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129
129
그때, 그녀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루주가 중얼거렸다.
“벼락 맞고 산 놈 없지.”
아무도 의미를 알아들을 수 없는 혼잣말이다.
하지만 이 순간, 팽가연은 정말 벼락이라도 맞은 듯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그렇다! 혼원벽력신공은 지상최강이다. 이를 능가할 도법은 없다. 십검이라도 해서 혼원벽력신공의 무서움, 강함, 빠름을 늘가하지는 못한다.
‘그래! 벼락 맞고 산 놈 없어!’
검치에게 벼락을 때린다.
스읏!
유엽도를 들어올렸다.
타라랑! 다랑! 타라라랑!
단전에서 진동이 울린다. 온 몸에 차가운 진동이 울리면서 몸과 정신이 분리되는 듯한 환상이 일어났다.
혼원벽력신공은 정신 무공이다. 혼의 무공이다.
육신을 의념하지 않는다. 육신을 보지 않는다. 단전의 진기를 보지 않는다.
그것들은 몸이 움직일 때 자연히 따라서 움직이게 되어 있다. 자신이 굳이 의념하지 않아도 움직이는 대로 따라온다.
팔을 들고자 해보라. 팔이 들린다. 고개를 돌려봐라. 고개가 돌아간다. 그렇게 당연한 행동을 하면서 굳이 자신을 냉철하게 지켜볼 이유가 있는가.
무인에게 진기란 그래야 한다.
몸을, 육신을 제어하려고 하지 마라.
몸은 살아있다. 스스로 움직이는 생명체다. 머리가 없다고 해서,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몸이 죽는 건 아니다.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아도 몸은 살아간다. 위험이 닥치면 본능적으로 피한다. 그 움직임도 머리로 생각한 것보다 훨씬 빠르다.
무념(無念)이 전신을 관통한다.
의념(意念)을 완전히 지워버릴 때, 무념이 일어난다. 아니다. 무념은 원래부터 있었다. 하얀 백지상태로 늘 존재해왔다. 그 상태 그대로 놓아두면 되는 것을…… 괜히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린다, 글씨를 쓴다 하고 설쳐댄다.
백지를 원하는가? 그럼 백지로 그냥 놔둬라. 붓을 들지 마라.
스으읏!
의념 없는 진기가 전신을 휘돈다.
그녀는 진기의 순환자체를 잊어버렸다. 한 자루 유엽도만 쳐다봤다. 검치가 어느 정도나 빠를까 하는 생각도 지워버렸다. 자신이 상대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아예 망각했다.
죽을 수도 있다.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아무 상관없다.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육체에게 맡긴다. 육체가 스스로 일으킨 진기에게 맡긴다. 자신은 그저 하얀 백지 상태에서 지켜보기만 한다.
스읏!
검치가 움직였다. 순간!
‘보인다!’
그녀는 눈을 번적 떴다.
믿을 수 없게도 검치의 움직임이 눈에 잡힌다. 그가 어떤 식으로 보법을 밟는지, 신형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환히 보인다. 한 눈에 들어온다.
그녀는 기쁨이 실린 웃음을 토해냈다. 그 순간,
따악!
목검이 그녀의 머리를 정확하게 가격했다.
“헉!”
그녀는 아득한 충격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머리가 깨지면서 핏물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눈썹 위로, 눈으로, 코를 지나 입안으로 흘러든다. 찝찔하면서 비릿한 핏물이 스며든다.
“키키키! 계집이 피 흘린다. 계집이 피 흘려. 키키키!”
검치는 미친 듯이 좋아했다.
루주가 붕대를 가져와 그녀의 머리를 감쌌다.
취취가 하려는 것을 굳이 그가 했다.
“할 수 있겠어요. 며칠만 더 하면 막아낼 수 있겠어요.”
그녀는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머리가 깨져서 피가 흐르지만 아무렇지 않다. 그 정도는 얼마든지 참아낼 수 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검치의 움직임을 봤다는 것이다.
공격하는 모습을 봤으니 막을 수도 있다. 며칠만 더 수련하면 될 것 같다. 빠르면 하루이틀 사이에도 파해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다.
검치는 무적이 아니다.
그녀는 자신감에 들떠서 눈빛을 빛냈다.
루주가 머리에 붕대를 감으면서 말했다.
“봤지?”
또 뜬금없는 말이다. 그런데,
“네. 봤어요.”
팽가연은 루주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보면 안 되는데……”
“네?”
“보면 안 되지.”
팽가연은 루주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챘다.
검치의 움직임을 보지 마라. 끝까지 무심을 유하라. 혼원벽력신공의 위엄, 무리를 잃지 마라.
