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73
당문전생 (73)
드디어 왔나 보군
―나 대신에 누굴 좀 상대해 줘야겠다.
―누구를 말씀하시는지요?
―저절로 알게 돼.
―그를 어떤 식으로 상대하길 바라십니까?
―알아서 해라.
―좋습니다. 그럼 저는 이 거래로 무엇을 얻습니까?
―흐흐흐…….
당과로와 맺었던 ‘진정한 거래’가 생각이 나서 당찬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괴물 당과로가 저어하는 존재라.’
자신이 상대할 이가 대체 누구이기에 천하의 당과로가 피하는 걸까?
거기다 당과로 본인은 꺼리면서 자신에게 완전히 일임하는 태도라니.
‘내 마음대로 하라는 소리 아닌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귀빈석으로 간 당찬일이 당과로의 불참석에 관해서 이야기하자 귀에 익은 음성이 터져 나왔다.
“오오, 당문의 제삼 어전호위가 아니냐?”
말을 건넨 사람은 제갈외였다.
제갈외가 당찬일을 반갑게 부르자 다른 이들도 눈을 번쩍 떴다.
“제삼 어전호위?”
“성도부의 사건을 해결했다는 그 흠차대인의 호위?”
순간 귀빈석이 시끄러워지면서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당찬일을 보기 위해 얼굴을 쳐들었다.
“자자, 당과로, 그 친구가 몸이 좋지 않으니까 네가 대신 앉아라.”
“그래, 그래.”
“어서 앉아. 아, 앉으래도?”
오대세가의 가주들을 비롯해서 내외 귀빈들이 열심히 권하자 당찬일이 떨떠름한 웃음을 지었다.
“그럴까요?”
당과로의 지정석으로 마련된 곳에 당찬일이 어쩔 도리 없이 앉자 다들 비무 대회는 뒷전으로 미루고 그와 한마디라도 섞으려 들었다.
‘설마 무림 명숙들에게 나를 소개하려고?’
말도 안 된다.
이런 손쉬운 일로 천하의 당과로가 거래를 제안했을 리는 없다.
뭔가 더 거북살스러우면서 꺼림칙한 무엇이 자신을 기다리리라.
‘상대해야 할 사람이 만만할 리 없지.’
오대세가의 가주들 그리고 내외 귀빈들의 이야기에 영혼 없는 맞장구를 치며 당찬일이 연무장을 힐끔거렸다.
썰렁한 대회, 더 썰렁한 참가자들.
하지만 오대세가의 가주들과 내외 귀빈들은 당찬일에게 관심을 놓지 않을 뿐, 그렇다고 딱히 더 할 이야기를 만들진 않았다.
“그런데 어쩌다 흠차대인과 연을 맺게 되었나?”
본디 관과 무림은 서로를 침범하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서로를 소, 닭 보듯 한다.
그렇기에 당찬일이 열셋이란 어린 나이로 흠차대인의 눈에 들었다는 것은 충분히 관심을 끌고도 남을 사건이었다.
당찬일이 차분하게 대답을 이어 갈 즈음 반대편에 있던 사십 대의 중년인이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다른 무인들이 조심스레 자리를 내주었다.
그는 여타의 무인들과 다르게 유생처럼 문사건을 썼는데 강호인인데도 불구하고 썩 잘 어울렸다.
“나는 남궁천(南宮天)이라고 하네.”
중년인이 자신을 소개하자 당찬일의 미간이 좁아졌다.
‘남궁세가(南宮世家)의 가주.’
오대세가란 무림을 대표하는 다섯 개의 가문이지만 그것이 또 꼭 정해진 숫자는 아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그 당시 가문의 상태에 따라 오대세가에서 빠지기도 하고, 들어가기도 한다는 소리다.
하지만 안정적으로 들어가는 세 개의 가문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강남의 남궁세가와 섬서의 제갈세가 그리고 하북의 팽가였다.
일단 남궁세가는 오대세가의 우두머리 격인 가문으로서 안휘성의 천주산(天柱山)에 기반을 두고 있다.
어째서 안휘의 남궁세가가 아니라 강남의 남궁세가로 불리느냐 하면, 천주산은 양자강의 이남, 즉 중원의 강남 지방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궁세가의 뒤를 이어 섬서의 제갈세가는 촉한의 승상이었던 제갈량의 후손으로서 지략이 뛰어나고 권모술수를 잘 쓰는 가문이다.
