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88
당문전생 (87)
거짓말을 안 하고 있습니다
“너는 그를 십 년이 넘도록 숨겨 주었던 당문의 직계이자 그의 제자이니 내 이야기를 들을 자격이 충분하지. 아주 합당한 인물이 바로 너란 말이야.”
이 순간 당찬일의 머릿속으로 떠오른 의문 하나.
당과로는 이런 사항까지 짐작하고 두 번째 자물쇠를 해금해 준다는 말을 한 걸까?
‘빌어먹을 늙은이.’
왈칵 짜증이 났지만 애써 눌러 참은 당찬일이 담대하게 나왔다.
“그래서요?”
상대방을 자극시킬 어투였지만 당찬일로서도 짜증이 나 있는 상태라 순화하지 않았다.
“제자인 저를 상대로 복수극이라도 벌이겠다는 겁니까?”
“이런 건방진!”
벽려군이 양손을 내뻗자 당찬일의 주변으로 수천, 수만 가닥의 실들이 내리깔렸다.
“뭘 믿고 이리 시건방을 떠는 게냐?”
자신의 주변에서 하늘거리는 실을 응시하던 당찬일이 씨익 웃었다.
“여러 가지.”
“이놈!”
열받았을까?
쉬익!
당찬일에게로 실들이 쇄도해 들어갔지만 그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아직 벽려군은 자신을 찾은 이유를 말하지 않았으므로 손을 쓸 리가 없으니까.
우뚝!
과연 당찬일에게로 향하던 실들은 그의 한 치 앞에서 딱 멈추었다.
“그가 괴물을 키웠군. 아니, 괴물은 당과로니까 걸물이라고 해야 할까?”
실을 회수한 벽려군이 속삭이듯 말했다.
“내가 원하는 건 하나다.”
“검군의 행방이라면 나도 모릅니다.”
당찬일이 선수를 치자 벽려군의 음성이 돌연 착 가라앉았다.
“더 이상 깐족거리면…….”
벽려군의 입이 달싹였다.
“죽는다.”
뚝!
여기서 더 나간다면 진정한 사신의 분노를 불러일으킬 것이기에 당찬일이 입을 닫았다.
지금의 자신으로는 사신의 한 수도 받기 버거울 테니까.
“그가 연락을 취하면 반드시 내게 알려라.”
당찬일이 답하지 않자 벽려군이 그를 잡아먹을 기세로 노려보았다.
쿠우우우!
그녀가 기세를 뿜어내자 당찬일은 숨쉬기조차 어려워서 어금니를 깨물어야만 했다.
역시 사신!
기세만으로 능히 천하를 찍어 누를 정도다!
“지금 내 명을 거역하겠다는 거냐?”
“아니요.”
“그럼 뭐 하는 게냐?”
“거짓말을 안 하고 있습니다.”
순간 벽려군이 멍청하게 당찬일을 바라보다 손으로 입을 가리며 대소를 터트렸다. 깐족거리면 죽인다고 하니까 이제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있다니!
“참으로 재미난 녀석이로구나! 정말로 걸물이야!”
한참을 웃은 벽려군이 몸을 돌렸다.
아무리 그라도 이런 제자를 버리고 완전히 자취를 감추지는 않겠지, 하며 고개를 끄덕인 벽려군이 눈을 가늘게 떴다.
“오늘부터 너는 나의 눈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마라. 만약 그처럼 몸을 숨긴다면 지옥 끝까지라도 찾아가서 뼈를 발라낼 것이야.”
당찬일이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그의 반응 따윈 아랑곳없다는 듯 벽려군이 사라졌다.
홀로 남은 당찬일이 어스름해지는 하늘가를 응시하다 탄식했다.
“어쩌다 보니 이상한 배역을 맡은 것 같군.”
* * *
그 시각.
성도부의 가장 큰 객잔에서는 사천성의 도지휘사(都指揮使)인 윤덕일과 당문의 외당주인 당진이 술자리를 벌이고 있었다.
도지휘사란 그 성의 군정을 장악하는 관리로 위소(衛所)를 통솔했다.
한마디로 군사 조직의 우두머리다.
“한 잔 드시지요, 윤 대인.”
“그럽시다, 진 당주.”
살짝 잔을 부딪친 두 사람이 단숨에 술을 들이켰다.
“요즘 당문은 어떻소이까?”
“대인의 은덕으로 그럭저럭 돌아가는 실정이지요.”
“그래요.”
말꼬리를 늘이던 윤덕일이 술잔을 빙글빙글 돌렸다.
“당문에 전투 인원이 몇이지요?”
