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74
당문전생 (74)
제가 직접 나설까요?
당찬일이 비무대 반대편으로 시선을 주는 그때 사회자가 우렁차게 외쳤다.
“우리 오가제전을 축하하기 위하여 무림맹에서 귀하신 사절이 오셨습니다! 내외 귀빈들과 손님들께서는 열화와 같은 성원으로 환영해 주십시오!”
‘무림맹!’
당찬일의 눈이 화등잔처럼 커졌다.
무림맹은 천하제일인 백리무극(百里武極)이 이끄는 무림의 최고 기관이다.
백리무극은 이십 년 전에 맹주 직에 오른 후, 엄청난 무공과 발군의 지도력으로 정도 무림을 단번에 장악했다.
‘이래서 가주들과 문주들의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려 있었군.’
당찬일이 고개를 끄덕이다 여전히 표정을 풀지 않는 남궁천을 발견하고 눈을 가늘게 떴다.
‘대체 사절이 누구기에 남궁천이 이러는 거지?’
당찬일이 의문을 품는 순간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
“오늘 우리 제갈세가를 찾아 주신 분은 백리천아(百里天兒) 공자님이십니다!”
“우와아아! 맹주님의 아드님이 직접 오신 건가?”
“누가 뭐래나? 나이 세 살에 벌모세수를 받고, 일곱에 임독양맥을 뚫었다는 기재이시지!
”열 살에 천인(天人)이 되었다는 공자님 아닌가!“
사람들의 말을 들으며 당찬일도 관심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대가주가 말한 사람이 이자였나?’
사람들의 열광 속에 제갈세가의 정문이 벌컥 열렸다.
쿠쿵!
무림맹 깃발을 앞세운 무인들에 이어 여덟 필의 백마가 이끄는 호화로운 마차가 등장하자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기성을 질러 댔다.
그리고 잠시 뒤 마차에서 단안경을 쓴 장신의 사내가 걸어 나왔다.
단안경의 사내는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인상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섬뜩한 구석이 있었다.
잔뜩 모인 사람들을 좌우로 살피던 단안경의 사내가 마차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도착했습니다.”
단안경의 사내가 인사하자 십팔 세가량의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눈처럼 하얀 장삼만큼이나 희고 부드러운 피부를 지닌 열여덟 살의 사내.
고고함을 자락처럼 밟고서 우러나오는 오만함을 자연스레 두른 남자.
풍성한 흑발 사이로 특이하게 몇 줄기 은발이 정수리를 가로질러서 백리천아의 용모는 백장 밖에서도 드러날 정도로 특이했다.
“백리 공자!”
“그간 강녕하시었소?”
귀빈석에 앉아서 무림 명숙이라며 똥무게를 잡던 노인들이 백리천아에게로 앞다투어 달려가는 모습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하지만 백리천아는 할아버지뻘 되는 노강호들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며 고개만 까딱였다,
“흠.”
남궁천이 탄식도 아닌, 그렇다고 한숨도 아닌 기묘한 숨을 내쉬었다.
무림 명숙들의 반김과 남궁천의 한탄 속에 등장한 백리천아가 느린 걸음으로 귀빈석을 올랐다.
“아이고, 이게 누구신가?”
하북 팽가의 팽위가 잽싸게 백리천아의 왼편으로 파고들자 이에 질세라 제갈진수가 그의 오른편을 점했다.
조금 전까지 그 위세 좋았던 가주들 또한 어떻게든 백리천아의 눈도장을 찍겠다는 듯 고개를 쳐들었다.
“아래 사람들을 보내실 것이지, 어찌 백리 공자께서 직접 왕림하시었소?”
제갈진수가 꿀이라도 잔뜩 처바른 음성으로 묻자 백리천아가 이를 즐기듯 지그시 눈을 감았다.
“날도 좋고.”
감았던 눈을 뜨면서 백리천아가 중천에 떠오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이리 여러 명숙들이 계시는 곳에 인사라도 드릴까 싶어 왔습니다.”
백리천아의 말에 제갈진수의 고개가 땅바닥을 파고들 기세로 숙여졌다.
“이거, 공자가 이리 말씀을 해 주시니 우리가 몸 둘 바를 모르겠소!”
백리천아가 죽으라면 죽는시늉이라도 할 기세로 달라붙는 제갈진수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험험.”
아들의 비굴한 모습이 못마땅했을까?
