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52
당문전생 (52)
최소한 짐이 되지는 않으마
당찬일이다!
벼락같이 당찬일에게 달려 가려던 당쾌풍이 곧 그에게 느긋한 발길로 다가갔다.
“늦었다?”
“아아.”
벽을 짚으며 힘겨운 걸음을 옮기던 당찬일이 파리하게 웃었다.
시리도록 푸르러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절로 눈물짓게 만들, 그런 미소를.
“급히 처리할 게 있어서.”
당찬일의 몰골은 처참했다.
머리는 봉두난발, 옷은 여기저기 찢기고, 구멍이 난 상태였고, 드러난 살갗엔 온갖 멍과 상처 그리고 피딱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시신은?”
“안전하게 보관했어. 걱정은 붙들어 매라고.”
“다행이다.”
고개를 끄덕인 당찬일이 당쾌풍을 스치며 지나쳤다.
“난 좀 쉬어야겠다. 너도 이만 들어가라.”
“그래.”
무덤덤하게 답하던 당쾌풍이 문득 생각난 것처럼 아, 하며 품을 뒤졌다.
“이거.”
“뭐지?”
당쾌풍은 내민 것은 종이에 싸인 환약이었다.
바스락!
종이를 벗기자마자 확 하고 피어오르는 청아한 냄새.
“이건 보통 물건이 아닐 텐데?”
“뭐가 보통 물건이 아니야?”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당쾌풍이 짐짓 인상을 구겼다.
“보통 이런 거는 집집마다 상자째로 보관해야 정상 아니야?”
말도 안 되는 소리.
당쾌풍이 당찬일에게 건넨 환약은 대라속명환(大羅速命丸)이란 물건으로서 소림의 대환단에 버금가는 효능을 지닌 천하의 영약이었다.
천하제일가라는 당문에서도 겨우 네 알만을 확보할 수 있었던 만고의 영단.
이런 귀한 환약을 상자째로 보관할 집안은 중원에 오로지 한 곳이다.
황궁.
“난 이거 하도 자주 먹어서 완전히 물렸다. 소싯적에는 만두보다도 자주 먹었다니까?”
의뭉스러운 표정을 짓는 당쾌풍을 잔잔한 시선으로 응시하던 당찬일이 환약을 품에 갈무리하려 들었다.
“지금 먹어, 지금.”
당쾌풍이 손을 아래에서 위로 연신 들어 올리자 당찬일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바스락!
다시 종이를 벗겨 낸 당찬일이 환약을 삼켰다.
“자자, 다 먹었으면 이제 들어가. 나도 졸리니까.”
“알았다.”
당찬일이 비척비척 사리지자 장난스럽던 당쾌풍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졌다.
“빌어먹을.”
주먹을 으스러지게 쥔 당쾌풍이 어금니를 물었다.
“도와줘도 모자랄 판국에 도움이나 받는 신세라니.”
당쾌풍이 이를 갈아붙이면서 당찬일이 사라진 방향을 응시했다.
“다음에도 같은 일이 생기면 최소한 짐이 되지는 않으마.”
반드시!
* * *
대라속명환의 효능은 놀라웠다.
중년인과의 악전고투로 오장육부가 제 위치에서 이탈했던 당찬일이 단 이틀 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으니까.
당인은 당찬일이 부상을 입고 귀가한 이유를 캐묻지 않았다.
그저 하나의 질문만을 던졌다.
“피할 수 없었느냐?”
당찬일이 그렇다고 답하자 당인은 두말없이 방을 나섰다.
몸조리 잘하라는 말만 남기고서.
운신이 가능해진 당찬일은 이서악을 찾았어야 마땅했지만 얼른 그러지 못하고 꼬박 하룰 고심했다.
이서악 정도의 고수가 마음을 바꾸면 얼마나 무서운지 체감했으니까.
위협 정도가 아니라 지옥으로 표변한다는 걸 몸으로 깨달았기에 선뜻 그에게 갈 수 없었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강호.
스스로 강해져야 안전을 보장받는다.
변설자 노인이 건넨 책자의 수법(手法)은 놀라운 효용으로 자신을 위협에서 구했다.
책자에 적힌 나머지 두 개의 무공도 익힌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시간 관계상 무공 수련은 뒤로 미루고, 일단 이서악의 조언을 듣기로 했다.
천변만화한 중년인의 정체를 밝히려면 강호 경험이 풍부한 이서악의 도움이 필수였으니까.
