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56
당문전생 (56)
운이 좋군
중년인이 반대편 모서리를 돌아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자 당쾌풍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제길!’
하지만 중년인은 덤덤했다.
‘침착하자!’
중년인은 자신이 미행했다는 걸 알지 못했을 거다.
‘저자가 나를 기다린 건 아닐 거야.’
장정 두 사람이 함께 걷기도 힘든 길이기에 당쾌풍은 조심스럽게 한쪽으로 몸을 피했다.
‘그냥 가라, 그냥 가.’
드디어 중년인과 당쾌풍은 서로의 옷깃이 스칠 지경까지 밀착했다.
품속의 암기를 꽉 움켜쥔 당쾌풍이 마른침을 삼켰다.
꿀꺽!
당쾌풍의 목울대가 출렁이는 순간 그를 지나치려던 중년인이 입을 열었다.
“어째서 혼자지?”
“에잇!”
발작적으로 소리 지르면서 당쾌풍이 냅다 암기를 날렸다.
텁!
중년인이 너무도 수월하게 자신이 날린 암기를 받아 내자 당쾌풍이 어금니를 물었다.
‘절대 고수!’
그렇다면 감당할 수 없다.
튀자.
당쾌풍이 담을 타 넘어 도주하려는데 중년인의 한마디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찬일이는 왜 안 오느냐?”
“예에?”
화들짝 놀란 당쾌풍이 뒤로 물러서자 중년인이 재차 입을 열었다.
“조금 전까지 찬일이와 동행했지 않았느냐? 그 아이는 어디 있지?”
* * *
비천대의 추종술은 놀라워서 당찬일은 금방 당쾌풍의 자취를 발견했다.
‘멍청한 놈! 절대 조심해야 한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그걸 왜 쫓아간 거야!’
바닥에서 고개를 든 당찬일이 당쾌풍의 흔적과 족적을 따라 시전의 모서리를 돌았다.
쿵!
‘저자!’
그 특징 없는 중년인이다!
모서리의 끝에서 여유롭게 사라지는 중년인은 분명 동혈의 그가 맞다!
‘쾌풍은?’
없었다.
다행히도 미행에 실패했는지 중년인의 근처에서 그를 발견할 수는 없었다.
‘다행이다.’
그렇다면 저자를 미행해야만 한다.
‘저자는 당숙정과 동행할 때도 만났고, 시신들을 쌓아 두었던 관아 뒤편의 동혈에도 있었어.’
저자는 이번 괴질 건과 관련성이 농후하다.
당찬일은 팔과 다리의 각반을 단단히 묶은 후 비천대 특유의 잠행술을 운용했다.
파앗!
적상구소법(迹象勾銷法).
비천대의 우두머리에게만 전해진다는 비기.
적상구소법이 발현되자 당찬일의 몸에서 흘러나오던 냄새가 점차 옅어졌다.
스슥―.
자신의 체취를 인위적으로 차단한 당찬일이 특징 없는 중년인을 반 장 거리를 두고 쫓았다.
‘오늘은 처음 모습이군.’
당숙정과 동행했을 때 잠시 조우했던 중년인은 악의로 똘똘 뭉쳐 있었다. 하지만 동혈에서 자신을 위협했을 때의 중년인은 이전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무감정했다.
그리고 오늘.
중년인은 다시 살기를 만천하에 흩뿌리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 건가?’
중년인의 살기가 너무도 역해 한참 뒤에 있는데도 당찬일은 가슴이 답답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중년인의 곁을 스치고 지나가는 이들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 눈치다.
‘알면 알수록 불가사의한 자다.’
뒤를 따르느라 당찬일은 무표정하게 걷던 중년인이 이따금 기분 나쁘게 히죽거린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대체 어디까지 가는 거야?’
중년인은 시전을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좌판과 객잔들이 밀집한 시장의 중심부로 진입했다.
‘누굴 만나러 온 건가?’
그렇다면 꼬리를 잡기 쉬워진다.
저자와 접촉하는 놈들 또한 공범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여러 생각들을 정리하며 뒤를 쫓던 당찬일은 판과 객잔들 그리고 행인과 손님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교차로에서 발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중년인이 그곳에 서 버렸기 때문이다.
* * *
“뒷동산 왕소군의 부친이라고 말씀하셨으면 오해가 없었을 텐데요.”
“왕소군의 아버지?”
걸음을 옮기면서 이서악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당쾌풍은 태연하게 이청하를 그리 부르게 된 연유를 설명했다.
