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102
102
“후후! 그 말은 나도 어려울 때마다 쓰는 말이니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일 건……”
“전 싫어요.”
흠화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이를 악물면서 말했다.
“너무 치사해요.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정말 너무 치사해요. 그게 검치삼령이라니! 혹시 나머지 검치이령도 전부 그런 건가요?”
“아니오.”
“그나마 다행이네요.”
그녀의 눈에서 분노의 화염이 이글거렸다.
팽가연과 취취가 흠화를 배웅하려고 했다. 허나 그녀는 마지막 배웅을 사양했다.
“살아 돌아올게!”
멀리서 빽 고함쳤다. 그리고 만류할 사이도 없이 신형을 날려 사라져갔다.
쒜에엑!
그녀에게 비연사도라는 별호를 안겨준 날렵한 신법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루주는 그녀를 보낸 후, 뒤돌아왔다.
“상당히 놀라는 표정이었어요. 정말 어려운 일이죠?”
루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여인도 더 묻지 않았다.
멀리서 지켜봤지만, 흠화가 놀라는 모습 그리고 호들갑을 떠는 모습에서 그녀에게 맡겨진 일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갑시다. 흠화에게만 어려운 일을 맡겨놓고 우리가 놀면 안 되지. 그녀가 어려운 만큼 우리도 부지런히 움직여야 조금이라도 덜 미안하지. 하하!”
루주가 애써 밝게 웃었다.
2
성하, 지응서, 백살겸
루주가 찾아달라는 자들은 하나같이 경악스러운 자들이다.
“이들이 정말 북경에 있단 말인가?”
일로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이제 이해가 됩니다. 가모가 이들을 만난 거군요. 땅, 두더지, 지응서. 백살겸이라면 음역 높은 소리를 낼 줄 알고…… 이들이 맞는 것 같습니다.”
사로가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그럼 찾아야지. 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방법이 없다.
이들이 북경에 있는 건 확실하다. 루주가 찾아달라고 했고, 얼마 전에 있었던 침입사건도 이들과 연결시키니 아귀가 딱 들어맞는다.
그러나 그들을 찾을 방법이 없다.
하북 팽가의 소식망은 우호적인 사람들의 자발적인 전언(傳言)에 의존한다.
그들이 보고 들은 이야기들을 말해주면, 이를 취합하고, 원하는 부분을 발췌한다.
지금까지는 이런 방법이 유용했다.
북경은 물론이고, 하북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통제 가능했다.
그런데 루주가 말한 세 명에 대해서는 일언반구(一言半句)조차 언급되지 않는다.
하북 사람들이 그들을 발견해내지 못했다. 북경 사람들이 그들의 그림자조차 찾지 못했다.
우호적인 사람들이 말을 아낀 게 아니다. 보지 못했기 때문에 말해주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느 한 사람이라도 이들에 대해서 언급을 했어야 한다.
아무도 그런 말을 한 사람이 없다.
“애들을 내보내야겠군요.”
삼로가 신중하게 말했다.
팽가 무인들을 내보내서 수색을 시키는 것도 문제가 많다.
쌍검구악의 경우에서 봤듯이 하북 팽가 무인들 중 상당수는 사총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칼 한 자루는 자유자재로 쓸 줄 아는 자여야 한다.
저들은 숨어있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
북경에서 그런 곳은 없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간에 사람들의 눈에 띈다.
저들은 꽁꽁 숨었다.
그런데 한 가지 단서가 생겼다.
지응서가 가모를 만날 때, 또 다른 자는 외곽에서 전음을 보내왔다.
진기를 실어서 쏘아냈다고 하지만 인간의 육성이 닿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더불어서 사람 눈에 띄지 않는 곳이어야 하며, 팽가오로가 달려들 경우를 대비해서 퇴로까지 구축되어 있어야 한다.
이런 조건을 갖춘 곳이라면…… 산! 산뿐이다.
팽가촌을 휘어 감고 있는 석경산에 놈들이 은신해 있다. 그렇기에 아무에게도 발각되지 않은 게다.
석경산을 뒤져야 한다.
사실 그것은 어렵지 않다. 팽가 무인들 치고 석경산을 모르는 자가 없으니 누구를 보내든 쉽게 찾아낼 게다. 그들이 석경산에 은신해 있기만 하다면.
문제는 역시 무공이다.
저들 세 명을 동시에 상대할 만한 자가 누구인가?
백살겸은 염두에 두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그는 한 발이 잘렸으니 운신이 힘들게다. 그는 무시해도 좋고…… 지응서는 백살겸과 동수다. 그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팽효기 같은 절정고수가 필요하다. 나머지는 개죽음이다.