그런 뜻에서 한 말이라면 말을 달리 한다. 달리 할 수 있다.
“그러게 말예요. 보면 안 되는데 보고 말았네요.”
“다음에는 안 볼 수 있을 것 같아?”
“네. 한 번 경험해 봤으니까……”
“후후후!”
루주가 싱겁게 웃었다. 마치 철부지 어린아이를 대하는 듯 기분나쁘게 웃는다.
“왜 웃어요?”
“보아하니 걸려든 것 같아서.”
“걸려들어요?”
“다음에는 보지 않을 것 같지? 후후! 또 보게 될 거야. 그래서 목검을 얻어맞지. 보지 않아야 하는데…… 무심을 끝가지 유지해야 하는데, 유심이 끼어들어. 그래서 당하지. 다음에는 보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런데 해보면 또 보게 돼. 한 번 만 더, 한 번 만 더…… 그러다보면 온 몸이 멍투성이가 되는 거야.”
“후후후! 저 늙은이의 마수에 걸려드는 거지.”
맹삼력이 옆에서 같이 웃으면서 말했다.
“저 늙은이가 좋아하는 것 봤지? 후후! 이미 걸려들었다고 확신하고 있구만, 뭘.”
맹삼력이 팽가연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정말…… 안 될까요?”
팽가연이 물었다.
루주는 그녀를 힐끔 쳐다본 후, 붕대를 마무리하고 일어섰다. 맹삼력도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이미 끝났네. 벌써 걸려들었어.”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팽가연은 혼원벽력신공을 끌어올렸다.
검치의 검은 여전히 보인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현상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수련의 일환이지 않은가. 혼원벽력신공이 정점에 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무심이 깨지는 게 아닌가. 이런 수련을 통해서 혼원벽력신공을 정점으로 이끌리라. 꼭 대공을 이루고야 말리라.
검치가 수련을 도와준다.
그를 보지 않게 될 때, 그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그래서 무심히 칼을 벋어낼 수 있을 때…… 그대 자신은 무적이 된다. 이 세상에서 단 한 번도 탄생하지 않은 여제가 된다.
그녀는 희망을 갖고 칼을 뻗어냈다.
보름이 지나갈 무렵, 그녀는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검차의 움직임이 똑같다.
그가 눈에 보이는 시점, 그의 움직임, 그리고 목검이 날아오는 방향까지 똑같다.
“저 이런 거 물으면 안 되는데…… 십검…… 신법이 하나뿐이에요? 검치의 움직임이 한결 같아서.”
“무변광대(無邊廣大).”
루주는 짧게 말했다.
그녀는 기운이 탁 풀렸다.
그녀가 보았다고 생각한 것은 착각이다. 검치가 무심을 깨고 유심을 심어놓았다. 그녀의 무심이 약해서 깨진 게 아니다. 그의 움직임에 무심이 깨진 것이다.
검치가 희롱하고 있었다.
“왜 말해주지 않았어요?”
그녀가 야속하다는 투로 말했다.
루주는 예전보다는 한결 밝아진 얼굴로 말했다.
“첫째 내가 맞지 않으니 한숨 돌려서 좋고.”
“뭐요!”
“둘째, 검치 저 늙은이…… 아무에게나 목검을 휘두르지 않아. 그래도 싹수가 있다고 생각되는 자에게만 이 지랄을 하지. 그러니 말릴 필요가 없고.”
도움은 될 거라는 뜻이다.
이런 수련을 받는 자가 몇 명 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말은 그나마 위안이 되네요.”
“그럼 다행이고.”
“그럼 저도 검치의 제자가 된 건가요?”
“후후후! 그 말은 하고 싶지 않을 걸?”
한 달이 지나갈 무렵, 팽가연은 자신이 얼마나 힘든 길을 선택했는지 여실히 깨달았다. 그녀는 그제야 비로소 루주와 맹삼력이 왜 도망을 쳤는지 이해했다.
그녀의 애초 생각은 맞다.
검치를 상대로 혼원벽력신공을 수련할 수 있다. 검치가 움직일 때, 공격해 올 때, 지극히 짧은 한순간만 무심을 유지할 수 있다면 대공이 완성된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검치가 무심을 깨고 들어오기 때문에 평정을 유지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평정을 유지하는 방법 또한 찾지 못하겠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대공이 아니다.
대공을 사과나무에서 사과 따듯이 생각한 것이 잘못이다.
그 길이 너무 길고 요원하다. 너무 멀어서 끝이 보이지 않는다. 아예 끝이 없는 것 같다.
모든 수련에는 성취를 측정하는 단계가 있다.
그 단계를 보면서 희망을 가진다. 성취감을 가진다. 앞으로 계속 정진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그런데 검치는 그런 희망을 주지 않는다.
