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57
당문전생 (57)
십우회(十友會), 백마련(百魔聯) 그리고 천인총(千人塚)
파앗!
다시 검군으로 돌아온 이서악이 자상하게 설명했다.
“너는 두뇌가 명석하고 결단력도 뛰어나다. 거기다 책임감도 강하지.”
훌륭한 살수의 조건은 훌륭한 무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요건과 같다.
“이는 무인으로서 매우 좋은 자질이지만 자신을 과신하다 보면 때로 독선적으로 될 수 있지.”
“으음.”
“절정 이상의 고수들은 무공을 숨긴 채 일반인과 종종 어울리곤 한단다. 물론 사람들은 그의 정체를 알지 못하고 말이야.”
절대 고수들은 무생물인 검과도 하나가 되는 판국인데[劍身合一] 무엇이 불가능하겠는가.
“그래서 대협께서 특질을 지우고 찾아오셨군요.”
이서악은 당찬일과 당쾌풍이 시전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백문이 불여일견을 실행하기 위해 찾아다녔던 것이다.
하필이면 만남이 조금 틀어졌지만.
“그렇다면 제가 본 세 사람이 전부 다른 인물일 수 있다는 것이군요.”
“가능성의 문제다.”
달을 보면서 이서악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네가 만났던 이가 동일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 내가 직접 본 게 아니지 않으냐.”
이서악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어렸다.
“다만 충분히 그럴 수 있으니 너무 네 생각에 몰두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결이 같았습니다.”
당찬일이 반박했다.
“그들은 비단 특징이 없었을뿐더러 결까지 동일했습니다.”
“야, 아버님께 왜 토를 달아?”
당쾌풍이 손을 내젓자 당찬일이 쓰게 웃었다.
“어느 분의 안전인데 감히 토를 달겠나? 풀리지 않는 의문점을 여쭙는 거다.”
“말해 보아라.”
“필설로 설명하라면 힘들겠지만 그들 모두는 기질적인 면에서 유사했습니다. 아니…….”
입술을 깨물던 당찬일이 덧붙였다.
“같았습니다.”
“그래서 동일인이라고 확신했구나.”
당찬일이 답하지 않자 천천히 일어선 이서악이 연못에 유과 부스러기를 던졌다.
파다다닥!
떨어진 부스러기를 먹겠다고 몰려드는 잉어 떼를 가만히 지켜보던 이서악이 조금 멀리 유과를 던졌다.
파다다닥!
장소를 바꿔서 몰려드는 잉어들.
“뜻이 같으면 결마저 같아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유과 부스러기를 남김없이 연못에 뿌린 이서악이 몸을 돌렸다.
“한때 무림을 주름잡았던 십우회(十友會)나 백마련(百魔聯), 천인총(千人塚)이 그랬다더군.”
뭔가를 회상하던 이서악이 억지로 웃으면서 첨언했다.
“아무튼 고정관념에 빠지면 많은 걸 놓친단다. 반대로 고정관념을 깨트릴 때 얻는 것도 있다만…….”
하산하던 당쾌풍이 당찬일에게 물었다.
“왕소군의 아버님은 어떤 분이야?”
“갑자기 왜?”
“아니, 아까 왜, 재종이 어느 분의 안전 어쩌고 했잖아. 너무 존칭이라 놀라서 그러지.”
당찬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괜찮겠지.’
본인이 신분을 드러낸 것이니 당쾌풍에게 알려도 큰 문제가 아니란 뜻일 것이다.
“검군이야.”
“검군?”
순간적으로 눈을 크게 떴던 당쾌풍이 곧 심드렁한 어조로 입을 벌렸다.
“그렇군.”
당쾌풍이 무덤덤하게 답하자 당찬일이 속으로 감탄했다.
‘그렇군이라?’
충분히 놀랄 만한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재종의 정신적인 사부님이라면 무림사군자 정도는 되어야지.”
고개를 돌리면서 당쾌풍이 씨익 웃었다.
“안 그래?”
* * *
“그게 다야?”
괴질에 의한 죽음으로 추정되는 사망자들의 접점이 도박장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당호민의 표정은 시큰둥했다.
“그 이외에는?”
시신과 씨름하던 당호민이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로 묻자 당쾌풍이 생전 동선이 적힌 종이를 내밀었다.
“직접 봐.”
당호민의 대답은 야멸찼다.
“네가 읽어.”
“뭐?”
“지금 내가 그런 걸 읽을 여유가 있어 보이냐? 네가 읽으라고.”
