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55
당문전생 (55)
놓친 건가!
“여섯? 왜 또 여섯이야?”
“마을에서 괴질로 사망한 사람이 서른이 넘어. 그 사람들 동선을 일일이 파악하는 건 불가능하잖아.”
“그렇지.”
당찬일의 답변은 간결하면서도 명료했다.
“그래서 골랐어.”
“…….”
당쾌풍은 굳이 묻지 않고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전까지 잔병치레를 하지 않았으며, 지병이 없었던 사람 중심으로.”
그제야 병사나 자연사의 여지를 최대한 피해서 변수를 줄이겠다는 당찬일의 전략을 당쾌풍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여섯 사람의 동선만 추적하더라도 겹치는 곳이 나올 거야.”
당찬일이 눈을 반짝 빛냈다.
“정말 괴질 문제라면 그곳이 문제겠지.”
“겹치는 곳이 나오지 않으면?”
“그건 그때 생각해야지. 일단은.”
종이를 부욱 찢은 당찬일이 당쾌풍에게 내밀었다.
“네가 맡을 세 명.”
“셋이나?”
“나 셋, 너 셋. 맞지? 송 씨 집성촌에서 거주했다니까 그리 어렵진 않을 거다.”
예상보다 동선 추적은 쉽지 않았다.
당사자가 사망했기에 이동 경로를 다른 사람의 증언에 의존해야만 했는데, 문제는 증언의 내용이 제각각이었다.
이 사람 말이 다르고, 저 사람 말은 또 다르니 당최 누구의 증언을 신뢰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결국 모두의 진술을 모아 합리적으로 추론하는 과정까지 거쳐야 했기에 당찬일과 당쾌풍은 몇 곱절의 시간을 허비해야만 했다.
조급한 세 사람의 마음과 달리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나오지 않았다고?”
“어.”
당쾌풍이 반색했지만, 대답하는 당호민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무림에서 은밀하게 유동되는 독과 우리 당문에서 제조했거나 독충에게서 추출한 독극물을 합치면 이천 가지가 좀 넘지.”
바닥을 뒹구는 무수한 시약병에 눈길을 던지면서 당호민이 차갑게 뇌까렸다.
“조금 전까지 나는 그중에서 실험이 가능한 천오백서른다섯 가지를 해 봤어. 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는 말이야.”
저 나이에 천오백서른다섯 가지의 독극물을 안다는 것도 놀라운데 그것들을 이 짧은 시간에 시험했다니.
독의 천재라는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그럼 우리 당문은 혐의를 벗은 거네? 잠깐…….”
환호작약하던 당쾌풍의 얼굴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아니구나. 우리 당문에서도 모르는 새로운 독으로 이들을 중독시켰다고 우기면 그만이잖아?”
“하지 않은 일을 안 했다고 증명하는 것처럼 어려운 것은 없지.”
당찬일이 끼어들었다.
“에잇, 참.”
뚱하니 입을 내민 당호민이 시약병을 주섬주섬 챙긴 후에 동굴을 나서려고 했다.
“손 떼는 거야?”
“손을 떼긴.”
냉랭하게 코웃음을 치며 당호민이 고개를 살짝 돌렸다.
“해 보고 싶은 게 있어. 난 지금까지 중원을 어지럽혔던 역병들의 자료를 조사할 테니까 너희들은 하던 일이나 계속하라고.”
동굴을 나서며 당호민이 짧게 덧붙였다.
“일주일 남았다.”
흠차대인이 들이닥칠 때까지.
* * *
불행 중 다행일까?
흠차대인의 출두일 닷새를 남기고 마침내 당찬일과 당쾌풍은 여섯 사람의 생전 동선을 완성했다.
“왜 늦은 거야? 반 시진이나 기다렸다고!”
“아아, 미안.”
약속 시간보다 반 시진이 늦게 도착한 당찬일에게 당쾌풍이 신경질을 부렸다.
“닷새밖에 남지 않았다고 펄펄 뛰더니 정작 당사자가 늦으면 어째!”
“급히 처리할 게 있어서.”
두 번 사과는 하지 않겠다는 듯 말을 자른 당찬일이 손을 내밀었다.
“언제나 급히 처리할 게 있으시네요. 참으로 당당하십니다그려.”
뻔뻔한 당찬일의 태도에 할 말이 없다는 듯 고개를 저은 당쾌풍이 품을 뒤졌다.
“내가 파악한 고인(故人)들의 동선은 이거야.”
