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79
당문전생 (78)
사각의 맹점
백리천아가 자상하게 충고하자 비무장을 바라보던 당찬일이 중얼거렸다.
“불리해서 도전입니다.”
백리천아를 돌아보며 당찬일이 알 듯 말 듯 한 표정을 지었다.
“유리했다면 여흥일 테고.”
자신이 불리하다는 걸 순순히 인정한다는 뜻은 현재의 상황을 냉정하게 본다는 소리다.
겨우 열세 살짜리 꼬마가.
‘단지 풍문이 아니었다는 건가.’
백리천아도 세간에서 떠도는 당찬일에 관한 이야기를 접했다.
무공이 뛰어나서 최연소 어전호위로 낙점되었네, 오석산이란 희대의 마약을 상납받던 성도부의 탐관오리들을 일망타진할 정도로 지략까지 훌륭하다네.
하지만 이 모두를 과장된 소문이라며 흘려버렸는데 갑자기 훅 들어와서 백리천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불쾌하군.’
이유 모를 짜증이 솟구쳐서 백리천아가 양학에게 눈짓했다.
―이 친구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 줘.
꾸벅.
살짝 허리를 굽힌 양학이 당쾌풍을 직시했다.
쿵!
‘이런, 망할!’
양학의 눈빛을 정면으로 마주하니 어째 무릎이 후들거리는 기분이었다. 당쾌풍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냥도 무서웠는데 눈깔에 힘주니 완전 살벌하네.’
괜히 위축되자 당쾌풍은 오기가 생기는 걸 느꼈다.
―한 방에 걸어. 그때 못 잡으면 그냥 패배를 인정해 버려. 어차피 못 잡을 테니까.
품속의 나무 암기를 확인한 당쾌풍이 심호흡을 했다.
“그럼.”
당쾌풍이 목례하자 양학이 마음대로 해 보라는 것처럼 양팔을 벌렸다.
그때!
당쾌풍이 번개처럼 치고 나오며 주먹을 내질렀다.
“훗!”
혼신을 다한 공격이었지만 기다리고 있던 양학에게는 어떤 위협도 되지 못할 공격이었기에 코웃음이 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스륵.
여유만만하게 당쾌풍의 공세를 피한 양학이 일부러 양팔을 내렸다.
마음껏 해 봐라.
양학이 손가락을 밖에서 안으로 굽히자 당쾌풍이 이판사판이라는 듯 달려들었다.
“으아아아!”
“비무라기보다 막싸움이로군.”
백리천아가 입을 툭 내밀었다.
누가 봐도 당쾌풍의 공세는 소의 투레질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무모했다.
반면 양학은 깔끔하고, 정교하게 당쾌풍의 다듬어지지 않은 주먹과 발길질을 흘리는 중이었다.
“이건 도전이 아니라 투정이 아닌가?”
벌써 지쳐서 헥헥거리는 당쾌풍을 가리키며 백리천아가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자 제갈진수를 비롯한 그의 추종 세력들이 낄낄거렸다.
“어찌 생각해, 어전호위?”
조금 전에 받았던 불쾌감을 씻으려는 듯 백리천아가 빈정거리다 당찬일의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뭐지?’
당찬일은 여전히 태평한 모습이었다.
그는 당쾌풍의 애처로운 모습을 대하면서도 처음처럼 평온했기에 백리천아가 딱하다는 듯 그를 굽어보았다.
“기적을 기다리나?”
백리천아가 묻자 당찬일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설마.”
당찬일의 말이 자꾸만 짧아져서 영 거슬렸지만 소소한 부분을 따질 계제가 아니라서 백리천아가 재차 물었다.
“그럼?”
“기다릴 곳을 기다리지.”
지금도 당쾌풍은 미친 듯이 손발을 휘두르고 있다. 저게 뭘 기다리는 것이란 말인가?
‘가만?’
당찬일의 말대로라면 당쾌풍의 헛손질조차 승부의 순간을 위해서 거쳐 가는 과정이란 말인가?
순간적으로 엄습하는 싸한 기분에 백리천아가 급히 양학을 돌아보는데 당찬일이 연무장을 가리켰다.
“지금.”
중구난방으로 팔다리를 휘두르던 당쾌풍이 양학의 얼굴에서 따분함을 발견하는 순간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다시 말하지만 기회는 단 한 번이다.
“타앗!”
지금까지와는 다른 기합을 내지르며 양학에게 달려들던 당쾌풍이 잠시 신형을 멈췄다.
―기회를 잡으면 양학과의 거리를 단숨에 좁히면서 그의 얼굴 왼쪽으로 암기를 붙여. 암향부동(暗香不動)의 수법이면 되지 않을까?
