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119
119
하북 팽가가 봉문을 하고 있는 상태라고 정식 방문을 할 수 없으니, 암암리에 동정을 파악하라고 잠행을 시켰다.
그들이 꽤 많다. 또 그들의 숫자는 하루가 멀다하게 불어나고 있다.
사실 잠행이라고는 하지만 그들은 잠행을 하지 않는다. 하북 팽가에 연통을 넣지 않았을 뿐, 자신이 어느 문파에선 누구라고 공공연히 떠벌리고 다닌다.
그것이 무슨 잠행인가.
그들은 사총 사건에 개입하려고 한다.
이 모든 문제를 루주와 주설언이 차단해 버렸다.
북경 땅을 밟은 모든 무인들이 앉은 자리에서 꿈쩍도 할 수 없게끔 못질을 해버렸다.
살천루를 가차 없이 베어버린 것도 그 때문이다.
건드리지 마라. 죽는다.
루주는 정도의 인물이 아니다. 마도의 인물도 아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무림의 인물도 아니다.
그는 무림 행보를 한 적이 없다.
검치의 무공을 쓰기는 하지만 검치의 제자인 것도 불분명하다.
그가 사부를 부르는 명칭은 ‘늙은이’다. 맹삼력과 호가도 같은 명칭을 사용한다.
이러고도 검치의 제자일까?
그 외에는 무림과 인연을 맺지 않았다.
그는 기루의 주인으로 살아왔다.
천요루가 처음이 아니다. 북경에 천요루라는 루각을 올리기 전에도 다른 기루를 운영해 본 경험이 많다. 기루 주인으로 처음 모습을 나타냈고, 현재도 루주라고 불린다.
그가 하북팽가와 충돌했다.
그런 과정에서 몇 번 싸움을 했다.
무림과의 인연이 이게 전부다.
그런 사람이 살천루 십간조를 박살냈다.
정도 인물이든 마도 인물이든 정사를 가리지 않는다. 건드리는 자는 모두 박살낼 분위기다.
눈이 있고 귀가 있는 자는 노궁문과 고루대가 누구에게 당했는지 파악해냈을 것이다.
주설언, 기녀, 루주의 여자다.
천멸독경, 추명오독도 독에 대해서 일가견 있는 자라면 찾아냈을 것이다.
루주와 주설언은 건드리기 곤란한 독아(毒牙)다.
그런데 주설언이 바로 팽가촌의 사도로 추정된다. 어떻게 해서 팽가와 그런 인연을 맺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노궁문에 이어 고루대까지 하북 팽가에 위해를 가하려던 자들이 모조리 도륙되거나 생포되었다.
그녀가 하북 팽가 쪽에 서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번 사건은 하북 팽가로 가려면 루주와 주설언을 뚫어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무림 군웅들, 파락호들, 호색광들, 살수들…… 이제는 함부로 움직이기 곤란해졌다.
살천루가 살수와 사총 쪽에 연결을 취해줄 게다. 둘을 제거하기 전에는 움직일 수 없다고. 백인대가 정도 무림 쪽에 연락을 취할 게다. 둘에게서는 아무 것도 캐낼 게 없고, 그들은 건드리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당분간 하북 팽가는 조용하다.
그 사이, 가모에 얽힌 부분을 파헤쳐야 한다.
그런데 이 부분도 루주에게는 어떤 계획이 세워져 있는 것 같다. 말은 하지 않지만 조급해 하지도 않는다.
가모가 그의 어머니다.
천하인을 죽인 대흉인이라고 해도 자식 입장에서는 죄를 물을 수 없다.
하지만 그녀가 하는 일을 방해할 수는 있다.
그는 지금 그 일을 하려고 한다.
‘연락을 취해야겠어.’
팽가연은 모두가 빠져나간 숲에서 한 사내를 생각했다.
루주…… 미꾸라지처럼 뺀질뺀질하게 생긴 자가 하는 짓은 여우같다. 뱃속에 능구렁이가 열 마리는 들어있는 것 같다. 헌데 그를 따라가다 보면 뭔가가 풀려나간다는 생각이 든다.
“후우욱! 후우욱!”
그녀는 진기를 끌어올려 약속된 성음(聲音)을 울렸다.
후우욱! 후우우욱!
바람이 약간 거센 듯한 소리가 울렸다.
“갔어요.”
“가서 잔독을 제거해. 다른 사람까지 중독되면 곤란해.”
“어떻게 제거하는지 안 보실 거예요?”
“왜 나에게 보여주지 못해서 안달인 거야?”
“저도 가가 못지않은 고수라는 점을 알려주고 싶어서요.”
“잘하면 협박용으로 쓰겠는데?”
“어멋! 지금 협박하고 있는 건데 모르셨어요? 그랬구나. 모르셨구나. 가가…… 이런 말을 하기는 그런데…… 전 제 독술이 가가에게도 통하는지 알고 싶었거든요.”
“그…… 래서?”
“독을 써봤죠.”
