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98
당문전생 (97)
진짜로 죽었다 다시 태어난 사람
[당문의 서안 지부가 위치한 개원문은 일명 태평로(太平路)라 불리는 시전으로서 무림맹 섬서 지부도 특별히 관리하는 지역임.태평로에서 장사하는 시전 상인들의 정신적인 지주는 만화루의 대교(大巧)라는 기녀라고 함.
만화루는 서안부의 최대 홍루(紅樓)로, 창기들이 몸을 파는 청루(靑樓)와 달리 기녀들이 춤과 노래만을 제공하는 고급 주점.
만화루를 대표하는 두 기녀가 바로 대교와 소교(小巧).
대교와 소교는 친자매지간으로, 두 여인은 기녀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인품이 고아하고 행동거지 또한 단아해서 천출(賤出)이 아닐 거란 소문이 파다함.]
“만화루가 무림 세력과 모종의 연관을 맺고 있을 거라고 추측하지만 개원문 사람들의 두터운 민심을 등에 업은 터라 접근 자체가 어렵다.”
종이를 접은 당찬일이 인근의 상점들과 열심히 물건을 파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말하기를 즐기는 상인들일진대 이들에게서 인근 기루의 정보를 조금도 얻지 못했을 정도라면 이곳 사람들의 대교란 여인에 대한 마음이 얼마나 지극한지 알 수 있겠군.’
고개를 갸웃거리던 당찬일이 뇌까리듯 중얼거렸다.
“아무리 빼어나다고 해도 결국 일개 기녀에 불과하거늘, 이 정도의 애정과 충성심은 너무 과하지 않은가?”
“뭐가 과하다굽쇼?”
점소이 소년이 불쑥 묻자 당찬일이 손을 내저었다.
“아니, 혼잣말이야.”
무심하게 중얼거린 당찬일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촤라락!
동성반점의 주렴을 걷으면서 등장하는 여인.
화려한 복색과 번쩍이는 노리개로 미루어 여염집 규수가 아닐 텐데, 놀랍게도 여인은 지극히 청초해서 당찬일이 눈매를 가늘게 떴다.
‘옷차림은 누가 봐도 기녀다. 하지만 지닌바 기품은 대갓집 영애와 견주어도 하등 꿀리지 않을 기세가 아닌가?’
잔잔한 눈망울로 객잔을 둘러보던 여인이 당찬일을 발견하고 몸을 돌렸다.
빙글.
한 떨기 난초가 가볍게 회전하듯 몸을 돌린 여인이 뒤따르던 두 명의 시비를 무시하고 그에게 다가왔다.
사박사박.
곱디고운 발소리와 함께 당찬일의 앞에 이른 여인이 살짝 입술을 열었다.
“당문에서…… 오셨나요?”
참으로 빠르다.
동성반점의 주인장은 만화루에 당찬일의 출현을 알리려고 자리를 비웠던 거다.
“그래요.”
여인을 올려다보며 당찬일이 자리를 권했다.
“식전이면 앉으시죠.”
당찬일이 기분 좋은 웃음을 머금었다.
“이곳의 국수가 제법 맛이 있으니까.”
당찬일이 자신을 너무도 태연하게 응대해서일까?
호수처럼 청명한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던 여인이 그의 맞은편에 다소곳이 앉았다.
“신 아저씨는 국수를 정말로 맛있게 말지요.”
말끔하게 비워진 당찬일의 그릇을 보며 여인도 함초로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오늘은 생각이 없네요.”
여인이 답하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당찬일이 찻잔을 들었다.
“무슨 일로 나를 찾아왔나요?”
여인의 답변할 사이도 없이 당찬일이 덧붙였다.
“대교 소저?”
반짝!
대교의 눈망울이 또 한 번 일렁였다.
“소공자님은 이 거리에 대해서 많은 공부를 하셨군요.”
“벼락치기지요.”
당찬일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돌리자 대교가 그를 유심히 살폈다.
“혹시 당찬일이란 함자를 쓰시나요?”
“공부의 양은 피차일반이로군요.”
당찬일이란 걸 수긍하자 대교가 그에게 청하듯 권했다.
“잠시 걷지 않으시겠어요?”
“한 가지 여쭈어봐도 될까요?”
걸음을 옮기며 대교가 입을 열었다.
