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125
125
스스스슷!
루주의 신형이 흔들거린다 싶었다.
사막에서 일어나는 신기루처럼…… 아지랑이처럼 흐릿하게 흔들거린다.
스으으으…… 따악! 딱! 딱!
일곱 개를 피했다. 그리고 세 개를 맞았다.
루주는 대창에 찔린 닭처럼 힘없이 나가떨어졌다.
검치의 이번 일격은 전력을 다한 것이다. 웬만한 무인은 즉사하고도 남을 거력이 담겼다.
“힉! 저 새끼 정말 내 흉내를 내네? 거의 흡사하잖아? 야, 어떻게 된 거야?”
검치가 눈을 부릅떴다.
루주가 죽지 않고 꿈틀거린다. 원래 죽일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혼절하는 게 마땅하다. 비록 세 개밖에 맞지 않았지만 그래도 혼절하는 게 마땅하다.
“제길! 다 훔쳐갔어. 저 새끼…… 아주 나쁜 놈이군. 아주 나빠. 그럼 죽여야지. 사지를 뽑는다는 말은 취소. 죽이기로 했어. 내걸 훔쳐간 놈은 죽어야 돼.”
검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는 루주에 대해서 맹삼력에게 물었다. 하지만 이제는 물은 것조차 잊었다.
그만큼 루주에 대한 놀라움이 컸다.
“나쁜 놈…… 나쁜 놈……”
그는 나쁜 놈이라는 말을 중얼거리면서 우마차를 뒤졌다. 널빤지 사이사이에서 목검을 끄집어냈다.
한 자루, 두 자루, 세 자루…… 열 자루.
검치는 목검 열 자루를 몸 여기저기 찔러 넣었다.
예전…… 그가 무림을 활보할 때의 모습이다. 사총을 무너트릴 때의 그 모습이다.
맹삼력은 검치가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루주가 꿈틀거린다.
그는 죽지 않고 살았다. 검치가 전력으로 펼친 십검에서 살아난 유일한 인물이다.
검이 아니라 돌멩이라고 다르게 생각하면 안 된다.
목검이든 돌멩이든 검치의 손에 들리면 아주 강력한 살상무기로 둔갑한다.
돌멩이에는 파괴의 힘이 담겨있다.
지금까지 시비를 걸어왔던 자들에게 던졌던 그런 돌멩이가 아니다.
목표를 타격하는 즉시 산산조각나면서 체내로 파고든다. 아니, 파괴한다.
목검이 몸통 속으로 들어가 분산하듯이, 돌멩이도 그런 일을 한다.
살아날 수 없다.
그런데 루주가 꿈틀거리면서 일어선다.
돌멩이 일곱 개는 완전히 흘려버렸고, 세 개는 몸 앞에서 가로막았다.
검치의 내공에 밀려서 쓰러지기는 했지만…… 십검을 막았다.
일어나는 루주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담겨있다.
맹삼력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검치를 데려오라고 할 때는 어디 요긴하게 쓸 데가 있는 줄 알았다. 헌데 아니었나? 십검을 얻기 위해서였나? 아니다. 검치를 데려오라고 말을 할 때만 해도 십검을 얻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이것만은 분명하다.
오랜만에 검치를 만나자 자신이 터득한 무공을 비교해 보고 싶었을 게다.
루주가 어떤 심정으로 검을 들었는지는 자신이 제일 잘 안다.
자신도 그랬다.
길을 오는 내내 문득문득…… 안 되는 줄 알면서 구마삭을 떨쳐냈다. 기습도 해봤고, 정식으로 싸움을 걸기도 했다. 물론 그때마다 등을 얻어터졌지만.
루주도 그런 마음으로 검을 들었다.
그리고 여기서, 바로 이 자리에서 생각지도 않은 기연을 얻었다.
그때, 등짝을 때리는 검치의 주장자에서 십검의 묘용을 깨쳤을 때처럼…… 이상할 게 전혀 없는 검치의 공격을 받으면서 깨우침을 얻었다.
검치를 쓰려고 데려왔는데, 무공까지 대성한 격이다.
“쿨룩!”
일어나 앉은 루주가 큰 기침을 하면서 피를 쏟아냈다.
내상이 큰 듯하다. 하지만 그는 일어서야 한다. 한 차례 더 큰 싸움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루주는 손을 들어서 휘휘 내저었다.
“뭐? 히히히! 그래, 알았어. 기다려 줄게. 나도 궁금해. 키킥! 우리 재미있게 싸워보자.”
검치가 우마차에 쪼그리고 앉아서 턱을 괬다.
루주는 힘들게 일어나 옆에 있는 나뭇가지를 꺾었다. 그리고 검치가 보는 앞에서 목검을 깎기 시작했다.
“쿨룩!”
또 기침을 한다. 피도 솟아진다. 하지만 눈길만은 형형하게 빛난다.
맹삼력의 눈가에 물기가 맺혔다.
‘저놈…… 드디어 다 얻었어.’
3
“살천루에서 사자를 보내왔습니다.”
