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42
당문전생 (42)
등잔 밑이 어둡다
도둑질도 하다 보면 는다고.
재미있다!
목숨보다 소중한 교본이라서 털끝이라도 건드릴 수 없었는데 옥군을 따라 발기발기 찢다 보니 그간 쌓였던 응어리마저 함께 찢겨 나가는 느낌이다!
이유 모를 해방감에 젖어서 아이들이 신나게 종이를 찢어 대자 옥군이 어깨를 살짝 들어 올렸다가 내렸다.
“어이, 어이. 제군들이 포사도 아닌데 찢는 걸 너무 즐기는 것 아니야?”
“푸하하하하!”
기다렸다는 듯 당쾌풍이 박장대소를 터트리고, 방취취가 그를 잡아먹을 듯 노려봤다.
“어? 왜?”
“아, 아닙니다! 겔겔겔!”
둘의 기묘한 대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멀뚱히 바라보던 옥군이 입을 툭 내밀었다.
역시 아이들의 정신세계는 알 수 없다.
드디어 《병법삼십육계》의 마지막 단락인 패전계를 펼친 옥군이 입을 열었다.
“이제 마지막…… 아, 안 돼!”
아이들이 패전계도 찢으려 들자 옥군이 놀라서 마구 손을 내저었다.
“미인계는 꽤나 괜찮은 전략인데 왜 찢어?”
흥분한 아이들을 진정시킨 옥군이 하도 찢어 내서 이제는 앙상해진 《병법삼십육계》를 흔들었다.
“《병법삼십육계》에서 그나마 건질 부분은 패전계이고, 그중에서도 빛을 발하는 전략이라면 단 둘.”
손가락으로 종이를 가리키며 옥군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바로 미인계(美人計)와 반간계(反間計)다.”
물론 주위상계(走爲上計)는 필수라서 생략하고, 그렇게 말을 맺은 옥군이 미인계와 반간계를 설명하기 시작했는데 이건 강론이 아니라 찬양 수준이었다.
“뻔하면서 상투적이지만 고금을 막론하고 먹히는 수법이야말로 최고의 전략이자 전술이다. 그런 점에서 미인계와 반간계는 으뜸이랄 수 있지.”
옥군의 말은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지라 저도 모르게 당찬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고로 아름다움을 싫어하는 사람 없다.
또한 시기와 질투심을 느끼지 않을 사람도 없다.
“《병법삼십육계》, 한때는 최고의 병법이었을지 모른다.”
바닥에 수북이 쌓인 낱장을 곁눈질하면서 옥군이 냉정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무심하게 세월이 흘러서 전쟁은커녕 변변한 세력다툼 한번 겪어 보지 못한 너희들도 줄줄이 꿰는 마당이니 이제는 고색창연할 수밖에.”
잠시 숨을 멈췄던 옥군이 먼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시대에 뒤처지면 살아남을 수 없다.”
교본을 챙긴 옥군이 교실을 나서며 한마디를 남겼다.
“사람이든, 무엇이든.”
다음 날.
서릿발과도 같은 냉기를 풀풀 날리면서 교실로 들어온 빙랑이 아이들에게 물었다.
“어제 그 양반이 무엇을 가르치던가요?”
“병법삼십…….”
“병버업?”
손으로 입을 가리며 빙랑이 코웃음을 터트렸다.
“병법 같은 소리. 입만 살아서 물에 빠트리면 물고기랑 수다나 떨 인간이 병법은 무슨.”
깔깔 웃은 빙랑이 두 손으로 교탁을 짚었다.
“일단 나는 병법 같은 건 몰라요. 또한 독이나 암기에도 문외한이고.”
팔짱을 낀 빙랑이 오른쪽 엄지와 중지를 딱, 하고 맞부딪쳤다.
파앗!
“우와!”
빙랑의 앞에 아지랑이와도 같은 신기루가 피어나자 아이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환술이라면 조금 알지.”
분명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손가락만 까딱거렸을 뿐인데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던 거다.
단숨에 아이들의 흥미를 이끌어 낸 빙랑이 조금 더 과감한 환술을 선보였다.
“이제부터 이곳을 북해빙궁으로 만들어 볼까요?”
아이들이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자 빙랑이 손바닥을 쫙 펼쳤다.
퐁!
“우와아!”
그녀의 손바닥에 작은 눈꽃송이가 피어오르자 아이들이 다시금 감탄했다.
“이 정도로 놀라면 섭섭한데.”
오연하게 웃으며 빙랑이 춤사위라도 벌이듯 양손을 흔들었다.
촤아아!
사방으로 비산되는 눈보라와 얼음 알갱이들!