“사천에서 제왕처럼 군림하던 당문이 이곳엔 무슨 일로 오셨나요?”
정육점 주인의 인사를 받으며 대교가 물었다.
“제기 알기로 당문은 육백 년 동안 사천을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었는데.”
한낱 기루의 여인이 던질 물음이 아니다.
이런 질문은 무림세가에서도 철저하게 훈련받은 사람들이나 던질 법한 질문이다.
기루에서 술과 노래를 파는 여인네가 무림세가의 대외 활동에 관심을 가질 이유는 전혀 없다.
해당 세가의 재력에 관심을 보인다면 또 모를까.
‘역시…….’
만화루는 적무연의 추측대로 무림의 세력과 연관이 있는 곳일까?
잠시 고심하던 당찬일이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일단 대답해 줄 수 있는 선에서 대교의 궁금증을 풀어 주기로 하자.
“자의 반 타의 반이었다고 치지요.”
두 사람을 멀뚱히 쳐다보는 정육점 주인에게 대교를 따라서 당찬일도 인사를 건넸다
“우선 대교 소저의 이야기처럼 육백 년 동안이나 얽매여 있었던 사천 땅을 벗어나 무림 동도들과 자유로이 소통하고 싶은 욕망도 작용했을 테고요.”
“그것이 내적 요인인가요?”
대교가 곁눈질하자 당찬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또한 성도부에서 민간인을 상대로 시작한 무술 교육이 꽤나 호응이 좋아 이곳저곳에서 우리 당문을 원했고요.”
“서안에선 그런 움직임이 없었던 걸로 아는데요?”
대교가 의아해하자 당찬일이 좌판 상인에게 떡 두 덩이를 사서 하나를 그녀에게 주었다.
“《사천무편》은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 중반의 남성들 사이에서 주로 회자가 되니까 대교 소저가 잘 모를 수도 있지요.”
당찬일이 건넨 떡을 받아 든 대교가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한 입 베어 물었다.
“어머, 맛있네요.”
입에 묻은 콩고물을 때며 대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무튼 《사천무편》이란 무술서를 일초반식의 무학도 모르는 우리 서안의 서민들에게 전파하려고 오셨다는 건가요?”
대교가 떡을 우물거리면서 슬그머니 자신을 훑자 당찬일이 그녀의 눈길을 피했다.
“뭐, 그런 부분이 우리 당문을 밖으로 불러낸 외적 요인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당찬일이 마무리하는데 두 사람을 바라보는 시전의 상인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교 소저와 같이 있는 공자님은 뉘시지?”
“몰라. 아무튼 잘 어울리는 한 쌍이로구먼.”
“아주 그냥 원앙이야, 원앙!”
상인들의 수군거림을 들은 대교가 문득 당찬일을 돌아보았다.
“왜 그러지요?”
대교가 자신을 새삼스럽다는 듯 바라보자 당찬일이 물었다.
“아, 아니…….”
당찬일과 눈이 마주친 대교가 뭔가를 말하려다 곧 입을 닫았다.
“아니에요.”
볼까지 빨개진 대교의 응대는 어색하기 짝이 없었지만 다른 방향으로 해석할 여지가 없어서 당찬일이 어깨를 한 번 올렸다가 내리면서 넘어갔다.
그렇게 천천히 거닐던 두 사람이 시전을 나와서 야트막한 산이 보이는 정자에 걸터앉았다.
“저의 아버지는 한림원(翰林院)의 시독(侍讀)이셨다고 해요.”
갑자기 시작된 대교의 가정사.
한림원의 시독이라면 정육품의 관리이자 학자로서 전도유망한 벼슬아치였다는 뜻이다.
“아버지께서는 학식이 깊고 올곧은 성품이라 많은 이들의 신망을 얻었지만 강직한 성격 때문에 필연적으로 적도 많았답니다.”
그러다 결국 역모의 죄를 뒤집어썼단다.
“당연히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지요. 그리고 아버지는…….”
잠시 말을 끌던 대교가 한숨처럼 털어놨다.
“모진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옥에서 숨을 거두셨다고 합니다.”
대교의 눈망울이 촉촉이 젖어 들었다.
“당시 겁난을 피해서 도망친 우리 자매를 보듬어 안아 준 곳이 이곳, 태평로였어요.”
주변을 돌아보는 대교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태평로 사람들은 다섯 살, 세 살짜리 계집아이들을 품어 주었지요.”