단계를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은 없다.
모두 자신이 어느 정도까지 와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 점은 이제 막 시작한 자신이나 어느 정도까지 달려갔다가 포기해버린 맹삼력이나 똑같다. 구검까지 받아낸 루주도 매한가지다. 그는 일검만 남았지만 그 일 검이 문제다. 어느 세월에 수련해 낼지 알지 못한다.
꾸준히 수련하다보면 반드시 수련한다는 보장만 있어도 좌절하지 않는다.
그런 것조차도 없다.
지금 있는 것은 검치의 노리개가 되어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맞고 또 맞는 일밖에 없다.
그녀는 좌절했다. 하지만 오늘도 검치의 목검은 그녀를 가리켰다.
“혼원벽력신공…… 정말 깨달은 거 맞아?”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서 쓰러져 있는 그녀에게 루주가 비난에 가까운 질책을 했다.
“건들지 말아줄래요?”
“혼원벽력신공…… 무결(武訣)은 모르지만 어떤 무공인지 대충 짐작할 수는 있겠더군. 전에 한 번 경험해 본적도 있고. 헌데 지금 네 검…… 무심이 없다.”
“……!”
팽가연은 눈을 번쩍 떴다.
뭐야? 무심이 없어? 왜?
“무심이란 무심 자체를 잊는 거야. 무심 따로 있고, 유심 따로 있는 게 아니지. 온몸으로 없다는 것을 말해야 하는데, 아주 강한 결기만 느껴져. 꼭 이기고야 말겠다는 의지만 읽혀진다고. 그러니 더 화가 난 거야.”
오늘 그녀는 무려 오검이나 두들겨 맞았다.
다른 때는 일검으로 그쳤다. 머리나 팔, 몸통을 한 번 가격하면 히죽히죽 웃으면서 물러섰다.
오늘은 온 몸을 늘씬하게 얻어맞았다.
타격의 강도도 예전과는 다르다. 전에는 정신을 잃는 선에서 그쳤는데, 오늘은 살이 터지고 뼈가 부러져다.
아주 강하게 내리쳤다.
“키키키!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같은……”
검치가 마지막 말까지 내뱉지는 않았지만 쓰레기 같은 년이라고 말한 게 틀림없다.
그는 그렇게 화를 냈다.
그녀는 영문도 알지 못하고 얻어맞았고, 검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두들겨 댔다.
루주와 맹삼력은 태연히 구경했다.
말릴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녀를 대신해서 검을 들어주지도 않았다.
이거였나? 무심이 보이지 않았나?
“검치의 검을 두려워하지 마. 그냥 맞아. 어차피 맞잖아. 그러니 한 대 더 때리라고 해. 그냥 맞아. 맞고 맞다가 그래도 틈이 보이면 한 대 치지 뭐. 그런 생각을 해.”
루주가 일어섰다.
“그러면 되요?”
팽가연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절망 밖에 없는 곳에서 희망을 본 기분이다.
루주도 자신의 이런 행동이 절대로 약이 된다고는 생각지 않을 것 이다. 무인에게 위로란 독이 될지언정 약은 되지 않으니까. 그런데도 위로를 해주는 것은 그녀가 너무 상심해 있기 때문이다.
안다. 아니까 눈물이 나온다.
“그러면 돼. 혼원력신공의 오의를 제대로 일았다면…… 내가 이런 말을 하지도 않았을 텐데. 후후! 엉터리로 깨우쳤나봐. 후후! 내일은 그냥 맞으라고. 맞으면 되지. 후후후”
‘그래, 맞으면 돼.’
팽가연은 일어섰다.
더 이상 우울해 할 필요 없다.
순간, 그녀의 눈에 많은 사람이 보였다.
루주, 맹삼력, 주설언, 취취……
이들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 그녀 곁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그녀 혼자서 고군분투하는 게 아니라 이들의 지원을 받고 있다.
그녀는 칼을 잡았다.
‘난 혼자가 아냐.’
“검치, 한 판 더 하지. 한 대 더 때려줘,”
제37장 멸문(滅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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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이 없다.
그들은 하루에도 몇 번 씩 비무를 지켜봤다. 자신들의 무공에 견주어봤다. 어떻게 하면 저들을 죽일 수 있나. 어떤 방법으로 암습을 가하면 될까?
머리를 아무리 굴려도 방법이 없다.
루주는 훨씬 더 강해졌다.
십간조를 척살할 때부다 적어도 세 배는 강해졌다.
검치는 단신으로 사총을 눌러 앉혔다. 지상 최강의 문파라고 자부하던 사총을 목검 열 자루로 주저앉혔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일절 받지 않았다. 혼자서 그 일을 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