눈보라와 알갱이들이 빙랑의 손짓을 따라서 교실 전체를 수놓자 아이들이 아예 넋을 놨다.
팔짱 끼고 흩날리는 눈보라와 얼음 조각을 지켜보던 빙랑이 몸을 돌렸다.
“여기에 수정 탑을 세우고.”
빙랑이 손을 아래에서 위로 올리는 시늉을 하자 투명한 무엇이 솟구쳤다.
쿠르릉!
“와아!”
거듭 감탄하는 아이들의 반응에 만족한 빙랑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얼음으로 만들어진 주단을 깔아 보아요.”
그녀가 힘차게 발을 구르자 땅이 쩍쩍 갈라지며 투명한 얼음 바닥이 생겼다.
“여기에 고드름 장식을 꾸며 주고.”
빙랑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고드름이 쑥쑥 자라서 훌륭한 조형물이 되었다.
“지붕을 덮어 주면 완성이지요.”
사라락!
천정의 사방팔방이 얼어붙으며 중심으로 모이자 교실은 겨울 여왕이 거주하는 성전(聖殿)이 되었다.
“와아아!”
“너무 멋져요!”
발을 구르면서 아이들이 환호하자 빙랑이 손등으로 입을 가리고는 날카로운 웃음을 터트렸다.
“입만 살아서 쓸데없는 설이나 푸는 누구와는 차원이 다르지요?”
득의만만해진 빙랑을 힐끔거리던 당쾌풍이 책상에 팔을 걸친 채로 몸을 젖혔다.
“저 아줌마, 직업을 잘못 선택한 것 같은데.”
“직업을 잘못 선택했다?”
당찬일의 물음에 당쾌풍이 나지막이 소곤거렸다.
“저런 재주라면 경극단이라든가 기예단에 들어갔으면 대성했을…….”
순간 빙랑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아름다운 궁전에 똥파리 한 마리가 꼬였군요.”
따악!
빙랑이 엄지와 중지를 맞부딪치자 당쾌풍에게로 북풍한설이 몰아쳤다.
“어이쿠! 이게 뭐야!”
얼른 자리를 피한 당쾌풍이 발끈해서 소리쳤다.
“명색이 사부라면서 어찌 선량한 제자를 잡습니까!”
당쾌풍이 항의했지만 빙랑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똥파리가 말도 하네?”
손짓 한 번으로 얼음 장식들을 걷어 낸 빙랑이 뒷짐을 지었다.
“어때요? 재미있었나요?”
“네에!”
“이것 말고도 이 사부에겐 여러 가지 재주들이 많으니까 앞으로 하나하나 배워 보도록 해요.”
“우와아!”
빙랑의 매력에 완전히 넘어간 아이들이 입을 모아 답했다.
‘조금 전, 당쾌풍을 향했던 바람은 물리력을 겸비한 환술이었다. 그렇다면 단순한 눈속임이 아니라는 소리인가?’
빙랑의 수법은 충분히 놀라워서 당찬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쾌풍의 말대로라면 빙랑과 옥군은 ‘나름 알려진’ 고수들이다.
한마디로 일류 정도지, 그 이상은 아니었단 말이다.
그런데 옥군의 식견과 빙랑의 환술은 일류를 넘어도 한참을 넘어서는 것이라서 당찬일이 입술을 깨물었다.
저들은 절대…….
일류 정도로 분류될 수준이 아니다.
‘절대까지는 몰라도 능히 절정을 바라보는 고수들이야.’
날카로운 시선으로 자신을 관찰하는 당찬일의 시선을 느끼지 못했는지 빙랑은 아이들과 소통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간간이 그녀가 뜻 모를 미소를 지었다는 건 당찬일도 몰랐으리라.
“오늘은 어땠느냐?”
수업을 마치고 귀가한 당찬일을 반기며 당인이 차 한잔을 권했다.
“빙랑 사부의 수업 시간이었는데 참으로 재주가 많은 분이더군요.”
“옥군과 빙랑이라. 그들이 우리 당문에 몸을 의탁하고 있었을 줄은 미처 몰랐다.”
“옥군과 빙랑…… 아, 아니, 옥군 사부님과 빙랑 사부님이 강호상에서 유명한 분들인가 봐요?”
“그렇다고 해야겠지. 말 그대로 혜성처럼 등장해서 무림을 뒤흔들었으니까.”
당찬일이 혼절한 동안에.
“알려진 대로라면 두 분은 일류 정도의 무위를 지녔다던데요?”
“흐음.”
찻주전자를 든 상태로 고개를 갸웃거리던 당인이 눈썹을 모았다.
“일류니 절정이니, 이런 분류는 말 그대로 편의상 나누는 것이라서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단다.”
