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45
당문전생 (45)
그가 정말로 노인이었을까?
당문군주(唐門君主).
당숙정의 두 오라비인 당문패왕 당암과 당문낭군 당진에 이어 그녀를 높여 부르는 별칭이다.
본디 군주란 최고의 지위에 있는 사람을 뜻하지만, 공주라는 말도 대신하기에 중인들은 당숙정을 당문의 군주, 즉 공주라고 칭했다.
사람들이 나누는 귓속말을 하나하나 새기는 당찬일과 달리 당숙정은 부채질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아, 더워. 진짜 가을 맞아?”
구시렁거리던 당숙정이 주문한 요리가 나오자 거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 꼴은 그럴듯하군.”
그 순간 당찬일은 볼 수 있었다.
그녀의 눈치를 연신 살피다가 자리를 뜨는 몇몇 사내들의 모습을.
당숙정은 여전히 음식에만 관심이 있는 듯 젓가락을 놀리다가 사내들이 모두 밖으로 나선 뒤에야 태연하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자, 이제 가 볼까?”
당숙정이 계산을 치르고 식당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네가 왜 따라오는 거지?”
사천 성도에서 떠돌아다니는 짜증들을 모조리 모아서 응축시킨 말투였지만 당찬일은 개의치 않았다.
“혼자 보내 드리긴 곤란해서요.”
“뭐?”
당찬일의 답변에 당숙정이 몸을 홱 돌렸다.
“곤란? 뭐가 곤란하단 거지?”
당찬일의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온 당숙정이 검지로 당찬일의 이마를 툭툭 밀면서 교갈을 내질렀다.
“들어가서 음식이나 마저 먹어!”
당숙정이 다시 어딘가로 향하려는데 당찬일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동행하겠습니다.”
픽!
콧방귀를 날린 당숙정이 물었다.
“내가 지금 밤마실 나온 줄 알아?”
“설마요.”
“그런데도 동행을 하시겠다?”
“호위 하나 없이 보낼 수는 없…….”
당찬일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에게로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엄청난 속도로!
팍!
당찬일이 반사적으로 몸을 틀었다.
팔랑.
급히 피했지만 완벽하진 않아 소매가 잘려 나갔다.
“어쭈?”
당숙정이 코웃음을 치며 중지를 까딱거리자 땅에 박혔던 암기가 그녀의 손아귀로 빨려 들어갔다.
“그 정도면 뒈지지는 않겠군.”
손바닥에 놓은 암기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당숙정이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투화 정도는 알겠지?”
“예.”
“따라와.”
팍!
야음을 틈타 이동하면서 당숙정은 너 따위 뒈지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겠다느니, 방해가 되면 너부터 죽여 버리겠다는 등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 댔다.
물론 당찬일은 그녀의 말을 귓등으로 흘렸고.
스륵!
장원이라고 부르기엔 다소 작지만 민가라고 칭하기엔 커다란, 집이 내려다보이는 나무 위로 올라선 당숙정이 무릎을 꿇었다.
―역시 여기였나.
―객잔에서 서둘러 자리를 떴던 자들이 이곳으로 왔다는 말씀이로군요?
―어쭈?
작은 놀람을 표한 당숙정이 자신의 옆에서 오도카니 몸을 웅크린 당찬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꼴에 눈치는 있나 보네.
당찬일이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자 당숙정도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찌륵찌륵.
무성한 풀벌레 소리를 벗 삼아 건물을 살피던 당숙정이 곧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이 꼬마?’
자신들이 나무 위에서 은신한 지 어림잡아서 두 시진은 족히 흘렀다.
이 정도의 시간이라면 어른도 좀이 쑤셔서 목이라도 풀 법한데 당찬일은 미동조차 보이지 않았다.
‘요것 봐라?’
살짝 놀란 당숙정이 그를 곁눈질했다.
‘이건 단순히 인내력이 좋다고 버틸 수준이 아닌데.’
참을성이 남다른 사람이라면 두 시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버틸 수는 있다.
그렇지만 저렇게 불편한 자세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우리가 올라탄 나뭇가지는 너무 약해서 두 사람의 체중을 장시간 감당하기 힘들어.’
하여 당숙정은 당찬일에게 다리를 수평으로 벌려서 또 하나의 나뭇가지에 왼쪽 발을 걸치라고 명했다.
두 나뭇가지에 양발을 올리면 체중도 양쪽으로 나뉘니까.
