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51
당문전생 (51)
가인루(佳人淚)
반사적으로 몸을 날려 피보라와 육편을 피한 당찬일이 번개처럼 고개를 돌렸다.
“난장판이로군.”
뒷짐을 지고 천천히 걸어 나오는 중년인의 어조는 너무나 평온했다.
조금 전 사람의 머리통을 터트린 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대체 무슨 수를 쓴 거지?’
중년인은 암기를 던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도검이나 기타의 병장기도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첫째의 머리는 산산이 부서졌다.
그렇다면!
중년인이 사용한 무공을 깨달은 당찬일이 뒤꿈치에 슬쩍 힘을 실었다.
“진정해라.”
중년인이 뒷짐을 진 상태에서 오른손만 빼내어 살살 저었다.
우드득!
‘이, 이럴 수가!’
저절로 무릎이 굽혀진다!
손짓만으로 당찬일을 간단히 무릎 꿇린 중년인이 몸을 돌렸다.
“그대로 얌전히 기다려.”
부드러운 말과 함께 중년인이 몸을 돌리자 당찬일이 어금니를 물었다.
‘역시 무형탄강(無形彈罡)이었어!’
무형탄강이란 몸 안에 축적했던 내공을 강기로 치환하여 일순간 발출하는 꿈의 무학이다. 당연히 기수식도, 형체도 없기에 무형탄강을 수비하거나 피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한마디로 무형탄강은 절대적인 경지에 이른 초고수만이 구사할 수 있는 강기공이다.
지금 중년인이 당찬일의 신체를 구속하는 수법 또한 마찬가지.
내공을 실체화하여 당찬일을 통제한 중년인이 무릎을 굽혀서 바닥에 널브러진 쌍둥이의 시신을 살폈다.
‘엄청난 내공이다.’
절정을 바라보는 고수들은 내공을 이용해서 상대방을 격상시키거나 물리적인 억제력을 행사할 수는 있다. 하지만 내공의 소모가 너무 극심해 사용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하물며 저렇게 다른 행동을 취할 정도라면?
당찬일이 경악 어린 눈빛으로 중년인을 주시했다.
괴물.
“어디 보자. 이놈은 단칼에 목젖이 잘렸군. 이건 검법이라기보다 사람을 죽이는 것에만 특화된 칼질인걸.”
둘째의 시신을 확인한 중년인이 바닥에 남은 족흔들을 두루 살폈다.
“동작도 단순하고 빠르군. 그런데 보법의 묘리가 느껴지지 않아.”
중년인이 고개를 들고 가만히 중얼거렸다.
“행색이나 태도로 미루어 명문가의 자제라고 생각했는데 남긴 자취는 전혀 다르다라…….”
뒷짐 진 그대로 몸을 돌린 중년인이 당찬일에게 물었다.
“살수냐?”
“……!”
중년인이 상흔과 족적만으로 자신이 익힌 무공의 원류를 판별해 내자 당찬일은 마음의 동요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써야만 했다.
“살수가 무엇을 원해서 이런 곳에 침입했을까?”
당찬일이 대답을 하든, 하지 않든, 중년인은 제 할 말을 토해 냈다.
애당초 그에게는 당찬일의 답변이 필요 없었을지도.
‘가만?’
이런저런 소리를 늘어놓는 중년인을 응시하던 당찬일이 눈동자를 모았다.
저 사내, 어딘가 낯익다.
‘혹시?’
그렇다! 사내는 당숙정과 야행하다 조우했던 중년인이다!
‘얼굴과 몸집은 달라! 아니, 그때 만났던 중년인의 얼굴과 몸집이 기억나지 않아. 하지만……!’
저자는 그때 조우했던 그자가 틀림없다!
사람을 한 번 보면 그가 어떤 형태로 변하든 대번에 알 수 있는 당찬일의 능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지?’
아무리 기억력이 좋지 않더라도 엊그제 만난 이의 용모를 떠올리지 못할 사람은 없다.
하물며 당찬일처럼 관찰력이 뛰어난 사람임에야.
그런 그가 사흘 전에 조우했던 사람의 외모를 기억할 수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분위기도 판이해!’
사흘 전의 중년인은 살벌했다.
오죽하면 십오 년 전에 상산 일대를 피로 물들였던 조규보다도 섬뜩한 느낌을 받았을까.
그런데 오늘의 중년인에게선 살기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사람의 머리를 무형탄강으로 부숴 버리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사내.
그래서 더욱 무섭게 느껴졌다.
‘빌어먹을.