“아비로서 기분은 좋구나. 하지만 지금은 내 마음이 조금 급하다.”
“무엇 때문에 그러시는지?”
당쾌풍의 물음에 이서악이 한숨을 내쉬었다.
“찬일이 때문이다.”
“재종에게 무슨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예감이 좋지 않아.”
행인이 많은 시장 한가운데에서 경공술을 펼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이서악과 당쾌풍은 빠른 걸음으로 당찬일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대체 이 아이는 어디로 간 게야?”
순간 당쾌풍이 어딘가를 지목했다.
“저기 보세요!”
* * *
씨익―.
중년인이 목만 돌려서 당찬일 쪽을 바라보았다.
더럽기 짝이 없는 미소.
중년인의 웃음은 조소 그 이상이었다.
오물이라도 한 바가지 뒤집어쓴 것만 같은 착각이 들어서 당찬일은 자신의 주변을 곁눈질했다.
‘발각된 건가!’
행인들 틈에 섞여 있어서 쉬이 눈에 띄지 않을 텐데도 중년인의 시선은 정확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찬일은 앞쪽의 사람 뒤로 붙었다.
피식.
중년인이 가소롭다는 웃음을 지었다.
콰릉!
그 순간 중년인에게서 막강한 돌개바람이 휘몰아쳤다.
“어이쿠!”
“이게 갑자기 웬 날벼락이야!”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머리를 부여잡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휘유우우.
강풍이 한바탕 휩쓸고 간 교차로에 반 장 거리를 두고 대치한 두 사람.
으드득.
‘쾌풍이 걱정 할 때가 아니었군.’
이렇게 된 상황이라면 결전을 피할 수 없다.
당찬일은 가볍게 몸을 이완시켰다.
동혈에선 생존이 우선이라 탈출부터 염두에 두었지만 오늘은 다르다.
내가 지닌 모든 살인술을 총동원해서 상대해 주마.
당찬일의 의지를 읽은 중년인이 입을 벌렸다.
씨익.
치아까지 드러내 가면서 히죽거리는 중년인은 인간 같지 않았다.
‘참…… 저 이를 모조리 뽑아 버리고 싶군.’
당찬일은 습관처럼 상체를 숙였다. 당찬일을 향해 손을 빙글빙글 돌리던 중년인이 곧 미간을 찌푸렸다.
―운이 좋군.
‘뭐?’
중년인의 사이한 미소가 처음과는 다른 색채를 띠자 당찬일이 긴장했다.
빙글!
하얗게 웃던 중년인이 손가락을 돌려서 가리킨 방향은…….
‘전각?’
중년인이 시전에서 가장 큰 이 층짜리 전각을 가리키자 의아해하던 당찬일이 저도 모르게 앞으로 나섰다.
‘이런, 미친!’
그 순간.
콰과광!
중년인이 손가락을 허공에서 반 바퀴 돌리자 이 층 객잔이 폭파되었다.
“으악!”
“아아악!”
건물의 잔해에 깔린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쏟아져 내리는 나무와 돌을 황급하게 피한 당찬일이 고개를 돌렸다.
사라졌다.
중년인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그가 머물렀던 자리는 가위로 오려 낸 것처럼 말끔했기에 당찬일이 입술을 깨물었다.
‘젠장.’
탄식하던 당찬일의 귓전에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내리꽂혔다.
“괜찮으냐?”
멀리서 달려오는 이서악과 당쾌풍을 발견한 당찬일이 긴장했던 몸을 이완시켰다.
“아, 예. 괜찮습니다.”
이서악이 황급히 다가와 그를 살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게냐?”
수수깡처럼 무너져 내린 객잔과 건물 잔해에 깔려서 신음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당찬일이 한숨을 내쉬며 중년인이 사라진 흔적을 찾으려 할 때 저 멀리 관원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비켜요! 비켜!”
사고 소식을 듣고 관원들이 몰려오자 이서악이 속삭였다.
“시국이 수상하니 관과 엮여 좋을 게 없지.”
사천성주가 괴질의 책임을 당문에 물은 상황이다.
이런 판국에 객잔이 붕괴한 현장에서 당문의 자제들이 발견되어 유리할 게 아무것도 없다.
“무리 지어서 이동하면 주위의 이목을 끌 소지가 다분하다.”
두 소년을 슬쩍 밀며 이서악이 속삭였다.
“흩어져서 돌아가거라.”
