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46
당문전생 (46)
역질문의 덫
‘빙랑.’
당숙정의 관심은 연심(戀心) 같은 치정적인 성격이 아니었다.
물론 당찬일은 당숙정에게 빙랑과의 관계를 물을 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두 사람이 이전에 인연이 있었나?’
당찬일은 그저 생각을 정리하며 그녀를 따라 열심히 탕 그릇을 비워 냈다.
빙랑이라…….
재미있군.
“내 말 명심해라. 오늘 우린 아무 일도 없었던 거다.”
예상했던 말이었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당찬일을 향해 당숙정이 무릎을 굽혀 그와 눈을 마주했다.
“내가 오늘 너와 동행한 이유가 무엇인 줄 아느냐?”
그것만큼은 모르겠다.
당찬일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당숙정이 그의 귀에 입을 가져갔다.
“…….”
“……!”
깜짝 놀란 당찬일이 그녀를 바라보자 당숙정이 입가에 검지를 붙였다.
“쉿.”
당숙정이 긴 머리를 휘날리며 돌아섰다.
“그러니까 함부로 입 털고 다니지 말란 말이야, 꼬마.”
자신을 뒤로한 채 표표히 사라지는 당숙정을 가만히 응시하던 당찬일이 그녀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자 픽 웃음을 터트렸다.
“저 여자도 생각했던 것보다는 머리가 잘 돌아가는군.”
당숙정과 반대편으로 몸을 돌리던 당찬일이 휘영청 어둠을 밝히는 달과 마주했다.
“이렇게 되면 각자도생이 되는 건데…….”
당찬일은 웃음이 나올 것만 같은 기분으로 숙소에 돌아왔다.
* * *
다음 날.
학당 뒤로 당쾌풍을 불러낸 당찬일이 괴질에 관해서 물었다.
“갑자기 괴질은 왜?”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들어서.”
“그런가?”
의뭉을 떨면서 당쾌풍이 걷기 시작하자 당찬일이 그를 따랐다.
“우리야 대가주님께서 편찮으신 관계로 외부 출입을 자제하잖아. 그러니 알 도리가 없지.”
당쾌풍이 흘러가듯 말했다.
“그리고 나라에서도 특별한 조치가 없는데 사람 몇 죽었다고 호들갑을 떨 필요가 있나?”
이것 또한 괴질의 심각성에 대한 답은 아니었다.
지극히 방어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 공터를 가로지른 당쾌풍이 여왕호봉을 채집했던 수풀로 들어섰다.
수북이 쌓인 잔 나뭇가지와 낙엽 때문에 외부로 말소리가 잘 나가지 않는 장소다. 그곳에서도 가장 안쪽까지 들어간 뒤에야 당쾌풍이 당찬일의 어깨를 내리눌렀다.
“괴질이 어떻다는데? 우리가 아는 것보다 심각하대? 괴질에 관한 이야기를 누구한테 들었어?”
“아무리 급해도 질문은 한 가지씩 해라.”
느긋한 척을 하다가 인적이 뜸해지자마자 표변한 당쾌풍의 반응에 당찬일의 눈이 가늘어졌다.
‘정말 어지간히 감이 좋은 녀석이야.’
이런 경우, 녀석의 성격을 생각할 때 빙빙 돌리기보다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 주는 편이 낫다.
“내가 들은 대로라면…….”
당쾌풍과 나란히 쭈그려 앉아 장삼에게서 들은 괴질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던 당찬일이 문득 어젯밤을 떠올렸다.
갑자기 객잔에 모습을 드러낸 당숙정.
그녀를 따라서 정체불명의 사내들의 뒤를 쫓다가 우연처럼 조우하게 된 사람.
그 사람은…….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아.”
“뭐가?”
갑자기 무슨 헛소리인가?
당찬일이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중얼거리자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듣고 있던 당쾌풍의 눈꼬리가 가늘어졌다.
“뭔 소리야? 뭐가 생각이 안 나는데?”
“분명 만났는데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아, 다만……!”
화르륵!
순간적으로 몰려오는 위기감.
당찬일은 전생에 생사의 고비를 수도 없이 넘겼으며 자신보다 객관적으로 강한 상대를 수차례 꺾었다.
그래서 어지간한 고수 정도가 발산하는 기세 따위엔 눈도 깜빡하지 않는 그다.
그런 자신에게 이런 불안감을 안겨 주다니.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사람이 대체 누구길래 저렇게 놀라는 거야?’
“지금 이럴 때가 아니다.”
벌떡 일어선 당찬일이 당쾌풍의 어깨를 두드렸다.
“내일 마저 이야기하자.”
“엥?”
“아무런 특징이 없는 중년인을 만나면 무조건 몸을 숨겨.”
“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당찬일이 사라지자 그의 등을 멍하니 응시하던 당쾌풍이 궁둥이를 손으로 털면서 일어섰다.
