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66
당문전생 (66)
안목
피하는 당찬일을 따라붙으면서 조치목이 계속 그를 위협했다.
파박!
때론 위협적으로, 때론 부드럽게.
면장만큼이나 신법도 제법이라 조치목은 당찬일을 지근거리에서 계속 노렸다.
팍!
잽싸게 뒤로 물러선 당찬일이 거리를 유지하려고 애쓰자 조치목이 흉물스럽게 웃었다.
“우하하하! 도망간다고 해결될 성싶으냐?”
다시 들러붙은 조치목이 이번에는 위압적이면서도 날카롭게 당찬일을 압박했다.
그래서일까?
당찬일은 팔조차 뻗지 못하고 허덕일 뿐, 좀처럼 수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러지 말고 지금이라도 곽 공자에게 사과하지 그러냐? 그럼 손을 거둘 텐데.”
“안 되오! 저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에게 반드시 정의의 응징을 내려 주시구려!”
곽구가 펄펄 뛰자 조치목이 양팔을 살짝 들어 올렸다가 내렸다.
“불행히도 저렇다는구나.”
피식 웃은 조치목이 손을 뻗는 순간, 당찬일이 기습적으로 한 걸음 나섰다.
움찔!
화들짝 놀란 조치목이 급히 뒤로 물러섰다.
‘역시 이 정도인가?’
확실히 괜찮은 실력을 가진 면장이었지만 임기응변에서의 부족함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 정도 실력이면 근방에서 누구도 쉬이 보지 못했을 테니 그간 자신의 실력 죽은 걸 모른 채 살아왔다는 반증이다.
더군다나 당찬일은 오래전 정말 면장의 고수와 싸워 봤던 경험이 있었다.
당시 그는 밀명을 받고 무당에 잠입했다가 빠져나오는 길에 어느 노도인에게 들켰다.
놀랍게도 그 노도인은 당찬일을 붙들기는커녕 자신과 손을 섞으면 소란 없이 보내 주겠노라는 약속을 했다.
노도인이 소리라도 지르면 당장 무당의 차디찬 뇌옥에 투옥될 상황이니 별수 없이 그는 노도인과 대결하게 되었는데, 당시 노도인이 사용했던 무학이 바로 면장이다.
눈앞의 조치목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훌륭한.
당찬일은 그날을 떠올리며 또다시 뒤로 빠졌다.
“이, 이놈!”
이건 완전히 자신을 희롱하는 처사가 아닌가?
‘정말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이로구나!’
열이 오를 대로 오른 조치목이 지금까지의 신중함을 던져 버리고 일직선으로 달려들었다.
“버릇을 고쳐 주마!”
순간 당찬일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조치목의 장점. 즉, 면장의 장점은 부드러움 속에 있는데, 그의 마음이 급해진 순간 약점이 드러난 것이다.
빠각!
조치목은 자신이 당찬일을 잡았다고 생각했겠지만, 당찬일은 좌우로 가볍게 두 번 몸을 흔드는 것으로 그의 공격을 피했고, 동시에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조치목의 목 뒤를 내리쳤다.
조치목이 무릎을 꿇고 풀썩 주저앉았다.
“그럭저럭 쓸 만은 했는데, 너무 기본에 충실한 나머지 다른 것에 약점이 드러나는군.”
당찬일이 자빠져 있는 조치목을 굽어보았다.
“이유극강(以柔克剛)이 좋긴 하다만 선공에 쓰는 걸 모르고서야 어디 면장을 배웠다고 할 수 있겠는가?”
언젠가 무당의 노도인에게 들었던 말을 뱉으며 앞쪽을 바라보자 대기 중이던 조목파의 똘마니들이 광분했다.
“두, 두목이 당했다!”
“모두 나가서 저놈을 박살 내자!”
“이야야야아!”
잠시 후…….
“아! 아파! 아파!”
“그래도 여기를 찜질해야…….”
“아프다고, 이 새끼야!”
서로를 치료하기에 바쁜 조목 군단 사이를 누비면서 당찬일이 청부 내용을 들려주었다.
“우선 오석산이나 이와 비슷한 약의 유통에 관해서 알아볼 것. 대량이든 소량이든.”
오석산은 고가의 마약이므로 서민들이 음용할 수 없다.
“둘째로 호족 자제 놈들 가운데 급전을 요구했거나, 갑자기 돈을 물 쓰듯 하는 녀석을 찾으면 지체 없이 보고할 것.”