그날 저녁, 이서악을 만나기 위해서 동산을 오르던 당찬일은 그야말로 깜짝 놀랐다.
‘어떻게 저자가 이곳까지!’
저 앞에서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사내.
특징 없는 그 중년인이다!
이곳은 방비가 나름 엄중한 당문이다. 그런데 저자가 이곳까지 침입하다니!
상체를 숙이면서 전투태세로 전환하던 당찬일에게 문득 의아함이 떠올랐다.
‘이게 말이 돼?’
다시 말하지만 이곳은 당문이다. 이 말은 제아무리 대단한 고수라고 해도 몰래 숨어들 수 없는 곳이란 뜻이다.
무엇보다 특징 없는 중년인은 자신이 당문 출신이라는 것을 알 리 없다.
그렇다면 그는 어째서 당문의 뒷동산을 서성이는 걸까?
‘가만?’
냉정하게 마음을 가라앉힌 당찬일이 중년인을 세심하게 살폈다.
그러자 그제야 시선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하하하.”
넉넉한 웃음과 함께 천천히 몸을 돌리는 중년인은 틀림없이 이서악이었다.
“놀랐느냐?”
당찬일이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짓자 그를 의미심장한 눈길로 주시하던 이서악이 고개를 돌렸다.
“이제 나와도 좋다.”
“예, 아버님!”
유쾌한 목소리로 답하면서 당쾌풍이 풀숲에서 나왔다.
그런데…….
‘아버님?’
당쾌풍은 황당해서 눈살을 찌푸리는 당찬일의 어깨를 툭툭 쳤다.
“대협께서 왕소군 소저의 아버님이라고 하시잖아. 우리는 왕소군 소저와 비무까지 했던 사이니 대협을 아버님으로 모셔야 마땅하지.”
비무 당사자는 당찬일이었다. 당쾌풍이 한 일이라곤 쭈그려 앉아서 두 사람이 벌이는 비무를 감상한 게 전부일 뿐.
이런 경우를 두고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사람이 번다고 하던가?
당문낭군을 찜 져 먹을 친화력을 뽐내면서 당쾌풍이 이서악과 시전에서 만났던 경위를 이야기했다.
“대협을 특징이 없는 중년인으로 오인했다고?”
“그래, 시전에서 아버님은 네 말처럼 아무런 특징이 없으셨거든.”
가능하다.
조금 전에도 이서악은 아무런 특징이 없었으니까.
아니.
‘특징을 지운 건가?’
마치 자신이 적상구소법을 운용해서 고유한 체취를 몸 안에 가두는 것처럼.
“인구에 회자되는 감은 두 부류로 나뉜다.”
당찬일과 당쾌풍에게 번갈아 눈을 맞추면서 이서악이 말을 이었다.
“하나는 다가올 미래를 아무런 근거 없이 예측하는 주술적인 측면.”
이서악이 중지를 들어 올렸다.
“다른 하나는 지리, 음식, 인물, 기타 실존하는 대상을 일체의 정보 없이 판단 내리는 심상적인 측면.”
두 소년이 수긍의 빛을 보였다.
“네가 말하는 감이란 주술적인 측면은 아닐 테니 심상적인 부분일 테지.”
고개를 끄덕이는 당찬일에게 이서악이 뜻밖의 질문을 던졌다.
“특징 없는 중년인을 만났던 상황이 어땠더냐?”
당숙정과 정체 모를 인물들을 미행하다 우연히 한 번, 당쾌풍과 시신을 탈취하려 관아에 침입했다 우연히 또 한 번.
그리고 이번의 경우에도…….
‘특징 없는 중년인을 미행하려 자리를 비운 당쾌풍을 제지하려다가 다시 한 번!’
쿵!
그제야 이서악이 질문을 던진 이유를 깨달았다.
“우연인지 몰라도 너는 중년인과 만났을 때마다 지켜야 하는 사람이 있었지. 그래서 지켜야 할 대상에게 모든 신경을 집중시켰을 거다.”
파앗!
이서악이 공력을 일으켜서 조금 전처럼 자신의 특징을 지웠다.
“아!”
순간적으로 이서악이 특징 없는 중년인과 동일시되어서 당찬일이 몸을 굳혔다.
한쪽에 과몰입하면 다른 쪽이 허술해지는 건 당찬일이라도 어쩔 수 없다.
“어쩌면 너는 절박한 상황 때문에 대상을 합리적인 정보에 의존하기보다 단편적인 느낌만으로 받아들인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