오죽하면 그들을 신기제갈(神機諸葛)이라고 부를까.
다음으로 하북의 팽가는 빼어난 근골 덕에 타고난 신력(神力)을 바탕으로 하는 강건한 도법과 무거운 권법으로 이름이 높은 가문이다.
특히나 팽가의 오호단문도법(五虎斷門刀法)은 강호일절로 불리는 남궁세가의 철검십식(鐵劍十式)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 인정받는 도법이었다.
그리고 현재 오대세가를 이루는 나머지 두 세가는 산서(山西)의 신창양가와 산동(山東)의 악가(岳家)였다.
사실 이전까지 오대세가를 이끌었던 가문은 남궁세가라고 봐야 한다. 하지만 제갈세가에서 제갈외라는 탁월한 인물이 나타나 놀라운 지도력을 보이며 남궁세가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이어받았다.
그것이 지금으로부터 이십여 년 전의 일이었다.
“자네의 등장으로 저 영재들이 오리 알 신세가 되었어.”
남궁천이 무덤덤하게 말하자 당찬일도 무덤덤하게 대꾸했다.
“애초부터 저분들은 비무에 그다지 관심이 있어 보이진 않는데요.”
순간 남궁천의 눈에서 기이한 광채가 흘러나왔지만 그건 나타날 때보다 빠르게 사라졌다.
“그럼 저 시합은 어찌 생각하나?”
남궁천이 비무대를 가리켰다.
“검은 옷을 입은 젊은이는 강서 매화문의 석강운이라고 하네. 반대편 소년은 오대련의 팽소명이고.”
말하던 남궁천이 ‘아, 그렇군.’ 하며 당찬일을 돌아보았다.
“오대련 아이들이 자네와도 인연이 있었다고 들었네. 오석산을 즐기던 거짓 화타를 잡으러 갔다가 사천의 터줏대감에게 걸려서 호되게 당했다던가?”
이행행을 말하나 보다.
‘그때 있던 팽가의 꼬맹이가 팽소명이었군.’
당찬일이 고개를 끄덕이는데 흑의 청년이 기합을 내지르자 이에 맞서 팽소명도 소리를 내질렀다.
“흑의(黑衣)의 승리로군요.”
당찬일이 단언하자 남궁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둘이 아직 손도 섞지 않았는데 어찌 그리 단언하느냐?”
“굳이 차이를 보지 않아도…….”
당찬일이 잠시 종이를 치웠다.
“석강운은 충분히 몸 상태가 좋군요. 그에 비해 팽소명은 걸음이 흔들립니다.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 같군요. 그저 그것으로 예상을 해 본 것입니다.”
당찬일의 분석을 들은 남궁천이 턱 끝을 매만졌다.
‘열세 살짜리 어린애가 내놓을 수준이 아닌데.’
우연처럼 남궁천의 시선이 당찬일의 외편에 착석해 있는 제갈진수와 마주쳤다. 제갈진수도 남궁천과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몰라도 당찬일을 바라보는 시선이 무척이나 미묘했다.
“그런데 그 종이는 무엇인가?”
“별것 아닙니다.”
남궁천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당찬일이 양피지를 펼쳤다.
“각파의 영재들이 펼치는 무학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무학을 정리한다고? 무슨 목적으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오대세가의 기초 무학을 이렇게 접할 기회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두 사람의 대화를 놓치지 않고 경청하던 제갈진수가 고개를 옆으로 틀었다.
“우리 오대세가의 무학을 대놓고 염탐하겠다?”
당문과 오대세가는 사이가 좋지 않다.
이번 용봉회합에 당문이 초대된 이유는 당과로와 제갈외의 개인적인 친분으로 이루어진 결과였다.
제갈진수가 비꼬자 당찬일이 차분히 대답했다.
“비무 대회를 개최하신 건 그런 의도가 아니신지요.”
제갈진수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로 말꼬리를 길게 끌던 당찬일이 문득 생각난 것처럼 눈을 크게 뜨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만약 그게 싫으시다면 이런 방법은 어떻겠습니까?”
이미 중인들의 관심은 제갈진수와 당찬일에게 쏠린 상태였다.
“비무 대회를 무관중으로 진행하는 거죠. 누구도 관전하지 못하도록.”
제갈진수에게 은근히 한 방 먹인 당찬일이 잠시 숨을 고르고 결정타를 날렸다.
