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76
당문전생 (76)
그것도 힘들어하지 않나
백리천아의 부름에 허리를 살짝 숙인 양학이 연무장으로 풀썩 뛰어내렸다.
“저 친구는 양학이라고 합니다. 허드렛일을 도맡아서 처리해 주는 사람이지요.”
“그럼 저자와?”
“그렇습니다. 아드님이 양학의 몸에 손끝이라도 스친다면 제 잘못을 모두 인정하고 사과를 드린 뒤 즉시 전능지약을 드리지요.”
백리천아의 말이 끝나자마자 용만호와 용건영의 눈이 허공에서 어우러졌다.
―이건 기횝니다! 저자의 몸에 손이든 발이든, 스치기만 하면 된답니다!
―아서라, 상대는 천하의 무림맹이다!
―하지만 만약에라도 승리하면 전능지약을 얻는다고요!
―그건 그렇지만, 하여튼 안 돼!
용만호 부자가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자 백리천아가 팔짱을 꼈다.
“또한 양학은 다리를 이용한 일체의 공격이나 수비를 하지 않습니다.”
“음?”
“움직이는 용도로만 다리를 사용한다는 거지요.”
백리천아가 파격적인 선언을 하자 연무장에서 그의 말을 경청하던 용건영의 눈에서 탐욕의 빛이 일렁였다.
―아버지!
―다리를 쓰지 않고서도 자신이 있다는 건 양학이란 자가 그만큼 고수라는 소리다.
용만호가 용건영을 눈짓으로 제지하자 백리천아가 양팔을 벌렸다.
“좋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양학의 오른손도 못 쓰게 하겠습니다.”
어차피 내공을 사용할 수 없기에 장풍 계열의 원거리 공격을 못 하는 비무에서 다리와 한쪽 팔을 금제당한다는 건 차포를 떼고 장기를 두겠다는 격이다.
“내가 지면 우리 철검문에서 무엇을 해야 하오?”
용건영이 묻자 백리천아가 양팔을 살짝 들어 올렸다.
“아무것도.”
“정녕 원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소리요?”
양팔을 들어 올린 그대로 백리천아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부친인 용만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용건영이 번쩍 손을 들었다.
“하겠소!”
“저, 저 녀석이!”
“이로써 대결 성립이로군요.”
발끈하는 용만호의 등을 두어 차례 두드린 백리천아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내가 이기면 반드시 약속을 지키시오!”
“물론이요.”
용건영의 외침에 화답한 백리천아가 당찬일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기이한 미소를 지었다.
“재미있겠지?”
* * *
“두 분 앞으로 나오시오.”
사회자의 부름에 양학과 용건영이 중앙으로 모였다.
“우리 용봉회합의 규칙은 잘 아시리라 믿겠으니 정정당당한 시합을 바랍니다.”
삼 장 거리를 벌리고 서로에게 포권한 양학과 용건영이 사회자의 외침에 따라 비무를 시작했다.
파박!
먼저 치고 나온 건 용건영이었다.
그는 양학이 양쪽 발과 오른손을 쓰지 못한다는 이점을 이용해서 그의 오른편으로 돌아 들어갔다.
‘어차피 저자는 오른손을 쓰지 못하기에 오른쪽의 공세에는 반격할 틈이 없다!’
양학의 오른쪽으로 파고든 용건영이 독사출동(毒蛇出洞)의 수법으로 오른손을 쭉 뻗었다.
빙글!
몸을 돌리면서 용건영의 공세를 피한 양학이 그와 정면에서 대치하려는데 또다시 발이 날아왔다.
주르륵!
누가 잡아당긴 것처럼 양학의 신형이 뒤로 쭉 빠지자 용건영의 발은 허공을 갈랐다.
“이익!”
용건영이 지면을 박차고 날아올라 양학에게로 쇄도했다.
“타아!”
소림의 무영각(無影脚)인가?
양학을 따라붙으며 용건영이 오른발을 순식간에 열 차례나 내질렀다.
이것은 철검문의 발차기인 철마각(鐵馬脚)인데, 극성에 이르면 눈 깜짝할 사이에 무려 열두 번의 발길질이 가능하다는 상승의 퇴법이다.
슥슥슥!
양학이 좌우로 어깨를 틀어서 종이 한 장 차이로 발차기를 피하자 용건영이 호랑이처럼 소리를 질렀다.
“이익! 조금만!”
양학의 몸에 자신의 손발이 살짝 스치기만 해도 천하의 보물을 얻는다는 생각으로 가득해 용건영의 신체는 평소보다 몇 배 활성화된 상태였다.