긴장해서인지 당찬일의 손바닥에 땀이 축축이 배었다.
불행하게도 자신은 중년인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도주만이 살길이다.
문제는 중년인에게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거다.
공력에 의한 중년인의 통제는 천라지망보다도 촘촘하고, 강철로 이루어진 철옹성처럼 단단했다.
‘어쩐다.’
머리를 굴리던 당찬일의 눈에 우연처럼 천정의 종유석이 들어왔다.
‘물방울?’
종유석 끝으로 모여드는 것들은 분명 물방울이다.
하지만 이 자그마한 녀석들이 셀 수 없으리만치 많이 모인다면?
그렇게 군집을 이룬 녀석들이 일시에 들이닥친다면?
‘파도.’
종유석 끝에 맺혀서 한껏 부풀어 오르던 물방울이 결국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졌다.
퐁!
떨어지는 물방울에서 파도를 연상하던 당찬일의 뇌리를 굵고 중후한 목소리가 스치고 지나갔다.
―언어로 표현하지 말고 마음으로 그려라!
당찬일이 미간에 잔뜩 주름을 잡자 중년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괴로운가? 고도의 훈련을 받은 게 분명한데……. 내공으로 인한 결박은 역시 참기 어렵지.”
중년인은 자신의 힘에 절대적인 믿음이 있음이 있는 듯 나직이 말을 덧붙였다.
“간단히 끝내지. 침입한 목적이 무엇이냐?”
당찬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 중년인의 질문 자체가 전달되지 않았다.
지금 당찬일의 심상(心想)을 지배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
―맞서지 마라!
스스로 만들어 낸 파도에 몸을 내맡긴 당찬일은 정신과 감각 어느 것 하나 빠뜨리지 않고 그것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답을 안 하는구나.”
중년인이 탄식하자 당찬일을 옥죄는 내공의 그물에 힘이 배가되었다.
으드득!
놀랍게도 당찬일은 비명을 내지르지 않았다.
‘호오?’
이전보다 더한 압력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상만 구길 뿐, 고통을 호소하지 않았다.
‘이래도?’
중년인이 턱을 들자 내공의 그물은 한층 쪼그라들었다.
만약 당찬일이 그때의 깨달음을 상기하지 못했더라면 큰 내상을 입었을 상황이었다.
―이기려고 들지 마라!
자신을 짓누르는 내공과 심상을 타고 넘으려는 파도에 순응하며 당찬일이 점차 어깨를 폈다.
‘이것 봐라?’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눈을 찡그린 중년인이 턱을 오연하게 들었다.
콰드득!
중년인이 세 번째로 힘을 더하자 당찬일을 압사시킬 기세로 내공의 방벽이 조여들었다.
우연일까?
종유석에 다음번 물줄기들이 모여 방울을 이룬 것은?
셋, 둘…….
하나.
퐁!
“타앗!”
내공의 그물을 발기발기 찢으면서 당찬일이 고무공처럼 튀어 오르자 중년인이 뒷짐을 풀었다.
“이놈!”
쿠르릉!
중년인은 단지 오른손을 내밀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당찬일에게로 거부할 수 없는 내공의 파도가 밀려들었다.
너무도 막강한 장력(掌力)!
―자연에 순응한다면 자연은 결코 너를 해하지 않으리라!
머리를 두드리는 거대한 울림과 함께 당찬일이 기이한 발놀림을 시작했다.
지금껏 기억으로만 간직했을 뿐, 단 한 번도 펼쳐 내지 않았던 발걸음.
사라락.
당찬일의 양발이 빠르게 교차하자 그는 어느새 중년인의 공격 범위에서 반 치 정도 벗어나 있었다.
“음?”
당찬일의 기경할 몸놀림에 중년인이 처음으로 감정을 드러냈다.
그렇지만 그건 나타날 때보다 빠르게 소멸되었고 중년인은 가볍게 발을 놀려 당찬일을 쫓았다.
여전히 왼손을 뒷짐 진 채로.
빙글!
중년인이 오른손을 허공에서 살짝 뒤집자 당찬일에게로 경기(經氣)의 세례가 발출되었다.
순간적으로 자신을 덮쳐 오는 수십 수백 가닥의 실 같은 기운!
비록 가늘고, 여려 보이지만 내공으로 이루어진 실오라기에 스치기만 해도 중상을 면치 못하리라!
사삿!
당찬일이 발끝에 힘을 싣자 그의 몸은 더욱 유연하고 부드러운 움직임을 보였다.
