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44
당문전생 (44)
쭉쭉빵빵한 누님
사람이 드물었다.
밥 먹을 시간이라서 객잔은 평소라면 손님들로 북적거려야 마땅하지만 탁자를 차지한 사람들은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었다.
서로 다른 탁자에 앉아 등을 맞대고 음식을 먹는 두 사람.
깨작깨작.
열서너 살가량의 소년은 입맛이 없는지 만두 한 판을 가지고 한참을 씨름하는 중이었다.
쩝쩝! 와드득! 꽈드득!
반면 반대편의 장한은 구운 오리 한 마리에 채소볶음이며, 기타 푸짐한 음식을 주문해서 술 한 병을 벗 삼아 열심히 씹고 뜯고 맛보았다.
탁자가 다르고 마주 보지도 않으니 두 사람은 일행이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이는 오산이다.
―형님의 방을 누군가 뒤진 지 벌써 석 달이 흘렀는데, 다른 조짐은 없었습니까?
―전혀.
―그럴 리가요. 당문은 한 번 노린 표적을 놓치는 법이 없다면서요?
―물론 그렇지.
만두를 집어 든 소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들은 상대를 잘못 만났다.
나이로 본다면 형님은 당연히 중년의 장한일 수밖에 없고, 동생은 소년이어야 마땅하다.
그렇지만 장한이 소년에게 형님이라 칭하고, 소년은 장한에게 하대를 하니,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었다.
―하긴, 형님께선 그 무시무시한 당문 특찰부의 접근 방식을 모조리 꿰고 계시지요?
특찰부뿐일까.
당찬일은 특찰부보다도 더욱 은밀한 조직인 비천대의 제삼 대주였다.
당연히 그는 당문에서 운영하는 비밀 조직이 표적에게 접근하는 방법과 다양한 수단을 모두 알고 있다.
―꼬투리를 잡히지 않을 방법이 천 개도 넘는다는 걸 그들은 꿈에도 모를 거다.
집어 들었던 만두를 다시 접시에 내려놓는 당찬일의 입가에 나이답지 않은 미소가 어렸다.
관록이라는 이름을 담은 스산한 조소가.
―그나저나 너도 투화(偸話)를 제법 그럴듯하게 구사하는구나.
―그런가요?
―많이 발전했다, 장삼.
헤벌쭉!
당찬일이 칭찬하자 장삼의 입이 바보처럼 벌어졌다.
투화란 입술을 거의 벌리지 않고 발성하는 수법이다.
하여 투화를 사용하면 곁에 있는 사람이라도 누가 말을 하는지 알 길이 없다.
또한 투화를 일정 경지 이상까지 익히면 여러 사람이 모여 있는 장소에서라도 원하는 이에게만 자신의 소리를 전달할 수 있다.
전음의 전 단계라고 불리는 투화.
도둑질 대화라는 이름과 달리 나름대로 고급의 음공이다.
―중리 영업은 어때?
―에휴,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습니다요.
갑자기 장삼의 목소리에 힘이 쭉 빠져나갔다.
―아무런 이유 없이 사람들이 픽픽 나자빠지니 환장할 노릇이지요. 거기다…….
잠시 뜸을 들이던 장삼이 말을 이었다.
―쓰러진 이들의 태반이 가장(家長)이라서 추원이 미어터질 지경입니다요.
객잔에 손님이 뜸한 이유.
이 모두가 갑자기 들이닥쳐 온 마을을 휩쓰는 원인 모를 괴질 때문이었다.
―너도나도 급전을 대출해 달라고 몰려드니 아주 그냥 환장할 지경입니다.
이도 당연한 결과다.
일단 추원의 사채는 성도를 넘어, 사천에서도 가장 이자가 싸다.
거기다 일정 금액 이하는 사용처만 확인되면 갚을 능력에 관해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빌려준다.
그러니 돈이 급한 사람들은 추원의 사채를 빌리려고 열을 낼 수밖에 없다.
―그렇게나 괴질이 심각한 수준인가?
―예? 아니, 난리도 이런 난리가 아닌데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요!
괴질과는 상관없는 세상에서 온 사람처럼 당찬일이 묻자 장삼이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온 성도가 괴질 하나로 떠들썩한 판국인데 그렇게나 심각하냐고 묻다니.
특찰대의 눈을 속이기 위해서 외부 출입을 자제했다지만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당문에선 괴질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까요?
당문 내에서도 괴질에 관해 이야기가 돌지만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래서 유행처럼 퍼졌다가 사그라지는 역병 가운데 하나일 거라고 치부했다.
하지만 이번 괴질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어린 공자님과 소저들의 정신 건강에 해로워서 어른들이 말을 안 하나 봅니다요.
