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143
143
그는 구마삭을 들어보였다.
“클클클! 재미있는 놈…… 어디 그럼 네 솜씨 좀 볼까? 그러잖아도 네 놈은 특별히 보고 싶었어. 아주 특별한 놈이라서…… 어떤 놈인지…… 보고…… 싶…… 었…… 어.”
노파의 음성이 점점 느려졌다.
나중에는 너무 느리게 흘러나와서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터엉!
머리가 울린다.
그는 즉시 눈을 감았다.
육신에 일어나는 이유없는 변화는 적의 공격을 의미한다. 고통이든 뭐든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생겼다는 것은 알지 못하는 공격을 받았다는 뜻이다.
그는 울림에 저항하지 않았다. 죽음 앞에서 저항은 무의미하다. 저항에 신경 쓰다 보면 구경할 수 있었던 여러 요소들조차 보지 못하게 된다.
아무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몸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지켜본다.
터엉!
외기(外氣)가 흘러들어 내기(內氣)를 친다.
강력하게 찌르거나 파괴하는 게 아니다. 손바닥으로 슬쩍 미는 시늉만 한다. 그런데도 내기가 흔들리면서 파장을 만들어낸다.
흘러간다. 흘러간다.
청각을 마비시키고, 시각을 마비시킨다.
슈웃!
또 다른 외기가 밀려온다.
이번 외기는 부드럽지 않다. 경기(勁氣)가 담긴 것은 아닌데…… 어떤 외기보다도 위험하다고 느껴진다.
이건 육감으로 감지한 게 아니다. 자신이 직접 눈으로 보고 판단한 것이다. 비록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본 것이지만, 눈으로 본 것보다 훨씬 정확하다.
��! 쒜에에엑!
검 한 자루가 외기를 향해 덮쳐갔다.
까앙! 파파파파……!
묵직한 울림과 함께 검이 산산조각 났다. 흘러오던 외기도 주춤하더니 점점 힘을 잃고 소멸되었다.
십검의 파(破)!
루주는 사사심겁을 펼쳤다. 두 자루를 동시에 쳐냈다. 한 자루는 검이었고, 또 한 자루는 구마삭이었다.
처렁! 촤아아악!
구마삭이 곧장 뻗어나가 희끄무레한 형체를 쳤다.
탁! 탁탁! 탁탁!
구마삭 끝에 무엇인가 걸렸다.
일다경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루주는 그제야 눈을 떴다. 내기의 진탕을 멈추는데 그토록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제일 먼저 노파가 서있던 곳을 쳐다봤다.
노파의 지팡이가 나뭇조각이 되어서 흩어져 있다. 그리고 늙어서 뼈만 남은 팔 하나도 떨어져 있다.
‘팔 하나……’
그는 전력을 쏟아냈다. 더 이상은 그 무엇도 할 수 없을 마큼 완벽한 무공을 펼쳤다.
그런데 팔 하나다.
노파를 죽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죽이지 못했다.
노파 역시 자신을 공격하지 못한다. 노파의 공격은 이미 읽혔다. 지팡이가 산산조각 났다는 게 그런 사실을 말해준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팡이가 가슴을 꿰뚫었을 게다.
노파도 더 이상 할 것이 없고, 자신도 할 것이 없다.
두 번, 세 번…… 연이어 부딪쳐봐도 결과는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노파에게 지지는 않지만 그녀를 죽일 수도 없다.
노파는 누구인가!
살천루에 이만한 고수가 있었다니!
그녀는 살천루주에 비해서 적어도 두어 단계 윗길의 고수다.
살천루주 서너 명이 합공을 펼쳐도 이길 수 없을 만큼 강하다. 그 말은 자신도 그만큼 강하다는 말도 되지만…… 사실이 그러니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이 정도의 고수가 살천루에 있었다면…… 사총은 상대가 안 된다. 진작 살천루라는 이름으로 사도가 재통합되었을 게다. 사총은 사라지고 살천루만 남았으리라.
지금은 살천루도 남았고, 사총도 남았다.
노파가 전혀 움직이지 않았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살천루 살수들을 그토록 많이 죽였는데도 노파는 이제야 나타났다. 살천루가 폭싹 무너지고 난 다음에 어슬렁어슬렁 나타났다.
그럴 필요가 있었나?
지금이니 맞상대를 할 수 있지, 한 달 전만 해도 어림없다. 만약 십간조를 치기 전에 노파가 나섰다면 제대로 검도 써보지 못하고 당했을 게다.
그때는 고작 사검 밖에 쓰지 못했다.
노파와 겨뤘다면 머리가 띵하고 울렸을 때, 승부가 갈렸다.
일시적으로 시력을 잃은 팽가연처럼 자신도 시역과 청력을 잃고 무방비 상태로 서있었을 게다. 뭐가 가슴을 찔러오는지 느끼지 못했으리라.
