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6
당문전생 (6)
왜 멋대로 정하는 거야!
자신의 기세를 순식간에 무력화시키며 중년인이 머리를 내밀자 흠칫 놀란 당찬일이 뒤로 몸을 뺐다.
그러거나 말거나 중년인은 당찬일이 작성한 종이를 들었다.
“《하독처 교본》이라, 나이답지 않게 조숙하군. 공부라도 하는…… 음?”
《하독처 교본》과 당찬일이 적은 종이를 비교하던 중년인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걸 정말로 네가 수정했다고?”
그럼 이 자리에 나 말고 누가 있소?
……하는 표정으로 당찬일이 자신을 뻔히 쳐다보자 중년인이 뒷머리를 긁었다.
“허, 이건 독과 하독 방법을 일정 수준 이상 파악하지 못하면 잡아낼 수 없는 부분인데?”
당찬일이 누구인지, 지금 무엇을 하는지, 물으려던 중년인이 생각을 바꾸었다.
이 순간 그에게 꼬마의 정체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년인은 지독하도록 권태로운 일상에서 자신의 흥미를 끌 만한 대상을 발견했기에 꼬마가 뉘 집 자식인지는 관심 밖이었다.
“어디.”
당찬일 옆에 퍼질러 앉은 중년인이 《하독처 교본》을 읽으며 혀를 끌끌 찼다.
“이거 대체 어느 놈의 머리에서 나온 거야? 아주 개판이 따로 없구먼!”
그놈, 전데요.
“뭐가 이리 대강대강이야? 맺고 끊는 맛이 전혀 없고 전부가 두루뭉술하잖아. 어느 놈인지는 몰라도 무책임하기 짝이 없군!”
울컥!
이건 어디까지나 대필한 박가 놈 문제라고요!
당찬일이 기가 막혀서 반박하려다 곧 어깨를 늘어트렸다.
열받아 봐야 뭐 하겠는가. 누가 보더라도 교본은 저자의 잘못이라 여기지, 대필자가 제멋대로 받아 적었다고 생각할 리가 없다.
“아무튼 전부 엉터리야.”
입을 삐죽 내밀던 중년인이 대견하다는 듯 당찬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완전히 개판인 교본을 손수 수정하다니. 정말로 대단하구나.”
“그런가요?”
“그럼. 나도 너만 한 늦둥이 딸내미가 있는데 그 아이는 몸 쓰는 것에만 주력하느라 이쪽엔 관심도 없단다.”
툴툴거리는 인자한 인상의 멋쟁이 중년인을 곁눈질하던 당찬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다?’
분명 중년인과는 초면인데.
‘왜 이리 낯익지?’
그렇다. 처음에는 경계하느라 의식하지 못했는데 대화를 나누며 천천히 관찰하다 보니 중년인이 너무도 낯익어서 당찬일이 당황했다.
‘뭐지? 전생에 이 사람과 조우한 적이 있나?’
당찬일은 전생을 모두 기억한다. 물론 갓난아기 시절은 제외하고.
언제 누구를 만났으며, 어떤 청부를 받았는지, 청부 대상이 누구였는지.
심지어는 돈 없이 전전하던 시절, 공짜로 탕 한 그릇을 내밀었던 아낙의 넉넉한 목소리까지 생생하다.
그 모든 기억을 돌려 봐도 중년인의 자취는 없는데 너무도 낯익으니 미칠 노릇이다.
‘누구지? 대체 누구였더라?’
오만상을 찌푸리는 당찬일이 귀여웠는지 그의 머리를 한 차례 더 쓰다듬은 중년인이 아예 교본을 펼쳐 놓고 분석하기 시작했다.
‘이 사람!’
중년인은 해박했다.
당문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독이며 암기에 관한 지식이 남달랐으며 독을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방법까지 능숙했다.
‘대체 누구야, 이 사람?’
이전과는 또 다른 호기심이 일어나서 당찬일이 중년인을 뜯어보았지만 끝내 그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오후 내내 당찬일과 하독처의 엉터리 교본에 관해서 토론하던 중년인이 짙게 드리우는 노을을 벗 삼아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아, 간만에 유쾌했다. 내일 또 보자.”
멋대로 약속을 잡고 중년인이 뒤돌아서자 당찬일이 손을 들었다.
“저, 저기요.”
왜 멋대로 정하는 거야!
* * *
“식객(食客)이라고요?”
저녁상을 마주한 당찬일이 당인의 설명을 듣고 눈동자를 위로 모았다.
“그렇단다, 아마도 그런 분이라면 특사 격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입맛이 없는지 젓가락으로 반찬을 뒤적이던 당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주님이 맹상군(孟嘗君)을 흠모하신다는 건 당문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단다.”