―글쎄다.
당찬일이 눈동자를 아래쪽으로 모았다.
장삼의 말대로라면 보통 문제가 아닐진대 당문에선 한사코 괴질에 관한 화제를 자제하거나 피하는 느낌이다.
정말로 아이들의 정신 건강 때문에 그러는 걸까?
―아무튼 힘들겠지만 가급적이면 그들에게 돈을 융통해 줘라.
―물론입니다.
장삼이 콧방귀를 뀌며 힘주어 답했다.
―형님 말씀처럼 못 갚는 사람보다 악착같이 돈을 모아서 이자라도 제때에 납입하는 이들이 더 많더만요.
―그것 다행이로군.
―정말로 우리가 그들에게 돈이 아니라 희망을 빌려주는 걸까요?
장삼이 묻자 당찬일은 시선을 창가로 던졌다.
돈이 아니라 희망을 빌려주는 사채.
과연 그런 것이 가능할까?
‘아니.’
결국 자신들의 행위는 희망 나눔을 가장한 이자 놀음에 불과할지도.
입술을 깨무는 당찬일에게 장삼이 조심스레 투화를 던졌다.
―그런데, 형님.
―음?
―말투를 고치실 필요가 있겠습니다.
장삼이 단호하게 간언하자 당찬일의 얼굴에 의아한 기색이 어렸다.
―말투? 내 말투가 거슬리나?
―그럴 리가요.
장삼이 당치도 않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다만 형님의 말투는 현재 형님의 연령대와 너무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런가?
―지금만 해도 그렇습니다만.
하긴.
열세 살짜리 아이가 상대방이 어떤 문제를 제기하면 ‘그런가?’라고 되물을 리는 없다.
―듣고 보니 내 말투가 어색하게 들릴 수는 있겠군.
―어색한 정도면 다행이지요.
장삼이 자신의 앞에 놓인 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크, 오늘따라 술이 쓰군요.
탁!
소리 나게 잔을 내려놓은 장삼이 술을 한 잔 더 따랐다.
―아무튼 저야 형님의 기이한 처지를 알기에 상관이 없지만 이런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대번에 이상하다고 느낄 겁니다.
장삼의 지적은 날카로운 것이라서 당찬일이 인상을 살짝 구겼다.
말투라, 고려 대상이 아니었거늘.
―그냥 애늙은이 정도로 치부하지 않을까?
―일반적으로는 그렇게 넘어갈 수도 있겠지요, 일반적으로는 말입니다.
일반적이라는 말을 반복한 장삼의 눈에 기이한 빛이 흘러나왔다.
―대형의 상대가 일반적입니까?
쿵!
장삼이 던지는 말에 담긴 함의를 깨달은 당찬일이 이를 악물었다.
―대형께서는 강호에서 가장 노회한 구렁이를 상대하시는 갑니다.
장삼의 말마따나 자신의 상대는 당과로다.
난세의 간웅(奸雄)이자 이 시대를 대표하는 괴물, 당과로.
그런 인물을 자신이 상대하는 중이란 말이다.
―일반인 중에서도 남다른 감을 지닌 사람이라면 몇 번의 대화만으로 대형을 이상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하물며 당과로라면 어떨까요?
―으음.
―괴물 당괴로란 말입니다. 그런 자와 싸우는데 어찌 한 부분이라도 허투루 할 수 있겠습니까?
장삼이 날카로운 지적으로 말을 맺었다.
―단순한 말투라도 말이지요.
터져 나오는 침음을 꿀꺽 삼킨 당찬일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알았다. 고려해 보지.
당찬일이 순순히 인정하는 순간 어디선가 날카로운 파열음이 들렸다.
피유우우.
뒤이어 터지는 소음.
펑! 펑!
밤하늘을 수놓는 폭죽의 불꽃 때문에 아름다운 소요가 가득한 저녁.
―괴질로 온 마을이 난리인데 저건 또 뭐야?
장삼이 눈살을 찌푸리자 당찬일이 창가로 시선을 던지며 싱긋 웃었다.
―명절 아닌가.
―아무리 명절이라도 조심할 땐 조심해야지요.
깔깔거리면서 거리를 누비는 아이들의 입가엔 상큼한 미소가 가실 길이 없었다.
―거기다 오늘은 당일도 아니고 전날이지 않습니까.
장삼이 입술을 실룩거렸다.
―본래 명절은 전날이 더 즐거운 법이야.
―그렇지만 괴질로 비상시국이란 걸 생각하면 저건 너무 과한…….
―애들 아니겠냐, 애들. 적당히 넘겨.
투덜거리던 장삼이 당찬일의 제지에 입을 툭 내밀었다.