뒷동산에서 한바탕 춤을 추듯 유려하게 움직이던 이청하의 그것처럼.
질풍파랑보(疾風波浪步)!
천하를 좌지우지했던 검군의 절대적인 보법이 음침한 동굴에서 화려하게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파바박!
과연 질풍파랑보의 효용은 대단해서 중년인이 뽑아낸 강기의 파고를 수월하게 넘나들었다.
‘흠.’
루강(縷罡)!
중년인이 지금 사용하는 수법은 절정고수들조차 제대로 펼치기 힘들다는 강기공 가운데서도 최상위권에 속하는 루강이었다.
실처럼 가느다란 강기로 상대를 격상시키는 무학.
강기의 형태가 눈물처럼 보인다고 아름다운 여인의 눈물, 즉 가인루(佳人淚)라는 별칭까지 얻은 희대의 강기공.
이것이 바로 루강이다.
그런 루강을 아슬아슬하게나마 피하면서 앞으로 전진하는 당찬일을 무심한 시선으로 응시하던 중년인이 다시 한 번 오른손을 뒤집었다.
파바바박!
비처럼 떨어지는 강기의 세례…… 아니, 가인의 눈물!
그렇지만 당찬일은 어떻게든 피해 내면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여기서 물러서면 안 되니까.
도주하겠다는 얄팍한 심산으로 중년인에게 등을 보인다면 그 즉시 끝장이다.
“으아아아!”
강기의 눈물을 헤집은 당찬일이 중년인과 지척 거리에 이르러 노호성을 질렀다.
오른손을 한껏 뒤로 젖히면서.
이때…….
완전히 뒤집어지지 않았던 중년인의 손바닥이 하늘과 땅을 정확히 양분했다.
콰르릉!
벼락인가?
지금껏 보슬보슬 내리던 강기의 눈물이 거대한 물줄기를 이루어 당찬일을 덮쳤다.
이건 죽었다 깨어나도 못 피한다!
막는다면?
몸이 산산이 부서질 거다!
회피 불가에 방어 불가인 절체절명의 상황!
그 순간 당찬일의 왼손이 무언가에 이끌린 것처럼 움직였다.
흐느적.
물을 잔뜩 머금은 솜처럼 느릿하고 둔중해서 무기력해 보이는 손. 그러나 그의 손길에 닿자 강기의 파고들이 방향을 바꾸어 일제히 바닥에 내리꽂혔다.
쾅! 쾅 쾅!
이화접목(移花接木)!
적의 공격을 흘려 내는 최고의 방어 수법!
무려 일곱 가닥의 강대한 강기를 손짓 한 번으로 와해시킨 당찬일이 한 걸음 다가서자 중년인이 단호하게 외쳤다.
“갈!”
중년인이 오른손을 반 바퀴 회전시켜 강하게 밀어내자 당찬일이 양손으로 그것을 받았다.
쾅!
내공의 차이를 이겨 내지 못했을까?
엄청난 폭음과 함께 뒤로 훌훌 날아가던 당찬일이 허공에서 한바탕 제비를 넘었다.
“타앗!”
입에서 흐르는 피를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몸을 잡아 뺀 당찬일이 전력으로 내달렸다.
“어딜!”
중년인이 노호성을 지르며 오른손을 재차 내밀었다.
쾅!
“컥!”
중년인의 무지막지한 장풍이 등판을 강타해서 오장육부가 진탕되었지만 역설적으로 그 힘은 당찬일을 밀어 주는 효과를 발휘했다.
“이익!”
꺼져 가는 정신을 억지로 다잡으면서 당찬일이 가속을 이용하여 몸을 날렸다.
출구는 이미 파악해 둔 터.
이대로 달리는 거다!
쾅! 쾅!
등 뒤에서 중년인이 불러온 장력의 소용돌이가 용솟음쳤지만 당찬일의 발길을 막진 못했다.
생존 본능은 이전의 생에서 그가 깨달은 최상의 덕목이었으니까.
* * *
“아, 씨.”
당문의 입구에서 초조하게 밖을 살피던 당쾌풍이 곧 입술을 깨물었다.
“아직까지 왜 안 오는 거야?”
당찬일과 헤어지고 벌써 두 시진이 흘렀다.
두 시진.
짧다면 바람처럼 스치고 지나가지만 길다면 억겁과도 같이 기나긴은 시간.
제자리를 맴맴 돌면서 걱정하던 당쾌풍이 결심한 듯 고개를 들었다.
“에잇! 내가 직접 가 봐야……!”
멀리서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신형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