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mporarily Closed for Work Reasons RAW novel - Chapter (311)
멸망이 임박한 세계에 기적을 일으켜 당신의 신명 ‘삼라만상을 쓰는 자’를 회복하시오.
Tip : 신도를 확보한다면 좋을 것이다.
현재 유일신의 신도 수 : 0
그런 내 머리 위로 조롱하듯 퀘스트 창이 깜박이고 있었다.
기적을 일으키라고? 신도를 확 보하라고?
아무도 내 존재를 알지도 못하는 이 세계에서 대체 어떻게?
유일한 희망이었던 이브는 결국 끝까지 나를 인식하지도 못했다.
나는 그저 이세계의 방관자에 불과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였다.
절망에 사로잡혀 있는 바로 그 순간, 내 머릿속으로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니야. 한 명 있다.’
이 세계에서도 나를 인식하고 있는 존재가.
“나는……….”
하지만, 이것이 진짜 가능한 것일까?
“나는.”
아니. 약해지지 말자, 유일신.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강철 같은 의지와 믿음이다.
“나는!”
내 존재를 모두 담아 간절히 신앙 활성화의 키워드를 외쳤다.
“나 자신! 유일신을 믿습니다!”
그러자 갓메이커의 상태 창이 반응했다.
띠링!
-현재 유일신의 신도 수 : 0 ???? 1
* * *
……이브는 홀로 숲을 걷고 있었다.
그녀를 옮매던 사슬 목걸이는 더 이상 없었다.
하지만, 이브의 발걸음은 납을 매단 듯 무거웠다.
이브는 남자의 마지막을 보았다.
자신을 구하기 위해 인간으로서의 최후를 포기하고 그토록 증오하던 좀비가 되어 버렸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광경이었지만, 기쁨은 없었다.
이브는 좀비가 된 아빠와 엄마를 죽인 그를 미워했지만, 동시에.
그를 사랑했다.
남자를 잃고 나서야 그것을 깨달았다.
이브는 그와 함께 보냈던 나날을 떠올렸다.
마치 상처받은 짐승들이 서로의 상처를 핥아 주는 듯한 시간이었지만, 이 멸망한 회색의 세계에서 그것은 빛바래지 않는 보석같았다.
하지만, 이제 그는 없다…….
이브의 발걸음이 멈췄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문득 이브는 자신이 나온 방공호를 떠올린다.
에덴, 미친 신부가 만들었지만, 이제는 아이들만 남은 그곳은 분명 살기 좋은 곳이다. 그러나 발걸음이 선뜻 떨어지지 않는다.
휘이잉!
문득 쓸쓸한 바람이 불었다.
바람에는 시체 썩는 악취가 섞여 있었다.
그것들이 사방에서 피 냄새를 맡은 상어 떼처럼 이브를 향해 몰려오고 있었다.
-그르르르!
-으어어어!
좀비들로 이루어진 죽음의 물결이 어느새 그녀의 주변을 새까맣게 뒤덮을 때까지도 이브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치 자신에게 밀려오는 죽음을 받아들이려는 듯 이브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때 누군가의 손이 그런 이브의 손을 휙 낚아챘다.
좀비인가?
“뭣 하고 있는 거냐!”
귀를 때리는 호통에 감았던 이브의 눈이 힘없이 열렸다.
이브의 눈이 커졌다.
지하실에 남겨 두고 떠났던, 좀비가 되어 버린 남자가 그녀의 팔을 움켜쥔 채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이브가 자신도 모르게 그런 남자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따뜻했다.
쿵! 쿵!
그리고 심장이 뛰고 있었다.
메마른 이브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살아 있었다. 살아 있었어.
하지만, 그런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크르르르!
굶주린 좀비 떼가 사방에서 둘을 향해 몰려들고 있었으니까.
자신들을 갈가리 찢어 버릴 기세로 뻗어 오는 좀비들의 손에 이브의 눈동자에 공포가 깃들었다.
-괜찮아.
그때 이브의 옆에서 누군가가 자상하게 속삭였다.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누군가가 그녀의 옆에 있었다.
-치유하는 신의 약지!
번쩍!
그러자 남자를 치유했던 성스러운 백광이 그들을 습격하던 좀비떼를 감싸고, 동시에 온 세상으로 퍼져 갔다.
죽음으로 뒤덮인 세계에 신의 구원이 강림했다.
띠링!
-멸망이 임박한 세계에 기적을 일으키는 데 성공해 신명 ‘삼라만상을 쓰는 자’를 회복했습니다.
-기적의 보상으로 과거의 지구로 귀환합니다!