전생에는 잘 갈린 칼날 같던 양반이었는데, 나이를 거꾸로 먹더니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 되었다.
―저도 환생이나 해 볼까요?
―무슨 소리야?
―아니, 사람이 확 바뀌었잖습니까. 그러니 저도 환생을 하면 탈태환골할지 누가 압니까요?
―신소리 말고.
―아, 맞다! 당문은 이번 중양절에도 이곳 평안로에서 축제를 벌이겠군요?
―연례행사니까.
―당과로가 참관하진 않을 테고, 누굽니까?
―당암.
당찬일이 잘라 말하자 장삼의 얼굴에 꺼림칙한 기색이 떠올랐다.
―당문패……왕이요?
―그래, 당암. 그런데 목소리가 왜 그래?
―그게, 뭐…… 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요.
역시.
당암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타인을 불편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당암을 어려워한다.
―차라리 당문낭군이면 더 좋을 텐데. 아니면 그 쭉쭉빵빵한 누님이라든가.
당숙정을 말하나 보다.
―그 쭉쭉빵빵한 몸의 내면에 얼마나 많은 가시가 돋아 있는지 알면 기겁을 할…….
투화를 보내던 당찬일이 장삼의 기세가 흐트러지는 걸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팔자 좋구나?”
당찬일을 향해 조소 섞인 말을 던진 사람은 당숙정이었다.
“여긴 어쩐 일로……?”
“어쩐 일이긴.”
당찬일의 맞은편에 털썩 앉은 당숙정이 주전자에 담긴 물을 따랐다.
“내일 큰오라버니께서 이곳을 방문하시지 않느냐.”
“그렇지요.”
“그렇지요라니!”
딱하다는 듯 고개를 저은 당숙정이 물을 들이켰다.
“너도 그렇고, 네 아비도 그렇고, 왜 이리 생각이 없니? 대당문의 이인자가 이곳에서 행사를 주관한단 말이야! 당연히 점검을 해야지!”
“그건 특찰부의 몫일 텐데요?”
당찬일의 차분한 응대에 당숙정의 눈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꼴에 주워들은 풍월은 있나 보네.”
냉랭하게 코웃음을 날린 당숙정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맞아. 어디까지나 점검은 특찰부의 몫이지. 그렇지만 천하의 특찰부라도 놓치는 면이 있을지 몰라서 내가 친히 점검 중이야.”
“호위 한 명 없이 말씀이십니까?”
“성가셔.”
도도한 표정으로 턱짓을 한 당숙정이 당찬일의 앞에 놓인 만두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안에서도 모자라 밖에 나와서까지 궁상을 떠는 것도 지 애비랑 판박이네.”
짜증이 가득 섞인 표정을 지은 당숙정이 탁자를 내리쳤다.
“검소도 정도가 있지! 당문의 후예답게 적당한 격식은 지켜!”
가만히 바라보던 당찬일이 인상을 구겼다.
‘지금 뭐 하자는 거지?’
본래 요인의 행차 길을 점검할 때는 최대한 자신을 숨기고 진행하기 마련이다. 그래야 숨어 있는 위험 요소를 발견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당숙정은 도리어 요란을 떨고 있었다.
고개를 모로 틀던 당찬일의 정수리를 거대한 무엇이 때렸다.
‘맞아! 저 여자는 독물부주야!’
당문은 기본적으로 가문 순혈주의를 고집해서 가문의 수뇌부도 직계들에게 주어지지만 능력이 없는 자를 고위층에 올리는 경우는 없다.
천하를 호령하는 괴물 당과로가 혈연에 집착해서 초가삼간 태울 리 있겠는가.
그렇다면…….
‘뭔가 다른 계산이 있는 건가?’
당찬일의 눈망울에 의혹의 빛이 어릴 무렵 점소이가 다가왔다.
“어서 옵쇼! 무엇을 주문하실 깝쇼…… 헉!”
당숙정의 요염한 자태에 압도당한 점소이가 말을 버벅였다.
“사람 처음 봐?”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됐으니까 한 상 다시 봐 주겠어? 이건 사람 먹을 음식이 아니잖아.”
당숙정이 짜증을 부리자 점소이가 허리를 직각으로 굽히고 나타날 때처럼 잽싸게 사라졌다.
‘이것 봐라?’
당숙정이 한 차례 휘저은 식당은 그야말로 적막강산이 따로 없었다.
지금껏 열심히 잡담을 늘어놓던 몇 안 되는 객잔의 손님들도 그녀와 자신을 힐끔거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저 여자, 누구지?”
“엄청 예쁘군. 혹시…….”
“혹시 뭐?”
“저 여자가 그 유명한 당문군주 아닐까? 아까 당문 어쩌고 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