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62
당문전생 (62)
자꾸만 나타나서 미안하구나
보부상 청년이 앞뒤 없이 물었지만 당찬일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했다.
“심문을 받기 위해서 관아에서 기다리는 경우는 흔합니다. 하지만 일정한 인원이 정해진 뇌옥에서 대기하다 심문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요.”
당문 식구들은 흠차대인의 실종 건 때문에 관아에 불려 갔다.
그들은 커다란 공터에서 모여 있다가 일정 시간이 되면 서너 명씩 정해진 뇌옥으로 호출되어 한 식경 정도를 기다려야만 했다.
그러다 나졸들이 호명하면 간단한 질문을 받고 귀가했다.
“그래서 뇌옥의 누군가에게 우리 당문의 식구들을 하나씩 대면시키려는 것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물론 당문 식구들이 서너 명씩 짝을 지어 대기했던 뇌옥은 당찬일이 보부상 청년을 처음 만났던 곳이었다.
“그것만으로 나의 정체를 파악했다? 좀 부족하지 않나?”
당찬일의 추리는 합리적이었지만 보부상 청년은 미진했는지 계속해서 추궁조로 물었다.
“오리 다리.”
당찬일의 어조는 한층 더 무심해졌다.
“사천 사람이 아니면 사천식으로 조리된 오리를 먹지 않을 수도 있겠죠. 아무리 산해진미라 해 봐야 제 입에 맞지 않으면 그만이니까요.”
그런데?
보부상 청년이 눈으로 묻자 당찬일이 따박따박 답했다.
“당문 식구 중에서 처음으로 뇌옥에 불려 간 사람이 장씨 삼부자였고, 그때가 유시(酉時)였지요. 그리고 저희가 뇌옥으로 불려 간 시간은 사시(巳時). 대략 여덟 시진은 흘렀다고 봐야겠네요. 그때까지 오리 다리는 조금도 손을 타지 않았더군요.”
당찬일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을 이었다.
“무려 여덟 시진 동안 말이지요.”
시장이 반찬이라고 했다.
아무리 입에 안 맞더라도 배가 고프면 일단 조금이라도 먹게 되어 있다는 뜻이다.
허기엔 장사가 없으니까.
뇌옥에 오리가 나온 것도 이상했지만, 그걸 하루 종일 입에 대지도 않는다?
“한 명이라면 그렇다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그곳엔 사람이 꽤 있었죠.”
당찬일은 머리를 잠시 긁적이다 하늘을 보며 말했다.
“그곳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정말 경극단원들이었거나 물건을 팔러 다니는 장사치들이었다면 오리는 뼈도 남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간이 세건 향이 강하건 굶주림을 이기긴 어려우니까요. 하지만 아무리 허기가 지더라도 이런 음식을 못 먹는 분들이 있습니다.”
당찬일이 보부상 청년을 힐끔거렸다.
“자신이 곧 나갈 걸 아는 사람들. 훈련도 되어 있겠죠. 거기다 경사의 달달한 음식에 익숙할 테니, 굳이 그걸 먹으려 하지 않았을 겁니다. 입에도 맞지 않는데, 하루 정도는 굶고 말 테지요.”
당찬일을 빤히 쳐다보던 보부상 청년이 또 한 번 선한 미소를 머금었다.
억지로라도 먹었어야 했나.
독백처럼 힘없이 중얼거린 보부상 청년이 자신의 허벅지를 두드렸다.
“맞아. 나는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서 이곳으로 파견된 흠차관(欽差官)이란다.”
“그렇군요.”
남들이 들으면 세 번은 까무러칠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보부상 청년이 몸을 틀었다.
“왜 너를 선택했느냐고 물었지?”
당찬일이 고개를 끄덕이자 보부상 청년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네가…….”
파아앗!
갑자기 일변하는 분위기!
보부상 청년은 지금까지의 선한 인상을 날려 버리고 엄청난 박력을 뿜어냈다.
과연 저 여리고 부드러운 몸의 어디에 저런 힘이 숨어 있던 걸까?
“나와 동류(同類)로 보였거든.”
당찬일의 눈매가 가늘어지자 보부상 청년이 손을 휘저으며 다시금 빙긋 웃었다.
마치 조금 전의 압박감은 잊으라는 듯.
“네 말처럼 나는 당문의 구성원들 중 거동이 불편하거나, 아주 극소수의 인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을 만났다.”
그렇겠지.
