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7
당문전생 (7)
가끔 찾아오려무나
그곳에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중년인이 들어와서 당찬일이 잽싸게 가상의 뿔을 집어넣었다.
“핫!”
급히 일어선 당찬일이 안색을 싹 바꾸고 중년인에게 정중한 태도로 포권했다.
“오, 오셨습니까?”
“그래.”
고개를 갸웃거리던 중년인이 당찬일을 위아래로 훑었다.
언뜻 보기엔 유약하나 당돌한 눈매와 야무지게 다물어진 입술, 그리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몰라도 반짝이는 눈망울.
그냥 천상의 선동(仙童)인데.
‘방금 전의 사이한 분위기는 뭐지?’
고개를 갸웃거리던 중년인이 곧 쓰게 웃으며 당찬일의 인사를 받았다.
헛기운이나 느끼고, 요즘 몸이 허한가 보다.
“너도 오느라 수고했다.”
당찬일에게 손짓한 중년인이 그가 앉자마자 어제 못다 한 《하독처 교본》을 수정하는 데 매진했다.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러나 가끔 자신을 곁눈질하는 중년인의 눈망울에 기이한 색채가 일렁이는 걸 그는 미처 인지하지 못했다.
수정에 관한 토론 이외에는 어떠한 사담도 나누지 않던 두 사람이 한 단락을 마치고 숨을 돌렸다.
본래 저술보다 그것을 수정하는 일이 더 어렵다.
“시장하지?”
“예, 뭐.”
부스럭.
중년인이 보자기를 풀자 구운 오리 한 마리와 만두가 펼쳐져서 당찬일이 침을 꼴깍 삼켰다.
생각해 보니 아침뿐 아니라 점심도 걸렀다.
당연히 배가 고플 수밖에.
“들자꾸나.”
중년인이 권하자 감사를 표시한 당찬일이 만두 하나를 집으려 손을 들었다.
이때…….
스르륵.
우연인지는 몰라도 중년인이 그가 집으려던 만두를 먼저 잡았다.
꿀꺽!
당찬일이 뭐라고 항의하기 전에 만두를 삼킨 중년인이 감탄사를 연발했다.
“오! 이거 맛있구나! 어서 들어라!”
당찬일은 내색하지 않고 다른 만두로 손을 내밀었다.
스륵.
또 빼앗긴 만두!
중년인은 당찬일이 노리는 만두를 정확하게 선수 쳤다.
‘후! 이거 오랜만에 열받는걸.’
당찬일은 조금 미소 짓는 얼굴로 중년인을 바라봤다.
이거야말로 정말 어린아이를 놀리기에 좋은, 그런 수작 아닌가? 자신은 해 본 적이 없지만, 간혹 노고수들이 손자들을 대상으로 행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 당찬일이었다.
‘오른쪽 네 개는 포기하는 편이 좋겠어. 하지만 왼쪽은 내 쪽이 좀 더 가깝지. 일단 오른쪽을 노리듯이 움직이다가 세 번째 것으로 방향을 틀고, 그다음 왼손으로 이쪽을 노리자.’
거기에 적절한 속임수를 양념으로 묻히면 왼쪽 끝 두 개는 자신이 확보하리라!
분석을 마친 당찬일이 최대한 자연스레 오른쪽 만두를 집으려는 시늉을 했다.
스르륵.
역시나 다가오는 마수(魔手)…… 아니, 중년인의 손.
‘이번엔 내 그럴 줄 알았소.’
마음을 애써 감춘 당찬일이 돌연 손을 직각으로 꺾었다.
뚝!
떨어지듯 방향을 바꾼 당찬일의 손길!
이건 몰랐지, 하는 심정으로 당찬일이 만두를 집어 들려는 순간!
스르륵.
봄바람에, 걸어 둔 비단이 휘날리듯 중년인의 손이 유려한 변화를 보였다.
‘어?’
너무도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중년인의 손이 만두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이번엔 당찬일도 노리던 바가 있었다.
‘이번엔 아쉽게 내 승리요.’
몸을 반쯤 비튼 그대로 이번엔 자연스럽게 왼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순간, 가벼운 훈풍이 당찬일의 왼손을 휘감았다.
“제법 괜찮은 수이긴 했다만…….”
잠시의 밀림에 이어 당찬일이 노렸던 만두가 그의 손에 들려 있었다.
“조금 속이 보이더구나.”
만두를 우물거리며 중년인이 반쯤 비아냥거렸지만 당찬일은 더 이상 약이 오르지도, 분하지도 않았다.