“날…… 중독 시켰다고?”
“그럼요. 중독 시키자마자 해독도 했어요. 걱정 마세요.”
“…… 허어!”
“한 번이 아니고 다섯 번쯤 했는데, 가가는 모르시더라고요.”
“허! 허어! 점입가경이군.”
루주가 입만 쩍 벌린 채 말을 못했다.
“호호호! 놀라셨구나?”
“지금도 중독 시킨 거야?”
“아뇨. 호호호! 제가 어떻게 가가를 중독 시켜요. 농담이에요. 농담. 농담을 진담으로 알아듣는 분이 어디 있어요?”
주설언이 눈을 곱게 흘겼다.
“허어! 천멸독경을 수련하더니…… 사람이 달라졌네.”
“어멋! 그래요? 어떻게요?”
“전에는 순한 양이었는데, 어쩐지…… 성난 암고양이가 된 것 같아서 말이야.”
“호호호! 암고양이요? 호호호! 정말 섭섭하네요. 적어도 호랑이 정도는 봐줄 줄 알았는데.”
“아직은 귀여운 구석이 있거든.”
“그런 면까지 지워지면 호랑이가 되는 건가요?”
“가서 잔독이나 지워.”
“알았어요. 취취가 목욕물을 데워놓는다고 했으니 목욕이나 하세요. 몸에 피냄새가 베여있는 것 같아요. 참! 다른 여자에게 눈길 주면 알죠? 둘 다 죽어요!”
주설언이 앙칼지게 쏘아붙였다.
제34장 얽히는 내심
1
‘제법…… 날뛰네.’
그녀의 눈에 싸늘한 한광이 맴돌았다.
팽가촌에 들어서는 자가 없다.
팽가오로의 통천오방진이 워낙 강력하기 때문인 줄 알았다. 뚫고 들어서려는 자들이 모조리 척살되고 있다. 헌데 그게 아니다. 아예 들어오는 자가 없다.
사총에서 몇 번 접근 시도를 했다는 건 알고 있다.
십족령에 묶여있는 신세이지만 담장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 정도는 들을 수 있다.
노궁문이 당했다. 백살겸과 지응서가 사로잡혔다. 그리고 이번에는 고루대도 당했다.
사총에서 내세우던 주요 전력들이 하나씩 무너지고 있다.
그들은 상관하지 않는다. 어차피 이용할 만큼 이용하고는 버릴 자들이니까.
그녀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자신을 보겠다고 북경에 몰려든 한량들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목숨보다도 자신을 더 아낀다.
목숨 같은 게 아까웠다면 하북 땅을 밟지도 않았다.
그녀만은 그런 사실을 안다. 자신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한 목숨 내놓을 것이라는 점을 안다.
사내의 정(情)? 그런 건 개나 물어날 소리고……
실컷 운우지락을 즐긴 후에는 미련 없이 떠나가는 게 사내들의 속성이 아니던가.
사내들은 끊임없이 방황한다.
땅따먹기 할 때처럼 여자를 정복의 대상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더 웃기는 건, 정복한 여자가 자신만 바라보고 있어주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다를 수도 있다.
그녀도 일편단심(一片丹心)이라는 것을 봤다.
여자라고는 눈빛도 마주쳐보지 않은 순진한 사내에게서 본 것이 아니다. 세상 여자들은 유희(遊姬)에 불과하다고 떠들던 난봉꾼에게서 찾아냈다.
그는 과거의 모든 마음을 접고 새로운 사람으로 탈바꿈했다.
이 여자, 저 여자의 품을 전전하던 난심(亂心)에서 한 여자만을 바라보는 일편단심으로 변했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내의 정은 믿지 않는다.
어떠한 사내라도 정작 목숨을 위협받는 처지에서는 행동이 달라질 수 있다.
이번만 해도 그렇다.
‘절염색녀’라는 촉발장치를 터트리지 않았으면 그들이 하북 땅에 몰려들었을까?
절염색녀라는 말은 의미가 없어졌다.
그녀가 아름답다고 하지만 이미 십 년 전의 일이다. 지금은 주름도 많이 생기고, 배에 기름도 꼈을 것이다. 그런 여자를 안느니 차라리 풋풋한 생기(生妓)를 취하는 게 나을 게다.
거의 모두가 그렇게 생각한다.
그 여자, 옛날에도 꽤나 설쳐대더니 하북 땅까지 가서 팽가주의 부인이 됐어? 아, 그랬다면 조신하게 잘 살 것이지 또 무슨 평지풍파를. 하여간 여자란……
그들이 무슨 말을 할지 듣지 않아도 선하다.
그래서 영원히 배신할 수 없는 장치를 마련했다.
지응서까지 순식간에 걸려들었던 사라천요공(紗羅天妖功)!
사라천요공에 걸린 사내들은 그녀가 심어놓은 촉발장치만 건드리면 언제든지 폭발한다.
북경에 몰려든 사내들은 그래서 왔다.