조금만, 조금만 더!
용건영의 간절한 소망을 담은 주먹이 청아한 외침과 함께 시작되었다.
“철마십팔수(鐵馬十八手)!”
철마십팔수는 철검문의 문외불출(門外不出) 비기다.
그래서 생사가 걸린 순간이 아니라면 펼치지 않아야 마땅하지만 전능지약에 대한 생각으로 원칙을 깨트렸다.
파라락!
용건영의 팔들이 순식간에 열여덟 개로 불어나서 양학에게로 쏟아져 갔다.
“됐어! 저건 신이라도 피할 수 없다고!”
용만호가 아들의 승리를 확신하며 벌떡 일어섰다.
철마각을 피하느라 양학의 무게 중심은 미묘하게 무너진 상태!
이 순간에서 터진 철마십팔수는 양학의 모든 방위를 점하고 들어왔다!
쏴아아.
전륜십팔수의 잔영(殘影)들이 양학을 뒤덮자 장내는 온통 용건영이 불러온 주먹의 그림자로 가득 찼다.
용만호의 말처럼 신이라도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
“잡았다!”
용건영이 힘차게 손을 뻗는 순간 양학의 발이 기다렸다는 듯 지면을 스쳐 가자 그의 신형이 희미해졌다.
스팟!
“어?”
용만호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뭐야!”
불과 한 치 차이에서 사라진 양학을 눈으로 좇으며 용건영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스각!
거짓말처럼 사라졌던 양학이 다시 나타나서 빙글빙글 춤을 추었다.
스르륵.
놀랍게도 양학은 하늘하늘한 춤사위만으로 용건영이 불러온 주먹의 거미줄에서 유유히 빠져나왔다.
‘저건!’
두 사람의 비무를 주시하던 당찬일의 눈이 날카롭게 반짝였다.
조금 전에 양학의 움직임은 분명 낯설지 않았다!
‘어디서 봤더라?’
저건 보법이 아니라 일종의 몸놀림이다.
온몸으로 구현해 내는 종합적인 수법이라 단순히 보법이나 신법으로 규정지을 무학이 아니다.
스스슥.
용건영이 불러온 권력을 불과 한 뼘 차이로 모조리 비껴 낸 양학이 그를 스치며 지나갔다.
퍽!
“크헉!”
가슴을 강타당한 용건영이 훌훌 날아서 연무장의 반대편에 처박혔다.
쿠웅!
이 충격적인 광경에 관람석의 모든 이들이 찬물이라도 얻어맞은 사람들처럼 몸을 굳혔다.
너무나 충격적인 결말이라서 잠시 정신을 놨던 사회자가 곧 마음을 수습하고 급하게 손을 올렸다.
“이, 이번 비무는 무림맹 소속 양학 대협의 승리입니다!”
침묵.
장내는 패자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시하는 탄식도, 승자를 기리는 놀라움을 드러내는 감탄사도 일절 사라진, 텅 빈 공간이 되었다.
“이런. 이런.”
침묵만이 지배하는 관림석이 싫었을까?
눈을 지그시 감으며 백리천아가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전능지약에 대한 철검문의 도전은 간발의 차이로 실패했군요.”
일부러 전능지약이란 말을 강조하며 백리천아가 정말로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다른 문파 없습니까?”
백리천아가 물었지만 조금 전에 양학이 보여 준 움직임은 너무나 충격적이라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없어요?”
다소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백리천아가 좌중을 돌아보자 사람들은 그의 눈길을 피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하아, 이를 어쩐……다.”
턱을 쓰다듬던 백리천아가 눈을 홉떴다.
‘또 무슨 장난을 치려나?’
당찬일이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백리천아를 응시했다.
그리고 백리천아의 다음 제안은 당찬일의 기대에 부응할 만큼 흥미로웠다.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기발한 생각이 난 것처럼 백리천아의 눈이 커졌다.
“이제부터 양학이 어떤 공세도 취하지 않는 겁니다!”
우우우.
순간 좌중은 또다시 술렁였다.
“아예 공격을 하지 않겠다는 말이오?”
누군가 묻자 백리천아가 피식 웃었다.
“그렇습니다.”
“거기다 왼손만으로 방어를 하고?”
또 누군가 묻자 백리천아가 입꼬리를 올리며 양손을 들었다.
“바로 그겁니다.”
그리고 정말로 묻고 싶은 한 줄기 질문.
“그렇게 해서 이겨도 전능지약을 준다는 거요?”
끄덕끄덕.