제갈외가 헛기침을 토했지만 제갈진수는 의도적으로 부친 쪽을 외면했다.
“자자, 이리로.”
제갈진수가 백리천아를 안내하는 건 오가제전의 주관자였기에 지극히 당연했다.
문제는 백리천아의 몸종처럼 구는 제갈진수의 저자세였다.
하지만 제갈진수를 비난하는 시선은 소수에 불과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백리천아에게 아부하느라 정신이 없는 제갈진수를 당연시하는 분위기였다.
찌릿!
자신을 향한 몇 개의 적대적인 시선을 감지한 백리천아가 태연하게 눈빛을 응대했다.
“이곳, 이곳으로 오시구려!”
제갈진수가 의기양양하게 백리천아를 대동하고 남궁천의 자리로 왔다.
“이쪽은 강남 남궁세가의 가주인 남궁천이라 하오. 두 사람은 구면이지?”
제갈진수가 소개하자 백리천아가 가볍게 포권했다.
“일 년 만에 뵙는군요.”
“그렇군. 오랜만일세.”
마주 포권하는 남궁천의 응대를 듣는 듯 마는 듯 고개를 돌린 백리천아가 당찬일을 발견했다.
“이런 곳과 어울리지 않는 아이가 있군요.”
백리천아의 말에 팽위가 당황해서 양팔을 벌렸다.
“아, 아닐세! 저쪽은 그냥 아이가 아니라 사천당문의 당찬일 소협이라고 하네. 백리 공자도 알다시피 사천의 당문은…….”
“사천당문은 어지간히 안하무인이군요. 이런 자리에 저런 아이를 보내다니.”
백리천아의 냉정한 말에 제갈진수의 표정이 핼쑥해졌다.
저 자리는 사천당문 전용으로 지정되어서 당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앉을 수 있다.
그런데 쫓아내라니.
제갈진수가 어쩔 줄 몰라 허둥거리며 부친인 제갈외를 힐끔거렸다.
당황한 제갈진수를 도우려는 듯 팽위가 재차 나섰다.
“당찬일 소협은 흠차대인의 어전시위를 역임한 기재라네. 성도부의 탐관오리들을 응징한 것도 저 소협이고.”
백리천아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그게…….”
백리천아의 입술이 미미하게 벌어졌다.
“뭐 어쨌다는 겁니까?”
‘허걱!’
백리천아의 응대에 팽위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팽위까지 물러서자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판단한 제갈진수가 당찬일을 보며 탄식했다.
‘허어! 일어서라도 있었으면…….’
백리천아가 올라서자 귀빈석에 있던 모두가 그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기립한 상태였다.
당찬일을 제외하고.
무엇보다 이런 상황이니 당찬일이 눈치껏 자리를 비워 주면 좋으련만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자 제갈진수가 할 수 없이 조심스레 당찬일에게 다가갔다.
“당 소협?”
당찬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느라 백리천아가 귀빈석에 너무 늦게 도착해서 당찬일은 그에 대한 흥미를 잃고 제 할 일에 푹 빠져 있었다.
“이보게, 당 소협?”
거듭해서 불러도 당찬일이 양피지에서 눈을 떼지 않자 제갈진수가 끝내 소리쳤다.
“당 소협!”
“어?”
양피지에서 고개를 든 당찬일이 자신을 바라보는 제갈진수와 백리천아에게로 천천히 시선을 이동시켰다.
“부르셨습니까?”
당찬일이 입을 열자 이번에는 백리천아의 왼편에 있던 팽위가 얼른 답했다.
“이분이 백리천아 공자일세!”
* * *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세요?”
당과로가 피식 웃자 그의 앞에 차 한 잔을 내려놓으면서 당숙정이 물었다.
“그래 보이냐?”
“전에 없던 표정이시라서요.”
당숙정의 말을 들은 당과로가 의자에 등을 깊숙이 묻었다.
“지금 귀빈석에서 일어나고 있을 일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서 말이야.”
“귀빈석이요?”
“그래.”
당과로가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정도의 제왕학(帝王學)을 공부한 녀석을 그 녀석은 어떻게 상대하려나?”
* * *
“여기 백리천아 공자로 말할 것 같으면 소림의 십팔나한진의 파훼식을 고작 다섯 살에 그려 낸 백 년 내 최고의 기재라네. 우리 오대세가의 권각술을 연구하는 자네에게도 큰 도움이 될 테니 어서 와서 도움을 받게나.”