흠차대인이 방문하겠다는 날짜가 시시각각 다가왔기에.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당찬일을 발견한 이서악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안색이 썩 좋지 않구나?”
죽을 뻔했습니다.
“무슨 일 있었던 게냐?”
“그보다…….”
입술을 우그러트리던 당찬일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대협의 존함을 여쭤도 괜찮겠습니까?”
“음.”
돌연한 당찬일의 청에 이서악이 심연보다 깊은 침음을 흘렸다.
“호기심이냐?”
“아닙니다.”
“그럼?”
“필요해서입니다.”
“필요성이라.”
이서악이 당찬일을 인적이 끊긴 정자로 인도했다.
“이곳은 소요가 없으니 대화하기에 적합할 거다.”
정자는 이서악이 가끔 이용하는지 몰라도 다기와 접시가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보글보글―.
“네가 나의 정체를 갑자기 알고 싶어졌다면 필경 이유가 있겠지.”
찻물을 우리면서 이서악이 주전자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당찬일과 눈이 마주치면 그가 부담감을 느낄 수 있으므로.
“그 연유를 들려주겠느냐?”
이 순간 당찬일은 살짝 감동을 받았다.
‘이 사람은 나를 무척이나 신뢰하는구나.’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은 당찬일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사실대로 모두 말씀드리겠습니다.”
일각 후.
“흠.”
이전보다 더욱 깊어진 이서악의 침음.
“당가주라면 그럴 만하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서악이 읊조렸다.
“당문에 신세를 지는 입장에서 이런 말을 하긴 그렇지만 당가주라면 능히 자식을 버리고도 남는다.”
자신의 독백에 스스로 수긍하던 이서악이 뜻밖의 질문을 던졌다.
“숙정이냐?”
“예?”
“어린 네게 가문의 구조와 암투를 일러 준 사람 말이다.”
“그걸 어찌……?”
당찬일이 깜짝 놀라자 이서악이 고소 지었다.
“숙정이는 안사람의 제자였다. 벌써 십여 년도 더 지난 과거의 일이지.”
십 년 전이라면 아마도 당숙정이 화월숙에서 시서화나 자수, 그리고 몸가짐을 배울 때를 말하나 보다.
이서악의 기품을 고려한다면 그의 부인이 시나 글, 그림, 또는 자수에 조예가 깊을 수 있을 테고.
“아니, 그럼 사모님은 어쩌시고 따님과 당문에서 생활을 하시는 겁니까?”
순간 이서악의 얼굴이 납덩이처럼 굳어졌다.
“그 이야기는 거론하지 말자.”
이런.
“실수했습니다. 부디 용서하시길.”
당찬일이 벌떡 일어서서 포권으로 사죄하자 이서악이 손을 내저었다.
“됐다. 사과할 일도 아니다.”
부인의 죽음에 관한 사항을 꺼냈는데도 별일 아니라는 듯 용서하는 대범함이라니.
“본론으로 돌아가서, 분명 같은 중년인이었는데 체구와 용모 그리고 분위기까지 전혀 달랐다?”
“완전히 달랐습니다.”
“흠.”
오늘은 이서악이 침음을 토하기로 작정한 날인가보다.
이서악은 당찬일이 한마디 던질 때마다 제대로 된 응대 없이 침음만 토했다.
“체구와 용모, 분위기까지 다른 사람을 동일인이라고 단정 짓는 이유가 무엇이냐?”
“감입니다.”
“감?”
당찬일은 이 시점에서 이서악이 폭소를 터트려도 감수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는 자신의 놀라운 능력을 알 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이서악은 웃음을 택하기보다 석연치 않다는 표정을 지음으로 응대를 갈음했다.
“감이라…….”
이서악이 오른손 등에 턱을 올렸다.
“너의 감, 확신하느냐?”
“네.”
“그래?”
지나가듯 중얼거린 이서악이 빈 찻잔에 다시 차를 따랐다.
“네가 말한 것만으로 누굴 특정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루강 또한 강기공의 일환이니 무학과는 그 궤가 다르지.”
“그렇군요.”
“그러면…….”
이서악이 당찬일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내 이름을 알고 싶은 이유가 무엇이냐?”
당찬일의 대답은 망설임이 없었다.
“대협은 강호에서 제가 대한 고수들 가운데 능히 수위를 다툴 만한 분입니다.”
“누가 들으면 너를 산전수전 다 겪은 노회한 승부사쯤으로 알겠구나. 그런데?”