* * *
10위계로 이루어진 세계 중, 고위 신들의 영역인 제1위계인 신계.
벤치에 앉아 가만히 책을 보고 있던 청년이 있었다.
그가 보고 있는 책은 지구의 미라클이 보고 있던 책과 같았다.
청년의 시선이 마침내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닿았다.
척. 그가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녀석은 부활했나?”
“그래.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결국 잘 해냈어.”
이신의 물음에 사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언젠가 지구에 닥칠 멸망의 미래 또한 바뀌었어. 다 네가 빌려준 신력 덕분이야. 나 혼자만으로는 이 책을 만들 수 없었을 거야.”
“흥, 녀석이 이뻐서 빌려준 게 아니다. 위대한 마신인 내 근원인 녀석이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진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을 뿐이다.”
투덜거리는 이신을 보며 사신이 빙그레 웃었다.
세계를 무로 만들려던 파괴신의 야욕은 사라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가 멸망의 운명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다.
그것은 세계가 창조와 파괴의 원환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살아가는 존재는 끊임없이 파괴의 숙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쳐야 한다.
그리고 유일신은 한때는 소멸했지만, 그 파멸의 숙명에 저항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왜 미라클 그 계집을 선택한 거냐?”
“유일신의 신명은 삼라만상을 쓰는 자, 즉 작가지. 작가는 독자가 있어야 존재할 수 있으니까. 신들을 제외하면, 미래 예지 능력이 있는 그녀만이 유일하게 지구에서 지워진 일신이의 존재를 기억할 가능성이 있었어. 그리고 그녀는 다른 세계의 사도였기도하고.”
“다른 세계의 사도? 그건 또 무슨 소리냐?”
“다중 세계의 이야기지.”
츠츠츠.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내뱉는 사신의 몸이 흐릿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럼 난 이만 간다. 슬슬 그녀를 맞으러 가야 되거든.”
이신이 다급하게 외쳤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말해라! 너는 대체 뭐냐?”
“나는 너와 같은 유일신의 분신이자, 창세 때 세계에 깃든 창조신의 의지 중 하나.”
사신이 빙그레 웃었다.
“내가 만든 세계를 지켜 줘서 고맙다.”
슈우욱!
어리둥절한 표정의 이신을 남겨둔 채, 사신이 눈물을 흘리며 우주를 외로이 헤매는 나비를 향해 사라졌다.
그리고 홀로 남겨진 이신은…….
* * *
타닥, 타다닥.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던 내 손가락이 멈췄다.
“하아, 좀 쉴까.”
무사히 지구로 귀환한 지 벌써 한 달째.
오늘은 내가 연재하는 소설의 마지막 화를 쓰는 날이다.
그동안 온갖 모험을 겪고 심지어 좀비 세계에서 부활까지 한 나이지만, 아직도 이 지긋지긋한 마감의 숙명에서는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로 드디어 끝이다!
나는 길게 기지개를 켜고 잠시 쉴 겸, 우편통에 담긴 봉투들을 꺼냈다.
대부분이 밀린 공과금 독촉장이었지만 그중에서 딱 하나, 의외의 물건이 있었다.
‘이게 뭐지?’
황금색으로 번쩍거리는 봉투다.
혹시 출판사에서 완결까지 열심히 글을 쓴 내게 주는 금일봉 같은 게 아닐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봉투를 열어 보았다.
[키킥, 네놈이 삼라만상을 쓰는자’냐? 나는 다른 세계에서 창조신의 신위를 계승한 영민이라고 한다. 미라클에게서 네놈이 제법 강한 신이라고 전해 들었다. 어떠냐? 누가 진정한 신인지 나와 승부를…….]헐! 도전장이었냐!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종이를 그대로 구겨 버렸다.
좋아, 안 본 것으로 하자.
마감하기도 바쁜데 다른 세계의 신하고 놀아 줄 시간은 없다.
정 싸우고 싶다면 나 말고 전투광인 이신한테 가길 바란다.
쾅!
이크, 문 부서지겠다!
골방의 문이 벌컥 열리더니 불청객들이 찾아왔다.
“삼촌! 나 와써!”
“파괴!”
바로 성연이와 삼신 녀석이었다.
“어, 어, 왔니? 그런데 왜 벌써왔어?”
나는 시계를 확인했다.
분명 약속 시간까지는 4시간이나 남았을 텐데?
“삼촌하고 놀려고 빨리 왔지! 나 잘했지?”
그, 그래. 이 삼촌을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맙구나, 조카님.
꼬르륵!