맹상군은 전국시대를 대표하는 사공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식객을 많이 두고, 그들 가운데서 인재를 등용하기로 유명했다.
“본래 맹상군은 식객을 대사(代舍), 행사(幸舍) 그리고 전사(傳舍)로 구분했는데, 여기에 가주님께선 특사(特舍)라는 상위 계급을 하나 더 두셔서 총 네 부류로 나누셨지.”
아예 젓가락을 내려놓은 당인이 부연 설명했다.
“대사에겐 외출 시 말을 내어 주고, 고기반찬을 대접하며 두 사람이 한 객실을 쓰게 한단다. 행사에겐 말이 제외되며 네 명이서 한방을 쓰게 하고.”
최하 부류인 전사는 머슴과 같이 먹으며 열 명이 한 방을 사용한다고 했다.
“여기까지는 맹상군과 동일하지만 특사는 완전히 다르단다. 이분들에겐 말이 아니라 네 필의 말이 끄는 마차가 제공되며 독채까지 주어지지.”
대사는 그들 모두가 맹상군을 대신할 만하다고 부를 수준의 인재였다. 행사는 다행히 모든 일을 맡길 수 있다는 정도였다.
마지막 전사는 그저 심부름이나 시킬 수 있는 말 그대로 잡일꾼이었다.
그리고 특사라는 건, 인재 중에서도 최고의 인재라서 천하의 당과로조차 귀히 여기는 인물이란 뜻이다.
“특사가 몇 분인지, 어떤 분들인지, 거처가 어디인지, 이 모두는 가주님과 그분들을 보필하는 시종들밖에 모른다. 철저하게 비밀이지.”
‘비천대를 운영하는 방식과 동일하군.’
당찬일은 비천삼대의 대장이었다. 하지만 그는 삼대원 이외의 다른 비천대 사람들과 접촉할 수 없었다.
철저한 점조직, 그것이 바로 비천대였다.
하여 당찬일은 비천대가 최하 세 개의 부대로 존재할 거라는 짐작을 했지만 당과로란 인간을 알면 알수록 이마저도 사실이 아닐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일부러 삼대라고 명명했을 뿐, 사실 비천대란 유평월이 이끄는 조직 하나만 운영됐을 수도 있다. 또한 반대로 열 개 대대가 넘을 가능성도 농후하다.
이것이 바로 당과로의 용병술이었다.
특사도 마찬가지.
한 사람일지도 모르고 백 명이 넘을 수도 있다.
아니…….
특사란 대외적인 과시용에 불과한 허울이고, 단 한 사람도 없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 모두는 가능성의 문제다.
‘그래서 그 사람이 딸에 관한 이야기를 했나?’
독채 없이 타인과 공동 공간에서 생활하면 딸과 함께할 수 없다.
단기간이라면 모를까.
그런데 초면인 중년인이 왜 이리 낯익을까?
‘십삼 년 전에도 특사였다면 오가다 한번 마주쳤을지도 모르지.’
당문이 천하제일가로 우뚝 서게 된 것엔 수많은 요소가 있었겠지만 오천 명이 넘는 식객 관리도 한몫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거기다 무림의 거물이자 괴물이라는 당과로가 인정해 마지않는 특사가 진정으로 존재한다면?
‘당과로, 알면 알수록 무섭군.’
* * *
다음 날, 무엇에라도 이끌린 듯 뒷산 언저리로 나온 당찬일이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림이 따로 없네, 그림이 따로 없어.’
고즈넉한 시선으로 멀리 떠가는 구름을 응시하며 웃음 짓는 중년인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신선놀음하듯 간간이 미소를 띠며 경관을 감상하던 중년인이 돌연 칼을 빼 들었다.
촤앙!
‘원래 검사(劍士)였나?’
그랬을지도.
또한 중년인은 칼, 다시 말해서 검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지라 선계에서 하계로 잠시 유람 온 검선(劍仙)이란 호칭이 딱 들어맞을 정도였다.
가볍게 검을 돌리던 중년인이 유려한 동작으로 검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인지로(仙人指路)?’
검법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선인지로 정도는 당찬일도 익히 아는지라 그는 중년인의 검로를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그 뒤로 팔방풍우(八方風雨), 독사출동(毒蛇出洞), 천왕탁탑(天王托塔)…….
모든 무학의 요체이자 기본적인 수법을 중년인이 검으로 표현했고, 초식들이 너무 기초적인 것들이라서 약간 지루해진 당찬일이 입을 툭 내밀었다.
‘뭐야, 결국 화권수퇴잖아?’
꽃과 같은 주먹질이요, 아름다운 발차기[花拳秀腿]라.
한마디로 보기엔 좋지만 실전적인 위력은 전무한 무공을 비웃는 표현이 바로 화권수퇴였다.