“솔직히 말하면 대소신료들도 그렇고, 나 역시 당문과 이번 역병이 무관하다고 본다. 그러니 실상 내가 당문의 사람들을 직접 대면할 이유는 없다고 할 수 있지.”
또 사천성 인근에서 받은 습격 또한 당문이 벌인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당문 사람들을 모조리 만난 이유는 오로지 하나.
“첩보가 있었단다.”
“어떤 첩보를 말씀하시는지요?”
잠시 고심하던 청년이 작심한 듯 입을 열었다.
“당문에서 도덕적으로 용인하기 어려운 실험을 자행한다는 것이었다.”
“흐음.”
“놀라지 않는구나?”
당과로는 필요하다면 비도덕적인 실험 정도는 서슴없이 벌일 수 있는 인간이라서 놀랄 것도 없다.
당찬일의 반응이 흥미로워 청년이 희미한 웃음을 베어 물었다.
“뭐, 설령 당문에서 정말 실험을 했더라도 가문 전체가 나서서 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말이야.”
당문은 매일같이 수많은 외부인들이 들고 난다.
그렇기에 이들 모두의 이목을 따돌리고 그런 실험을 감행하긴 쉽지 않다.
“얼마나 대단한 실험인지 모르지만 발각된다면 얻는 것보다 잃을 것이 많을 텐데, 무엇하러 그런 모험을 감행하겠니?”
당과로는 불확실한 미래의 이익을 위해 확정적인 이익에 손해가 될 행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느닷없이 퍼진 역병이나 나에 대한 습격 또한 당문과 관계가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당문에서 행해진다는 실험도 마찬가지였고.”
“그렇지만 동조자는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신 거군요.”
당찬일이 반문하자 잠시 하늘가를 올려다보던 보부상 청년이 느릿하게 고개를 돌렸다.
“당문의 후계 구도가 무척 복잡하다고 들었거든.”
끄덕끄덕.
“후계자의 지위에서 멀어진 사람이라면 가주의 눈에 들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으니까.”
후계자의 지위에서 멀어진 사람이라면 설마 당인? 아니라면 당문군주 당숙정?
이도 저도 아니면?
보부상 청년 추론은 일견 이해가 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말이 안 되는 가정이다.
“그렇다고 외부 세력을 끌어들인다는 건 쉽지 않을 텐데요? 아무리 대권에서 밀려난 사람이라도 자신의 가문을 상하게 하려는 조직과 손을 잡을까요?”
당찬일의 질문을 받은 보부상 청년이 신비로운 미소를 지었다.
선수끼리 왜 이래?
당찬일을 응시하던 보부상 청년이 오른쪽 어깨를 살짝 들어 올렸다가 내렸다.
“사천의 성도에서 암약하는 외부 세력의 목표가 과연 당문일까?”
“그럼……?”
“당문은 그들의 목표에 이르는 기착지(寄着地)에 불과하지 않을까?”
……네가 해 줄 일은 크게 세 가지란다.
첫 번째는 근자에 당문 내에서 일상적이지 않은 행동을 벌이는 이들에 대한 감시.
두 번째는 성도에 퍼졌던 역병의 조사.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관(官).”
“관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래.”
보부상 청년이 입술을 작게 벌렸다.
“이런 정도로 이상한 일은 관을 끼지 않고서는 불가능하거든. 사건을 해결하는 능력은 부족하지만 만들어 내는 것엔 탁월한 소질이 있는 게 바로 관이지.”
한마디로 일을 도모하려면 관을 끼고 벌여야 수월하다는 소리다.
“그럼 흠차대인께선 뭘 하십니까?”
“아하하하!”
이마를 짚으며 보부상 청년이 파안대소를 터트렸다.
“너한테만 모조리 맡기고 나는 탱자탱자 놀까 봐 그러니?”
보부상 청년이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나는 흠차관이란다. 단순히 역병만을 조사하려고 파견된 의원 나부랭이가 아니야.”
흠차관은 황제의 뜻을 대리하므로 한시적으론 황제라고도 볼 수 있다.
“나는 나대로 할 일이 있단다.”
그 할 일이 뭘까?
“안심해. 농땡이는 아니니까.”
자리를 털고 일어서며 보부상 청년이 지나가듯 덧붙였다.
“그리고 이것.”
“아니, 이건……?”
당찬일이 자기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린 채 물었다.
“관을 조사해 달라고 부탁했잖아. 이 정도는 있어야지.”
당찬일은 속으로 한숨을 내뱉었다.
* * *
전날의 일을 대충 둘러댄 당찬일이 당호민과 당쾌풍을 데리고 이행행의 거처로 향했다.