“아무튼 멋대로야.”
쿡쿡 웃던 당쾌풍이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그렇게 흘러간단 말이지?”
턱을 쓰다듬으며 당쾌풍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나도 조금 알아볼까나.”
* * *
당찬일에게서 간밤에 만난 사람에 대한 설명을 들은 이서악이 눈을 가늘게 떴다.
“너무 특징이 없어서 용모조차 기억나지 않는 중년인이라.”
중년인이라니?
분명 당숙정은 마지막에 모습을 드러낸 이를 노인으로 기억했다. 그런데 당찬일은 그를 노인이 아니라 중년인이란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눈빛은…….”
“무서웠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럼?”
“위험……했다는 편이 좋겠군요.”
“위험?”
“예.”
당찬일이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이서악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똑똑해도 이 녀석은 고작 열셋이다. 저 나이라면 절정에 이른 고수들의 눈빛만 봐도 얼어붙어야 정상인데…….’
절대 고수의 기도를 분석한다?
혹시 저 아이는 공포와 위험이란 개념을 혼동하는 게 아닐까?
“그런 고수를 아십니까?”
“아, 아.”
당찬일의 물음에 현실 세계로 돌아온 이서악이 눈동자를 위로 모았다.
“강호상엔 고수들이 구름처럼 많지. 그리고 네가 언급한 특징이 없는 자라면…….”
너무 많다!
“아무리 그에 관해서 생각나지 않더라도 특징 한둘 정도는 들려 다오.”
“신장과 체구가 매우 평범했습니다. 여섯 척? 여섯 척 반? 아무튼 흔한 체형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두 사람은 간밤에 조우한 사내의 체형마저 전혀 다르게 기억하고 있다.
당숙정은 오 척 단구의 노인으로, 당찬일은 여섯 척이 넘는 평범한 체구의 중년인으로.
어찌 보면 노인들의 신장은 다섯 척 정도가 적당하고, 중년 사내는 여석 척이 조금 넘으니 그 나이대의 가장 평균적인 체형을 떠올리는지도.
만약 당찬일이 당숙정과 정체불명의 사내에 관한 의견을 주고받았더라면 서로 간에 상이한 기억을 정리했을지도 모르나 그러지를 못했다.
하여 두 사람은 전혀 다른 기억을 지니게 되었던 거다.
물론 이는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다.
아니, 매우 특별한 일이다.
“그리고?”
“그리고…… 음…… 특징이 없었…….”
하나 마나 한 소리라서 당찬일이 입을 다물자 이서악이 팔짱을 끼면서 침음을 터트렸다.
“흠.”
중키의 특징이 없는 고수를 알려 달란다.
경사에서 이씨 성의 사내를 찾는 편이 더 빠를 거다.
이서악의 표정에 담긴 난감함을 눈치챘을까. 당찬일이 어떻게든 정보를 전달하고자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했다.
“조금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그자의 안광에는 살기를 넘어서는 무엇이 담겨 있었습니다.”
“네 나이라면 그 정도의 고수를 대했을 때 당연히 그런 느낌을 받을 것이다.”
“아니,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런 건 특징 축에도 끼지 못하니 다른 점을 말해 주면…….”
당찬일의 말을 끊던 이서악이 그의 다음 설명에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조규(曹圭)를 능가했습니다.”
쿵!
당찬일을 지그시 바라보던 이서악이 입술을 달싹거렸다.
“조규라니? 내가 아는 조규를 말하는 것이냐?”
지나가는 투의 물음이었지만 이서악의 질문에는 묵직한 무엇이 들어 있었다.
휘이잉.
어디선가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와서 당찬일과 이서악의 코를 간질이고 사라졌다.
“십수 년 동안 상산 일대에서 마흔세 명의 부녀자를 납치하고 살해한 것으로도 모자라 방화까지 저질렀던 조규를 말하느냐고 묻지 않느냐.”
묵묵부답.
“무림맹에선 결국 무림첩까지 돌려 강호 전역의 고수들이 놈을 잡으려 상산으로 몰려들었었지.”
이서악이 어딘가로 매서운 시선을 던졌다.
“하지만 놈은 꼬리를 감춘 신룡처럼 종적을 감추었다.”
이서악이 먼 곳으로 던졌던 눈초리를 당찬일에게 돌렸다.
천천히.
“그렇게 상산혈귀라는 존재가 희미해져 갈 무렵, 상산의 저잣거리에 참혹한 시신 하나가 발견되었다.”
당찬일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이서악이 입꼬리를 기이하게 말아 올렸다.
“전신을 무려 마흔세 차례 난자당한 상태였기에 시신은 말 그대로 목불인견이었다. 얼굴마저 훼손당해서 시신의 신분을 가리기가 정말 난망했지.”