성하라는 자는 어떤가?
성하는 이름이 아니다. 직책이다. 옛날, 사총은 각 성(省)마다 성하라는 직책을 두어서 관리했다.
지응서는 성하를 모시는 졸개다.
성하가 백살겸이나 지응서보다 한 수 위인 것만은 분명하다.
팽가오로는 두 사람을 이끌고 있는 성하가 누군지 알지 못한다. 별호가 아니라 직책이라서 더더욱 알 길이 없다.
그를 평가할 만한 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렇다면 백살겸보다 한 수 위의 고수로 인정하고, 그에 맞춰서 준비해야 한다.
“통천오방진을 줄이죠. 팽가오도를 보내면 어떻습니까? 아이들이 눈치도 빠르고, 그만하면 무공으로도 밀리지 않을 것 같고. 만약 불상사가 발생해도 충분히 견뎌낼 것 같은데요.”
오로가 말했다.
만약 싸움이 일어나도 오 대 이의 싸움이라면 밀리지 않을 것이다.
팽가오도가 누구인가. 팽가촌의 후기지수다. 팽효문과 팽효뢰가 죽은 지금은 그들의 입지가 매우 강화되었다.
현재 팽가촌에 남은 후기지수는 그들과 팽효기뿐이다.
“휴우! 그 수밖에 없겠네.”
일로가 승낙했다.
수색에 능하고, 무공도 강하고, 눈치도 빠른 자들…… 그런 자들은 많지 않다. 허나 하북 팽가에는 다섯 명이나 있다. 이럴 때 팽효문과 팽효뢰가 죽지 않았다면……
염려되는 것은 팽가오도의 호승심이다.
그들을 보내면…… 그래서 저들과 부딪치는 일이 벌어지면 십중팔구 싸움이 벌어진다.
팽가오도를 보내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
성하와 지응서를 사로잡아야 하는데, 팽가오도에게 거기까지 바랄 수는 없다.
많이 바라면 손해 보지 않고 척살시키는 것이다.
일로가 부언(附言)했다.
“그 아이들에게 단단히 전하게. 수색만 하고 싸움은 하지 말라고.”
“하하! 그 말이 통하겠습니까?”
“통하지 않겠지만 주의는 하겠지. 저들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가질 게고.”
“알겠습니다. 주의시켜서 내보내겠습니다.”
사로가 일어섰다.
“석경산이군.”
“이곳에서 숨바꼭질이라. 어렸을 때가 생각나지 않아?”
“사실 숨바꼭질보다 신법 수련이 더 우선이었지. 산을 뛰어다니는데 힘이 전혀 들지 않는 거야. 얼마나 신기하던지. 그때 무공의 맛을 처음으로 안 것 같아.”
“그게 어디 너뿐이냐. 우리 모두 마찬가지지.”
그들, 팽가오도는 석경산을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석경산은 그들의 놀이터다.
팽가 어른들은 이곳에서 숨바꼭질을 시켰다. 신법을 가르쳐주고, 은신술을 가르쳐 주고, 숨을 어떻게 참아야 하는지, 또 숨은 자를 찾기 위해서는 안공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숨바꼭질에 대한 기술들을 하나씩 알려주었다.
어린아이들은 놀이를 즐겼을 뿐이다.
우선 어른들이 가르쳐주는 대로 하면 힘이 들지 않았다. 산과 들을 뛰어다녀도 힘이 넘쳤다. 어른들이 가르쳐준 대로 쳐다보면 시야가 확 트였다. 작은 개미도 뚜렷하게 보였다.
그것이 무공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다.
무공은 굉장히 좋은 것이다. 나쁜 것이 아니다. 아주 건강하고 유쾌한 것이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면서 놀이를 즐겼다.
팽가 무인들은 기본공을 그런 식으로 배운다.
이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가 있다.
첫째로 무공을 힘들이지 않고 배울 수 있다. 무공을 수련하는 게 아니다. 그냥 마음껏 뛰어놀라는 것이다. 너희들이 놀고 싶은 대로 놀아라.
무공에 대한 선입견이 사라진다.
무공은 힘들다. 어렵다. 사람을 죽여야 하고, 자칫하면 자신도 다친다. 칼을 드는 순간부터 도산검림(刀山劍林) 속에서 살아야 한다. 보보(步步)마다 죽음이다.
무공에 대한 부정적인 말들은 끼어들 공간이 없다.
두 번째는 석경산을 환히 알 수 있게 된다.
이 부분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렇게 놀이로 유인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산에서 놀지 않는다.
