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87
당문전생 (86)
사신(絲神)의 귀환!
당문의 뒤편 거대한 삼나무 숲.
이서악은 느긋하게 산책을 즐기다가 익숙한 그림자를 발견했다.
“돌아왔구려.”
이서악이 여인에게 인사를 건넸지만 평소와 달리 그의 음성은 딱딱했다.
“제가 돌아온 게 못마땅한가요?”
여인의 물음에 이서악이 별다른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당신은 여전하군요.”
“여전하긴, 이젠 중늙은이 신세라오. 곧 있으면 상수(桑壽)라지.”
상수란 마흔여덟 살을 말한다.
왜 상수냐 하면 뽕나무 상(桑) 자를 십(十)이 네 개와 팔(八)이 하나인 글자로 파자하여 마흔여덟로 본다는 것에서 유래했다.
“당신이야말로 여전하군.”
이서악이 말하자 여인이 깔깔 웃었다.
“칭찬으로 듣겠어요.”
여인이 웃음을 그치길 기다렸다가 이서악이 물었다.
“그간 어찌 지냈소?”
“어찌 지냈냐고요?”
여인이 다시 깔깔 웃었다.
특이하게도 여인은 얼굴의 반을 탈로 가린 상태였는데 드러난 용모만으로도 능히 천하를 오시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내가 어찌 지냈을지는 당신이 더 잘 아시지 않나요?”
“하아.”
이서악이 탄식을 터트렸다.
그로서는 한숨을 쉬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 성격 여전하군. 전혀 변하지 않았어.”
“그러면 안 되나요?”
여인이 장포를 확 펼치자 이서악이 뒤로 죽 물러섰다.
파바바박!
이서악이 서 있던 자리에는 돌연 흙먼지들이 무수히 피어올랐다.
“뭐 하는 짓이요!”
“뭘까요?”
여인이 손가락을 빠르게 놀렸다.
“예전에 마무리 짓지 못한 일을 끝맺으려는 거지요.”
사라락!
여인의 손에서 무언가가 떠나자 이서악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허공에 떠 있는 이서악을 보며 여인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난 당신을 위해서 모든 걸 바쳤잖아요. 이런 제 마음을 아직도 외면하는 건가요?”
콰드득!
여인이 손을 홱 당기자 허공에 떠 있던 이서악의 몸이 잔뜩 옥죄어졌다. 하지만 이서악은 통증 자체를 느끼지 못하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여인을 응시할 뿐이었다.
“괴로운가요? 하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여인이 얼굴의 반을 가린 탈을 발작적으로 벗어던졌다.
“난 나의 모든 걸 바쳤다고!”
드러난 여인의 반쪽 용모도 나머지 반만큼이나 아름다웠다. 다만 그녀의 뺨엔…….
“당신은 내가 죽은 줄로만 알았겠지. 하지만 아니었어. 나는 오로지 당신을 다시 만나겠다는 일념 하나로 지옥을 건넜어.”
확!
여인이 실을 낚아채자 이서악은 금방이라도 허공에서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오직 당신을 다시 만나겠다는 일념 하나로!”
와락!
이서악을 끌어당겨 그와 얼굴을 마주한 여인이 흐느끼듯 입을 열었다.
“조금 전에 나더러 여전하다고 했지요?”
여인을 응시하는 이서악의 눈망울에 파랑이 일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나타날 때보다 빠르게 사라져서 처음부터 없었던 것 같았다.
“보세요! 내가 아직도 여전한가를!”
자신의 볼을 내밀며 여인이 호소했다.
“당신 때문에 내가 얻은 상처를 한번 보라고요!”
“후우…….”
끝내 이서악의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이런다고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소, 려군.”
여인의 정체는 다름 아닌 사신 벽려군이었다.
이서악이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해 버리자 벽려군이 충격을 받은 듯 주춤 뒤로 물러섰다.
“다, 당신은 아직도!”
“아직도가 아니오.”
투툭!
자신을 옭아맸던 실을 끊어 버린 이서악이 지상으로 표표히 하강했다.
“처음부터였소.”
뒷짐을 진 이서악의 단호한 답변에 벽려군이 신형을 바르르 떨었다.
“이, 이, 잔인한……!”
몸을 부들부들 떨던 벽려군이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당신은 내게 이러면 안 되잖아!”
