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146
146
죽음과 동일하게 살아야 한다.
삶의 끝이 죽음인가?
아니다. 죽음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어둠 속에 촛불 하나 켜진 것, 이것이 삶이다. 촛불이 꺼지면 어둠이 찾아오고…… 어둠은 원래부터 있었다. 어디에서 온 것이 아니다. 원래부터 그 자리에, 항상 곁에 있었다.
이 어둠으로 삶을 치는 것이 십검이다.
어둠과 완전히 동일시되지 않으면 어둠에 잡아먹힌다. 짓눌리게 된다. 촛불을 펄럭이려고 애를 쓰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꺼질 때가 되면 꺼진다. 그런데……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것…… 당연한 것이 두렵다.
그는 늘 두려운 마음속에서 살았다.
“편안해 보이는구나.”
사실 그의 말은 모순이다.
죽은 자는 누구나 편안하다. 아니, 편안하다는 감정 또한 찾아볼 수 없다. 아무 것도 없는 공허의 세계로 들어선 자가 세상을 말할 리 없다. 진정으로 어둠을 본 자라면 조그만 촛불을 펄럭이면서 살아가는 게 우스워 보일 게다.
죽음은 고통스럽지도 두렵지도 않다.
바둑판을 짊어 맨 노인은 허리춤에 맨 호로병을 꺼내 마개를 땄다.
쏴아아!
상큼한 주향이 물씬 풍긴다.
“놈…… 술 한 잔 받고…… 잘 가거라.”
그는 검치의 시신에 술병을 부었다. 호로병이 텅 빌 때까지, 술을 모두 쏟았다. 그리고 부싯돌을 켰다.
타악! 화아악!
검치의 시신에 불이 붙었다.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술이 묻은 곳에서 일제히 불길이 치솟았다.
“한 세상…… 지극히 짧은 삶이거늘 왜 이리 살기 힘드노.”
노인은 중얼거리면서 발길을 돌렸다.
검치의 시신이 거세게 타올랐다. 하늘 끝까지라도 치솟을 듯 거친 화염을 뿜어냈다.
2
팽가일로와 팽가이로는 자신들만큼 늙은 노인을 봤다.
‘고수!’
그들의 눈가에 이채가 번뜩였다.
평생을 무림에서 늙어온 경륜이 반짝 경고를 토해냈다.
노인은 산길을 걷는다. 헌데 발자국 소리가 나지 않는다. 왼발, 오른 발…… 발걸음을 옮기는데, 중심은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어깨와 머리는 움직이는데, 단전은 늘 한 곳에 머물러 있다.
간단하게 몇 가지만 살펴봤는데, 놀랍기 이를 데 없다.
“말 좀 물읍시다.”
노인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일로가 눈살을 좁혔다.
산길을 더듬어온 노인은 숨이 찬 듯 큰 숨을 거칠게 몰아쉰다. 헌데 한 번, 두 번…… 겨우 두 번 몰아쉬었을 뿐이데, 전신에 진기가 충만해진다.
길을 걸어온 사람의 숨결이 아니다.
그렇다. 세심루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공조식을 취한 사람의 숨결이나 다를 바 없다.
평상시의 호흡이 아니다. 이 정도로 빠르게 진기를 휘돌리는 것은 싸움을 벌일 때뿐이다. 즉, 이 노인은 목적 없이 방문한 게 아니다. 자신들을 노리고 왔다.
“힘든 길을 걸어오셔수랴. 물어보슈.”
이로가 바둑돌을 집어 들면서 말했다. 여차하면 암기로 발사할 생각이다. 노인을 어쩌지는 못해도 순간적인 기습공격만은 막아낼 수 있다.
노인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북망산천을 찾아갈 때가 되었는지 눈이 침침해서 길을 잘 찾지 못하겠구려. 누가 길 안내 좀……”
순간, 일로와 이로가 거의 동시에 퉁기듯 일어났다.
쒜에엑!
이로는 들고 있던 바둑돌을 냅다 집어던졌다. 일로는 어느 새 유엽도를 뽑아들고 개산망월(開山望月)을 펼쳐냈다.
“쯧!”
노인이 웃으면서 물러섰다.
타타탁! 쒜엑!
바둑돌이 나무에 틀어박혔다. 일로가 그어낸 개산망월은 빈 허공만 그었다.
“뉘신지?”
일로가 유엽도를 옆으로 뉘이며 말했다.
노인이 말하는 도중, 머리가 띵! 울렸다.
외부에서 밀려온 충격은 없는데, 마치 커다란 망치로 두들겨 맞은 것처럼 머리가 심하게 울렸다.
암경(暗勁)에 당했다.
충분히 주의를 하고 있었는데, 약간이라도 이상한 기미를 느끼면 반격할 준비를 끝내놓은 상태였는데…… 그래도 당했다.