당호민의 쌀쌀맞은 핀잔을 들은 당쾌풍이 저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아오, 요걸 그냥.’
당쾌풍이 당호민의 뒤통수에 대고 주먹을 흔들었다.
“다 보인다.”
“쳇!”
주먹을 내린 당쾌풍이 입을 마구 뻥끗거렸다.
“다 들린다.”
“속으로 욕하는데 뭐가 다 들려?”
당쾌풍의 항의는 나름 설득력이 있었지만 당호민의 우문현답과도 같은 한마디에 간단히 막혔다.
“욕이었군.”
“끄응.”
말로는 당해 낼 길이 없어서 당쾌풍이 머리를 긁자 당호민이 쌀쌀맞게 쏘아붙였다.
“나가.”
“조금 후에 뭔가 밝힐 수 있을 것 같다면서?”
“그러니까 나가.”
당호민이 얄밉게 덧붙였다.
“정신 사납게 하지 말고.”
동굴에서 쫓겨난 둘은 인근 나무 그루터기에 앉았다.
“아따, 전문 기술 하나 있다고 으스대기는. 내 진짜 더러워서…….”
당쾌풍이 말을 채 맺기도 전에 동굴에서 쏜살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더러우면 직접 하든가.”
“아니다, 아니야. 이놈의 입이 방정이다. 하던 작업이나 계속하세요.”
기다리기 지루했는지 당쾌풍이 하품과 기지개를 병행하면서 답답함을 대신했다.
반면 당찬일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이서악을 만난 후부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눈치였다.
“너무 걱정하지 마.”
당찬일의 태도를 근심의 표출로 받아들인 당쾌풍이 양손을 뒤로 짚었다.
“시간이 이틀밖에 남지 않았지만 저 친구라면 뭐든 알아낼 거야.”
그럼에도 당찬일의 표정은 좀처럼 풀어지지 않았다.
“정말로 괜찮다니까?”
당쾌풍이 너스레를 떨었다.
“저 녀석이 신경질을 부린다는 건 역설적으로 뭔가를 발견했다는 뜻이거든.”
당쾌풍이 키득거렸다.
“저놈이 쌀쌀맞고 인정이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따뜻하고 귀여운 면이 있다니…… 헉!”
신나게 주절거리던 당쾌풍이 귀엽다는 말을 뱉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또르르.
동굴 안에서 어른의 주먹만 한 둥근 물체가 두 사람에게로 굴러왔다.
“뭐지?”
구체를 집어 들고 요리조리 살피던 당쾌풍이 그것을 냅다 집어던졌다.
“폭탄이다!”
펑!
잠시 후.
봉두난발이 된 당쾌풍이 동굴을 향해 삿대질을 했다.
“이 무정한 놈아! 농담 좀 했기로서니 갑장을 골로 보내려 하냐?”
나름 타당했던 당쾌풍의 항의는 동굴 안에서 들려온 다음 말에 간단히 막혔다.
“다음 건 네 배야.”
뚝!
잠시 후.
입 꾹 다물고 반 시진이 넘게 기다리던 당쾌풍이 결국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해서 동굴을 향해 다시 삿대질을 하려고 손을 들었다.
“야! 이……!”
나름 분연했던 당쾌풍의 항의는 동굴 안에서 들려온 다음 말에 또다시 막혔다.
“들어와.”
“당연한 말이겠지만 일단 망자의 사인은 병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숨을 들이켠 당호민이 당찬일과 당쾌풍을 눈으로 슥 한번 훑었다.
“또한 독 때문도 아니야.”
자신이 검시한 시신을 내려다보면서 당호민이 단호하게 말했다.
“독이 아니라고? 너무 쉽게 단정 짓는 것 같은데…….”
당쾌풍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자 당호민이 어이없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쉽기는 개뿔! 내가 이 시신 하나에 며칠을 투자했는지 알고 하는 소리냐? 아, 집어치우고.”
손을 훼훼 저은 당호민이 시신을 뒤집었다.
“여기 시반(屍斑) 보이지?”
시반이란 망인의 생체 활동이 중지됨에 따라 흐르지 못하는 피가 시신의 피부에 일종의 멍처럼 얼룩을 형성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아용이의 부친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의 시체에는 시반이 뚜렷하게 형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뭔가 특이하지 않냐?”
“특이? 아!”
특이하게도 아용이 부친의 시반은 심장을 기점으로 마치 거미줄처럼 갈래갈래 퍼진 상태였다.
