 실행했던 당찬일을 제외시키니 대부분의 곡절들이 우연으로 처리될 수밖에 없었다.
“우연이 여러 번 겹치면 필연이라지 않습니까? 제가 그런 일을 겪을 운명이었나 싶군요.”
당인이 무심하게 중얼거리자 당진도 매가리 없는 음성으로 맞장구쳤다.
“우연이 잦으면 운명이라. 그래, 설득력이 있구나.”
물론 당진은 뼈 있는 뒷말을 남겨 두는 걸 잊지 않았다.
“그 우연이 하필 이번 사천행에 몰아쳤다는 것 또한 우연일 테지.”
한가한 담소처럼 보이지만 지금 당인과 당진은 고도의 심리전을 펼치는 중이었다.
사천 일대를 다니면서 동생이 벌인 일들의 이면을 캐려는 당진.
모든 사실을 고하더라도 아들, 당찬일만은 지키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경주(傾注)하는 당인.
불꽃만 튀기지 않았을 뿐, 두 사람의 신경전으로 주변 대기는 꽁꽁 얼어붙을 지경이라서 고기 완자를 깨작거리던 당찬일이 젓가락에 힘을 주었다.
“우연이지요.”
“그래서 말인데.”
당인의 말을 자르며 당진이 난처하다는 듯 뒷머리를 긁었다.
“너와 내가 친족이긴 하지만 명색이 외당의 당주이다 보니 세가원들의 모든 외부 활동에 관한 감사를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빙글빙글 돌리던 술잔을 급히 입에 털어 넣은 당진이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너 또한 예외가 될 수는 없고.”
몸을 천천히 돌린 당진이 술잔을 권하듯 입을 열었다.
“하지만 우린 피를 나눈 형제가 아니겠느냐?”
당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의 잔에 술을 부어 주면서 당진이 속삭였다.
“그래서 말인데, 조금이라도 걸리는 부분이 있다면 내게 말해라.”
“예?”
“직책이 직책이다 보니 나도 천화전장이라는 곳을 조금 알아봤다. 요모조모 따진 결과, 솔직히 천화전장에 은 팔백 관의 가치는 없다는 게 내 판단이다.”
당인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당진이 진심으로 염려가 된다는 듯 혀를 찼다.
“네가 무슨 마음으로 천화전장이란 곳에 그런 거금을 들였는지 알 도리는 없다. 다만…….”
잔을 부딪치면서 당진이 무겁게 중얼거렸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사실대로 말해 주지 않으면 원로전의 노인네들을 내가 막을 수…….”
벌컥!
대식당의 문이 열리자 당진이 말을 끊었다.
“집사께서 어쩐 일이시오?”
당문의 총집사가 당진과 당인 부자를 발견하고 그들에게 다가왔다.
“여기 계셨군요. 한참 찾았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소?”
맥이 끊어진 탓에 심기가 불편했는지 당진이 평소와 달리 눈살을 찌푸렸다.
“간만에 형제지정을 나누는 중이거늘.”
당진이 투덜거리듯 입을 내밀었지만 그는 집사의 다음 말을 듣고 더는 항의하지 못했다.
“하독처주님은 지금 즉시 가주전으로 가셔야겠습니다.”
“가주전?”
“가주전이라면?”
당진과 당인이 동시에 입을 열자 집사가 선언하듯 입을 열었다.
“대가주님께서 부르십니다.”
“뭐시라?”
당진이 놀라고.
“대가주님께서?”
당인이 반색했다.
“대가주님께서 청하셨다 함은 그분의 병환에 차도가 있다는 말 아니오?”
그렇지만 집사는 대왕조개처럼 입을 굳게 다물었다.
“아, 알았소! 지금 당장 가리다!”
서둘러서 짐을 챙긴 당인이 집사를 따라나서자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응시하던 당진이 오른쪽 손등에 턱을 괴었다.
“정말로 저 소심한 다섯째가 은 팔백 관을 들여서 전장을 매입했다고?”
* * *
대가주의 직접 호출은 무척이나 예외적인 일이다.
당과로는 외부 인사뿐 아니라 가문 사람들과의 접촉도 극도로 꺼리기 때문이다.
이는 자신의 친혈육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래서 당과로는 와병 중에도 장자나 차남의 문안을 거부했고, 그들 또한 그러려니 넘겼다.
“대가주님께서 어쩐 일로 나를 부르실까?”
집사를 따르며 당인이 긴장한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집사는 여전히 침묵을 유지했다.
‘대체 무슨 일이지?’
사천행, 다시 말해서 아미와 청성파에 들러서 그들의 동태를 살핀 것 때문에?
그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또 당인이 아니더라도 외부 문파와 교류를 맺는 건 누구나 하는 일이다.
한마디로 당인의 사천 행보는 그다지 대단한 행사가 아니었다.
그런데 당과로가 자신을 직접 부르다니.
그것도 짐을 풀기도 전에.
‘알 수가 없구나.’
고개를 갸웃거리는 당인을 인도한 집사가 가주전에 그가 왔음을 아뢰었다.
꿀꺽.
가주전이 열리자 당인이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부르셨습니까?”
육안으로는 뒤편의 풍광을 볼 수 없도록 만들어진 굵은 주렴에 포권하는데 집사가 기다란 두루마리를 힘껏 펼쳤다.
쫘악!
“하독처주 당인은 들어라!”
털썩!
당인이 무릎을 꿇자 집사가 큰 소리로 두루마리의 내용을 읽었다.
“하독처주 당인은 아미파와 청성파에서 벌어졌던 일련의 사건을 소상히 고하여라!”
잠시 눈을 끔뻑이던 당인이 아미파와 청성에서의 일을 자신의 관점에서 풀어냈다.
여전히 당찬일을 배제한 채였다.
당인의 설명이 끝나자 주렴이 한 번 흔들리고 다시 집사가 입을 열었다.
“하독처주 당인은 관현의 전장을 매입하게 된 경위와 투자금의 회수 방법을 고하라!”
고개를 숙였던 당인이 조심스레 머리를 들었다.
“서면으로 대신해도 될는지요?”
집사가 주렴 쪽으로 고개를 돌려 양해를 구했다.
“제출하시오.”
허락이 떨어졌는지 집사가 당인에게 문서를 요구했다.
“여기.”
당인이 내민 문서는 집사를 통해서 주렴 안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이어진 다소 긴 침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