중년인의 검법이 딱 그 짝이라 모양새는 그럴듯했지만 실전적인 쓰임새를 갖춘 초식이 아니라서 당찬일이 점점 흥미를 잃었다.
보기 좋은 떡이라고 해서 모두 먹기 좋은 건 아닌가 보다.
이때…….
스팍!
봄날 햇살처럼 따사로워서 다소 답답하고 느린 감이 있던 중년인이 발끝으로 힘차게 지면을 찍으며 몸을 돌렸다.
쿠르릉!
완전히 돌변한 분위기!
지금까지는 미풍에 불과했지만 돌연 광풍으로 변한 중년인이 검첨을 허공에서 빙글 돌렸다,
‘어? 어?’
온화하기만 하던 중년인이 태풍처럼 검을 몰아치자 사방에 흡사 먹구름이라도 드리워진 듯한 착각이 들며 장내는 그의 지배하에 놓였다.
그리고 중년인의 다음 초식이 거짓말처럼 당찬일의 눈앞에 펼쳐졌다.
‘저게 저런 무시무시한 초식이었어?’
당찬일의 전생 직업은 살수였지만 틈틈이 정상적인 무학도 익혔다.
그러다 절정의 직전 단계에서 반드시 거친다는 심중안을 겪었다.
타인이 펼치는 무학을 몸으로 감당하기 전에 정신적으로 상대한다는 심중안.
그런 견지에서 중년인이 쏟아 내는 초식의 다음 동작을 떠올린 당찬일이 무의식중에 그와 맞서기 시작했다.
‘다음엔 저자가 내 오른쪽을 파고들려 한다. 이때 나는 허공으로 솟구쳐서 비룡번신의 수법으로 몸을 뒤집고 그 여세로 저자의…….’
“후우.”
한바탕 몸을 풀고 개운해진 중년인이 검을 갈무리하며 기를 다스렸다.
“아아, 시원…… 음?”
칼집에 검을 넣던 중년인이 눈을 감고 오만상을 찌푸리는 소년을 발견했다.
“약속대로 왔구나.”
약속은 개뿔, 그건 어디까지나 일방적인 통보였다.
뻔뻔스레 웃음 지으며 말을 걸려던 중년인이 당찬일의 입에서 새어 나온 말을 듣고 몸을 굳혔다.
“이때 저자의 검이 사선으로 그어지고, 난 가까스로 피하, 피하…… 제기랄, 저자의 내리긋기를 피하려면 나려타곤(懶驢打滾)밖에 방법이 없잖아!”
쿵!
‘서, 설마?’
중년인은 다양한 재주를 지닌 사람이었지만 그중에서 검으로 일가를 이룬 인물이다.
하여 그는 상대방의 말만 듣고도 대략적인 그림을 그릴 수준은 되었다.
‘정말로 이 꼬마가 나의 변용위접(變蛹爲蝶)을 봤다는 말인가? 오늘은 펼치지도 않았는데?’
변용위접은 중년인의 위대한 검식을 이루는 하나의 변초로서 번데기가 변하여 나비가 된다는 이름처럼 변화무쌍한 수법이다.
하여 일단 변용위접이 펼쳐지면 상대방은 화려한 변초를 감당하지 못하고 무릎을 꿇어야만 한다.
그나마 변용위접을 피하려면 땅에 몸을 내던지는 나려타곤(懶驢打滾)으로 피해 낼 수밖에 없다.
중년인이 의혹의 시선을 보내든 말든 당찬일은 심중안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건 정말…… 도저히 피할 수가 없구나. 하아!”
털썩 주저앉은 당찬일이 허탈한 탄식을 늘어놓았다.
살수 유평월이었던 시절, 그는 강호 사십삼 위의 고수까지 암살했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한다면 그는 대략 삼십 위 안팎의 고수라도 죽일 자신이 있었다.
물론 기습한다는 전제하에.
하지만 중년인은 달랐다.
아무리 기습한다고 하더라도 당찬일은 중년인을 이길 방법을 찾지 못했다.
‘이건 말도 안 돼!’
분명 자신은 그의 투로를 뻔히 볼 수 있다.
거기다 부지불식간에 기습을 하는 데도 중년인은 언제, 어느 시점에서, 어떤 공격을 받더라도 공격을 방어하며 역습한다.
이게 말이 되는가?
“아니지.”
곧 당찬일이 사악한 미소를 머금자 그의 양쪽 관자놀이에서 가상의 뿔이 솟아났다.
“살짝 치사하지만 뒤로 밀리는 척을 하다가 냅다 산공분을 뿌리는 거야. 물론 저 인간은 내공이 심후해서 당하지 않겠지만 연막 효과 정도는 기대할 수 있으니 그 틈을 이용해서 뒤로 돌아 들어가면…… 어?”
신이 나서 주절거리던 당찬일이 문득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