“이런 형태의 시반은 처음인데.”
당쾌풍이 뒷머리를 긁었다.
“나름 많은 시신을 봤지만 이런 식은 처음이야.”
당쾌풍이 상체를 앞으로 쑥 내밀어 아용이 부친의 시반을 살피다가 물었다.
“심장에서 피가 뿜어져 나와 이대로 멈춘 건가?”
“아닌 거 알지?”
당호민의 핀잔에 당쾌풍이 말도 안 되는 가정을 접었다.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심장이 내출혈을 일으켜서 급사했다고 쳐도 이대로 시반이 형성될 리는 없다.
심장이 멈추는 순간 혈류가 곧바로 굳어질 리는 없으니까.
당쾌풍이 뚱한 표정을 짓는데 이 광경을 뒤에서 지켜보던 당찬일이 한마디 툭 던졌다.
“반대였겠군.”
“뭐?”
고개를 뒤로 돌리면서 당쾌풍이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반응을 보였고,
호오?
하는 표정으로 당호민이 당찬일을 응시했다.
“반대라는 말 모르나?”
앞쪽으로 천천히 걸어 나온 당찬일이 시반의 중심, 다시 말해서 시신의 심장 부근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나오지 않았다면…….”
당찬일이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자 당쾌풍이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답했다.
“들어갔다. 아니, 들어가려 했다.”
“정답.”
손뼉을 치면서 당호민이 당찬일에게 다가섰다.
“혈액은 분명 심장을 향했거든. 그렇지만 모종의 이유 때문에 심장에 도달하지 못했어.”
당찬일을 곁눈질하면서 당호민이 피식 웃었다.
“단순한 역발상이지만 훌륭해.”
당호민의 시선이 이번에는 벙쪄 있는 당쾌풍을 향했다.
“어떤 바보랑은 다르게.”
“그래, 그래. 이 몸이 바보다. 됐냐?”
양팔을 벌린 당쾌풍이 턱을 긁었다.
“네 말대로라면 사인은 심장에 피가 전달되지 못해서라는 거냐?”
“아마도.”
“심장에 피가 가지 못해서 죽었다. 좋아. 그거랑 독살이 아니라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
당쾌풍이 묻자 당호민이 거미줄 형태의 시반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시반이 너무 뚜렷하잖아.”
“음?”
“보통 시반은 일고여덟 시진부터 열두 시진 사이에 가장 선명하지. 그런데 지금은?”
당호민이 짧게 이었다.
“망인이 사망한 지 이미 닷새 이상이 지났지.”
“그럼 이건 통상적으로 생긴 시반이 아니란 소리야?”
당쾌풍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당호민이 또 하나의 문제를 제기했다.
“그리고, 괴질로 숨을 거둔 사람들은 하나 같이 오후에 사망했다고 하더라?”
“어.”
“제아무리 뛰어난 용독술을 지닌 사람이라도 그 많은 사람들을 원하는 시간에 죽일 수는 없어.”
당연하다.
사람은 저마다 체중이 다르고, 생활 습관이 판이하며, 섭취하는 음식도 제각각이다.
“극독은 체내에 흡수되자마자 즉시 퍼져서 희생자를 죽음에 이르도록 하지. 하지만 그렇지 않은 독들은 체중이나 식습관, 생활 습관에 따라 작용 시간이 다르다고.”
“맞아.”
당쾌풍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극독이 아닌 이상 독은 작용하는 시간을 맞출 수 없다는 뜻이 되지.”
독은 통상적으로 체중이 더 나가는 사람보다 덜 나가는 이의 몸에 빨리 퍼지는 법이다. 또한 중독된 이의 활동량에 따라서도 차이가 난다.
온도나 습도도 마찬가지다.
이런 여러 가지의 가변 변수가 엄존함에도 불구하고 괴질에 의한 사망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오후 시간에 숨을 거두었다.
“절대 독에 의한 것이 아니야. 이런 말도 안 되는 용독술은 우리 당문에도 없다고.”
“끄응.”
당호민의 추론은 지극히 타당해서 당쾌풍이 팔짱을 끼고 눈을 좌우로 굴렸다.
“혹시 고독(蠱毒)에 의한 살인은 아니었을까?”
기발한 생각을 해냈다는 듯 당쾌풍이 눈을 번뜩였다.
“고독?”
“그래. 고독.”
“고독이라, 고독.”
“독고 가운데서는 인체에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놈들도 있잖아! 거기다 원하는 시간에 발작시킬 수도 있으니 충분히 가능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