어느 마을이나 뒷산 혹은 앞산을 끼고 있다.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들은 동네에 있는 산을 잘 안다. 하지만 눈을 감고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말해보라고 하면 말하지 못한다.
잘 알고 있는 듯 하지만 실상은 알지 못한다.
팽가 무인들은 석경산을 구석구석까지 파악한다.
팽가촌 주변의 지형을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파악해 놓음으로써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다.
지금처럼 수색을 할 수도 있다.
그들은 석경산을 샅샅이 뒤지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다. 산은 넓지만 사람이 숨어서 지낼 만한 곳은 몇 군데 되지 않는다.
그런 곳을 아주 잘 안다.
석경산을 무대로 해서 싸움을 벌인다면 굉장히 유리하다는 측면도 있다.
지형을 잘 안다는 것은 지리적인 우세를 얻는다는 뜻이다.
“찾아내는 건 쉬울 것 같은데…… 그 다음은 어떻게 할까?”
어른들은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했다.
당장 공격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것이지만, 일단 뒤로 물러서서 같이 움직이자고 했다.
“노인네들은 너무 조심성이 많아서 탈이야.”
“그렇지?”
“요즘 우리 팽가가 너무 유약해졌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고.”
“치자.”
“좋았어! 나도 그 말을 기다렸다고!”
그들의 의기투합했다.
팽가오도라는 이름으로 한 날 한시에 무림에 이름을 올린 그들이다. 헌데 팽가촌에서의 평가는 최고가 아니었다. 무림에서는 최고라고 하는데, 팽가촌에서는 팽효문, 팽효뢰, 그리고 팽효기에 비해서 두어 수 뒤진다고 본다.
그들은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은 사촌이다. 같이 자랐고, 같이 숨바꼭질 했고, 같이 검을 들었다.
그들의 무공은 자신들이 잘 안다.
비등하거나, 자신들보다 한 수 아래다.
그들은 반대로 생각하겠지만 팽가오도는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같은 혈족끼리 누가 잘났네 하면서 싸울 수는 없다. 순위를 제대로 매기자고 비무를 청할 수도 없다.
팽가촌은 무공보다도 인의(仁義)를 우선시한다.
순위를 바로 잡을 기회는 반드시 온다.
가주가 은퇴할 때!
하북 팽가는 장자(長子)의 권한이 그리 크지 않다. 반면에 혈족의 개념은 굉장히 강하다.
이 집안, 저 집안을 따지지 않고 팽가촌이라는 한 마디로 한데 버무린다.
팽가촌 무인들은 모두 한 형제다.
그렇기 때문에 후임 가주는 지명(指名)으로 정하지 않고, 공정한 기회를 부여하여 선발하는 형태를 취한다.
가주의 장자라도 능력이 없으면 가주직을 이어받지 못한다.
이는 모든 형제들에게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아주 고무적이다. 또 이런 관례가 이어져 왔기 때문에 가주의 직계혈족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때가 되면 누가 진정한 강자인지 판별될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팽효문이 죽었다. 팽효뢰도 죽었다. 그들과 비교되는 사람으로는 팽효기만 남았다.
한 계절이 지나기 전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사실 그들의 죽음은 팽가오도에게는 기회를 준 것이나 다름없다. 그들보다 한 수 아래라고 생각하던 존장들도 이제는 그들에게 의지하는 바가 크다.
이번 일만 해도 그렇다.
그들이 살아있다면 이번 일은 팽효문이나 팽효뢰에게 맡겼을 게다. 수색에는 사람이 많이 필요하니까 자신들을 포함시켰을지 모르겠지만 책임은 그들에게 맡겼을 것이다.
이제 그들은 없다. 그리고 존장들은 자신들의 의지한다.
딱 거기까지만 좋다.
절벽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심정으로 조금만 더 믿어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래, 너희들이 처리해라. 너희를 믿는다.
이 말 한 마디만 해주었다면 아주 큰 힘이 되었을 텐데.
물론 팽가오도가 영웅심에 들떠 있는 건 아니다. 명예를 얻기 위해서 목숨을 걸만큼 미련하지도 않다. 약자와 강자를 구분할 줄 아는 눈도 있다.
그들이 ‘치자’고 말할 때는 자신들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상대라고 판단했을 때다.
“어디, 어떤 놈들인지 찾아보자!”
“좋지.”
쒜엑! 쉐에에엑!
그들은 물 찬 제비처럼 날아올랐다.
나무 위로 신형을 날린 후, 가지에서 가지로 건너뛰며 날아갔다.
어렸을 때부터의 습관이다. 숨바꼭질을 하면서 길러진 버릇이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본다. 숲 전체를 보기도 하고, 나무 한 그루를 살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