당쾌풍이 종이를 내말자 당찬일이 그것을 받아서 자신의 것과 대조했다.
둘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를 바라봤다.
“겹치는 곳이 하나 있군.”
“그렇……네.”
당쾌풍이 맡았던 셋과 자신이 담당했던 사람은 다른 부분에서 동선이 일치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 여섯 사람이 모두 찾은 곳은 하나 있었으니.
‘왜 하필…….’
장삼이 운영하는 도박장.
“어른들은 이거를 너무 좋아한다니까.”
엄지로 중지와 검지를 장난스럽게 쓸어내리느라 당쾌풍은 당찬일의 무거워지는 얼굴을 미처 보지 못했다.
‘괴질의 진원지가 도박장이라면 가장들만 앓는 이유가 설명된다.’
음습한 도박장을 출입하는 부녀자는 많지 않다.
문제는 정말 괴질의 근원지가 도박장이라면 원인을 밝히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수십 명의 뜨내기들이 드나드는 노름판에서 무슨 수로 괴질의 시발점을 찾는단 말인가?
당찬일이 한숨을 뱉으며 몸을 일으켰다.
“일단 가 보자.”
“어떻게? 우린 도박장 출입하기엔 너무 어리지 않나?”
당찬일은 당쾌풍의 말을 못 들은 척 먼저 걸음을 옮겼다.
“당문의 귀한 공자님들께서 누추한 도박장엔 어인 일로 방문하셨는지요?”
장삼이 시치미를 뚝 떼며 물었다. 당찬일도 그에 화답했다.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왔소.”
당찬일이 여섯 명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내밀었다.
“송부곽, 송부홍…… 예, 이 양반들은 단골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우리 업장을 가끔 들르셨던 분들이지요. 그런데 이분들은 왜……?”
“이번 괴질로 전부 숨을 거두었소.”
쿵!
이건 장삼도 예상하지 못했기에 적이 놀란 그가 당찬일과 종이를 번갈아 보았다.
“정말로 이분들이 모두……?”
“그렇소.”
침울한 표정을 짓던 장삼이 화들짝 놀랐다.
“설마 우리 도박장을 이번 괴질의 근원지로 보십니까?”
“안타깝게도 사망한 여섯 사람의 동선이 겹치는 장소는 이곳뿐이요.”
“끄응.”
계단에 철푸덕 주저앉은 장삼이 앓는 소리를 내면서 머리를 짚었다.
“다른 분들은 쌩쌩하게 잘도 오가시는데 왜 저분들만…….”
“운이 없었나 보오.”
장삼의 옆에 앉은 당찬일이 달래듯 물었다.
“고인들이 마지막으로 업소를 찾았던 날이 언제요?”
“아니, 그런 걸 어찌 기억하겠습니까요.”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장삼이 입을 벌렸다.
“관상을 보니 주인장은 기억력이 썩 좋을 것 같소. 잘 반추해 보시구려.”
둘이 하는 양을 보고 당쾌풍이 눈짓했다.
―너, 정말로 관상을 볼 줄 알아?
―손금도 못 본다.
―그럼 주인장의 기억력이 좋다는 건 어찌 알았는데?
―그냥.
당찬일이 어물쩍 넘어가자 당쾌풍이 어깨를 들어 올렸다가 내렸다.
답변하기 싫다니 어쩌겠는가.
일단 넘어갈 수밖에.
“아, 알겠습니다. 그럼, 으음…… 송부곽 이 사람은 이달 초닷새에 마지막으로 뵈었던 것 같고, 송부홍 이 양반은 초아흐레였고…….”
장삼의 기억이 맞는다면 여섯 사람은 각기 다른 날 마지막으로 방문했다.
거기다 이들 모두 도박 중독자 수준은 아니라서 많이 방문해 봐야 보름에 한 번, 길게는 두어 달에 한 번을 들르는 경우도 있었다.
즉, 고인들이 이곳을 모두 방문했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도박장이 괴질의 근원지라는 근거는 전혀 없었다.
“이전이라면 모르지만 우리도 사업 방향을 바꿨단 말입니다. 서민들이 푼돈 몇을 걸고 재수가 좋아서 따면 주변 사람들에게 술 한 잔 돌리는 정도입지요.”
바지 사장들이 살해당한 사건을 겪은 이후, 장삼은 도박장의 성격을 완전히 갈아엎었다.
고혈을 빨아먹는 흑점이 아닌, 백성들의 도락을 담당하는 쪽으로.
이렇게 되다 보니 관과의 유착은 필요 없어졌고, 뒷돈을 요구하던 관리들도 손을 털어야만 했다.
