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81
당문전생 (80)
종이 포사(褒姒)
“나무관세음.”
양천포목을 방문한 지월이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지월은 아미파의 이대제자(二代弟子)로 현 아미파에서 기둥이랄 수 있는 지 자 항렬이다.
요즘 몇 가지 사건에 얽히게 된 아미파는 보통 삼 대가 나서야 할 시찰을 이 대에 맡겨야 하는 상황에 봉착했다.
하지만 그 뒤로도 문제는 계속해서 발생했고, 결국 외부 활동보다는 내부에서 수련에 힘쓰던 그녀조차 나서게 된 것이다.
“이번엔 조양포목인가?”
조양포목은 시전의 한가운데 위치한 몫이 아주 좋은 포목점이다.
그래서 특별히 신경을 써 주라는 당부를 받았다.
다행히 아미파는 얼마 전부터 당문과 협업을 시작한 이후, 자잘한 문제는 해결이 되었기에 외부적인 문제만 신경 쓸 수 있었다.
당문에 큰 빚을 졌구나.
지월이 그런 생각을 하며 들어서자 조양포목의 점주인 등양군이 반겼다.
“이제 오십니까, 스님!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다만 등양군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들은 대로 상황이 좋지 않은 모양입니다.”
시전에서 보기 드문 여걸로 소문이 그녀조차 이번 건은 버티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스님들도 변고를 겪으셨다고…….”
“저희가 겪은 건, 별것 아니었습니다.”
지월은 내심 한숨을 뱉었다.
등양군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이리 말했지만, 사실 이번 사건은 보통의 것이 아니었다. 죽은 이들이 하나같이 몸이 갈가리 찢겨 제 형체를 유지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건 아미의 비구들도 마찬가지.
‘지정과 지환도 당할 줄이야.’
시전에서 살해당한 비구들은 지월의 사매들로서 절정에 이르진 못했지만, 모두 수준급의 무승들이었다.
“관세음보살.”
잠시 주저하던 등양군이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검시 나온 당문 사람들도 급습을 받았다고…….”
“정확하지 않은 소문입니다. 그런 식의 말이 흐르기 시작하면 문제가 더 심각해지기 마련이죠.”
그러잖아도 요즘 시전에 발길이 뜸해진 이유가 흉수에 관한 소문 때문이었다.
처음엔 그냥 살인자였는데 점차 아미파에 한을 품은 무림의 절정고수로 변했다가 요즘엔 전설상의 야차로 둔갑할 지경이었다.
“야차가 돌아다니는 시전에 누가 발을 들이고 싶겠습니까? 저라도 피할 거예요.”
“등 시주, 시주같이 강한 분마저 이러시면 어쩝니까? 마음 단단히 먹으셔야지요. 아미타불.”
등양군을 위로한 지월이 조양포목에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뗐다. 조금 더 머물면서 그녀를 더 북돋워 주고 싶었지만 방문할 곳이 많아 그럴 수가 없었다.
“부디 힘내세요, 나무관세음.”
주먹까지 쥐어 보이며 웃고는 돌아선 지월 스님이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도 맥이 빠지는 판국에 남에게 힘내라고 하다니.
‘아아, 나까지 이러면 안 되지.’
정신을 가다듬은 지월이 다음 행선지를 찾아 골목으로 진입했다.
툭.
보통 길에서 사람과 부딪치는 일이 없는 지월이었지만 정신을 놓고 있던 탓인지 피하지 못했다.
“아, 이런 실수를…… 죄송합니다.”
부딪친 사람은 커다란 죽립으로 얼굴을 가렸는데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아서 지월이 묵례를 하고 돌아섰다.
그 순간이었다.
죽립인의 손이 가볍게 움직였고, 그의 손에 들린 얇은 소도가 지월의 목을 긋고 지나갔다.
“시주, 무슨 짓이요!”
반사적으로 몸을 날린 지월이 그에게서 일정 거리를 확보했다. 하지만 이미 그녀의 목으로 선홍의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시, 시주는 대체…….”
지월은 점차 눈앞이 흐려지는 것을 느끼며 죽립인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런 그녀의 뒤로 죽립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사라졌다.
* * *
아미파에서 다섯 번째의 희생자가 나오자 관도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아무런 소득도 얻진 못했다.
관도 그렇지만 아미파 또한 벙어리 냉가슴 앓듯 시름만 깊어질 따름이었다.