“귀하디귀한 당문의 소공자님께서 이런 누추한 곳엔 어인 일이시우?”
이행행이란 자는 깡마른 체격과 염소수염 그리고 좌우로 쉴 사이 없이 눈동자를 돌리는 소인배의 전형이었다.
이런 사람이…… 파의화타라고?
“지난달 신상사의 대곽 스님을 검안한 사람이 이 의원 맞습니까?”
당호민이 묻는 순간 당찬일이 이행행에게 달려들었다.
퍽! 퍽! 퍽!
“사람 살려! 대체 왜 이러십니까요!”
당찬일은 일언반구 대꾸도 없이 주먹세례를 퍼부었다.
“야, 야! 말로 해!”
“그래, 말로 차근차근!”
날뛰는 그를 말리려던 당쾌풍과 당호민의 귓전으로 얼음장 같은 투화가 떨어졌다.
―손대지 마!
―음?
―그를 보호하는 중이다.
쿵!
‘이행행을 보호해?’
누구에게서?
당찬일에게서 투화를 들은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그가 던진 이야기의 의미를 헤아리다가 충격적인 사실을 깨닫고 다시 한 번 놀라야 했다.
―혹시 너도 들었냐?
이 말인즉슨…….
다중투화(多衆偸話)!
투화도 일종의 전음이다. 아니, 투화는 보통의 전음보다 고급의 수법으로 봐야 한다. 그렇기에 투화를 구사하는 것만으로 이류는 넘어서는 고수 소리를 듣는다.
타인과 몸싸움을 벌이면서 투화를 날리는 것도 대단한데, 두 사람에게 보냈다면?
―이제 재종이 조금은 무섭다.
당호민은 입술을 우그러뜨렸고, 당쾌풍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비단 두 사람은 당쾌풍이 다중투화라는 상승의 절예를 구사했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이리 놀라는 건 아니었다.
그걸 물으려고 하는 순간, 이행행의 거처로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촤르륵!
“그자를 놔둬!”
“누구냐!”
창문을 부수며 들이닥친 사람과 당쾌풍이 격돌했다.
쾅!
“큭!”
동시에 뒤로 물러선 둘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서로 맞서서 버티는 두 사람을 예리한 시선으로 살피던 당호민이 창문으로 머리를 들이민 사람을 감지하고 품에 손을 넣었다.
팍!
당호민의 행동을 눈치챈 창문 밖의 인영이 쇄도해 들어왔다.
“에잇!”
당호민이 위협용으로 사용하려던 독탄(毒彈)을 갈무리하면서 비도를 꺼내 인영의 공격을 막아 냈다.
까깡!
인영과 한차례 공수를 주고받은 당호민이 허공에서 빙글 몸을 돌렸다.
“뭐지?”
“음.”
당호민과 충돌한 사람은 비슷한 또래의 소년이었다.
‘이 정도 실력이라면?’
멋들어진 머리띠로 머리카락을 단정히 정리한 소년이 억눌린 신음을 내뱉었다.
“당문이냐?”
“맞아. 너흰?”
그걸 보며 당쾌풍이 고개를 모로 틀면서 불량스럽게 응대했다.
“어디서 왔는지 묻잖아, 아가씨?”
당쾌풍과 대적하던 소녀는 그 나이대의 여아들보다 신장이 한 뼘은 더 컸다.
“우리는 오대련(五代聯)이야.”
소녀의 말에 당쾌풍이 와락 인상을 구겼다.
‘빌어먹을, 오대세가 녀석들이 이곳엔 무슨 일이람?’
오대세가(五代世家)와 당문은 견원지간보다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오대련은 오대세가의 후기지수들이 모인 일종의 연합체다. 그 이름을 대뜸 말할 정도라면 이들이 자신의 세가에서 꽤 인정받는 이들이란 소리다.
“좋습니다. 오대련 식구분들.”
자신의 앞에서 눈을 똘망똘망하게 굴리는 소년을 주시하며 당호민이 물었다.
“이곳이 사천이란 사실은 알고 있겠지요?”
누가 뭐라고 해도 사천의 패자는 당문이다!
“아주 잘 알고 있지.”
창문에서 또 하나의 음성이 들려오자 당호민과 당쾌풍의 얼굴에 긴장감이 돌았다.
“이번엔 또 누구야?”
“순차적으로 나타나지 말고 한꺼번에 나와!”
신경질적으로 당쾌풍이 외치자 이에 반응하듯 궁장 머리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꾸만 나타나서 미안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