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115
115
요대 끝을 잡고 있는 손이 파르르 떨린다. 그녀의 떨림이 요대를 타고 전달되어 온다.
주설언은 비로소 현실을 인식했다.
아무도 천멸독경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들은 막을 수 있는 모양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의문은 사양한다. 이들이 궁금증을 풀어줄 리도 없거니와 그런데 정신을 팔면 그나마 있는 재주도 다 펼치지 못한다.
‘그렇다면.’
주설언은 두 손을 들어올렸다.
‘어떻게 막는지 보겠어. 그 수밖에는 없잖아.’
사실 루주가 그녀들에게만 뒷산을 지키라고 말한 것은 주설언을 믿었기 때문이다.
팽가촌에 의심쩍은 움직임이 있으면 곤란하다. 그러면 움직일 자들이 움직이지 않는다. 최소한 팽가촌이 왜 이상한 움직임을 보이는지 이유라도 알려고 할 게다.
팽가촌은 조용해야 한다.
팽가촌 무인들을 동원하면 피해만 커진다는 사실도 부인하지 못한다.
팽가촌에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팽가오로와 팽가사도뿐이다. 그 외에 교두(敎頭) 역할을 하는 무인들이 있지만, 절정고수에게는 한 수 밀린다.
사총 고수들을 상대할 수 없다.
그들은 백살겸에게도 밀렸다. 하물며 그들을 구하고자 달려오는 자들을 어찌 상대하겠나.
주변만 지킬 수도 없다. 팽가촌도 지켜야 한다.
사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럼 네 명으로 사총 고수들을 막을 수 있을까?
천멸독경이 있으니 가능하다고 봤다. 절정고수는 팽가연이 맡고, 팽효기가 보좌한다. 다수의 인원은 주설언이 맡고, 취취가 그녀의 발이 되어준다.
그러면 사총이든 누구든 잡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고루대…… 생긴 건 끔찍하지만, 너희는 잡힌 거야.
주설언은 이런 생각으로 가볍게 나섰는데…… 전력을 다해서 싸워도 안 될지 모른다. 취취 말대로 인패참진이라는 게 천멸독경을 막아낼 수 있다면…… 루주의 계산이 크게 빗나간 게다.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모두 위험해.’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곤란하게 됐어.’
팽가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자신과 팽효기는 이들의 머리를 자를 목적이었다.
물론 이들은 졸개들부터 싸움을 시킬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정도의 반항은 가볍게 뚫고 들어가서 수괴와 직접 칼을 부딪친다. 그것이 가장 빨리 싸움을 종결짓는 방법이다. 그런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만 분수지, 인패참진이라니!
인패참진은 사람을 방패로 쓴다.
앞에 늘어선 열 명이 인간방패다. 그리고 그 뒤에 늘어선 열 명이 베는 역할을 맡는다. 앞 사람이 칼에 맞아서 무너질 때, 뒤에 선 인간이 살공을 쏟아낸다.
앞사람을 죽이는 건 쉽지만 뒷사람의 살공을 견제하지 않으면 큰 낭패를 당한다.
천멸독경도 마찬가지다.
주설언은 사람을 선별해서 독을 쏘아낼 수 있다. 앞사람을 제치고 뒷사람에게만 독을 쏘아내는 것도 가능하다.
그런데 그게 인패참진에는 통하지 않는다.
인패참진을 구성한 앞사람들은 일종의 강막(剛幕)을 펼친다.
독분이나 암기, 여타의 병장기들이 뒤로 흘러가지 못하도록 몸으로 막아선다.
지금까지 이 강막을 뚫은 사람은 없다.
검치는 인패참진을 뚫어냈다. 하지만 그가 쓴 방법은 모두 죽이는 것이었다.
앞 사람도 죽이고, 뒷사람도 죽인다.
가운데 줄에 선 자들은 빈자리를 즉각 메꾸는 보충 인원들이다. 인간방패가 죽으면 뒷사람이 앞으로 밀려나오고, 가운데 있는 자들이 찌르는 역할을 한다.
한 줄을 뚫기 위해서는 세 명을 거의 동시에 죽여야 한다.
검치는 인패참진을 웃으면서 뚫었다.
당시 오십 명의 고루대 중에서 찰나의 순간이 지난 뒤, 생존한 사람은 겨우 세 명에 불과했다.
하물며 주설언은 인패참진의 무서움조차도 모른다. 진의 구성 원리를 알면 대처하기가 훨씬 수월할 텐데,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손을 쓰자니 시행착오가 많을 게다.
할 수 없다. 어차피 그녀의 손을 떠났다.
‘가능한 빨리 뚫고 들어가는 수밖에.’
스릉!
유엽도가 빛을 토해냈다.
파파팟!
주설언이 독기를 쏟아냈다.
무색(無色), 무음(無音), 무취(無臭)의 독기가 고루인간들을 향해 분사되었다.