“그런 견지에서 중년인은 놀라울 정도로 강했습니다. 천변만화한 변신은 차치하고서라도 무공 자체가 대단하다는 뜻입니다.”
“그렇군. 하여 내 정체를 알고 그 선상에 놓은 고수를 추리다 보면 그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다?”
“좁은 소견으로 내린 판단입니다.”
“아니다. 일리 있어.”
다탁에서 몸을 뗀 이서악이 몸을 바로 했다.
“나는 이서악이다.”
쿵!
순간 당찬일의 몸이 움찔 굳었다.
눈앞의 사내가 절정을 넘어선 고수일 거라고 예상은 했다. 하지만 무림사군자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당찬일이 이서악에게 포권으로 예를 취했다.
“당찬일이 검군께 인사를 드…….”
“됐다. 앉아라.”
당찬일이 착석하자 이서악이 탄식했다.
“그가 나와 비견된다는 소리인데.”
“아닙니다. 대협보다 강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잠시 망설이던 당찬일이 탄식처럼 내뱉었다.
“대협도 방심할 수는 없을 실력자였다고 할까요?”
무림사군자 가운데 한 사람이자 강호에서 검을 가장 잘 쓴다는 이서악이라도 천변만화한 중년인을 꺾으려면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허허.”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아니. 비교당해서 기분이 나쁜 게 아니다.”
너털웃음을 거두지 않고 이서악이 말을 이었다.
“너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가끔씩 이상한 생각이 들곤 해서 그렇다.”
연배가 그다지 차이 나지 않는 동료와도 같은 느낌.
“아무튼 루강이라는 실마리가 하나 추가되었구나.”
이서악을 시선을 들어 먼 곳을 응시했다.
“루강. 그리고 감으로 구분할 수밖에 없는 변환술이라.”
* * *
“영감이었잖아.”
“노인…….”
“대체 뭘 본 거야?”
세상에, 노인이란다.
이제는 나이까지 초월한다는 건가.
당찬일이 지끈거리는 관자놀이 부근을 누르자 당숙정이 투덜거렸다.
“눈 감고 씨름해서 심중안이라도 들었나 했건만 역시 아니었군.”
“제가 말입니까?”
“말해 뭐 해.”
당시 심중안에서 겨루었던 상대만 기억해 내면 문제가 해결될 텐데!
불행히도 심중안은 깨달음의 일종이라서 그때를 반추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열심히 궁리하는 당찬일을 못마땅한 얼굴로 보던 당숙정이 쌀쌀맞게 몸을 돌렸다.
“오늘은 특별히 봐주겠지만 앞으로는 되도록 말 걸지 마.”
여부가 있겠습니까.
* * *
“관아 뒤편 창고가 폭발했다더군.”
“폭발이라.”
“관원들 말로는 비축해 둔 폭약이 어쩌다 터졌다더라고. 그게 말이 돼?”
“말이 안 되지.”
일이 이렇게 전개되리라고 예상했다.
관은 어떤 식으로든 증거 인멸의 필요성을 느꼈을 테고, 폭파야말로 모든 물리적, 지리적인 증거를 날려 버릴 확실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다리를 저나?”
당찬일이 묻자 당쾌풍이 별것 아니라는 듯 입을 내밀었다.
“잠을 잘못 잤어.”
뻥이다.
당쾌풍은 부친에게 대라속명환을 자신이 사용했다고 이실직고했다.
장난삼아 자신이 복용했다고 말이다.
당연히 부친은 극대노했고, 당쾌풍은 다리를 절룩거릴 정도로 종아리를 맞아야만 했다.
“잠버릇이 지랄이라서, 가끔 이래.”
“그렇군.”
담담히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이 자연스레 산 중턱의 계곡 쪽으로 향했다.
“어떤 놈한테 당했어?”
“음?”
“너를 그 지경까지 몰아넣은 놈, 대체 누구야?”
“왜? 복수하려고?”
당찬일이 고소 짓자 당쾌풍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언젠가는.”
“그때가 언제 올지는 몰라도, 그때까지는 신경 꺼라.”
“음.”
당쾌풍이 자꾸 관심을 보이자 당찬일이 또 한 번 주의를 주었다.
“다시 말하지만 특징이 없는 중년인을 조심해.”
“또 그놈이야?”
“기억해 두란 말이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산속으로 진입하던 두 사람이 여왕호봉을 포획했던 계곡에 이르자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