노파는 어디서 무엇을 하다가 나타난 것일까?
“음!”
루주는 신음을 흘리면서 땅에 떨어진 팔을 주웠다.
잘린 팔에서 찾아낼 건 없다. 어느 노파의 손과 전혀 다르지 않다. 주름살이 세월의 무게만큼 패였고, 손바닥에 굳은살은 없고, 문신 같은 문양도 없다.
‘평범하다.’
일을 안 한 손도 아니고, 많이 한 손도 아니다. 쇠를 잡아본 손이라고 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루주는 맹삼력에게 돌아섰다.
묻어줘야 하지 않겠나. 가슴 아픈 인생을.,
마인들이 검을 거뒀다.
그들로써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살천루주가 죽었다. 살천루가 멸문했다.
사총주가 죽었다. 무서운 무공을 선보이던 노파도 팔 하나를 놓고 도주했다.
사마의 영화는 끝났다.
남은 자들만으로는 사총의 위대함을 재현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십검을 수련한 루주가 떡 버티고 있는 한, 세상을 사총이 지배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일단은 돌아가야 한다. 더 이상 싸우는 것은 개죽음이다.
“괜찮다면 돌아가겠소.”
마인들 중 한 명이 말했다.
“……”
루주는 말하지 않았다.
지금 그에게는 마인들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그들의 말을 듣느니 죽은 맹삼력을 위로해 주리라.
“우릴 보내주지 않으면…… 그럼 우린 본격적으로 인해전술을 쓸 생각이오. 지금부터 수하들을 대거 투입해서 계속 싸움을 벌일 요량이오. 하루도 좋고 이틀도 좋고 사흘도 좋고, 죽을 때까지…… 해보시겠소?”
“뭐라고!”
루주가 눈을 가늘게 떴다.
화가 났다는 증거다. 마인들의 말에 정말로 화를 내고 있다.
“과거 검치는 닷새를 싸웠소. 검치가 죽인 숫자는 천삼백. 당신들은 얼마나 버틸지 구경해 볼까?”
마인이 품에서 물소 뿔로 만든 호각을 꺼냈다.
“그걸 불면 너는 이 자리에서 죽는다. 가장 잔인하게. 내 장담하는데 네 시신을 천 토막 내주지. 어떻게 갈라지는지 네가 직접 볼 수 있을 거야.”
루주 답지 않은 사이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의 눈에는 살염이 이글거렸다. 무공이 약한 자들, 죽음밖에 보일 게 없는 자들을 대거 투입시킨다는 말에 화가 단단히 났다.
“보내주시오.”
루주는 대답 대신 그를 노려봤다.
“지금 한 말…… 취, 취소하겠소. 저, 정말…… 미안하오.”
루주는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가라.”
“왜 그래요? 저놈들 꽁지 빠진 놈들이에요. 이때 쳐버려요!”
주설언이 소리쳤다.
그녀는 맹삼력의 죽음이 슬프다. 취취의 죽음이 슬프다. 이런 슬픔을 만들어 낸 마인들을 용서하고 싶지 않다.
루주는 주설언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저들을 죽인다고 사마가 소멸하나? 그렇다면 쳐도 좋고. 사총은 무너졌어. 지금부터 일어나는 모든 죽음은 싸움이 아니라 살상이야. 이미 승부는 끝났다고.”
“휴우!”
주설언이 한숨을 내쉬었다.
“고맙소.”
사총 무인이 검을 거꾸로 잡고 포권지례를 취해보였다.
루주가 말했다.
“지금부터 내 귀에 사총이란 말이 들리지 않도록 해. 그 말이 들리면…… 아까 시총주가 그러더군. 수하가 이만이라고. 이만이 아니라 삼만이라도 척살한다. 절대로 내 귀에 사총이란 말이 들리지 않도록…… 주의해.”
“알겠소.”
그들은 대답과 동시에 신형을 띄웠다.
쉬익! 쉬익!
그들은 떠나갔다.
백여 명이 왔다가 겨우 십여 명만 살아서 돌아갔다. 그래도 그들은 사총주의 시신이라도 수습해서 떠나갔다. 완전히 몰락해버린 살천루는 루주의 시신조차도 수습할 사람이 없다.
사총은 어찌 될까?
이제 끝났다. 두 번 다시는 재기하지 못할 것 같다.
그럼 됐지 않나.
사실…… 사총이 무림을 어떻게 하건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런 일에 신경써본 적도 없다. 무림 영웅이 아니기 때문에, 정도를 수호한다는 대의명분 같은 것이 없기 때문에 쳐다보지도 않는다.
빌어먹을!
모두 필요없다. 모두 필요없어.
그는 맹삼력 옆에 앉았다. 그리고 멍하니 하늘을 쳐다봤다.