“그건 갑자기 왜 물으십니까? 그보다 지난달 삼목에서의 일이…….”
“십오 세 이상 중 한 초식이라도 무학을 배운 이가 몇이오?”
당진이 화제를 전환하려고 시도했지만 윤덕일은 완고했다.
윤덕일의 기세가 남다름을 느낀 당진이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대략 백사십 정도일 겁니다.”
“백사십? 굉장히 많군!”
윤덕일이 난색을 표했다.
“왕부도 아니고, 관아도 아닌 곳에서 사병(私兵)이 물경 백사십을 헤아린다면 지나치게 숫자가 많아.”
“아, 참!”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제 허벅지를 친 당진이 아래에 놓여 있던 작은 궤짝을 탁자 위로 올렸다.
딸깍!
궤짝 안에는 오리 모양의 은과 갖가지 패물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저희 당문의 성의입니다, 대인.”
당진이 궤짝을 내밀자 그의 손목을 잡은 윤덕일이 고개를 저었다.
“진 당주.”
윤덕일의 기세가 심상치 않자 당진의 얼굴에도 웃음기가 서서히 사라졌다.
“이건 그렇게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오.”
“그럼…….”
“하늘의 뜻이오.”
하늘이라면 천자, 다시 말해서 황제를 일컫는다.
그렇다면 모든 문파나 세가에 전투 인원을 감축하라 지시를 내린 건 황제의 의중이란 소리다.
이 뜻밖의 사태를 얼른 받아들이지 못하고 당진이 망연해 있자 은자와 패물이 잔뜩 들어 있는 궤짝을 슬그머니 챙기며 윤덕일이 신소리를 늘어놨다.
“내 특별히 폐하께 부탁드려서 최대한 시간을 끌어 볼 테니 진 당주는 넉넉잡고 석 달 안에는 정리했으면 하오.”
특별히 부탁은 개뿔.
일개 지방의 도지휘사가 황제를 상대로 어찌 시간을 끈단 말인가? 즉, 이건 황제는 모든 세가와 무림의 문파에 처음부터 석 달의 여유를 줬다는 거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당진이었지만 그런 걸 따져 봐야 돌아올 것도 없고, 뇌물을 다시 돌려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그저 고개만 끄덕일 따름이었다.
“허허, 당주께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가 보구려.”
궤짝을 옆에 시립해 있던 위사에게 넘긴 윤덕일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나는 이만 가 보겠소. 인원이 정리되면 언질이나 주시구려.”
숙소로 돌아가며 윤덕일이 키득거렸다.
“그러게 왜 폐하의 눈 밖에 나서는.”
이 말의 뜻은 전투 인원 감축 조치가 당문 한 군데에만 내려진 특별한 명령이란 거다.
“지나치게 가세(家勢)를 키우지를 않나, 성도부에서 은자 두 냥을 이자 없이 빌려주는 놈이 나오지 않나, 유난을 떨 때부터 내 알아봤지.”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던 윤덕일이 뒤따르는 이십여 명의 병졸들에게 전낭을 풀어 엽전을 나눠 주었다.
“자자, 신년이고 하니 귀대하기 전에 술이라도 한 잔씩 걸쳐라.”
“고맙습니다, 도지휘사 대인!”
자신이 당진에게 받은 뇌물에 비한다면 미미하기 그지없는 액수를 나누어 주면서 생색이란 생색은 다 내던 윤덕일이 고개를 들었다.
“저자는 뭐 하는…….”
피슛.
자신에게 엽전을 받았던 병졸이 풀썩 나자빠지자 윤덕일이 크게 소리쳤다.
“저놈 잡아라!”
윤덕일이 가리키는 곳엔 희뿌연 인영(人影)이 서넛 서 있었다.
“이놈!”
위사들이 일제히 달려들자 인영들의 눈에서 시뻘건 광채가 일었다.
* * *
쾅!
이른 아침부터 관군이 들이닥치자 내당주인 당암이 서둘러 나섰다.
“윤 대인, 기별이라도 주시지 그러셨습니까?”
“기별?”
윤덕일이 콧방귀를 날렸다.
“암 당주, 그대 입에서 지금 기별이라는 말이 나오시오?”
윤덕일이 당진을 진 당주라 칭하고, 당암을 암 당주로 부르는 이유는 두 사람 모두 당씨라서 당 당주로 통일되기에 구분하려 그러는 것이었다.
“대인, 무슨 문제라도 발생했습니까?”
윤덕일의 기세가 자못 심상치 않음을 느낀 당암이 조심스레 물었다.