“또? 후후! 이것들이 아주 미쳐 날뛰는군. 두 번 다시 얼씬 거리지 못하도록 짓이겨서 보내버려!”
“그런데 묘한 말을 합니다. 자기들이 십검을 잡을 수 있다고 하는군요.”
“뭐? 푸하하하! 십검을 잡아? 하하하하!”
곰처럼 우람한 사내가 허리를 붙잡고 웃어댔다.
“살천루가 그런 말을 했다면 분명히 우리에게 보여줄 게 있을 겁니다. 지금까지의 살천루는 우리가 알고 있던 그대로고…… 뭔가 우리가 몰랐던 걸 보여줄 텐데…… 살천루에서 은밀한 움직임이 있었을 텐데?”
“넷! 시산망자, 혈수마염, 사망유객, 동면염라. 이 네 명의 고수가 항명했습니다.”
“항명?”
“일가족을 모두 데리고 피신 중입니다.”
“물론 살천루가 뒤를 쫓고 있겠지?”
“넷!”
“경과시간은?”
“저의 촉각에 걸려든 것이 어제이니, 하루가 지났습니다.”
“우리 촉각은 살천루의 움직임보다 한 박자 늦다. 하루하고도 서너 시진쯤 지났다고 봐야겠지. 그런데도 살천루가 그들을 따라잡지 못한다? 후후후! 우리보고 보라는 소리입니다.”
“십간조의 방법은 안 돼.”
“알고 있습니다. 살천루주도 알고 있을 겁니다.”
우람한 사내 옆에는 허리가 구부러진 노인이 두 손을 소매 속으로 찔러 넣은 채 서있었다.
그가 바로 사총제일뇌(死總第一腦) 염탈군이다.
염탈군은 오래 전에 십검의 파해법을 연구했다.
연구 정도가 아니다. 사총의 모든 전력을 투입해서 깨트리려고 안간 힘을 썼다.
그때 쓴 것 중에 하나가 분살광왕이 이번에 보여준 잔력(殘力)이다.
심검의 빠름은 감당할 수 없다. 그러니 맞아준다. 일단 얻어맞고, 충격을 받고 그래도 공격할 정신이 있으면 공격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공격을 받은 후에도 계속 공격할 수 있는 여력의 힘이다.
지금 살천루는 두 가지 방법을 시험해 봤다.
하나는 분살광왕의 진력이다. 그는 자신의 내공으로 버텨냈다.
또 하나는 을조 조장이 시행한 것처럼 약에 의존하는 방법이다.
이 두 가지 방법 모두 옛날 사총이 무너지던 시기에 염탈군이 사용해봤던 방법들이다.
이게 될 듯 될 듯 하면서도 안 된다.
조금만 더 힘을 내면 될 것 같은데, 마지막 딱 반초의 승부에서 지고 만다.
원래 여력이란 그런 것이다.
쓰고 남은 힘이 오죽하겠는가. 혼신의 힘을 기울여도 안 될 판에 쓰고 남은 힘이라니!
염탈군은 이 방법의 허실을 깨닫고 포기할 때까지 무려 오백여 명의 고수를 잃었다.
그만큼 포기하기가 어렵다. 정말로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사총제일뇌가 오백 명을 잃을 정도라면 어지간한 사람은 문파 전체를 내걸고도 남는다.
“살천루에서 항명했다는 놈들, 대단한 놈들인가?”
“나름대로는 충성을 바치는 자들이죠. 살천루를 위해서는 기꺼이 목숨을 내놓는.”
“살천루는 그게 부러워.”
“저희 사총도 그렇습니다. 어찌 손에 든 떡은 보지 않으시고 남의 떡만 보시는지.”
“하하하! 염탈군…… 네가 날 부끄럽게 만드는구나.”
염탈군이 허리를 숙여보였다.
“후후후! 보라고 하면 봐야지. 원래 춤판은 구경해야 제 맛이야. 그 사자라는 놈, 죽이지 말고 가둬둬. 살을 벗겨서 염장질을 하든지 젓갈을 담그든지 나중에 하자.”
“넷!”
“이 기회에 살천루를 손에 넣을까?”
“훗!”
“지금…… 비웃는 것 같은데?”
“그게 바로 살천루주가 노리는 것. 살천루를 먹음직스러운 떡으로 포장하려는 게 저쪽의 의도지요. 이런 정도면 가져도 좋지 않을까? 지금 걸려드신 겁니다.”
“걸려들었다?”
“살천루에서 네 명이 항명을 했습니다. 그들이 루주에게 부딪칠 것은 분명한 거고…… 그것도 아주 치열한 접전을 벌이겠죠. 가족을 데리고 나왔다는 것은 혈육지분(血肉之憤)까지 이용하겠다는 것. 정말 처절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총주님께서는 이에 필적할 만한 자를 보내셔야 할 겁니다. 생사판관(生死判官) 정도?”
“그래서?”
