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10
10
“따라… 붙을 생각인데…….”
마부가 루주의 눈치를 흘끔 보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따라와 봤자 차디차게 내쳐질 걸 모르지는 않을 거고… 그래도 따라붙겠다. 하! 골치 아프게 됐네. 잘하면 계집 하나 길에서 얼어 죽는 거 보겠는걸.”
호가도 루주의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루주는 어느새 평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잠시 멈추었던 붓을 다시 놀리기 시작했다.
철벽!
두 사람은 아무 소리도 하지 않는 루주에게서 넘지 못할 철벽을 느꼈다.
주설언은 루주의 마음을 파고들지 못한다.
어제까지는 같은 침상을 썼지만, 루주가 천요루를 떠나는 날까지는 같이 지낼 수 있지만 그 이상은 무리다. 절대로 받아주지 않을 철벽이 세워졌다.
마부가 말했다.
“루주, 엄밀히 말하면 저 애는 기녀가 아니잖아. 생기(生妓) 때부터 루주 수발을 들었으니. 사내라고는 루주밖에 모르는데… 이번 한 번만 눈감자.”
“…….”
루주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묵묵히 붓을 놀린다. 대나무가 쭉쭉 뻗어나가고, 창처럼 날카로운 잎사귀들이 흰 종이를 물들인다.
“내 생각도 같아. 설언이는 천요루에 맞지 않아. 저런 애들이 어떻게 되는지는 많이 보았잖아? 우리가 어디 가서 땅 파먹고 살 것도 아니고 또 이 짓 할 게 뻔한데… 웬만하면 데려가자. 가봐서 다른 애가 마음에 들면 그때 버려도 되고.”
“할 말들 다 했으면 가서 일들 해.”
“사람 말을 콧등으로 듣나. 이 정도 이야기하면 어느 정도 반응은 보여주어야지. 좌우지간 언젠가 심장을 한번 꺼내봐야 해. 분명히 철판으로 덮여 있을 거야. 아휴! 모질어라, 모질어.”
마부가 혼잣말처럼 투덜거리면서 나갔다.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지만 일부러 들으라고 한 말이다.
“루주, 하나만 묻자. 설언이 마음에 들었던 거 아냐? 그래서 술판에 내돌리지 않은 거고.”
루주가 담담하게 말했다.
“아니. 술 취한 여자 품고 싶지 않았을 뿐이야.”
두 사람의 말이 맞다.
주설언은 천요루에 맞지 않는다.
그녀가 생기(生妓)로 팔려오는 순간 알아봤다.
그녀는 노래를 부를 줄 안다. 춤을 출 줄 알고 시서금화(詩書琴畵)에도 능하다.
단아한 미모에 재주가 빼어나서 상기(上妓)가 될 공산이 매우 크다.
그러나 그늘이 있다.
기루에 몸을 판 여인치고 사연 없는 여인은 없다. 어느 누구를 붙잡고 물어봐도 눈물 한 바가지 쏟아낼 정도의 사연은 가슴 깊이 묻혀 있다.
주설언의 그늘은 그런 부류의 어두움이 아니다.
인생에 대한 회의(懷疑), 모멸감(侮蔑感), 비탄(悲嘆)…… 자존심이 극도로 상처받아서 폭발 직전에 이른 상태다.
하지만 마음이 약해서 외부로 터뜨리지는 못한다. 그저 마음속에서 삭일 뿐이다. 본인 스스로 이 악물고 참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흘러나오는 그늘.
이것이 주설언이 보여준 그늘이다.
동기(童妓)는 무리없이 기녀가 된다. 자라면서 보고 듣고 배운 것이 기녀의 일이니 큰 저항 없이 받아들인다. 또 동기의 경우에는 동기가 지닌 특성에 맞춰서 수련도 시킬 수 있다.
하기(下妓)는 중기(中妓)로, 중기는 상기로 끌어올릴 수 있다.
문제는 생기다. 나이가 차서 팔려온 상기는 동기와는 다르게 품질이 한 단계 떨어진다.
상기인 줄 알았는데 중기 역할밖에 못하고, 중기인 줄 알았는데 하기로 떨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물론 그 반대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가뭄에 콩 나듯 하다.
주설언처럼 깊은 그늘을 가진 기녀는 절대로 상기가 되지 못한다. 처음에는 중기 정도에서 머물다가 끝내는 하기로 떨어진다. 본인 스스로 자포자기해서 몸과 마음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어느 생기들이나 그런 면이 있지만 주설언은 특히 심했다.
뭐랄까, 자살하기 직전의 모습이랄까?
기루에 팔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도 기녀가 되기 싫어하는 몸부림을 읽었다.
이럴 경우, 대부분은 억지로 강권하면 받아들인다. 홍독사 같은 위인에게 걸리면 사정없이 매타작을 당한다. 사내란 몸뚱이 위에서 발버둥치는 동물 정도로 인식될 만큼 여러 사내를 접하는 과정도 포함된다.