“그것이면 되는 건가?”
의뢰 액수에 비해서 청부 내용이 너무도 간단한지라 조치목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보고나 잘해.”
* * *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온 당찬일은 기이한 요구 두 가지를 동시에 받았다.
하나는 추 대인이 자신을 찾는 전갈, 다른 하나는 추 대인을 만났으면 한다는 서찰이었다.
“재미있군.”
첫 번째 전갈이야 당연히 추 대인 본인이 보낸 것이었고, 두 번째는 놀랍게도…….
“흠차대인이라.”
어쩌면 자신이 젊은 흠차대인을 잘못 판단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생각보다 조금 더 큰 사람일지도.
“남종석.”
“그렇습니다. 만석 갑부 남경만의 자식 놈이지요.”
추 대인은 조치목 패거리들이 시전을 들쑤시면서 급전을 필요로 하는 호족 자제를 수소문한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당찬일의 의뢰라는 걸 직감했다.
아울러 당찬일이 추원을 방문하지 않은 이유도 짐작했다.
“제가 돈을 빌려주면서 편견으로 사람들을 대할까 염려하신 게지요.”
추 대인이 빙그레 웃었다.
돈 놀음은 부자간의 정마저 끊게 만들 정도로 비정한 것이라 그 과정에서 조금의 삿된 감정도 깃들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당찬일은 추 대인에게 이러한 일을 상의하지 않았다.
사건은 사건이고, 중리는 중리니까.
“아무튼 얼마 전에 남종석이란는 놈이 무려 칠백 냥을 빌려갔더랬지요.”
“아무리 갑부 집 자식이라지만 그건 좀 센데?”
“그렇습니다. 남종석 딴엔 사업 자금이라고 떠벌이긴 했는데…….”
“사업?”
“예. 그래 봐야 주색잡기의 변명이라고 여겼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눈빛이 거슬립니다.”
“어땠기에?”
추 대인의 눈이 당시의 남종석처럼 묘한 빛을 띠었다.
“한탕을 노리는 놈의 눈빛이었습니다.”
“추 대인.”
“예.”
당찬일이 정색하자 추 대인이 절로 긴장했다.
“오늘 한 사람을 만나게 될 거야. 그 사람은 추 대인에게 거래를 제안할 것이고, 승낙 여부는 전적으로 추 대인이 결정해.”
“음…….”
침음하던 추 대인이 한 가지를 물었다.
“믿을 만한 사람입니까?”
당찬일의 답변은 걸작이었다.
“적어도 일부분에선 나보다 낫겠지.”
흠차관 청년의 제안을 듣고 추 대인의 입이 딱 벌어졌다.
어지간한 일에는 부동심을 유지할 자신이 있었던 그였지만 흠차관 청년의 제안이 너무 파격적인 탓이었다.
“원한다면 십팔 세 이상 남녀 모두에게 일 인당 두 냥을 대출해 주라는 거요?”
“그렇소이다.”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말이오?”
“지위나 신분 따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빙그레 웃으며 흠차관 청년이 덧붙였다.
“자금은 전적으로 내가 대겠소. 아울러 그들에게 추 대인께서 중리로 대출해 주었던 자금은 한 푼도 변동 없이 그대로라는 조건으로.”
미친 사람 아닌가?
어처구니없어서 자신을 멀거니 응시하는 추 대인에게서 눈을 뗀 흠차관 청년이 창가로 시선을 던졌다.
“중리 대출. 참으로 그럴듯한 실험이었어. 무척이나 흥미로웠거든.”
품에서 백지 전표를 꺼내서 숫자를 기입한 흠차관 청년이 탁자에 그것을 내려놓았다.
“십만 냥짜리 전표요. 금액이 더 필요하면 언제든지 당문 소년을 청하시오.”
전표를 내밀면서 흠차관 청년이 눈을 빛냈다.
“얼마든지 지원할 테니.”
“아, 아니…… 그, 그렇다면 두 냥에 대한 이자는 일절 받지 않겠다는 거요?”
“그렇소이다.”
그렇다면 무슨 수로 이문을 남기겠다는 소리인가?
“중리 이율을 조금 더 깎읍시다.”
“예?”
“지금 이 할을 받지요?”
“그런데요?”
“거기서 이율을 조금만 더 깎는다면 내가 자본의 반을 대겠소.”
쿵!
흠차관 청년이 희미하게 웃었다.
“그걸로 반씩 나눕시다.”
‘천재다.’