팽위가 침까지 튀겨 가면서 백리천아를 추켜세웠다.
‘다섯 살?’
그러고 보니 생각난다.
전생의 어느 날, 무림맹주 백리무극의 다섯 살짜리 아들이 십팔나한진의 파훼식을 작성해서 무림맹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그게 벌써 십삼 년 전이다.
백리천아를 물끄러미 응시하던 당찬일의 입이 서서히 열렸다.
“세월 참 빠르네요.”
“뭐?”
팽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체 이 꼬마는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걸까?
한편 백리천아는 다른 측면에서 어이가 없었다.
누구나 자신을 대하면 일단 긴장하기 마련이다. 자연스레 말을 더듬고, 눈길을 피하며, 심한 경우에는 땀으로 목욕을 한다.
그런데 사천당문의 당찬일이란 소년은 긴장이라는 놈과 담을 쌓은 것처럼 태연했다.
말도 더듬지 않고, 눈길도 피하지 않으며, 땀을 흘리는 기색도 없다. 오히려 이 상황에 맞지 않는 엉뚱한 이야기를 내뱉는 여유까지 부린다.
“재미있는 녀석이로군.”
백리천아가 피식 웃었다.
“여기 다탁하고 의자 두 개를 가져오세요.”
백리천아의 돌연한 명령에 제갈진수가 눈을 금붕어가 입 벌리듯 끔뻑거렸다.
“다탁하고 의자 말이오?”
“네, 부, 탁, 드, 립, 니, 다.”
“아, 알겠소! 속히 준비하리다!”
제갈진수가 수하들에게 다탁과 의자를 서둘러 대령하라 일렀다.
“여, 여기!”
제갈진수가 준비한 의자는 용평상에 준할 정도로 호화로운 것이라서 제갈외와 남궁천의 얼굴이 동시에 굳어졌다.
사라락.
백리천아의 뒤에서 시립해 있던 단안경의 장신 사내가 거대한 호피 가죽을 호화로운 의자에 둘렀다.
“흐음.”
호피 가죽이 깔리자 느긋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은 백리천아가 당찬일에게 손을 까딱거렸다.
“옆에 앉으라는구나.”
남궁천이 지나가듯 중얼거리자 당찬일이 백리천아가 지정한 자리로 천천히 다가갔다.
“겁낼 것 없다.”
당찬일의 굼뜬 행동을 자신이 두려워 그러는 거라 판단한 백리천아가 오연하게 웃었다.
‘훗.’
헛웃음이 나왔지만 일단 눌러 참은 당찬일이 그가 권한 의자에 앉았다.
당찬일을 유난히 살갑게 대하는 백리천아를 지켜보던 단안경의 장신 사내, 양학(良虐)이 그에게 귓속말했다.
“어째서 생면부지의 꼬마를 가까이하시는지요?”
순간 백리천아의 눈이 사막처럼 건조해졌다.
“일가의 자식이라잖아.”
현 정파 무림을 대표하는 여섯 글자, 일가일맹일인(一家一盟一人)!
일가, 천하제일가는 당문이요, 일맹, 천하제일맹은 무림맹이다. 그리고 일인, 천하제일인은 백리무극이다.
“당문은 품어야 할 대상이니 다독여야지.”
백리천아가 당찬일을 보며 물었다.
“그렇지?”
옆에 있던 양학이 입가에 미소를 띠며 고개를 숙였다.
당찬일이 앉자마자 백리천아가 제갈진수를 향해서 손을 흔들었다.
“무, 무슨 일이시오?”
급히 달려온 제갈진수에게 백리천아가 황당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연무장을 비워 주십시오.”
“예? 연무장을 비우라니…… 그럼 진행하던 비무 대회가 중지되오이다.”
“그겁니다.”
“예?”
“비무 대회를 잠깐 중지하란 말입니다.”
“아, 아니, 왜 비무 대회를 중지시키려는 건지……?”
백리천아의 답변은 상식을 초월하는 것이라 모두를 당황케 했다.
“조금 지루해서요.”
“으, 으음.”
제갈진수가 침음을 흘리자 백리천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제 말이 뭔가 잘못되었습니까?”
“아, 뭐, 그냥…….”
오대세가와 용봉회합에 참가한 모든 문파들을 싸잡아서 비난하는 발언이었지만 백리천아는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조금 서둘러 주셨으면 합니다만.”
“아니, 그게…….”
“어려우시면 제가 직접 나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