“생사판관이라면 저들과 필적할 만한 무위를 보여줄 것…… 자, 너희가 벌인 춤판은 봤다. 이제 우리가 벌이는 춤판을 봐라. 그리고 우리 밑으로 기어들지 말지 결정해.”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넌 여우야.”
“저쪽도 그 생각이죠. 우리가 생사판관 정도 되는 자를 보낼 것이라고 생각한 겁니다. 그래서 항명이라는 극단적인 수법을 써서 젖 먹던 힘까지 끌어내는 거지요. 저들의 춤판을 보시고, 총주께서 혹하시면…… 후후!”
“연수를 하게 되겠군.”
“살천루라는 세력이 아니라 그 자들의 의기를 산다는 명분이 있으시겠죠.”
“그래서 좋은 점은?”
“루주는 확실히 잡을 수 있을 겁니다. 루주의 검은 십검이 아니라 사검입니다. 십검과 사검은 천양지차. 살천루가 전력을 다해서 몰아치면 꺼꾸러질 겁니다. 우린 편안하게 절염색녀를 만날 수 있을 것이고, 그녀가 심어놓은 씨앗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나쁜 점은?”
“검치를 상대해야 할 겁니다.”
“검치가 루주의 복수라도 한다는 건가? 검치는 루주를 장난감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아.”
“미치광이의 속성을 아십니까?”
“말해 봐.”
“미치광이가 장난감을 부숩니까? 부수지 않습니다. 애착을 가진 건 신념보다도 더한 결기로 지켜냅니다. 검치와 루주의 관계가 어떤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알려진 것이 전혀 없으니까요. 하지만 검치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만은 분명합니다.”
“검치를 상대하기에는 아직 부족하지?”
“씨앗만 얻으면……”
“좋아. 일단 구경이나 하고 보자고. 나중에 결정할 문제잖아. 하하하!”
총주는 기분 좋게 웃었다.
***
“장이야!”
“그런 건 이렇게 멍이지.”
두 노인이 그늘에 앉아 장기를 두었다.
“허! 이놈의 상(象)만 아니면 끝나는 건데…… 아까 먹어버릴 걸 그랬어.”
“후후! 상과 마(馬)가 걸려있으면 마에 손길이 가는 법이지. 아무래도 발 빠른 놈을 잡게 되어있거든.”
“그래서? 이 판을 가지고 계속 하겠다는 건가?”
“이 판이 어때서? 내가 보기에는 질 판이 아니구먼.”
“허어! 똥고집하고는.”
“그럼 장을 불러보라고.”
장기판에는 기물이 거의 없다.
양쪽 모두 주요 말들은 모두 떨어져 나갔다.
공격하는 노인에게는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는 졸(卒)만 남았고, 방어하는 노인은 상 하나와 사(士) 하나뿐이다.
그래도 상황은 공격하는 쪽이 유리해 보인다. 몇 번만 더 밀고 내려가면 장을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딸칵!
노인이 졸을 움직이면서 말했다.
“사라천요공을 깨트린 놈이 있더군.”
“나도 들었다네.”
노인이 사를 위로 올리면서 대답했다.
“어찌 조용하게 끝나나 했지. 장이야.”
“가만…… 진 건가?”
“사라천요공이 깨졌다는 말에 움직이지 말아야 할 말을 움직여 버렸어. 후후! 자네도 성질께나 난 게군.”
“팽가주 그 놈이 알아차린 것 같아.”
“그래서 성질이 난 게야?”
“팽가주는 십족령으로 자신을 가둬버리고…… 시간을 벌겠다는 뜻이겠지만. 루주란 놈은 사라천요공을 깨고, 검치 그 미친놈은 세상 밖으로 뛰쳐나가고……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어. 졌네.”
노인이 기물을 쓸어서 장기 통에 담았다.
“왜? 그만 하려고?”
“할멈하고 중원 나들이나 다녀올까 하고.”
“후후후! 그럴 줄 알았지.”
다른 노인도 기물을 정리했다.
“주설언인가 하는 그 계집이 탐나는 게로군.”
“그 나이에 천멸독경을 대성했고…… 정조와는 거리가 먼 기녀고…… 이만하면 한 번 가서 볼 만은 하지.”
“그 여자는 기녀가 아니라고 들었는데?”
“기녀, 맞네.”
“기적에 이름은 올렸지만, 루주 그놈의 아낙이라고 들었어. 그놈이 꿰차고 앉아서 손님방에는 한 번도 내놓은 적이 없다더군. 여염집 아낙이나 다를 바 없어.”
“후후! 기녀가 달리 기녀인가? 손님만 받으면 기녀지. 세상에 바람피우는 여자 따로 있고, 안 피는 여자 따로 있는가? 여건이 갖춰지면 모두 다 하게 되어 있네.”
“알아서 하시게. 허어! 이제 자네가 가버리면 난 누구하고 장기를 두나. 앞으로 꽤나 심심하겠구먼.”
노인이 일어섰다.
“중원에 갔다 오면 기별 넣음세. 나중에 보세.”
다른 노인도 일어나서 휘적휘적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