그는 몇 번이고, 중년인의 손이 그려 냈던 궤적과 훈풍이 만든 방해를 되새길 뿐이었다.
‘이,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머릿속으로는 대략 그려지지만 직접 하라면 흉내도 못 낼 것만 같아서 당찬일은 수법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속도전이라면?’
당찬일은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동원해 손을 뻗었다.
스르륵.
이번에도 만두는 중년인의 몫이었다. 그렇지만 당찬일은 이제 만두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는 중년인의 손이 지나간 자취만을 계속해서 곱씹을 뿐이었다.
‘이렇게 했던가? 아니야, 이렇게?’
눈을 감고 중년인의 손이 그려 낸 궤적을 흉내 내며 당찬일이 미간에 주름을 잡자 이를 지켜보던 중년인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르칠 만한 아이로구나. 복잡하기가 하늘을 찌르는 구룡금나수(九龍擒拿手)를 저렇게 파악하다니.’
구룡금나수는 꽤 뛰어난 수법이지만 천하제일을 논할 무학은 아니었다.
하지만 삼류 무인들이나 익힐 정도의 저급한 무학도 아니라서 한 번 보는 것만으로 단숨에 체득하기 힘든 수법이 바로 구룡금나수였다.
그것을 당찬일은 한 번 보고 파악했으니 중년인은 적이 감탄했던 것이다.
눈을 감고 열심히 손을 놀리는 당찬일을 내려다보며 중년인이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이군.’
벌써부터 자신의 존재를 잊고 구룡금나수의 투로를 흉내 내는 것에 집중하는 소년.
‘이렇게 탐나는 아이는…….’
곧 땅거미가 그들을 야금야금 집어삼켰지만 당찬일은 자리를 떠날 생각이 없는지 계속해서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중년인은 그를 지켜 주듯 망부석처럼 서 있었다.
* * *
그때부터 둘은 같은 곳에서 매일 만났다.
거의 두어 시진을 만나 《하독처 교본》 수정에 열을 올리다 보니 불과 닷새 만에 완벽한 교본서를 만들 수 있었다.
꼬박 닷새를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중년인과 당찬일은 통성명조차 하지 않았다.
중년인은 자신을 소개하지 않았고, 당찬일도 첫날 이후 굳이 궁금해하지 않았다.
어쨌든 중년인이 자신에게 적의가 없다는 걸 알게 됐고, 도리어그와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은혜를 입었으니 차후 기회가 되면 갚으면 좋겠지만, 중년인이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굳이 갚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래. 너도 고생했다.”
잠시의 어색함이 물러나고 당찬일이 몸을 돌려 돌아가려는 모습을 중년인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참 이상한 소년이다.
고작 열셋, 열넷이나 되었을까?
어떻게 저 나이에 저런 놀라운 식견을 가질 수 있는 것일까?
함께 교본서를 정리하며 중년인은 수없이 떠오른 놀람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더욱더 오리무중에 빠질 뿐, 결국 해소는 되지 않았다.
거기에 저 침착함.
무엇 하나를 가르쳐도 차분히 단계를 밟아 간다.
아이가 가지고 있어야 할 특유의 산만함이 없다. 욕심이 없는 것도 아닌데 단계를 건너뛰고자 하는 들뜸이 없고 그 자리에 노력이 들어간다.
그래서 가르침 하나하나가 탄탄히 완성되어 간다.
‘이거 이대로 보내기가 너무 아쉽군.’
중년인은 고민했다.
무얼 가르쳐도 헛되이 쓸 아이는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자신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아이에게 무공을 전수해도 될까?
구룡금나수의 일부를 전한 것만으로 과한 것 아닐까?
그런 생각으로 망설이고 있을 때, 걸어가던 당찬일이 돌연 돌아섰다.
“후! 제가 너무 제 생각만 했군요.”
“응?”
당찬일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고절한 수법을 알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허리를 펴지도 않은 채 고마움을 표시한 당찬일을 향해 중년인이 손사래를 쳤다.
“무슨 고절씩이나.”
“그렇습니까?”
당찬일이 그에게 인사를 하고 몸을 돌리자 중년인이 미미하게 웃으며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
“이것 말고도 내게는 재미난 수법들이 많은데…… 어떠하냐?”
당찬일의 걸음이 우뚝 멈추는 것을 보며 중년인은 간신히 웃음을 참을 수 있었다.
“뭐, 관심 있다면 가끔 이 동산을 찾아오려무나.”