“당신들 정도라면 들어봤을 지도…… 연저살심(戀咀殺心) 고배타루(苦杯墮淚)라. 들어보셨소?”
“음……”
“이…… 런……”
일로와 이로가 거의 동시에 신음을 토해냈다.
사랑의 깊이만큼 살심도 깊어지고, 쓰디 쓴 술잔을 마실 때마다 통한의 눈물을 흘린다.
한 쌍의 탕부(蕩夫)와 탕부(蕩婦)를 일컫는 말이다.
그들은 참 많은 사람을 죽였다.
사내는 여인만 골라서 죽였고, 여인은 미공자만 골라서 죽였다.
사내가 북쪽을 훑으면 여인은 남쪽을 훑었다. 사내가 동쪽으로 내려가면, 여인은 서쪽으로 올라섰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의식한 듯하다.
사로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있으며, 어디쯤에서 살인을 저지르는지는 귀담아 듣는다.
사내가 한 명을 죽이면, 여인도 한 명을 죽인다. 여인이 살인을 하면, 사내도 살인을 한다. 어느 누구도 상대가 앞서 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무림공적?
당연하다. 많은 무인들이, 문파가 그들을 죽이려고 했다.
헌데 그들은 무적이다. 그들 앞에 선 무인들이 펑펑 나가 떨어졌다. 검의 달인, 도의 명인, 한 성의 패주…… 강하다고 일컬어지던 자들이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졌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탕부와 탕부가 대량 학살은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산적이나 마인들처럼 기분 내키는 대로 살상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에게는 법칙이 있다. 암사마귀가 교미 후에 숫사마귀를 잡아먹듯이, 사랑을 나눈 상대만 죽인다.
관계만 맺지 않으면 죽을 일이 없다. 그런데도 관계를 가진다. 그리고 죽는다.
사내는 호색한이다. 어떤 여인이든 옷고름을 풀 수 있다. 처음 만난 여인도 침상에 눕힐 수 있다. 여인은 탕부다. 어떤 사내든 침상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열락을 즐길 수 있다.
그리고 끝은 항상 죽음이다.
밤새워서 열락을 불태우고, 아침이 되면 싸늘하게 식어버린 시산만 남겨두고 떠나간다.
그들에게는 별호가 없다.
워낙 지독한 짓을 해서 별호를 주지 않았다.
누구 눈에 띄던지 당장 죽여야 할 자이기 때문에 이름 같은 것을 부여할 필요가 없었다.
탕부, 그리고 탕부!
벌써 죽어서 한 줌 흙이 되어버린 줄 알았거늘…… 이렇게 또 나타났는가.
노인이 말했다.
“내 오늘 가주에게 볼일이 좀 있는데…… 아무래도 당신들이 방해가 될 것 같아서 말이오. 북망산천에 먼저 가서 불 좀 밝혀주시구려. 내 곧 따라가리라.”
“놀라운 일이군. 한낱 탕부인 줄 알았는데, 이토록 놀라운 절공을 지닌 고수였다니.”
일로가 진기를 가득 끌어올리며 말했다.
일로나 이로의 무공은 중원 최강이다. 무림의 명문대파에서도 그들의 입지는 확고하다. 그들은 무림 원로이며, 그에 걸맞은 무공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어떤 상대를 만나도 여유가 있다. 항상 여유가 넘친다. 검치가 하북 땅에 들어섰다는 말을 듣고도 싸움 구경을 가지 않았다. 그만큼 무공에 자신을 가진다.
자신들을 검치와 비교하는 게 아니다.
무공으로 따지면 분명히 검치가 한 수 위다. 하지만 같은 위치에 선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검치보다는 못하지만, 그에 필적할 수 있다는 긍지가 있다.
너도 무인, 나도 무인.
검치가 결전을 청해오면, 다른 사람들은 꽁지를 말 수 있지만 그들은 체면 때문에라도 칼을 든다.
그만큼 무공에 자신을 가졌는데……
노인에게서 허점을 발견하지 못하겠다. 너무 완벽해서 칼을 겨누고 있기도 힘들다. 몸을 움직여도 단전 중심은 고정불변인 것처럼 온 몸이 텅 빈 듯하지만 사실은 꽉 차있다.
이런 자가 계집이나 희롱하던 탕부였다니.
“미안하구려. 시간이 없어서.”
노인이 옆에 있던 소나무에서 가지를 꺾었다.
소나무 가지, 그것으로 천하에 명성이 자자한 팽가오로 중 두 명을 상대하려는 겐가?
쒜에에엑!
다듬지 않은 소나무 가지가 느리게 다가왔다.
“무시도 정도가 있는 법이거늘!”
일로가 버럭 고함을 내지르며 유엽도를 쳐냈다.
일탄개벽(一呑開劈)!
칼등으로 소나무 가지를 감싸듯 밀쳐내고, 칼날로 전신을 쪼갠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전개하기 딱 좋은 초식이다. 헌데,
스륵!