다수의 서민이 건전하게 이용하는 오락장에서 뜯어먹을 것이 얼마나 있겠는가.
“대체 왜 이런 일이…….”
“이만 돌아가시구려.”
장탄식을 터트리는 장삼을 돌려보내려고 당찬일이 도박장 입구로 향했다.
“도박장 사장님하고도 친분이 있고, 나졸들의 야참 시간도 알고, 참으로 알 수 없는 친구야.”
벽에 기대어서 고개를 갸웃거리던 당쾌풍이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어, 소리를 냈다.
워낙 빠른 걸음으로 지나쳤기에 정확한 용모를 파악하긴 힘들었지만 그에게서 받은 느낌은 하나였다.
평범함.
‘혹시!’
귀가를 서두르는 수많은 인파와 자연스럽게 섞이는 중년인은 어디에도 동화될 것만 같은 무채색의 인간이었다.
아무런 색이 없어서 어떠한 색을 입혀 놔도 그 즉시 적응해 버리는 유형.
‘저자다!’
당쾌풍이 당찬일을 찾았지만 그는 도박장 점주와 입구에서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재종! 여기!’
급한 마음에 당쾌풍이 손짓을 했으나 당찬일은 야속하게도 이를 보지 못했다.
‘에잇! 할 수 없지!’
그냥 멀찍이서 지켜보면 문제는 없을 거다.
아무리 흉악한 자라도 사람이 이렇게 많으니 일을 벌이지는 못할 터.
품을 뒤져 양피지에 두 개의 글자를 황급히 적은 당쾌풍이 벽 사이 구멍에 그것을 찔러 넣고는 중년인의 뒤를 살금살금 밟았다.
* * *
장삼을 들여보낸 당찬일이 돌아오다 당쾌풍이 사라진 것을 알아차렸다.
“먼저 돌아간 건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고개를 돌리던 당찬일이 벽 사이에 꼽힌 밀지를 발견했다.
부스럭!
범(凡). 종(從).
양피지에 적힌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곧바로 파악한 당찬일이 주먹을 쥐었다.
“이런 멍청한……!”
* * *
중년인은 정말로 평범했다.
시전을 걷는 중이었지만 주변과 완벽하게 동화되어서 인간이 아니라 거리를 구성하는 수많은 경물 가운데 하나처럼 보였다.
부비부비.
얼마나 그의 존재가 희미했으면 당쾌풍이 몇 번이고 눈을 비비면서 중년인이 있나, 없나를 확인해야 했을까?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어떻게 저런 사람이 다 있지?’
당문에도 수많은 고수가 존재한다. 하지만 저런 유형의 무인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은잠술이나 귀식대법의 대단함은 알고 있었지만, 존재 자체가 저렇게 희미해질 수도 있는 건가?’
특징이 없는 중년인을 조심하라는 당찬일의 경고를 그저 고강한 무인에 대한 주의 정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로 그런 사람이 있었다.
어물전을 지날 때면 가판에 쌓인 생선과 구별이 안 되고, 노리개 파는 노점을 지날 땐 장신구의 빛에도 숨는 그런 인물 말이다.
중년인의 천변만화한 변신에 연신 감탄하며 당쾌풍은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저자가 그리도 강하단 말이지?’
당쾌풍이 가끔 품속의 물건을 확인했다.
일은 벌어진다. 언제든, 어디에서든.
당쾌풍은 동혈에서 사건을 겪은 뒤 그 사실을 항상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다.
‘저자가 얼마나 대단한지 몰라도 요놈들이 내 손을 떠나면 무사하진 못할걸?’
그 순간!
‘빌어먹을! 저런 곳에 모퉁이가 있었어?’
중년인이 너무도 여유롭게 시전 한편의 모서리로 꺾어 들어가자 아차 싶어서 당쾌풍이 발에 힘을 실었다.
파박!
중년인을 따라서 급하게 모퉁이를 들어선 당쾌풍이 주먹을 으스러지게 쥐었다.
‘아뿔싸!’
휘잉.
모서리 사이로 난 좁은 길엔 자신 혼자 덩그러니 있었다.
놓친 건가!
자신이 전개한 추종술은 꽤나 괜찮은 것이라서 절대로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니 중년인은 그냥 사라졌을 거다.
지형지물에 익숙하지 못한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에이.’
당쾌풍이 못내 아쉬워서 제자리를 맴돌다 몸을 돌리려는 순간!
스륵.
유령처럼 중년인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