대교가 가만히 하늘가를 올려다보았다.
“그래서 태평로는 우리 자매에게 정경(情景)이자 어머니이자 보금자리랍니다.”
나름 의연한 표정을 짓는 대교였지만 그녀의 웃음은 너무도 애처로워서 남정네로 하여금 보호 본능을 일깨우기에 충분했다.
처연하게 웃던 대교가 문득 정신이 든 사람처럼 당찬일에게 고개를 숙였다.
“분위기에 취해서 제가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놨네요. 부디 용서를…….”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당찬일이 입을 열었다.
“내 비밀도 한번 들어 보시겠습니까?”
당찬일이 대교를 돌아보았다.
“사실 나는 한 번 죽었다가 살아났습니다.”
“아, 저도 들었어요. 공자님은 태어나자마자 가사 상태에 빠져서 무려 십삼 년 동안이나 지냈다지요?”
대교가 커다란 눈을 깜빡였다.
“그래서 당문낭군 대협 같은 경우는 공자님을 ‘잠자는 숙질’이라고 불렀다던…….”
“그건 표피적으로 드러난 부분이고.”
대교의 말을 자른 당찬일이 음모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진짜로 죽었다 다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게 무슨……?”
“말 그대로 다시 태어났다는 거지요.”
대교에게로 천천히 몸을 돌린 당찬일이 담담한 시선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환생(還生)했다고요.”
당찬일의 말을 들은 대교가 연못 속의 금붕어처럼 눈을 끔뻑거리다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아…….”
대교가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공자님은 이전의 삶을 누리다 모종의 이유로 죽음을 맞이하고 다시 태어나셨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어쩌다 당찬일이란 사람에게로 영혼이 들어왔고요?”
“그렇지요.”
당찬일의 능청스러운 응대에 대교의 얼굴이 싸늘해졌다.
사람은 본래 타인과 비밀을 공유하게 되면 그와 각별한 사이가 된다는 착각에 빠진다.
거기다 비밀을 나눈 상대방이 썩 괜찮은 이성(異性)이라면 친밀도는 급상승하기 마련이고.
하여 대교가 자신의 과거사를 털어놓을라치면 눈물짓지 아니한 사내가 없었다.
대교의 말을 들은 남정네들은 백 중 백 자신의 일처럼 탄식했으며, 개중에는 그녀의 처지를 불쌍히 여겨 대성통곡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 식으로 대교와 공감하던 사내들은 곧 그녀의 치마폭에 휩싸이기 일쑤였다.
하지만 당찬일은 달랐다.
그는 그녀에게 공감하기를 거부했음은 물론, 가벼운 농으로 자연스럽게 대교를 밀어내는 여유까지 보였다.
‘과연 최연소 어전호위라는 건가.’
얼음장처럼 마음을 굳힌 대교가 어쩐지 그와 눈이 마주치면 자신의 속내를 들킬 것만 같아서 당찬일을 슬그머니 외면했다.
“태평로란 정경이 우리 자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말씀드렸지요?”
대교가 갑자기 화제를 전환하자 당찬일도 그에 맞춰 응대해 주었다.
“어머니와 같다고 했던가요?”
“맞아요. 맞습니다. 그런 우리의 정경에 불청객이 난입했지요. 그냥 뜨내기라면 잠시 머물다 가려니 하겠지만 상대는 유서 깊은 무림세가라서 허투루 넘길 수 없었어요.”
대교가 말하는 불청객은 당문일 터.
“그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태평로에 왔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아름다운 나의 정경은 분명 흔들렸답니다.”
숨을 멈춘 대교가 정자에서 일어섰다.
“부디 내적 요인을 이루시길.”
당찬일에게 포권을 하고 빙글 돌아서며 대교가 덧붙이듯 한마디를 남겼다.
“우리의 정경을 깨트리지 않는 선에서 말이지요.”
표표히 자리를 뜨는 대교를 바라보던 당찬일이 그녀가 한 점이 되어 사라지자 몸을 일으켰다.
“당신들의 정경을 깨트리지 않는 선이라…….”
대교가 사라진 방향을 돌아본 당찬일이 뜻 모를 이야기를 내뱉었다.
“당신이 말하는 당신들은 대체 누굴까?”
그리고 거듭 강조하는 정경은 또 무엇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