소나무 가지가 오히려 유엽도를 감싸버렸다. 다듬지 않은 잔가지들이 칼날을 휘어감았다
따앙!
유엽도의 중간부분이 뚝 부러졌다.
직접 당하고도 믿지 못할 일이지만…… 진기가 가득 실린 강도(鋼刀)가 금방 꺾어낸 생나무에 밀려서 부러졌다.
“가시게.”
노인이 말했다.
그 순간, 노인을 향해 덮쳐들던 이로는 피가 역류하는 충격을 받고 뒤로 물러섰다. 입으로는 붉은 피를 줄줄 흘리면서.
탁! 쒜엑! 퍽!
노인이 부러져서 떨어지는 유엽도 반 토막을 발로 쳐냈다. 그리고 아직도 진기가 실려 있는 듯한 유엽도 반 토막은 일로의 목을 꿰뚫고 지나가 세심루 기둥에 탁 박혔다.
일로가 썩은 짚단처럼 풀썩 꼬꾸라졌다.
노인은 생나무에 걸린 일로의 유엽도를 아직도 휘청이고 있는 이로에게 던졌다.
퍽!
날아간 유엽도가 이로의 미간 한 가운데에 박혔다.
이로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노인이 강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건 너무 싸움이 안 된다. 어린애가 칼을 들고 나서도 이것보다는 더 잘 싸울 것 같다. 명색이 팽가오로라는 사람들이……
이로는 털썩 무릎을 꿇더니 그대로 엎어졌다.
“쯧!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굳이 죽일 필요는 없었는데. 쯧쯧!”
노인은 죽은 일로와 이로를 보면서 혀를 끌끌 찼다. 그러나…… 죽은 사람을 보면서 만족해하던 그의 얼굴이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어가기 시작했다.
팽가촌 초입에 일단의 무리가 들어선다.
남자 한 명과 여자 두 명.
남자는 천하제일의 미남자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영준하고, 여인들은 화용월태가 무색하다.
노인의 눈을 부릅뜨고 만든 건, 사내가 메고 있는 검대다.
등 뒤로 검 여섯 자루, 허리에 네 자루…… 십검이다.
이 시대에 십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세 사람 뿐, 광기자(狂棋子)와 검치와 루주뿐이다.
광기자는 당장 죽어도 하등 이상할 게 없는 늙은이이고, 검치는 이미 죽었다는 보고를 받았고…… 그렇다면 루주다.
루주? 루주가 어떻게 여기에 왔지? 그럼 할멈이?
루주가 왔다는 것은 할멈이 싸움에서 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허! 허!”
노인은 탄식만 토해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가. 검치를 제거한 할멈이 왜 루주는 제거하지 못한 것인가. 필요한 사람은 주설언 뿐인데…… 나머지는 모두 제거해도 되는데……
노인은 팽가촌으로 내려가지 못했다.
루주 일행은 혼자가 아니다. 팽가촌 무인들은 알아채지 못하고 있지만 늙은 괴물이 따라붙었다.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바둑판을 등에 짊어진 괴물이 루주를 지켜본다.
광기자와 루주.
일진이 좋지 않다.
‘할멈……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한 거야?’
***
루주는 팽가촌으로 들어서지 못했다. 팽가촌 입구에서 걸음을 멈춰세웠다.
어미와 자식!
참으로 다정한 사이이지만, 그렇지 못한 관계도 있다. 세상에 그 어떤 관계보다도 불편한 사이도 있다.
“안 갈 거예요?”
“여기 있지.”
“그래도 직접 가보는 게……”
“가봐.”
루주는 두 여인의 등을 떠밀었다.
노파의 암경은 어미의 사라천요공과 흡사한 구석이 있다.
일단 부드럽다는 점이 같다. 너무 부드러워서 암경이 펼쳐진 지도 모른다. 뭔가가 이상하다거나 통증 같은 것이 느껴졌을 때는 이미 암경에 당한 후이다.
같다고 할 수는 없다.
노파의 암경은 신경을 건드린다. 청각이나 시각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한다. 순간의 방심이 죽음으로 이어지는 무인들의 싸움을 감안하면 아주 치명적인 타격이다.
그런 타격을 받은 다음 살수를 당하면 당할 수 밖에 없다.
사라천요공은 음욕을 불러일으킨다.
강력한 춘약을 복용한 사람처럼 행동한다. 평소의 일상적인 이성이 와르르 무너지고 오로지 음심에만 들떠서 이리저리 휘둘리는 동물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완전히 다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음심도 신경을 자극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아무런 자극이 없이 괜히 음욕이 발동하겠는가.
어떤 신경을 자극하느냐가 문제일 뿐, 자극하는 방식이나 효과 면에서는 다를 바 없다.
루주는 이런 부분을 즉각 알아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