허공으로 둥실 몸을 띄운 벽려군이 이서악을 내려다보았다.
“오늘부터 비틀린 과거를 바로잡는 거예요.”
이서악을 응시하던 벽려군이 씹어뱉듯 입을 열었다.
“명심해요!”
그 말을 끝으로 벽려군이 훌훌 날아가자 그녀를 배웅하듯 지켜보던 이서악이 짧은 숨을 내쉬었다.
“집착이오, 집착. 어리석은 집착…….”
고개를 가로저은 이서악이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넓게 퍼져 있는 당문의 전각들, 활발하게 움직이는 당문 사람들.
“참으로 오랫동안 신세를 졌구나.”
* * *
당찬일이 귀환하자 기다렸다는 듯 당쾌풍과 당호민이 그를 찾았다.
“아미에서 또 한 번 대활약을 하셨다며, 어전호위?”
당쾌풍의 넉살은 여전했고…….
“정말로 사신이 나타났어? 그분이 정사 중간에서 활동했다고는 하지만 치우침이 없고 억지를 쓰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잖아.”
당호민은 시작부터 상황을 분석하려 들었다.
“무림사군자 중 사신 벽려군만이 정(正)에도, 사(邪)에도 물들지 않고 혼자 살아가는 유일한 인물 아닌가? 그야말로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들었는데.”
당찬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십 년 전에 사라졌을 때도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이 없었지. 나타난 것도 갑작스럽고.”
당호민의 눈이 깊숙이 침전되었다.
“이십 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글쎄…….”
당찬일이 돌아서서 걸음을 옮기며 중얼거렸다.
“역시 당사자에게 묻는 게 최선이겠지.”
뒷동산엔 이서악이 없었다.
“출타하셨나?”
그러나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이서악은 나타나지 않았다. 뒷동산의 왕소군으로 불렸던 이서악의 딸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게 속절없이 시간이 흘렀다.
* * *
펑! 펑!
신년회가 시작되었다.
한동안 조용하게 지내던 당문도 신년과 함께 활기가 넘치기 시작했다.
“어이쿠 바쁘구먼!”
당쾌풍이 주변을 돌아보며 숨겨 온 호리병을 들어 술을 홀짝였다.
“작작 좀 마셔라.”
당호민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당쾌풍은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지만.
당찬일은 말없이 시전의 요란함과 흥에 겨운 사람들을 돌아보는 중이었다.
언제나와 같은 신년회의 광경이다.
하지만 당찬일은 묘한 긴장감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뭐지?’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저 기우라고 넘어갈 법한 수준의 문제였지만 당찬일은 본능을 쉬이 넘기는 사람이 아니다. 당찬일은 모든 감각을 끌어올린 채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네 번째 노점을 지나치는 순간, 그의 눈앞에 가면을 쓴 여인이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본능적으로 한 걸음 물러난 당찬일은 그녀가 지나치자 다시 걸음을 옮기려고 했는데…….
‘음?’
시야에 가면을 쓴 그 아름다운 여인이 아른거렸다.
우뚝!
당찬일이 발을 멈추자 당쾌풍과 당호민이 의아해했다.
“왜 그래, 재종?”
당호민이 당찬일을 살폈다.
―무슨 일이야?
―아니, 잠시.
당찬일이 다시 걸음을 옮기자 당쾌풍과 당호민이 그를 따랐다. 하지만 당찬일은 미처 세 걸음을 걷기도 전에 품에서 방울을 꺼냈다.
짤랑!
자신에게 집중된 탈혼령의 압박에 당찬일은 뒤로 나자빠졌다.
“쿠에엑!”
“뭐야 왜 그래?”
“괜찮은 거야?”
당쾌풍과 당호민이 그를 에워싸자 당찬일이 실눈을 뜨고 주변을 살폈다.
―이대로 잠시만.
그의 눈길을 받은 당호민이 입술을 깨물었다.
―역시 뭔가 있군!
당쾌풍도 눈동자만 돌려서 주변을 바삐 살폈다.
―뭔데 그래?
두 사람이 의문을 표시했지만, 당찬일은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이것은 일반적인 현상이 아닐 테니까.
이것은 환상일 테니까.
시전자가 주도하는 의도된 환상, 달리 말하면 섭혼술.
그렇다면 대체 누가 자신에게 섭혼술을 걸어오는 걸까?