그때 삼신이의 배에서 우렁찬 뱃고동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저 녀석은 그냥 배고파서 빨리온 게 틀림없다.
나는 한숨을 쉬면서 노트북을 덮었다.
“일단 밥이나 먹을까?” 금강산, 아니 마감도 식후경이니까.
우리 동네의 핫플레이스 중국집 가화만사성.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내 철학은 변하지 않는다.
짜장과 짬뽕 국물이 나오는 볶음밥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메뉴라는 것을!
후루룩! 쩝쩝!
하지만, 삼신이 녀석이 흡입하고 있는 삼선짜장 그릇의 탑을 보고 있자니 그 선택에 회의감이 조금 들었다.
삼선짜장. 춘장과 각종 해물의 향연의 극치인 짜장계의 엠퍼러.
비싸서 차마 시켜 본 적이 없는 그 환상의 메뉴를 저렇게 진공청소기처럼 처먹다니, 양심도 없는 녀석!
“삼신아, 맛있니?”
“파괴!”
“꿀꺽, 나 한 젓가락만 줄래?”
그러자 삼신이 도끼눈을 뜨더니 침을 퉤퉤 뱉었다.
크윽! 치, 치사한 녀석!
“삼촌! 내가 한입 줄게!”
옆에 있던 성연이가 짜장 범벅이 된 얼굴로 내게 그릇을 내밀었다.
흑, 역시 우리 조카님밖에 없어.
그렇게 감동의 도가니탕에 잠겨 성연이의 삼선짜장을 맛보려고 할 때.
“뭐야? 어디 갔나 했더니 여기 있었어? 왜 전화는 안 받는 건데! 죽을래?”
“선생님! 안녕하세요!”
바로 미나 자매였다.
“어이쿠, 이 누추한 곳에 귀하신 분들이.”
그러자 중국집 사장님은 눈이 게슴츠레하게 변했지만, 곧 톱스타인 미나 누나를 알아보고 황급히 사인을 부탁했다.
사인을 멋지게 해 준 미나 누나와 미리가 우리가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맛있어?”
“넹. 여러분들도 드실래요?”
“난 다이어트 중이라 됐어.”
“전 먹을래요. 여기 선생님이랑 같은 볶음밥 주세요! 곱빼기로요!”
“숙모 안녕!”
“어머, 우리 성연이는 볼 때마다 더 예뻐지네!”
“미나 숙모도 이뻐!”
서로 껴안고 난리인 미나 누나와 성연이를 보자니 저절로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조카님, 왜 미나 누나가 숙모니? 그리고 누나는 또 왜 그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걸까?
“그런데 너, 명색이 시사회 초대인데 그러고 갈 생각은 아니지?”
그때 미나 누나가 내 추리닝을 가리키며 도끼눈을 떴다.
오늘은 바로 ‘미스터 올림피아’ 우승을 거머쥐고 할리우드에 진출한 일호가 주연인 초특급 블록 버스터 시사회 발표 날이다.
“에휴, 간만에 모두 모이는데 꼬락서니하고는. 당장 옷부터 사러 가자.”
“저기, 근데 아직 마감이 안 끝났는데여…….”
“일신상의 이유로 휴재한다고 해! 너 그거 자주 하잖아!”
자주 한다니! 너, 너무해! 물론 자주 하긴 했지만!
식사를 끝마친 우리는 중국집을 나섰다.
“뭐 해, 빨리 안 오고!”
“선생님, 어서요!”
“파괴!” “삼촌, 빨리 와~!”
“넹.”
나는 슬리퍼를 질질 끌며 재촉하는 일행의 뒤를 따랐다.
오랜만에 일호와 앤티, 그리고 황제 친구와 모두를 다시 볼 생각을 하니 좀 설랬다.
그러다 문득.
“아.”
날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고는 고개를 들었다.
우리의 세계는 하나만이 아니다.
푸른 하늘.
그 너머로 지금 내 모습을 지켜 보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나처럼 신이자 동시에 평범한 사람이기도 한, 지금까지 내 이야기를 지켜본 당신들이.
안녕하세요, 독자신님들.
그동안 감사했어요.
제 존재 의의인, 사랑하는 여러 분에게 마지막으로 전합니다.
삶에 지지 마세요. 때론 스스로를 부수고 싶은 욕망이 생길지도 모르지만, 부디 이겨 내세요.
용기와 신념을 가지고, 스스로를 믿으세요.
당신은 뭐든지 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우린 모두 자기 자신이란 존재의 신,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유일신들이니까.
“그럼 언젠가 또.”
나는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다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