옆에서 취취의 시신을 부둥켜안고 흐느끼는 팽가연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3
팽가촌은 봉문했다. 하지만 하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무관심할 수는 없다. 문만 안으로 틀어 잠갔다 뿐이지 바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촉각이 곤두서는 것은 마찬가지다.
검치가 하북 땅에 들어섰다.
이것보다 더 큰 관심거리는 없다.
검치와 루주가 죽을 둥 살 둥 싸워댄다. 그러다가 팽가연이 루주 뒤를 이어서 싸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얻어터지는데 그 모습이 정말 보기 힘들다.
그런 소식들이 귀에 전해진다.
도 다른 소시도 들어��다.
살천루가 결사를 감행한다. 루주 일행을 죽인다고 공언하면서 하북 땅을 밟았다.
다른 때 같았으면 당장 사실 조사를 나갔다.
살수 무리가 하북 땅에서 공공연히 날뛴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암약하는 것도 용인할 수 없는데, 어디서 감히 선포를 하고 사람을 죽이는가.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하북 팽가의 모든 전력을 기울여서 그들을 쳤을 게다. 팽가의 힘만으로 처리하기 힘들다면 무림의 힘도 빌릴 것이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처리해왔다.
문주직이 공석인 지금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팽가오로가 장로회의를 거쳐서 중요사안을 결정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굳이 나설만한 일도 아니다.
그들은 루주와 살천루의 싸움을 지켜봤다.
‘루주가 기회를 많이 주는군.’
그는 팽가촌으로 잠입해 들어갔다.
팽가오로의 통천오방진을 뚫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팽가오로가 팽가촌을 지키고 있는 이상 기척 없이 스며든다는 건 어떤 자도 불가능하다.
팽가이로와 삼로, 그리고 사로가 출타했다.
팽가 오로 중에서 세 명이 자리를 비웠다.
그만큼 사천루와 루주의 싸움은 모든 이의 이목을 잡아당긴다.
사실은 그도 가보고 싶다. 루주의 안위가 염려되기도 하고, 검치가 왔다니 구경하고 싶기도 하고, 이럴 때 한 팔이라도 거들어줘야 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꾹 눌러 참았다.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인간이 있다.
꼭 살아야 할 사람과 반드시 죽어야 할 사람이 있다.
현재 팽가촌에는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 버젓이 살아있다. 그 여자…… 루주의 어미…… 그 여자는 월아를 죽였다. 무공도 모르는 여자를 처참하게 죽였다.
“이놈아, 소리 내면 안 돼!”
그는 흑풍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흑풍을 루주에게 남겨두고 왔다. 헌데 어느 날 깊은 밤에 빠졌다가 눈을 떠보니 흑풍이 옆에 와있다.
놈이 주인의 냄새를 맡고 찾아왔다.
이런 놈을 어떻게 내팽개칠 수 있는가. 비록 자신이 하는 일에 꽤 방해가 되겠지만 그래도 데리고 있어야겠다.
흑풍은 말귀를 알아들은 듯 앞발을 낮게 구부렸다.
스스스! 스스스!
호가는 팽가촌 안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팽가촌의 지리는 환히 알고 있다. 이곳에서 치료까지 받은 적이 있기 때문에 눈감고도 걸을 수 있다. 특히 주의해야 할 사람들이 어디에 머무는지도 안다.
통천오방진이 전개되지 않은 지금, 가모를 쳐야 한다.
청성파의 절기인 부운약표(浮雲躍飄)가 경쾌하게 흘러나왔다.
“후웁!”
팽가촌 안으로 깊숙이 들어서자 자신도 모르게 큰 숨이 토해져 나왔다.
팽가촌 무인들에게 발각되는 건 두렵지 않다. 그들도 자신을 알기 때문에 침입 사실이 발각되어도 죽거나 다치지는 않는다. 싸움이 일어나지도 않는다. 자신의 목적까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모는 치지 못한다.
가장 중요한 목적을 이룰 수 없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번 잠행에서 가모의 숨을 끊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기회가 생기지 않을 것 같다.
‘저곳!’
가주는 자신의 거처를 십족령의 둘레로 삼았다.
한 마디로 집 밖으로 나가지 않겠다는 뜻이다. 팽가촌 사람들만 집안으로 받아들이고, 외부 손님은 일체 접견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더불어서 가모도 외부 인사를 만나지 못한다.
모든 만남이 철저하게 통제된다.
들어오는 것도, 나가는 것도…… 팽가 무인들의 허락을 얻지 않고는 시녀조차도 만날 수 없다.
호가는 흑풍과 함께 담장으로 넘어 안으로 들어섰다.
이번에 사용한 신법은 비류보(飛流步)다. 물 위를 스치며 날아가듯 부드럽게 뛰어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