당쾌풍이 참았던 숨을 내쉬며 목전표를 그의 왼편으로 힘껏 던졌다.
팽그르르!
그러나 아쉽게도 나무 암기는 양학에게 격중되지 않고 그의 왼편에서 회전했다.
“에잇!”
암기가 양학에게 명중하지 않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그에게 달려든 당쾌풍이 허공에서 빙글 몸을 틀면서 왼쪽 어깨를 들이밀었다.
‘고법(靠法)?’
고법이란 몸으로 부딪쳐 상대방에게 타격을 입히는 몸통 박치기다.
적중된다면 상대방에게 커다란 충격을 줄 수 있는 수법이지만 안타깝게도 당쾌풍의 동작은 너무 느렸다.
양학이 왼손을 쭉 뻗어서 당쾌풍의 어깨를 이화접목(移花接木)의 수법으로 흘려 버렸다.
“이익!”
왼발을 지면에 대면서 가까스로 자세를 되잡은 당쾌풍이 발끝으로 땅을 차며 단숨에 양학에게 쇄도했다.
이미 한 번 공방을 벌인 후였기에 둘의 거리는 매우 가까운 상태였다.
그만큼 방어하는 쪽이 어려운 상황임에도 양학의 입가에서 비웃음이 사라지진 않았다.
스슥.
다시 한 번 재현되는 양학의 믿을 수 없는 움직임!
이전의 두 번처럼 양학의 신형은 꺼지듯 사라졌기에 당쾌풍이 눈을 부릅떴다.
―그자가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마지막 목전표를 오른쪽 사선으로 바짝 붙이는 거다, 이번에도 암향부동의 수법으로.
“탓!”
당쾌풍이 나무 암기를 양학의 오른편으로 뿌리자 나무 암기가 허공에서 팽그르르 돌았다.
스르륵.
기다렸다는 듯 양학이 허공에서 돌고 있는 암기를 지나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다다닥!
당쾌풍의 손이 그의 시야 반대편에서 나타났다.
텁!
너무 놀라면 소리조차 내지 못한다던가?
“……?”
멱살을 잡힌 양학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파악하지 못했다.
“……?”
멱살을 잡은 당쾌풍 또한 자신이 무슨 일을 벌였는지 바로 인지하지 못했다.
그렇게 어벙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던 두 사람이 곧 눈을 치떴다.
팍!
양학이 거칠게 손을 뿌리치자 당쾌풍이 뒤로 나가떨어졌다.
쿠우우.
양학이 전신에서 암흑의 기세를 줄기줄기 흘리며 바닥을 나뒹구는 당쾌풍을 굽어보는데 날카로운 외침이 두 사람 사이를 가로질렀다.
“양학.”
백리천아의 부름에 양학이 모든 동작을 멈췄다.
“수고했다.”
꾸벅.
백리천아를 향해서 허리를 살짝 굽힌 양학이 당쾌풍에게서 느리게 멀어졌다.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백리천아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나무 암기를 이용해서 양학의 움직임을 제한한 건가?”
“본 대로.”
“그렇다면 나무 암기는 애초부터 양학을 노린 것이 아니라는 소리냐?”
백리천아가 묻자 당찬일이 입을 달싹거렸다.
“당문에는 수많은 암기술이 있지요. 그 가운데 암향부동이라는 재미난 투식(投式)이 있거든요.”
암향부동은 일반적으로 적을 명중시켜서 상해를 입히는 암기술과 달리 암기를 허공에 오랫동안 머물도록 하려는 목적으로 고안된 투식이다.
그래서 암향부동은 실전용이 아니라 의전용(儀典用)이다.
일종의 화권수퇴(花卷秀腿).
“암기를 공격 수단이 아니라 장애물로 이용했다?”
당찬일이 그린 양피지를 보며 백리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암기 두 개를 사용하겠다고 해서 당연히 공격 수단으로 쓸 거라 예상했는데, 방위 차단용이었을 줄이야.
“그건 알겠는데, 마지막 변화는 어떻게 깨트린 거지?”
남궁천이 연무장의 양학을 가리키며 물었다.
“양학의 보법은 허깨비처럼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것이라 파훼가 되는 성질이 아니다.”
“자만이 자랑을 부른다지요.”
당찬일이 뜻밖의 말을 던졌다.
“저자는 일체의 공격도 하지 않고 왼손으로 방어만 해도 이길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무위를 가진 고수지요. 그러니 굳이 마지막 변화를 선보일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양학의 눈에서 섬광 같은 빛이 뿜어져 나왔지만 이를 무시하고 당찬일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도 굳이 저자는 남궁 가주님께서 언급하신 허깨비와도 같은 움직임을 펼쳤지요.”