그녀는 어깨를 약간 움찔하는 듯한 행동만 취했다.
그와 동시에 고루인간들이 휘청거렸다.
“끄으윽!”
신음들이 새어나온다. 오공으로 피를 줄줄 흘린다. 앞에 늘어선 열 명이 모두 똑같은 증상을 보인다. 그러나 뒤에 늘어선 열 명은 멀쩡하다.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다.
휘이익! 휘익!
독에 중독된 고루인간들은 쓰러지지 않았다. 맨 끝에 있던 자들이 신형을 날렸다.
‘위험!’
취취가 위급함을 느끼고 요대를 확 낚아챘다. 요대에 이끌린 주설언이 뒤로 쭉 빠질 때,
파파파팟! 파파파팍!
그녀가 있던 자리로 핏물이 쏟아져 내렸다.
독에 중독된 자들이 쏟아낸 피!
피는 던져질 수 없다. 다른 것이 던져지면서 피까지 따라온 게다.
강철심이다!
그들 몸에 틀어박혀 있던 강철심이 억지로 잡아 뽑혀졌다. 그리고 암기처럼 폭사되었다.
양쪽 끝에서부터 신형을 쏘아낸 것은 방위를 잡기 위해서다.
주설언은 가운데 두고, 피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고려한 다음에 강철심을 던져냈다.
쿵쿵! 쿵쿵쿵!
허공에 떠올랐던 고루인간들이 나뒹굴었다.
그들은 혈인(血人)이 되어서 절명했다. 독에 중독되고, 몸에 박아놓았던 강철심마저 뽑아냈다.
“우욱!”
어지간해서는 눈썹 한 올 까딱하지 않는 취취조차도 이런 광경에는 구역질을 쏟아내고 말았다.
스스스스슷!
뒤에 늘어섰던 열 명이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 가운데 줄에 있던 열 명 중 아홉 명이 공격자로 나섰다.
“나, 없어.”
주설언이 급히 말했다.
그녀는 취취가 조금이라도 늦게 빼냈다면 지금쯤 강철심 한두 개 정도는 몸에 박고 있을 게다.
그게 문제가 아니다. 그녀는 전력을 다했다. 추명오독을 일시에 모두 쏟아냈다
앞줄 열 명을 치고, 뒷줄 열 명까지 쳤다.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열 명도 노렸다.
근 삼십여 명을 일시에 공격했다.
추명오독은 그러고도 남을 독이다. 그녀의 몸에 달라붙은 독분은 능히 백 명을 살상하고도 남는다.
그런데 앞줄 열 명밖에 쓰러트리지 못했다.
거대한 벽이 앞을 가로막는 느낌이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독분이 더 이상 뚫고 들어가지 못했다. 그물에 걸린 새처럼 퍼덕거리더니 앞줄 고루인간들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이제 더 이상 독이 없다.
“물러서 있어.”
취취가 소도 두 자루를 들고 이를 악물면서 소리쳤다.
‘안도의 미소!’
고루대의 수괴는 앞줄 열 명이 나가떨어지는 순간,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인패참진의 위용에 만족함인가?
아니다. 그것은 득의의 미소여야 한다. 입 꼬리가 쭉 찢어지는 웃음이어야 한다.
수괴는 가는 한숨을 토해내는 듯했다. 순간적으로 어깨가 축 내려가면서 가는 숨이 토해지고,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다행이다’라는 안도의 웃음이다.
‘뭔가 실수했어!’
그녀는 대뜸 깨달았다.
천멸독경은 고루대를 멸살 시킬 수 있다. 그런 길이 있었다. 그걸 주설언이 놓쳤다.
“숨만 쉬어!”
그녀는 아무도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토해냈다.
숨만 쉬어.
루주가 종종 하는 말이다.
주설언이 운기에 지쳐서 일어서려고 할 때마다, 가만히 앉아서 숨만 쉬라고 했다.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할 것이 뭐가 있냐고. 운공을 계속 하라는 소리다.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고, 마음의 장난에 놀아나지 말고.
숨만 쉬어라.
주설언이 잠시 어리둥절하더니 무언가를 깨달은 듯 털썩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고루인간들이 공격을 시작하려는 마당에 그들을 앞에 세워놓고 운공조식을 취하려는 것이다.
제33장 강벽(强壁)
1
루주는 거처 대문에, 그리고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에 커다란 목패(木牌)를 세웠다.
– 연속공격료삼야(連續攻擊了三夜), 공격타래일야(攻擊打來一夜). 이후(以後), 전간주이경해결료(戰看做已經解決了), 아명천주(我明天走).
삼일동안 공격이 있었다. 하루 동안 공격을 더 해라. 이후에는 싸움이 끝난 것으로 간주하고, 나는 떠나겠다.
일방적인 선언이다.
살수와 싸워서 이긴들 뭐하랴. 너희에게 무슨 명예가 있느냐. 너희를 이긴다고 어떤 득이 돌아오느냐.