다리를 일직선으로 찢는 행위는 비록 쉽지는 않지만 약간의 훈련만 거친다면 가능하다.
지상에서라면.
‘조금만 자세가 흐트러진다면 곧바로 중심을 잃고 추락할 판인데 저 꼬마는 두 시진을 한결같이 버티는 중이야.’
거기다 척하니 팔짱을 끼는 여유까지!
‘이놈, 타고난 무골(武骨)인가?’
양다리 찢고 가느다란 두 개의 나뭇가지 위에서 버티기?
이 정도는 전생에서 수없는 살행과 지저분한 일을 치렀던 당찬일에겐 그다지 어려운 자세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를 알 리 없는 당숙정이기에 그녀의 놀람은 상당히 컸다.
지극히 평온한 신색을 유지하고는 있었지만 당찬일은 당숙정의 행동에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내일 행차를 대비하려는 것이 맞는 건가?’
당문군주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객잔에서 빠져나간 이들이 위험 요소라고 판단되었다면 이렇게 지켜볼 것이 아니라 건물을 급습하는 편이 옳다.
당숙정에게 아무런 법적인 권한이 없지만 그녀는 사천의 맹주인 당문의 독물부주 신분이므로 이 정도의 소란은 묻어 버릴 힘이 있으니까.
하지만 당숙정은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고 그저 지켜만 보고 있었다.
내일 행사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열 시진.
두 사람이 나무 위에서 동상이몽을 하는데 저택의 문이 슬그머니 열렸다.
끼이익.
열린 문 사이로 빼꼼 고개를 내민 사내들.
―이제야 나오셨군.
조금 전에 객잔에서 꽁무니를 뺐던 놈들의 얼굴을 확인한 당숙정이 가소롭다는 듯 입꼬리를 위로 말아 올렸다.
‘진작부터 감시하고 있었던 건가?’
당문의 앞날에 위험 요소라고 판단이 된다면 증거나 혐의점이 없더라도 즉시 상대를 구금하는 것이 상례다.
특히나 급하고 지랄 맞은 성격의 당숙정이라면 진작 그렇게 하고도 남는다.
그런 당숙정이 오늘따라 지나치게 신중했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
당찬일의 미간에 주름이 잡힐 무렵, 객잔에서 당숙정을 힐끔거리던 다섯 명의 사내들 전부가 건물에서 빠져나왔다.
‘왜 움직이지 않지?’
사내들은 건물 주변을 날카로운 눈길로 감시할 뿐, 자리를 뜰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를 기다리나 보군.
당숙정의 투화가 당찬일의 귓전으로 내려앉는 순간 건물의 대문이 기이한 소리를 냈다.
끼이익.
잔혹한 고문이 일상으로 벌어지는 감옥의 문이 열리는 듯한 착각이 들면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노인?’
건물을 나선 이는 오 척 단구의 늙은 사내였다.
얼굴을 뒤덮은 잔주름 말고는 특이점을 찾기 어려운 시골 촌로의 전형.
그가 고개를 들었다.
천천히.
팍!
노인의 시선이 닿기도 전에 당찬일의 옆구리를 껴안은 당숙정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몸을 날렸다.
파파팍!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던 당숙정이 건물에서 멀찍이 떨어지고 나서야 그를 내려 주었다.
“헉, 헉, 헉……!”
어깨를 들썩이며 가쁜 숨을 토하던 당숙정이 노인의 눈초리를 떠올리곤 입술을 꽉 깨물었다.
“뭐야, 그 영감?”
분명 평범한 노인이었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매우 특이했다.
굳이 표현하자면…….
‘위험했어!’
건물 밖으로 나온 노인이 대번에 은신하던 곳으로 시선을 던져서만은 아니다.
그냥 노인은 위험했다.
이건 감이다.
“빌어먹을 영감. 대체 뭐야?”
도망친 것이 분해서 검지로 입술을 긁던 당숙정이 노인의 정체를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일단 그 나이대의 노고수 중에서 그와 같은 단신의 노인은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모르는 사람인가?’
노인에 대해서 반추하던 당숙정이 곧 충격적인 사실을 깨달았다.
노인의 용모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왜소하고 평범했다는 특징뿐, 그 이외의 용모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아서 당숙정이 입을 떡 벌렸다.
노인과 조우한 지 반 각도 지나지 않았는데.
아니, 그가 정말로 노인이었을까?
‘이게 말이 돼?’
어처구니없어서 고개를 모로 틀던 당숙정이 문득 당찬일을 기억해 냈다.