당찬일이 허깨비 같은 움직임을 재차 강조하자 듣기 싫었는지 백리천아가 끼어들었다.
“그래서, 양학의 마지막 변화를 어찌 깨트린 거냐?”
“사각에는 맹점이 있기 마련이죠.”
당찬일이 양학을 응시하며 부연 설명했다.
“저자는 무척이나 장신입니다. 어지간한 성인 남자보다 한 뼘은 더 크지요.”
“그래서?”
흥미진진한 얼굴로 남궁천이 당찬일의 다음 말을 재촉했다.
“하여 지금껏 상대는 저자를 올려다보면서 싸울 수밖에 없었겠지요. 여기서 사각이 생깁니다.”
당찬일이 일어서서 자세를 취했다.
“이런 식으로 시야가 위쪽을 향한 상태에서 갑자기 상대방이 사라진다면 누구나 당황할 겁니다. 그렇다면 상대는 어디로 갔기에 사라지는 착각을 일으키는 걸까요?”
잠시의 침묵.
그리고 뒤편에서 묵직한 한마디가 터져 나왔다.
“아래쪽.”
“그렇습니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오른쪽 아래지요. 왜냐하면 당쾌풍은 첫 번째 암기로 저자의 왼쪽을 틀어막았으니까요.”
제갈외의 답변을 풀어낸 당찬일이 빙글 몸을 돌렸다.
“저자는 결정적인 순간에 상대방의 사각, 다시 말해 허리 아래로 몸을 굽혔다가 급격히 부상하기를 즐기더군요. 승부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지만 상대를 농락하기엔 충분한 동작이었겠지요.”
“그것이 자만이 부른 자랑…….”
남궁천이 이제야 알겠다는 표정을 짓자 당찬일이 마무리를 지었다.
“부상하는 순간을 노려서 당쾌풍은 두 번째 암기를 저자의 오른쪽 위 사선 지대에 얹었습니다.”
당찬일이 엄지로 나무 암기를 퉁 튕겼다.
팽그르르!
“뜻밖의 장애물을 발견한 저자가 대각선으로 오르길 포기하고 허리를 직선으로 세우는 순간 당쾌풍에게 목을 내어 준 거지요.”
당찬일의 설명이 끝나자 사람들이 서로를 보며 입을 떡 벌렸다.
말로는 쉬워 보이지만 이 짧은 순간에 얼마나 치밀한 수 싸움이 이루어졌는지 알 수 있었으니까.
더욱이 그걸 믿고 실행할 수 있다니!
당쾌풍이란 소년의 실력도 대단했지만, 당찬일에 대한 신뢰가 깊었기에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후우…….”
누군가 참았던 한숨을 토하자 다른 이들도 깊은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입을 열기 시작했다.
“대단해!”
“이론만이 아니라 실전에서도 가능하다는 걸 멋들어지게 보여 줬어!”
사람들이 당찬일에게 찬사를 보내자 무감정한 눈으로 그를 응시하던 백리천아가 천천히 일어섰다.
짤랑.
“받아라.”
“음?”
“약속은 약속이니까.”
당찬일에게 다가간 백리천아가 전능지약을 내밀었다.
우웅.
순간적으로 휘몰아치는 음습한 분위기!
이른바 욕망이라는 이름의 수레바퀴가 전능지약을 바라보는 모두의 마음을 불태웠다.
백리천아가 내민 황금빛 열쇠를 응시하던 당찬일이 입을 열었다.
“됐어요.”
“뭐?”
당찬일이 의외의 태도를 보이자 백리천아의 눈이 커졌다.
“애초부터 말이 안 되는 시합이었습니다. 그러니 보상도 무의미하지요.”
“말이 안 되는 조건을 제시한 사람은 나다.”
“누가 조건을 제시했든 비무가 엉터리였다는 사실이 바뀌지는 않지요.”
당찬일이 전능지약을 거부하자 이를 지켜보던 이들 사이에 다시 한 번 소요가 몰아쳤다.
‘미친 거 아냐?’
‘아니, 저 귀한 걸 왜 안 받아!’
‘정 필요 없으면 나한테나 던져 줄 것이지!’
뭇 군웅들의 탐욕 어린 마음이 장내를 스멀스멀 기어 다녔지만 백리천아와 당찬일에게는 감히 접근할 수 없었다.
“정말로 받지 않겠다는 거냐?”
끄덕끄덕.
당찬일이 고개를 끄덕이자 자신의 손에 들린 황금빛 열쇠를 바라보던 백리천아가 지나가듯 물었다.
짤랑!
“후회할 텐데?”
“받으면 후회가 곱절은 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