백리천아의 고개가 순순히 움직이자 좌중에서 치열한 눈치 싸움이 벌어졌다.
‘왼손만 이용해서 방어한다는 건 무방비나 다름없다!’
‘이런 조건이라면 저자가 아무리 신묘한 몸놀림을 보인다고 한들 한번 부딪쳐 볼 만하지 않겠는가!’
무수한 눈빛이 오가고, 결국 한 사람이 번쩍 손을 들었다.
“우리 문파가 도전하겠소!”
손을 든 사람은 낙일방(落日幇)이란 문파의 문주인 소대겸이란 사람이었다.
낙일방은 섬서 지방의 신흥 방파였는데 문주인 소대겸의 낙일신권이 훌륭해 주목을 받고 있는 문파였다.
쿵! 쿵!
보무도 당당하게 연무장으로 들어서는 청년은 낙일방의 대제자인 고수라는 사내였다.
고수는 스물한 살이었지만 또래의 청년들과는 차원이 다른 무위를 지녔고, 무엇보다 권법가답게 빼어난 신법과 보법을 지닌 무인이었다.
“오, 낙일방.”
백리천아가 환영한다는 듯 연무장을 가리켰다.
“낙일방의 대제자라니, 기대됩니다.”
입으로는 번드르르한 소리를 내뱉었지만 백리천아의 눈엔 별다른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고개를 돌린 백리천아가 양피지를 들여다보는 당찬일을 발견했다.
“오대세가의 권각술을 연구한다고 하더니 이게 그것이냐?”
당찬일이 대답할 사이도 없이 양피지를 낚아챈 백리천아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내용을 살폈다.
“건강 체조 수준인데?”
화르륵!
백리천아가 양피지를 삼매진화로 태워 버렸다.
“이따위 쓰레기는 잊어버려라.”
백리천아의 안하무인적인 태도에 오대세가 주인들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권각술을 배우고 싶다면 지금부터 양학의 움직임이나 보거라. 깜짝 놀랄 만한 광경이 펼쳐질 테니.”
고수가 나서자 양학이 왼팔을 쭉 폈다.
이른바 뒤가 잘린 정자(丁字)로 몸을 만든 양학이 자신을 가리키자 고수가 정중히 포권했다.
“시작!”
사회자가 외치자마자 고수가 탄력적으로 치고 나오면서 양팔을 풍차처럼 회전시켰다.
“으아아아!”
고수의 권력은 제법 매서워서 내공을 일으키기도 않았는데 장내가 그의 주먹으로 빽빽해졌다.
“초장부터 전륜나(轉輪羅)라니!”
“고수 공자가 독하게 마음을 먹었구먼!”
전륜나!
낙일방이 자랑하는 절초 가운데 하나!
무한으로 구르는 수레바퀴처럼 수없이 쏟아지는 주먹의 그물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권법!
전륜나가 펼쳐지자 연무장은 흡사 권림(拳林)이라도 된 것처럼 고수의 주먹으로 뒤덮였다.
그러나…….
사라락!
일부러 그런 걸까?
고수의 전륜나가 완전히 발현되길 기다렸던 것처럼 계속해서 기다리던 양학이 마지막 변화가 끝나자마자 발을 교차시키듯 움직였다.
스스슥.
전륜나의 그물에서 노니는 한 마리의 산새처럼 자유로이 주먹의 수풀에서 비행하던 양학이 고수의 마지막 주먹을 흘리며 그의 옆에 신형을 세웠다.
쾅!
양학이 멈추면서 발을 워낙 강하게 내디뎌서 그 자리에 작은 웅덩이가 생겼다.
“큭!”
구덩이가 파이는 여파 때문일까?
지면에서 발생한 충격을 고스란히 받은 고수가 묵직한 침음을 흘렸다.
“양학, 아무리 보법이라도 진각(震脚)이 깃든 동작은 안 돼.”
백리천아가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그것도 힘들어하지 않나.”
진각은 발을 구름으로써 발경을 일으키는 행위일 뿐, 공격법이 아니다.
하지만 진각만으로 고수가 충격을 받았다는 건 양학의 무위가 그만큼 대단하다는 뜻이었다.
‘이, 이자는 대체!’
양학의 위력을 몸소 체감한 고수가 정신을 바짝 차렸다.
일체의 공격 행위를 하지 않겠다지만 수비만으로도 충분히 위험한 상대다.
이런 자와는 손을 섞으면 섞을수록 위험하다.
‘가급적 빨리 끝내야 해!’
결심을 굳힌 고수가 사부인 소대겸을 곁눈질했다.
―사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