그런 과정들을 거치면 십중팔구는 자괴심(自愧心)조차도 무너져 버린다.
나머지 십 중 일이가 주설언이다.
그녀는 더욱 빨리 타락하거나 자진(自盡)한다.
그녀가 처음 천요루에 발을 딛는 순간, 그늘이 가득한 얼굴을 보는 순간 그녀를 읽었다.
자신 같은 사람이 가장 경계해야 하는, 절대로 곁을 줘서는 안 되는 일편단심형이다.
그때부터, 그녀를 침상으로 불렀을 때부터 오늘의 사단은 예견된 거였다.
그래도 좋다.
어차피 꺾일 꽃이 아니었던가.
나비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꽃을 찾고, 꽃은 원하지 않아도 벌이 꼬인다.
그녀는 그늘만 제거하면 가장 아름다운 보옥이 된다.
실제로도 그랬다.
그녀가 원하는 신방(新房)은 아니었지만, 한 사내만 상대하면 된다는 점이 그녀의 얼굴에 웃음기를 되살려 놓았다.
상대가 루주라는 점은 중요치 않다. 미공자라는 점도 상관없다. 그런 부분들이 전혀 상관없지는 않겠지만 그녀가 바라는 것은 일부종사(一夫從事)다.
아주 고리타분한 여자다.
그녀로서는 마음에 드는 사내를 만난 셈이다. 그렇게 생각해 왔고, 행동했다.
그녀는 웃는다. 슬픔을 지우고 활짝 웃는다.
천요루가 불을 밝혔을 때, 그녀의 청초함은 뭇 기녀들의 화려함 속에 묻혀 버린다. 그녀의 풍기는 듯 마는 듯한 단향(檀香)은 진한 분 냄새 속에 녹아버린다.
그러나 긴긴밤이 지나고 새날이 밝으면 진흙 속에 핀 연꽃처럼 우아하게 되살아난다.
그녀는 아름답다. 싹싹하고 현명하다.
그는 주설언을 보는 순간, 본능적으로 그녀가 지닌 본래의 아름다움을 찾아냈다. 그래서 옆에 두었다. 침상으로 불렀고, 젊은 혈기를 불태웠다.
건장한 사내와 아름다운 여인이 만났고, 잠시 동안 인연을 맺었다.
그것뿐이다.
호가나 맹삼력(孟三力)의 말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죽음을 예약해 놓은 사람이 무엇을 하겠는가.
‘후후!’
그는 피식 쓴웃음을 흘렸다.
2
천요루에 박쥐가 은밀하게 움직였다.
삐걱! 사박, 사박, 사박……!
뒷문이 소리없이 열리더니 허리를 구부정하게 굽힌 사내가 부지런히 발길을 재촉한다.
“후후후! 똥줄 빠지게 움직이네.”
“언제쯤 포기할까?”
“오늘이나 내일쯤? 오늘은 그렇겠고, 내일쯤이면 두 손 두 발 다 들겠지.”
“그것참, 정말 모를 일이네. 루주라는 인간이 이 정도도 예상하지 못했나? 잠자는 호랑이를 건드리면 어떻게 된다는 것 정도는 코흘리개 어린아이도 알겠다.”
“몰랐으니까 그 짓을 한 게지.”
지붕 위에서 팽가 무인들이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들은 굳이 자신의 존재를 숨기지 않았다. 보거나 말거나 태연하게 모습을 드러낸 채 천요루를 굽어봤다.
호가는 천요루를 팔기 위해서 동분서주(東奔西走)하고 있다.
처음에는 사람을 바보로 알았는지 시세(時勢)를 그대로 불렀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기루를 정리해야 된다면서.
속이 빤히 보이는 말이다.
사실 북경에 돈푼이나 있는 사람들은 천요루를 탐내고 있다.
목구멍에서 욕심이란 손이 쑥 기어나올 만큼 갖고 싶어서 안달이 난다.
그래도 참아야 한다. 이번 사건의 배후에 팽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값이 최악으로 떨어질 때까지 기다린다.
천요루주가 거지꼴이 될 때까지 욕심을 꾹꾹 짓누르며 참고 또 참아야 한다.
자칫 팽가의 눈에 거슬리는 날에는 인수에 성공해도 천요루 꼴을 면치 못한다.
그들은 남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촉각을 예민하게 곤두세운다. 가격이 얼마나 떨어졌는지, 인수자가 붙었는지의 여부를 면밀히 살핀다.
팽가의 눈치도 살핀다.
팽가 무인들이 천요루 맞은편 지붕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들이 지붕 위에 있는 한 인수에 뛰어들면 안 된다.