그들에게 촉발장치는 ‘절염색녀’라는 네 글자다.
그 글자들을 듣는 순간, 절염색녀를 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심정이 된다.
절염색녀가 강남에 있다고 하면 강남으로 간다.
이번에는 하북에 있다고 하니 하북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죽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죽음이 보이지 않는다. 절염색녀를 볼 수 있다면 그까짓 죽음쯤 대수롭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게다.
그만큼 사라천요공의 암시는 강하다.
평생 지워지지 않고 따라다니는, 뇌에 심어진 화약이다.
그러니 그들은 와야만 한다.
통천오방진이 아무리 철벽같아도 자신을 만나겠다는 심정은 막을 수 없다.
왜 그들이 움직이지 않는 거지?
처음에는 궁금했다가, 나중에는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 놈…… 루주!
놈은 화화공자의 아들이다. 화화공자의 모든 것을 물려받았다. 훤칠한 키, 잘 생긴 용모…… 신체적인 유산뿐만이 아니다. 화화공자의 재주까지 물려받았다.
놈은 여인을 보면 그 여인이 어떤 여인인지 직감적으로 감지하는 능력이 있다.
관상쟁이들이 보는 관상과는 차원이 다르다.
놈은 여인을 보는 순간 모든 것을 직감한다. 성격이 어떻게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현재는 어떤 환경에 놓여 있고, 처녀인지 아닌지, 잠자리 기술은 어느 정도이고, 술은 어느 정도 마시고, 취향은 어느 쪽이고……
농부가 질 좋은 땅을 잘 찾듯이, 바람둥이에게는 좋은 여자를 찾는 능력이 있다.
놈은 원하는 여자를 찾을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난 허세를 걷어내고, 속이 진짜인 여자를 찾아낸다.
원하는 여자를 쉽게 찾고, 쉽게 취한다는 것은 쉽게 버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놈도 제 아비를 닮아서 타고난 바람둥이다.
그런 놈이 자신을 봤다.
놈의 눈길이 자신을 훑었다.
어미를 여인으로 봤다는 뜻이 아니다. 그놈 집안의 씨는 바람둥이는 될지언정 폐륜은 저지르지 않는다. 어미가 어떤 여인인지, 어떤 성격인지 훑어봤다는 뜻이다.
놈은 그때 사라천요공의 흔적도 봤을 게다.
이건 무공의 문제가 아니다. 사내가 여인을 제압하고, 여인이 사내를 제압하고…… 음과 양의 관점에서 어느 쪽이 우위에 있는지 살펴야 한다.
사라천요공은 그런 관점에서 찾아야만 보인다.
그 놈이 보았다.
놈이 풍객(風客)들을 찾아다니면서 사라천요공을 깨고 있다. 확실하지만 않지만 거의 틀림없을 게다.
이는…… 여자의 직감이다.
“내 손발을 묶어놓겠다…… 좋은 수야.”
그녀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루주를 만난 후, 놈을 죽이려고 했다. 실패했다.
살수를 썼다. 그 정도면 충분할 줄 알았다. 실패했다.
연후, 놈이 검치의 제자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놈을 생포하려고 했다. 이 역시 실패했다.
놈을 잡는데 사총을 끌어들였다. 그놈들은 기어 나오지 못해서 안달 난 놈들이니까. 또 기어 나와 봤자 별 볼 일 없으니까. 사총이 언제 적 사총이던가. 보잘 것 없는 것들……
실패했다. 지금도 실패하고 있다.
놈을 죽이는 것, 놈을 생포하는 것, 모두 실패했다.
그리고 이제 놈이 자신의 주변을 정리한다.
그런데…… 아는지 모르겠다. 이 모든 게 무의미하다는 것을.
십족령으로 자신을 가둬? 상관없다. 나가고 싶으면 이까짓 울타리쯤은 가볍게 무너트린다. 팽가오로? 그들 정도 따돌리지 못할 것 같은가?
성녀로 지내는 것, 절염색녀로 지내는 것…… 아무 의미 없다.
사총이 나선다. 살천루가 나선다.
모두 밥상 위에서 장난치는 개미들에 불과하다.
그들은 자신의 행동에 주목했어야 한다.
먼저 자신은 자식을 죽이려고 했다. 왜 그랬겠는가? 미우니까. 이유는 그것밖에 없다. 미워서 죽이려고 했다.
마차를 전복시켜서 태아를 유산시켰다.
그 일도 용서할 수 없다. 아이만 낳았으면 가주와 무탈하게 지낼 수 있었다.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별 탈 없이, 조용히…… 그렇게 시간이 갔을 게다.
놈을 그때 죽여야만 했다.
그때는 검치의 무공을 제대로 쓰지 못할 때다.
팽효기만 나서도 죽일 수 있었다. 회자수 따위에게 피투성이가 되도록 얻어터진 놈이지 않나. 팽가사로…… 그 늙은이는 빨리 나섰어야 한다. 죽이라고 명을 받은 게 언제인데 꼼지락거린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