싸우자고 해서 왔다.
실컷 공격해 봐라. 나흘이면 넉넉하지 않나. 얼마나 더 시간을 줘야 하나.
살수가 무서워서 도망갔다고?
그래라. 너희들 마음대로 해라. 난 간다.
팻말에 새겨진 의미는 살천루의 자존심을 짓뭉갰다.
아흔 명에게 둘러싸여서 나흘 동안 기회를 줬으면 됐지, 얼마나 더 줄까.
“내일 아침에 떠난다…… 후후후! 남을 사람은 남고, 떠날 사람은 떠나야지.”
을조 조장은 크게 분노하지 않았다.
����! 쒜엑! 후욱! 후우웁!
비표(飛鏢)가 허공을 가른다. 문설주고 처마 끝이고 닥치는 대로 두들긴다.
독침도 뿜어진다.
앞뒤좌우…… 사방에서 쏟아진다.
살수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암기부터 소진시켰다.
살수들은 이런 전법을 폭풍망살(暴風忙殺)이라고 부른다.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수십, 수백 개의 암기를 일시에 쏟아내는 것이다. 그 중에 하나는 맞을 것이다. 잠깐 동안 공격하다가 마는 것이 아니다. 숨 돌릴 틈을 주지 않고, 한 시진, 두 시진 동안 끊임없이 암기세례를 퍼붓는다.
찰나라도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당한다.
암기를 던지는 살수들은 숨을 돌릴 수 있다. 일차 공격이 끝나면 자신 차례가 돌아올 때까지 진기를 가다듬을 수 있다.
공격을 당하는 자는 계속 진기를 쓰기만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손발이 무뎌진다.
옷은 해어질 대로 헤어지고, 상처는 늘어만 간다.
더군다나 암기에는 독을 묻혀 놨다.
스치기만 해도 온 몸이 타들어가는 듯한 통증을 느끼면서 정신을 잃는다.
이런 공격에 당하지 않는 자는 없다.
루주는 견뎌냈다.
탁탁탁! 탁탁탁탁!
목검을 휘둘러서 날아오는 비표, 비수, 수리검, 독침을 여지없이 받아쳤다.
집중력도 흐트러지지 않고, 목검에도 시종일관 같은 힘이 들어가 있다. 목검을 내뻗는 속도나 암기를 쳐내는 탄력을 봐도 둔하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진기순환이 매끄럽다.
“준비한 게 떨어져 갑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반나절입니다.”
“음!”
을조 조장은 신음했다.
반나절 동안 엄청난 암기를 쏟아 부었다. 비표만 열 섬이다. 독침만 두 섬이다. 수리검도 여덟 섬이나 썼다.
그 많은 분량을 준비해 놨다.
놈을 이곳 유하촌으로 불러들일 때는 반드시 죽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잖은가.
이만한 양이면 여느 고수라면 이틀, 길게 끌면 사흘 동안도 쓸 수 있다.
루주에게는 겨우 반나절이다.
그만큼 많은 양을 집어던졌다.
그가 거처하는 집은 그야말로 암기로 뒤덮였다. 암기를 밟지 않고는 발을 옮기기도 곤란할 정도로 수북이 쌓였다.
그는 그 많은 암기를 다 받아냈다.
집으로 숨어들지도 않았다. 마당 한 가운데 서서 암기와 독침을 정면에서 받아냈다.
할 수 있으면 해봐라!
그의 당당한 선언에 살수들은 가진 것들을 모두 퍼부었다. 그리고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을조 조장이 말했다.
“암기를 수거해야겠다.”
“네?”
“내일이면 떠난다고 하지 않더냐! 그러니 오늘 끝장을 내야지!”
그는 루주가 서있는 집안으로 들어섰다.
루주는 마당 한 가운데에서 목검으로 땅을 짚고 서서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암기를 거두러 왔수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런데 정녕 말이 안 되는 행동이 또 나왔다. 루주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충고까지 하는 게 아닌가.
“똑같은 방법은 쓰지 마라. 반나절이 아니라 한나절이라도 버틸 수 있다.”
“내공이 넘치나?”
“강물을 봐라. 차고 넘침이 없는 거지. 종짓불 한두 바가지 퍼냈다고 강이 마르지는 않는다.”
“대부분이 마르지. 그래서 이 방법이 생겨난 거고.”
“마음대로.”
“아니, 똑같은 방법은 쓰지 않아. 또 쓰면 우리만 손해지. 괜히 시간만 지나갈 테고, 내일이 되면 떠날 테니까. 그런데…… 우리의 방법을 모르나? 이대로 떠나면 그대와 연관된 모든 사람들이 피곤할 텐데, 괜찮겠어?”
“후후후!”
루주는 싱겁게 웃었다.
“너희야말로 괜찮을지 모르겠다. 나와 연관된 사람 중에는 검치도 있는데, 괜찮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