그들이 사라졌을 때, 아니, 그때도 가격을 너무 높이면 눈 밖에 난다. 적당한 선에서, 간신이 용돈만 쥐어주는 선에서 인수해야 무탈하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팔려는 쪽이나 사고자 하는 사람들이나 모두 어렵다.
팽가 무인들은 천요루주가 곧 나가떨어질 것으로 판단했다.
다만 신경 쓰이는 것은 그가 왜 이런 짓을 했느냐 하는 점이다.
그에게 기녀의 권리를 내주고 포구로 쫓겨난 홍독사조차도 이런 일은 벌이지 않는다.
외상 술값이 은자 열 냥이라고 했나?
돈을 모르고 사는 팽가에서는 큰돈이지만, 천요루 입장에서는 오히려 푼돈에 지나지 않는다.
비공식적으로 알려진 바에 의하면 천요루에서 벌어들이는 은자가 하루에 백 냥은 족히 된다는 소문이 있다.
수만금을 벌어들이는 셈이다.
그만한 점포를 가진 자가 고작 은자 열 냥에 눈이 어두워 팽가를 적으로 돌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그는 이공자에게 약까지 먹였다.
증거는 없다. 팽가 의원들은 이공자의 몸에서 어떠한 하독(下毒) 근거도 찾아내지 못했다. 다만 이공자가 하는 말이나 깨어날 때의 모습을 보고 심증을 가졌을 뿐이다.
사실 그 정도만으로도 보복을 하기에는 충분하다.
그러면 천요루주도 얻는 게 있어야 한다. 이대로 천요루를 내놓고 거지꼴로 쫓겨 간다는 것은 정말 말이 되지 않는다.
이 점을 경계한다.
루주가 팽가를 적대시하는 다른 문파와 손을 잡고 모종의 일을 꾸미지 않나 싶다.
하북에서 팽가를 건드릴 만한 문파도 없지만 이제 막 발돋움하는 신흥 문파(新興門派) 같은 경우에는 이름을 날리기 위해서 별별 짓을 다 하니 전혀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저놈이 움직이는데.”
화려한 누각을 주시하던 자가 말했다.
“후후후! 팔자 좋은 인간, 꽃 속에서 술과 노래와 춤이라……. 저 정도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지 않나? 좋은 팔자나 계속 누리지 무슨 욕심이 그리 많아가지고.”
다른 무인도 누각을 쳐다봤다.
루주가 움직인다.
커다란 누각을 나와서 후원(後園)으로 걸어간다.
주홍색 옷을 입은 여인이 재빨리 뛰어나와 허리를 굽힌다.
루주는 여인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그러자 여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머리를 기댄다.
한두 번 해본 모습이 아니다.
“저건 누구야?”
“주설언이라는 기녀.”
“명받은 거 있어?”
“아니.”
팽가 무인이 답했다.
그때, 그들의 머리맡에서 차가운 음성이 울렸다.
“애꿎은 처자다. 누가 입에 담으라고 했느냐!”
두 무인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발딱 일어났다.
그들은 신형을 일으킴과 동시에 앞으로 쭈욱 빠져나갔다.
항시 손에 들고 다니는 구환도(九環刀)는 어느새 상대를 향해 겨눠져 있었다.
쏴라라라랑!
구환도 도배(刀背)에 매달린 아홉 개의 쇠고리에서 바람을 갉아먹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그러나 그들은 말을 건넨 사람이 누구인지 즉시 알아챘다.
“조부님!”
두 사람은 구환도를 돌려세우고 포권지례를 올렸다.
“쯧! 한가하게 누워서 잡담이나 늘어놓고…….”
팽가사로 팽청치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두 청년은 굽힌 허리를 펴지 못했다. 포권을 한 손도 풀지 못하고 하명만 기다렸다.
“너희 말을 듣자 하니 마치 잡아 죽이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이야기하는구나. 어디서 배워먹은 버릇이냐!”
“죄송합니다!”
“저들을 핍박하는 것은 도전(挑戰)에 대한 응전(應戰). 하지만 이게 어디 살상을 입에 담을 정도의 일이더냐!”
“죄송합니다!”
“근본적인 잘못은 효뢰에게 있다. 효뢰가 정신 똑바로 차렸으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어! 너희도 각골명심해서 추후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될 것이야!”
“명심하겠습니다.”
“살펴봐라. 살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고!”
“넷!”
파앗!
팽청치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음……!”
두 청년은 신음을 흘렸다.
할아버지의 명령은 살상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지금 현재로서는 살상할 만한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가주의 명령은 삭초제근이었다. 잡초를 뿌리째 뽑아버리는 뜻이다. 모조리 척살하라는 명령이지 않은가.
서로 다른 명령이다.
아니, 같은 명이다. 살상을 해도 좋을 정도로 강력한 비리를 캐내라는 뜻이다.
비리가 없다? 그럴 리가 없다. 없으면 생긴다. 찾기만 하면 반드시 찾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