“그것도 싫으시다면 다소 창피하지만 논검비무는 어떠시겠습니까?”
무학이 유출되는 게 겁나면 아가리로 싸우든가!
“큭큭!”
“풋풋풋!”
당찬일이 몇 마디로 말로 제갈진수를 쫀쫀한 인간으로 만들어 버리자 근처에 있던 무인들이 억눌린 웃음을 터트렸다.
‘이익!’
제갈진수가 당찬일을 노려보았지만 그는 무슨 일 있었느냐는 얼굴로 비무 하는 소년들을 주시했다.
뻑!
매화문의 석강운이 빙글 옆으로 돌며 발을 차올리자 팽소명이 가슴을 강타당하고 쓰러졌다.
“자네의 예상대로 되었군.”
“몸 상태가 좋지 않았음을 생각할 때 평소 팽소명의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충분히 보이는 비무였습니다. 아마 실전에서 붙게 된다면…….”
당찬일의 말에 하북 팽가의 가주 팽위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쯧쯧, 하필 고뿔을 앓아서는.”
당찬일이 하는 양을 옆에서 지켜보던 남궁천이 터져 나오려는 감탄성을 가까스로 눌러 참았다.
‘이 녀석 봐라?’
당찬일은 제갈진수를 비아냥거림으로써 자신의 성격이 보통을 넘는다는 것을 단번에 알렸다. 당문의 독살스러움은 그것을 보조하기에 충분했고.
‘내 질문까지 이용했다는 건가?’
석강운과 팽소명의 비무에 대해 물은 건 남궁천이지만, 당찬일은 한마디 말로 팽위의 심기를 긁었다.
‘팽위가 이런 어린놈의 말에 휘둘리지는 않았겠지만 기분이 썩 좋진 않았을 것이고…….’
석강운은 매화문에서 손꼽히는 기재다.
반면 팽소명은 팽가에서 범재(凡才)로 취급되던 아이이니, 모르긴 몰라도 본 실력 또한 석강운이 높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당찬일은 팽소명이 패하자마자 태도를 바꿔 도리어 팽가를 띄워 주었다.
그 결과로 팽위의 표정이 한결 느긋해지지 않았는가?
‘이것이 정말 열세 살 아이의 말재주인가.’
남궁천의 시선이 팽위와 스스럼없이 담소를 나누는 당찬일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다음 날도 당찬일은 당과로에 의해 자연스럽게 귀빈석 자리를 차지했다.
“가주께선 아직 차도가 없으신가?”
“허어, 걱정이구먼.”
여러 가주들과 문주들의 형식적인 위로를 받으며 당찬일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곧 나으시겠지요. 감사합니다.”
중인들에게 답례의 말을 건넨 당찬일이 눈동자를 아래로 모았다.
‘대가주는 대체 무슨 심산으로 나를 이 자리에 앉히는 걸까?’
와병을 핑계로 당과로가 당찬일에게 이 자리를 내주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누군가를 목표로 하란 말은 분명 사실일 텐데…….’
어려운 숙제였지만 당찬일은 도리어 마음을 편히 먹기로 했다.
어차피 애꿎게 상대할 사람을 찾는답시고 들쑤시고 다닐 수 없는 노릇이기도 하니 처음 말한 대로 오대세가의 박투술이나 분석하며 기다리자고 마음을 다졌다.
“오늘도 왔군.”
등 뒤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려서 당찬일이 일어섰다.
“오셨습니까?”
“음.”
남궁천이 묵직한 대답을 토하며 당찬일의 옆자리에 앉았다.
“오늘도 대가주 대신인가?”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래.”
고개를 끄덕이는 남궁천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았다.
‘뭐지?’
그러고 보니 다른 사람들도 지난 며칠과 달리 정신이 다른 곳에 집중되어 있었다.
‘어디 보자…….’
당찬일은 남궁천의 딱딱한 얼굴을 지우고 양피지를 꺼냈다. 하지만 별다른 것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오시(午時)가 지날 즈음 남궁천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일부러 지각하는 건가.”
“기다리는 분이라도 있으십니까?”
남궁천이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당찬일을 바라봤다.
“아직 소식을 듣지 못했나?”
당찬일은 조금 당황했지만 티 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천이 알겠다는 듯 말을 해 주려고 할 때 비무대 반대편에서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굳이 내가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겠어.”
기다렸다는 듯 가주들과 문주들이 떠들기 시작했다.
“드디어 왔나 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