잠시 숨을 멈추었던 이서악이 한숨처럼 입을 열었다.
“등판의 칠성 점이 아니었더라면.”
쿵!
이서악의 눈동자는 조금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 시신은 상산혈귀(常山血鬼), 또는 칠성귀(七星鬼)라 불리던 조규였다. 그런데 말이야.”
바람 때문에 비틀렸던 문사건을 고쳐 쓰며 이서악이 슬그머니 덧붙였다.
“조규의 시신은…….”
비틀린 입꼬리만큼이나 불규칙적인 파동으로 말꼬리를 늘어트린 이서악이 당찬일을 직시했다.
“지금으로부터 십오 년 전에 발견되었다.”
이서악의 심유한 눈동자로 당찬일을 바라보았다.
지그시.
“그러니 너는 절대 조규를 알 도리가 없는데, 그를 직접 만나 본 사람처럼 묘사하니 신기하구나.”
이서악이 착 가라앉은 음성만큼이나 음울한 어조로 당찬일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걸 어찌 설명하겠느냐?”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상대방이 정색하면서 바라보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거기다 그가 절대 고수라면 위압감까지 더해져서 절로 어깨가 움츠러든다.
통상적으로는.
담담한 표정으로 이서악의 부담스러운 눈빛을 받아넘기던 당찬일이 불쑥 반문했다.
“대협께선 어찌 생각하십니까?”
“음?”
“대협의 말씀처럼 저는 열세 살이라서 상산혈귀를 몰라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이서악이 고개를 살짝 틀었다.
“하지만 저는 상산혈귀를 직접 대면한 사람처럼 말했습니다.”
무엇을 떠올리는 걸까?
살짝 눈을 들어서 허공으로 시선을 이동시킨 당찬일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 점을 대협께선 어찌 생각하시는가에 관해서 여쭙는 것입니다.”
당찬일이 말을 맺자 이서악의 얼굴이 점차 굳어졌다.
“질문을 질문으로 응대하는 건 매우 좋지 않은 버릇이니라.”
평소의 이서악답지 않게 엄한 어조로 그가 당찬일을 나무랐다.
“아, 언짢으셨다면 부디 노여움을 푸십시오.”
그제야 자신을 실수를 깨달은 당찬일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저 대협의 고견을 듣고 싶었을 뿐입니다.”
“고견이라.”
헛웃음을 짓던 이서악이 손등을 내쳤다.
“무슨 말인지 알겠으니 이만 가 보도록 해라.”
고개를 돌려 이서악이 자신을 외면하자 천천히 일어선 당찬일이 그에게 포권했다.
“고맙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남겨 두고 천천히 동산을 내려서는 당찬일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던 이서악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것, 참.”
당찬일의 응대라 떠올라서 살포시 인상을 구기던 이서악이 상체를 뒤로 젖혔다.
“오히려 당해 버렸지 않은가.”
첫 대면부터 범상치 않은 아이였다.
당찬일은 말 한마디, 행동거지 하나하나에서 또래의 소년들과는 차원이 다른 관록을 표출했다.
“관록이라니, 어이가 없는 일이지.”
언젠가 기회가 주어지면 이런저런 점에 관해서 추궁하리라 마음을 먹었는데 마침 오늘 당찬일이 시간적인 간극에 관한 실언을 던졌다.
십오 년 전의 인물과 사건을 열세 살의 소년이 경험해 본 것처럼 묘사한다는 건 말이 안 되니까.
하여 이서악은 이 점을 파고들었는데 당찬일은 역질문 한 방으로 자신이 쳐 둔 올가미를 간단히 벗어났다.
“이거이거, 하지만 그래서 더 궁금해지네. 저 아이, 지나치게 노회하지 않은가.”
본래대로라면 당찬일은 자신의 지적을 회피하고자 이것저것 변명을 늘어놓다 빈틈을 보였어야만 했다.
그렇지만 당찬일의 역질문에 의해서 이서악은 자신이 제기한 의혹을 상식적인 선에서 납득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만약 저 아이에게 조규를 만난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만 정신 나간 사람으로 취급받겠지.”
일반론이라는 덫.
반문(反問) 한 방으로 상황을 역전시킨 당찬일의 임기응변에 헛웃음을 짓던 이서악이 눈을 가늘게 떴다.
“혹시 저 아이가 정말로 조규와…….”
스멀스멀 상상의 날개를 펼치던 이서악이 질끈 눈을 감았다.
“아아, 내가 점점 이상해지는구나.”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뜨며 이서악이 탄식했다.
“조금 전에 나와 대화를 나눈 녀석이 정말로 열세 살짜리 꼬마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이서악이 곧 자리에서 일어섰다.
당찬일에 관한 문제는 차후다.
정체 모를 중년인이 우선이다.
“무림공적이었던 조규보다 위험한 인간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