“어찌 인간이 이리도 흔적이 없을 수 있을까요?”
“정말 인간 짓이라고 안 보일 정도야.”
침음을 뱉으며 혜윤이 턱을 쓰다듬는 거지에게 짜증을 부렸다.
“그나저나 당신이 왜 여기 있는 거야?”
“어허, 그 스님 참. 난 어디까지나 낙산사태께서 정중히, 아주 정중히 부탁해서 왔거든. 그러니 혜윤 스님께선 신경 꺼 주시지?”
“에휴, 태사조께선 뭔 볼 게 있다고 이 거지 시주를……!”
사실 아미파에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시전으로 포목점 순시를 나갔던 자파의 승려들이 오늘로 무려 다섯 명이나 살해당한 탓이다.
뿐인가?
이를 검시하기 위해서 파견된 당문 사람들이 사문 안에서 급사를 했으니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내가 아무리 꼴 보기 싫더라도 이 난리는 일단 정리해야 하지 않겠어?”
젊은 거지가 이죽거리자 혜윤이 그를 외면했다.
“뭐, 나만 불려 온 건 아닌 모양이던데? 당문에서도 두 번째 파견이 있는 모양이야.”
그래도 혜윤이 반응을 하지 않자 젊은 거지가 나지막이 덧붙였다.
“아름답기로 천하에서도 손가락에 꼽힌다는 당문군주에다가…….”
“당문대사저?”
“어이구, 혜윤 스님께서도 그녀를 대사저로 부르시나?”
“아, 아니, 다들 그리 칭하기에…….”
“뭐, 아무튼 그녀와…….”
젊은 거지의 이죽거림은 농도가 더욱 짙어졌지만 혜윤은 당숙정을 직접 본다는 기대감에 젖어서 이를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아마 저번의 그 똑똑한 동도도 온다는 것 같더군.”
“당찬일 시주?”
“그럴걸.”
순간 혜윤의 입이 비죽 나왔다.
당문대사저와 당찬일이라면 특이한 조합이다.
‘어울리지가 않잖아. 그들이 같이 돌아다닐 이유가 뭐지?’
* * *
덜컹거리는 마차 안에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당찬일은 자신을 향한 시선을 애써 무시하는 중이었다. 그녀가 하고픈 말이 무엇인지 당찬일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대답해 주기 귀찮은 탓이었다.
무엇보다 당숙정과의 동행은 내키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매우 불편했다.
“말해 봐.”
당찬일은 듣지 못한 척 창밖만 보았다.
“말해 보라고.”
다시 외면.
“말 안 할래?”
이쯤 되자 당찬일도 더 이상 무시하기 어려워졌다.
“뭘 말입니까?”
“네가 대가주님 옆구리를 찔렀지?”
“무엇으로요?”
“뭐?”
“대가주님 옆구리 찌르지 않았냐면서요. 무엇으로 찔렀을 거 같냐고 묻지 않습니까?”
기가 막힌다는 듯 당찬일을 보던 당숙정이 팔짱을 꼈다.
“무엇으로 찌르고 싶은데?”
머릿속에 잘 드는 칼이 떠올랐지만, 당찬일은 그렇게 대답하지 않았다.
“글쎄요.”
“찌르고 싶다는 거로구나?”
“아직까지 안 찔렀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대답 끝.
짜증을 풀 곳을 찾지 못한 당숙정이 종이를 꺼내서 좍좍 찢기 시작했다.
‘종이 포사라.’
포사(褒姒)는 비단 찢는 소리에만 반응하여 웃었다고 해서 천금매소(千金買笑)라는 말을 남긴 주나라 유왕의 애첩을 말한다.
당찬일이 멀거니 자신을 바라보자 당숙정이 짜증을 부렸다.
“뭘 봐.”
“별로요.”
또다시 서로를 외면하며 가던 두 사람이었는데 문득 당찬일이 입을 벌렸다.
“사천은 중앙에서 너무 외떨어져 있더군요.”
“뭐?”
“사천이 변방에 불과했다는 걸 뼈저리게 실감했다는 말입니다.”
당찬일이 지나가듯 중얼거리자 당숙정의 눈이 반짝였다.
역시 애늙은이다.
이런 말을 열세 살짜리 소년의 입에서 듣게 될 줄이야.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원.’
당찬일을 주시하던 당숙정이 곧 고개를 저었다.