흠차관 청년과 추 대인이 말하는 것을 듣던 당찬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사람은 가능성이 있으면 최선을 다하는 법이다.
일단 등산(登山).
정상이 안 보이는 산의 허리에선 발걸음이 천근만근이지만, 봉우리가 살짝이라도 보일라치면 발에 날개로라도 달린 것처럼 가뿐하다는 착각을 느낀다.
빚도 마찬가지.
터무니없는 금액 앞에서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들기 마련이지만, 한두 달 열심히 일해서 갚을 액수까지 좁혀지면 밤을 낮으로 일하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생계가 유지되어야 하는데 이를 가능케 하는 금액이 두 냥이다.
‘생활과 저리 모두를 잡는 마법의 액수, 두 냥.’
흠차관 청년은 예사 사람이 아니었다.
배포 면이나 사업 수완 그리고 최소한의 애민 정신까지 갖춘 능력 있는 귀족임에 틀림없었다.
‘혹시?’
살짝 떠올렸던 가정을 머릿속에서 지워 버리면서 당찬일이 짧은 한숨을 토했다.
상상이 지나치면 망상으로 발전한다.
지금은 상상조차 사치.
현실에 충실하자.
* * *
T3T
“남종석이란 놈, 이상하긴 이상해.”
조치목이 코털을 뽑으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녀석은 분명 오석산을 하지 않아. 이건 확실하다고.”
남종석은 허름한 옷을 입지 않는다. 그렇다고 등산을 하지도 않았다.
“알다시피 오석산은 행산(行山)이라 하여 계속 걸어 다니면서 독기를 빼내야 하거든? 그런데 놈은 산 근처도 안 가.”
“남종석이 만나는 사람들은?”
“물론 행산에 열심이지.”
그렇다는 말은 남종석이 어디선가 오석산을 대량으로 사들여서 웃돈을 받고 팔고 있음이 분명했다.
상대는 물론 성도의 관리들이나 호족의 자제들일 테고.
“꼴에 또 패거리는 있어서 산넙치 애들이 녀석에게 붙었다더라고.”
산넙치라면 당찬일도 익히 아는 왈패들이었다.
이들은 대략 이십여 년 전부터 성도의 뒷거리에 파고들었는데, 만약 장삼과 그의 형제들이 없었다면 이곳을 장악했을지도 모른다.
“남종석이 접촉한 이들의 명단은 가져왔겠지?”
“여기.”
조치목이 내민 종이를 받아 든 당찬일의 눈썹이 우뚝 치솟았다.
‘그렇단 말이지?’
명단에는 성도의 치안을 책임지는 관리들이 다수 적혀 있었다.
“이대로라면 관에 고변해 봐야 중간에서 소위 사바사바해서 덮어 버릴 게 불을 보듯 뻔하다고.”
“흐음.”
조치목이 투덜거리는 이유야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는 가뜩이나 세가 강한 산넙치파 조직이 남종석의 지원까지 얻어서 더욱 강력해지는 것을 두고 볼 수만 없었던 거다.
“놈들은 건달도 아니야. 생판 양아치 놈들이라고.”
너희들도 도긴개긴이긴 마찬가지다.
“덮지 못하도록 유도라도 해야겠군.”
“뭐?”
“여기서부턴 내가 하지.”
명단을 접어서 갈무리한 당찬일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남종석이랑 산넙치 애들은 어쩌려고?”
“내가 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당찬일이 골목으로 사라지자 곽구가 조치목에게 다가왔다.
“정말로 저놈에게서 손을 뗄 거요? 작업에 들어간다면…… 내 돈을 더 올리겠소.”
조치목이 탄식처럼 중얼거렸다.
“이보시오, 곽 공자.”
비단 이 꼬마는 세상 물정을 모르는 정도가 아니라 사람 볼 줄도 모른다.
“공자도 곧 있으면 칼밥을 먹고 살 것 아니오?”
“그렇소이다만?”
“우리 같은 강호인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 무어라고 생각하시오?”
“그야 당연이 무…….”
“무공이라고 보시오?”
그럼 아니란 건가? 무림인에게 무학보다 중요한 것이 또 있단 말인가?
“무공보단 안목이오.”
“안……목?”
곽구가 뒷머리를 긁자 조치목이 두툼한 손으로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안목. 사물을 보고 분별하는 식별 능력.
“우리 같이 칼밥을 먹고 사는 강호인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바로 상대방이 지닌 힘과 능력을 가늠하는 눈썰미란 말이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