윤덕일은 어제 분명 외당주인 자신의 동생 당진과 신년회를 겸한 주석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윤덕일이 사병(私兵) 감축, 다시 말해서 전투 인원을 줄이라는 관의 지침을 내렸지만, 당진은 타는 속을 부여잡고 수긍의 빛을 띠었다고 했다.
결국 윤덕일은 자신이 전하려던 바도 확실히 고지했고, 당문에서 준비했던 뇌물까지 챙겨 갔으니 기분이 틀어질 이유가 없을 텐데.
윤덕일이 당암을 주시하다 무언가를 내밀었다.
“이것은?”
윤덕일이 내민 것은 호패였다.
“이자를 당장 대령하시오!”
호패의 주인은 방호용이란 자였다.
그는 당문의 외당 암기부 소속의 말단 무인으로서 약간 어눌한 감이 있는 사내였다.
방호용이 쭈뼛쭈뼛 끌려 나오자 윤덕일이 호통을 쳤다.
“방호용? 암기부 소속이라고?”
“그렇습니다요, 대인.”
방호용이 고개를 조아리자 그의 앞에 호패를 흔들면서 윤덕일이 다그쳤다.
“이 호패가 네 것이 맞으렷다!”
“어? 이게 왜……?”
방호용이 어리둥절해하자 윤덕일이 발을 굴렀다.
“네 이놈! 어디서 시치미를 떼느냐! 어제 해시(亥時: 밤 9시 반~11시 반) 초에 어디에 있었느냐!”
“어제 해시 말씀이십니까? 어제 해시 초면…….”
방호용이 띨띨한 자세를 견지하자 복장이 터진 윤덕일이 소리쳤다.
“얼른 이실직고하지 못할까!”
“잠깐만,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대인!”
윤덕일이 길길이 날뛰자 분위기가 너무 과열되었다고 판단한 당암이 그를 안정시키려고 애를 썼다.
“어제 해시에 무슨 일이 있었나 본데, 그것을 좀 설명해 주시구려.”
“정말 몰라서 묻는 거요, 흥?”
“모르니 묻지 않소이까? 설명을 해 주셔야 알아듣지요.”
당암의 요모조모를 살피던 윤덕일이 신경질적으로 내뱉었다.
“어제 이 몸을 습격한 무리들이 있었소! 그들은 하나같이 검은 복면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무기만큼은 숨길 수가 없더군!”
윤덕일이 보자기에 싸여 있던 물건을 풀었다.
“음.”
당암의 입에서 짓눌린 신음이 터질 법도 한 것이, 보자기 안에서 다수의 전표(錢鏢)가 나왔기 때문이다.
멈칫
“어디서 많이 보던 물건 아니겠소? 또한 호패를 잃어버린 자가 암기부 소속이라니 참으로 공교롭구려.”
윤덕일이 비꼬자 당암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설마 대인을 습격했던 자들이 저 호패를 흘리고 갔다는 소리입니까?”
“그러지 않고서야 내가 왜 이 호패를 들고 꼭두새벽부터 당문을 찾았겠소?”
전표, 다시 말해서 엽전 형태의 암기는 당문의 독문 암기는 아니다. 하지만 소지하기 편하고 관의 이목을 끌지 않는다는 이점이 있어서 당문의 무인들이 애용하는 암기다.
거기다 호패까지 더해진다면…….
당암이 곤혹스러워하자 윤덕일이 오른쪽에 도열한 군에게 명했다.
“여봐라! 너희들은 곧장 암기부로 가서 전표 형태의 암기와 암기 출납 일지를 모조리 수거해 와라!”
“대인! 이건 너무 막무가내의 조치가 아닙니까?”
“시끄럽소! 지금 국법에 항명하는 게요?”
이때 외당주 당진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어젯밤에 습격을 받으셨다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랍니까?”
“흥! 내가 살아 있어서 무척이나 안타깝겠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당진이 황당해하는 반응을 보이자 윤덕일이 발을 굴렀다.
“진 당주, 당신!”
손가락으로 당진을 가리키던 윤덕일이 버럭 고함을 쳤다.
“어지(御旨)의 내용이 당문에 다소 손해를 줄 수 있었다손 치더라도 그게 분해서 내게 암수를 가해? 그대가 정녕 그러고도 살아남길 바랐는가!”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오? 어지에 불만을 품고 대인을 공격했다니!”
당진이 강력하게 부인하자 윤덕일이 홱 고개를 돌렸다.
“됐소! 증거가 나오고도 그리 시치미를 떼나 봅시다!”
그가 발을 쿵쾅 구르며 자리를 뜨려 하는 순간 정문 위에서 세 개의 인영이 빛살처럼 나타나 윤덕일의 호위 군인들에게 암기를 날렸다.
“습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