“야, 꼬마, 그 영감에 대해서 기억나는 게 있……!”
화르륵!
당찬일은 타오르고 있었다.
몸에 불이 붙었다는 게 아니라 정체 모를 감정으로 자신을 활활 태운다는 말이다.
그 감정은 놀랍게도 투지(鬪志)였다.
어이가 없는 기분에 당숙정은 당찬일을 향해 혀를 찼다.
“정신 좀 차리지? 지금 딴생각할 때냐?”
“아!”
그제야 당찬일이 본래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마음은 영 아쉬운 상태였다. 당숙정이 알았다면 엄청나게 놀랐을 일이지만, 당찬일은 심중안의 상태에서 중년인을 상대하고 있었다.
심중안이란 일류 고수들 중 재능이 있는 자들만 간신히 들어설 수 있다는 경지로, 상대와의 무공 합을 심중에서 상대하는 경지란 뜻이다.
그 속에서 당찬일은 중년인과 자신의 차이를 통해 새로운 경지를 깨닫고 있었다. 바로 그것이 당숙정으로 인해 깨진 것이다.
“죄송합니다.”
당찬일은 곧장 대답했지만 여전히 마음 한쪽에선 아쉬움이 쌓이고 있었다.
* * *
“왜 그러십니까?”
당숙정이 머물던 나무 위를 지그시 바라보는 노인의 곁으로 다가선 사내가 공손히 물었다. 그러나 노인은 아무런 대꾸 없이 나무를 살필 뿐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가세나.”
뒷짐을 진 노인이 몸을 돌리자 사내들이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 눌러 댔는데 튀어나오지 않으면 비정상이겠지.”
* * *
털썩.
당숙정은 식은땀을 흘리는 당찬일을 보곤 냉랭한 시선으로 잘라 말했다.
“여기서 멈출 셈이야?”
“아닙니다.”
가상의 전투를 치르느라 너무도 힘이 들었지만 억지로 몸을 일으킨 당찬일이 어금니를 물었다.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지만 뒤처질 수는 없다.
당문으로 향하던 당숙정이 갈림길에서 오른편이 아니라 왼편으로 방향을 틀었다.
당찬일도 급히 그녀를 따랐다.
“탕이나 한 그릇 하자.”
자시(子時)가 넘은 시간이라 객잔에는 사람이 없었다.
“괴질 때문이겠죠?”
당찬일의 물음에 당숙정이 신경질적으로 숟가락을 내던졌다.
“지금 분수도 모르고 나한테 질문을 한 것이냐? 잠시 같이 다녔다고 네가 제 주제를 잃어버린 모양이구나. 한 번 더 기어오르면 그 주둥이를 꿰매 주지.”
당숙정의 힐난을 당찬일은 이렇게 받아들였다.
‘알면서 왜 물어?’
원하던 대답이라 생각하며 당찬일은 탕을 본격적으로 음미했다.
본래 좋아했던 음식이었는데 땀을 쫙 빼고 먹으니 더욱 맛있다.
당찬일이 기분 좋은 얼굴로 숟가락을 놀리자 당숙정이 고개를 저었다.
“속도 좋다. 이런 판국에 음식도 잘 먹는 걸 보면.”
탕을 휘적휘적 젓던 당숙정이 나지막이 투덜거렸다.
“세상모르는 부자라서 마음은 편하겠다.”
그래, 지껄여라. 나는 먹으련다, 하고 당찬일이 탕 그릇에 고개를 박았다.
“학당의 사부가 바뀌었다지?”
응?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당찬일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당숙정은 그를 바라보지도 않은 채 애먼 곳을 보며 물었다.
“그들은 어떻더냐?”
“무엇이 어떠냐는 건지……?”
너무나 포괄적인 질문이라서 당찬일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잘 가르치느냐는 건지, 착실하게 가르치느냐는 건지, 수업의 질이 어느 정도냐는 건지. 아니면 사부들의 성격을 묻는 건지.
“전반적으로 말이다.”
당찬일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섣부른 답변일지 모르지만, 아직까지 무리는 없습니다.”
“아직까지는 무리가 없다……라.”
당찬일의 답변을 곱씹던 당숙정이 순간적으로 희미한 웃음을 머금었다. 여러 가지 감정을 내포한 표정이라 당찬일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가 지목한 사람들을 떠올렸다.
옥군과 빙랑.
그럼 둘 중 누가 당숙정의 표정을 저리 만들 수 있을까?
답은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