이 녀석도 그렇고, 부친인 당과로도 그렇고, 다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생각도 오래지 않아 정리되었다.
아미파의 상황이 생각보다 처참하고 끔찍한 탓이었다.
아미파 비구니들의 시신 상태를 그린 검시서(檢屍書)를 보고 당찬일이 흘리듯 중얼거렸다.
“강시(僵尸)……?”
“뭐?”
화들짝 놀란 당숙정이 반사적으로 주변을 돌아보고 다그치듯 물었다.
“무슨 소리야, 강시라니?”
당찬일의 자신이 관아의 동혈과 미주산에서 보았던 것을 이야기하자 당숙정이 눈을 모았다.
“절대 고수에다가 강시까지? 그게 전부 성도부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짧은 시간을 겪었지만 당찬일이 이런 걸로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는 걸 알았기에 당숙정이 머리를 굴렸다.
“설마 그것들과 나의 연관성을 의심하는 거니?”
“글쎄요.”
“뭐, 의심하는 건 자유인데, 시간 낭비라고 하고 싶구나.”
양팔을 벌리고 돌아선 당숙정이 가만히 속삭였다.
“그리고 의심의 테두리에 네 아비도 있다는 걸 잊지 말도록.”
이번에는 당문 검시관들의 시신을 대한 당숙정과 당찬일은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분명 이건 내가중수법이야. 이 정도의 고강한 수법을 지닌 사람이라면 전대의 고수이거나 정체를 파악조차 어려운 고수라는 소린데.’
당숙정이 의구심을 품은 이유는 당문 검시관들의 시신에 기다란 실선 이외의 어떤 상흔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게 보기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내부가 너무 멀쩡해. 어지간하면 자연사라고 넘길 수밖에 없잖아.’
만약 네 명의 한꺼번에 사망하지 않았더라면 당문에서조차 급사 정도로 처리했을 것이다.
‘이건 이유를 하나로밖에 볼 수 없는 건가?’
네 명의 검시관을 죽인 것은 명백한 선전포고다.
그것에 사건을 꼬아 자신들의 정체를 숨긴 것이라고 봐야 한다.
반면 당찬일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또 그들일까?’
지금에 와서 생각할 때 관아의 지하 동혈에서 맞닥뜨린 건 백상일 확률이 높다. 백상이 흠차관 청년과 동행했음을 생각할 때 동혈에서의 일을 그가 벌였다고 보긴 어렵다.
그렇게 가정하면 지하 동혈에서 백상이 했던 말이 납득이 간다.
‘동혈에서 시신으로 장난치는 걸 보고 대로한 상태에서 나를 만난 거라고 보는 게 맞을 거야.’
백상은 괴이한 쌍둥이를 처리한 뒤 당찬일을 굴복시켜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려 했으나 당찬일의 거센 반항에 밀린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백호는 다르다.
백호는 자신과 총 세 번 만났던 걸로 기억한다.
당숙정과 정체 모를 존재들을 미행하다 한 번. 그리고 시전에서 한 번. 마지막으로는 미주산에서 한 번.
‘그는 여느 무림인과는 달랐다. 악행을 저지르다 무림공적으로 지목된 흉악한과도 달랐고.’
그는…….
‘확신범이다!’
자신이 옳다고 믿으면 어떤 일이라도 서슴지 않고 벌이는 확신에 찬 인간의 전형.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사소한 희생 따윈 가볍게 저지르는 자기 완결형.
아마 백호는 그런 자일 것이다.
‘그자는 좀 피하고 싶은데.’
그런데 어째서 둘은 같은 결을 지니고 있는 걸까?
더 머리가 아픈 건…….
‘검시관들의 시신은 분명히 내가중수법이야. 그리고 백상의 무공이…… 루강.’
백상의 무학은 아름다운 여인의 눈물과도 같은 루강이었다. 이것은 형체가 없는 내공을 실체화하는 무공 가운데 가장 세련된 수법으로서 내가중수법의 기초에 해당하는 무학이다.
그렇다고 백상이 검시관들을 죽였을 거라 생각할 순 없다.
무림에 내가중수법을 쓰는 고수가 얼마나 많단 말인가?
다만…….
‘자꾸 얽혀.’
그렇다. 백상와 백호 두 사람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당문과 엮이고 있었다.
그들은 당문에 바라는 게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