과연 당문의 후예답게 당인은 지극히 실용적으로 무림인의 등급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제아무리 검술의 고수라고 해도 같은 조건에서 창을 쓰는 무인과 대적하면 손해를 감수해야 하느니라. 검이 아무리 길어 봐야 창에 미치지 못함이지. 반대로 일단 접근하게 된다면 기다란 창으로 어찌 검의 기오막측한 변화를 감당하겠느냐?”
일장훈시에 가까운 당인의 설명에 당찬일의 눈이 반짝 빛났다.
‘과연 당과로의 가르침을 이었구나.’
당인의 무공관과 무인을 바라보는 자세는 당과로의 그것과 일치했다.
“그런고로, 옥군과 빙랑은 정통(正統)이 아니라 변격(變格)을 선호하는 무인들이니 일반적인 기준으로 나눌 수 없지.”
참으로 합리적인 해석.
이런 점이야말로 육백 년이란 풍상을 겪으면서 당문이 무림이란 수풀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배경이다.
“두 분 사부님이 반 은거에 들어간 이유가 무엇인가요?”
당찬일이 묻자 당인이 자신의 찻잔에도 차를 따랐다.
“그들이 어째서 강호를 등졌는지에 관해서는 아직까지 알려진 바가 없구나. 말 그대로 깜짝 등장에 이은 벼락 은거랄까?”
그 뒤로 그가 별말 없이 차만 마시자 뭔가 이상해서 당찬일이 물었다.
“세가에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음, 그것이…….”
잠시 주저하던 당인이 너도 알아야겠구나, 하며 입을 열었다.
“청성파 말이다.”
“청성파는 또 무슨 일이지요?”
오십사호를 비롯한 백일야의 간세들을 일망타진했기에 관현에서 더는 그들이 발호하지 않을 것이라 자부했거늘.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건가?
“우리가 떠나기 며칠 전에 청성파가 관현에서 암약하던 모종의 무림 단체를 적발한 모양이다.”
그들이 바로 백일야였다.
“청성파도 그들의 계책에 시달린 터라 문파의 뇌옥에 그들을 구금했는데 어찌 알았는지 관에서 신병을 양도하라고 요청한 모양이야.”
국법이 지엄하니 이는 당연한 요구다.
“네가 부상을 당해서 우리 부자만 먼저 청성파를 떠났지 않았느냐?”
날랜 말 두 필을 빌려서 당인과 당찬일은 먼저 당문으로 귀가했고 하독처의 무인들과 잡일꾼들은 청성파에서 며칠 더 묵었다고 했다.
“우리가 당문으로 떠난 다음 날…….”
잠시 숨을 고른 당인이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뇌옥에 갇혀 있던 무림인 전원이 사망했다는구나.”
쿵!
“흉수는 누구라고 합니까?”
당인의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상잔(相殘)……이었단다.”
상잔이라면 서로가 서로를 죽였다는 소리다.
“그 일로 청성파의 처지가 매우 곤궁해진 모양이야.”
찻잔에서 손을 뗀 당인이 머리를 짚었다.
“청성의 장문인 현월 도장과 내, 외당 당주들이 관아에 불려가서 저간의 사정을 진술했지만 의혹을 말끔히 해소하진 못했다더구나.”
백일야의 요원들이 상잔극을 벌여서 이들 전원이 사망했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혹시 청성에 외부인은 없었다고 합니까? 아니면 침입의 흔적이라든가?”
당찬일의 물음에 당인이 고개를 저었다.
“명색이 구파일방이다. 외부의 침입에 경비가 뚫릴 리 있겠느냐?”
수긍하던 당찬일이 당인의 다음 말에 몸을 굳혔다.
“그 바람에 우리 당문 식구들도 불려가서 조사를 받았다더구나.”
순간 오십사호가 남긴 한마디가 떠올라서 당찬일은 들고 있던 찻잔을 놓칠 뻔했다.
―등하불명이라.
‘잠깐!’
청부 액수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백일야를 사주할 정도의 자금력을 지닌 집단.
무림맹 내에서 어느 정도의 발언권을 지녔지만 청성파의 입지를 흔들어 더욱 강한 힘을 얻으려는 세력.
막강한 돈과 권력으로 이 모두를 할 수 있는 존재들.
마지막으로 백일야가 뇌옥에 갇혀 있을 때 청성파에 머물렀던 유일한 외부 세력.
그들은 바로…….
‘당문?’
그래서 등하불명이었나?
순간 아득해지는 정신을 다잡으려 애쓰면서 당찬일이 이를 악물었다.
‘당, 과, 로.’
어둠 속에서 누군가 하얗게 웃고 있었다.
철저하게 얼굴을 숨긴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