“잠시만 부축해 줘.”
탈혼령의 효과는 과연 놀라웠다.
시전자의 섭혼술은 엄청난 것이라 인파가 많은 곳에서도 단박에 당찬일을 환상의 바다로 빠트렸지만, 탈혼령의 소리는 그것을 삽시간에 잠재웠다.
약간의 내상은 입었지만.
‘역시 그런가.’
아마도 그녀가 자신을 부르나 보다.
그렇다면 가야 한다. 이 일을 해결한다면 두 번째 자물쇠를 해금해 준다고 하지 않는가.
당쾌풍 들과 헤어지고 하독처로 돌아가는 당찬일의 앞으로 눈처럼 하얀 여인이 내려앉았다.
“당신이 사신입니까?”
품속의 탈혼령을 확인하며 당찬일이 물었다.
“당신?”
여인이 당찬일을 멀뚱히 보다가 깔깔 웃었다.
“너 같은 아이에게 당신이란 소리를 듣다니,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건지 화를 내야 하는 건지 모르겠구나.”
교소를 터트리던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바로 사신 벽려군이다.”
벽려군의 기도는 엄청난 것이었다.
그가 상대했던 어떤 고수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심지어는 검군 이서악마저도 살짝 밀리는 느낌이다. 회자되던 대로 무림사군자의 최고는 사신이 아니었을까?
꿀꺽!
당찬일이 마른침을 삼키자 벽력군이 그에게 한 걸음 다가왔다.
“아미파에서는 재미난 방울을 가지고 놀더구나.”
역시 아미파에서 시신을 가지고 장난을 쳤던 인물은 벽려군이었다.
“그에게 애늙은이 제자가 있다고 들었는데, 그게 너지?”
“제자 같은 건 아닙니다.”
“제자 같은 거?”
“그렇습니다. 구배지례도 드리지 않았고, 신물이나 영패도 받지 못했으며, 결정적으로 독문 무공 하나 사사하지 못했는데 어찌 제자라고 하겠습니까?”
당찬일이 토로하자 벽려군이 순간적으로 출수했다.
스칵!
“헛!”
놀람은 뒤로 두고 당찬일이 기묘하게 발을 틀어서 벽려군의 공세를 피했다.
스르륵.
우리 사천당문은 용독술과 암기술로 천하를 제패했지만 진실한 무학만으로도 무림에 우뚝 설 수 있느니라.
이 가운데 가주에게만 허락된 암왕칠보(暗王七步)가 있으니 이것을 익힌다면 위급한 순간에도 제 한 몸을 건사할 수 있음은 물론, 극성에 이르면 절정의 고수와 비견해도 밀리지 않으리라.
암왕허보(暗王虛步)!
암왕칠보 가운데 수비만을 위해서 탄생한 보법!
암왕허보가 발동되자마자 당찬일이 마치 그림자처럼 자신의 공세에서 빠져나갔기에 벽려군이 실을 거두었다.
“확실히 그의 무공은 아니로군.”
이 시점에서 전진보법으로 전환하여 벽려군을 압박하고 싶었지만, 그래봐야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한 당찬일이 발의 힘을 뺐다.
“그러나 역시 너는 그의 제자다. 그라면 그런 방식으로 제자를 들일 테니까.”
당찬일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형태만 조금 다를 뿐, 벽려군은 당숙정과 비슷한 억지꾼이었으니까.
“그가 딸을 데리고 도망을 쳤더군. 비겁하게 말이야.”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 싶었지만 질문을 하지 않느니만 못한 결과를 얻을 게 뻔해서 당찬일이 숨을 골랐다.
적어도 벽려군은 자신에게 살의를 품지는 않았으니까.
다시 말해서 그녀는 자신에게 해를 가할 목적으로 찾아온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벽력군은 무엇 때문에 모습을 드러낸 걸까?
“나를 찾아온 이유가 무엇인지요?”
“확실히 그의 제자답게 무섭도록 침착하구나.”
오해라니까!
검군 이서악에게 많은 도움을 받은 건 사실이지만 그의 제자는 아니다.
하지만 벽려군은 당찬일을 이서악의 제자라 단정 지었다.
“원래 나는 그의 딸과 지난날을 회고하려 했지. 하지만 그가 딸을 데리고 도주했더군.”
아, 놔…….
“그래서 남은 것이 나였던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