* * *
관심? 당연히 있다!
다만 중년인의 호의가 너무 과해 당황했을 뿐이다. 하지만 빚은 어디까지나 빚! 기회가 됐을 때 갚으면 된다. 당찬일은 못 이기는 척 다음 날에도 뒷동산을 찾았다.
물론 중년인은 넉넉한 웃음으로 그를 맞이해 주었고.
중년인이 전수해 주는 수법은 지금까지 배워 온 것들과 그 궤가 달랐다.
당찬일의 전생은 살수.
살수가 터득하는 무공은 기본적으로 상대방의 목숨을 취하는 걸 최우선으로 염두에 두기에 투로는 직선적이었고, 방식은 간단했다.
그래서 살수의 무공은 상대를 죽이는 면에서 놓고 본다면 효율적이고, 또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중년인의 수법은 달랐다.
중년인이 당찬일에게 알려 주는 수법은 무공(武功)이 아니라 무학(武學)이었다.
“오늘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만두 잡기가 아니라 다른 놀이를 하자꾸나.”
“다른 놀이요?”
“그래, 다른 놀이. 매일 같은 것만 하면 재미없지 않느냐?”
중년인이 당찬일에게 새로이 제안한 ‘놀이’는 명상이었다.
“이런 게 도움이 될까요?”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은 당찬일이 물었다.
“그럼, 되지.”
중년인이 조금은 웃음을 머금은 듯한 목소리로 답했다.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마음 수련이다.”
“…….”
마음 수련이라니!
이미 자신의 마음은 철로 된 벽만큼이나 단단하다. 굳이 이런 걸 할 필요는 없는데…….
또렷이 기억하는 전생 그리고 확실한 목표 의식으로 무장했기에 마음 수련 따위는 아무런 의미도 없지 않은가?
‘이럴 바에야 차라리 글을 한 줄 더 읽거나 당문의 직전 무공을 하나라도 더 익히는 편이 낫지 않을까?’
지금까지 받은 도움이 없었다면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을 터였다. 하지만 중년인의 체면이라도 살려 주자 싶어 한 시진이라도 참고 듣자는 심정으로 당찬일은 눈을 감았다.
어쨌든 배우겠다고 자청한 사람은 자신이니까.
“얼마나 이러고 있어야 하나요?”
침묵.
한 시진은 충분히 지난 것 같음에도, 중년인이 대답하지 않자 당찬일이 실눈을 뜨고 주변을 살피려는 순간!
“바다를 본 적이 있느냐?”
끄덕끄덕.
살수행을 나섰다가 우연히 바다를 보았다.
“그렇다면 파도는?”
역시 끄덕끄덕.
“어떻더냐?”
“그야…….”
“언어로 표현하지 말고 마음속으로만 그려라!”
중년인의 추상같은 엄명을 들은 당찬일이 말문을 닫았다.
파도라, 파도…….
광활한 바다의 한가운데서 여유를 즐기는 모습을 상상하던 당찬일이 곧 입을 떡 벌렸다.
“파, 파도가!”
금방이라도 자신을 집어삼킬 기세로 몰려오는 집채만 한 파도!
이런 건 무공으론 안 된다!
자신은 어디까지나 사람을 죽이는 데 특화가 되었을 뿐, 천하의 그 누구라도 자연을 거스를 수는 없다!
당황한 당찬일의 귓전으로 꿈결 같은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맞서려고 들지 마라.”
쿵!
“이기려고 들지 마라.”
그렇다면?
“자연에 순응하여 자연과 함께한다면 대자연은 결코 너를 해하지 않으리라.”
파앗!
“오늘도 감사했습니다.”
꾸벅 인사하는 당찬일을 환한 웃음으로 돌려보내려던 중년인이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아, 시간이 되면 행사와 전사 들이 머무는 별채를 방문하도록 해라.”
행사와 전사라면 당문의 식객 가운데 최하층을 일컫는다.
그런 곳에 기거하는 사람이라면, 그 수준이 결코 높지 않을 텐데…… 왜 굳이 그곳을 가라 하는가?
사람을 보라.
중년인의 가르침의 기본이 그곳에 있었다.
즉, 이번에도 다양한 인간 군상을 접하라는 중년인의 가르침이 아닐까 싶어 당찬일은 가볍게 웃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
당찬일이 종종걸음으로 하산하고 중년인만 남겨지자 어디선가 그윽한 음성이 들려왔다.
“요즘 저분께 푹 빠지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