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147
147
노파와 어미는 모종의 관계가 있다.
어미와 살천루는 관계가 없다. 만약 관계가 있다면 지엽 조직이었던 귀살왕에게 살수 청탁을 넣지는 않았을 게다. 곧바로 살천루주에게 넣는 게 가능했다면 말이다.
어미는 살천루를 몰랐다.
어미는 사총도 모른다.
사총 무인들이 합류하기는 했지만 나중 일이다.
자신이 어미를 찾아왔을 때, 마차를 전복시킬 때…… 그 순간에는 살천루도 사총도 어미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어미에게는 이숙만 있었다.
아직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숙.
팽가주가 자신의 의동생이라고 인정한 사람.
그 사람이 비연사도를 죽이고 루주를 죽이려고 했다. 검치의 후인을 멸절시키려고 했다.
도댜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어쨌든 어미를 관찰해야 한다. 지켜봐야 한다. 어미와 흡사한 무공을 지닌 사람이 살천루와 함께 나타났다. 취취와 맹삼력을 죽였다. 그리고 자신도 죽이려고 했다.
그 노파는 어미에게 나타날 게다.
이런 일련의 생각들이 한달음에 팽가촌으로 오게 만들었다.
하지만 안에는 어미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만나기 힘든 사람이 사악한 눈을 부릅뜨고 있다.
어미를 만날 자신이 없다.
아니, 어미를 만나는 순간…… 어쩌면 어미를 베여야 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지금 상황으로는 영락없이 그럴 것 같다.
어미를 노리는 사람은 많다. 당장 하북 팽가만 해도 어미를 용서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다. 가주의 친자식까지도 덫에 걸려 죽었다.
하북 팽가의 입장에서 보면 요녀를 잡아두고 있는 셈이다.
어미를 구할 방법은 없다.
또 그럴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라기에는 너무도 많은 애증을 품어왔다. 어미의 사랑을 전혀 받지 못한 상태에서 증오만 키웠다. 지금 이렇게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어머니의 죽음에 애써 무관한 척 행동한다. 하지만 자신의 손으로 죽음을 이끌 수는 없다. 죽음을 지켜보는 것조차도 괴롭다.
그는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입구에 머물렀다.
두 여인이 잠시 그를 쳐다보더니 안으로 들어섰다.
쉬익! 쉬익!
날카로운 경풍과 함께 두 명의 무인이 길을 가로막았다.
“비켜. 그러고 싶지는 않지만, 해야 된다면 너희를 베고서라고 안으로 들어가야 해.”
팽가연이 사촌동생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누님,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가주님께 곧바로 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아버님께? 왜?”
“들어가보시면……”
두 무인이 말끝을 흐렸다.
기어이 사단이 벌어졌다.
무슨 일인지 좀이 쑤셔서 견딜 수 없다. 어미가 죽는 것일까? 이렇게 죽는 것인가? 겨우 여기까지 오려고 그토록 모질게 남편과 자식을 버린 것인가.
털썩 주저앉아 망연히 하늘을 쳐다봤다.
팽가촌은 조용하다.
안에서는 폭풍이 일어나고 있건만, 밖에서 보면 먼지 한 올 날리지 않는 것처럼 조용하기만 하다.
탐화랑객을 칼로 찔렀다.
한 번도 아니고 수십 번을…… 아버지를 찔렀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피 묻은 손에, 피 묻은 칼을 들고 요악하게 웃고 있는 모습.
죽어가는 남편의 얼굴을 칼로 저며 내던 모습.
전생에서부터 악연을 쌓아온 철전치원수인 줄 알았는데, 그녀가 어미였다.
그런 그녀가 절염색녀라는 별호를 버리고 팽가촌 성녀로 둔갑해 있을 때, 그런 사실을 알았을 때…… 기가 막혀 웃음도 나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싶었다.
그렇구나. 그런 삶을 원한 것이었구나.
방탕한 삶, 쾌락에 물든 삶, 술과 도박과 환락에 지쳐가는 삶을 버리고 건실한 삶을 택했구나.
인생을 바꾸기 위해서는 탐화랑객을 버려야했겠지.
다 이해했다. 다 용서했다.
그런데, 정작 자식인 자신은 용서했는데, 또 한 사람…… 검치는 용서하지 않았다.
– 그 독부년…… 모두 거짓이야. 진짜인지 거짓인지는 건드려보면 알지. 살짝 건드려봐. 키키키! 그럼 당장 본색을 드러낼걸?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 되냐? 키키키!
검치의 수련을 마다하고 금제까지 당하면서 뛰쳐나온 것은 수련이 고돼서가 아니라 검치의 이런 멸시가 싫었기 때문이다.
그랬다면 그냥 그렇게 살았어야 한다.
어미를 잊고, 다 용서하고…… 계집들을 끼고 계집장사나 하는 천요루주의 삶을 살면 되는 거였다.
살짝 건드려 봐라.
그 말을 굳이 실험해 볼 필요는 없었다.
그랬다면…… 어미는 살수를 고용하지 않았을 게다. 살천루가 개입하지 않았을 것이고, 살총 무인들이 나서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어미는 여전히 팽가촌 성녀로 살고 있을 터이다.
세상을 왜 이렇게 만들었나.
어미의 운명을 왜 이런 식으로 비틀었나.
그가 망연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을 때, 길 저쪽에서 바둑판을 짊어진 노인이 걸어왔다.
뚜벅! 뚜벅! 뚜벅!
주위를 둘러보면서 매우 여유 있게 걸어온다.
루주는 손끝이 자르르 떨렸다.
노파를 만났을 때처럼 알지 못할 긴장감이 은은하게 퍼져간다.
‘고수!’
노인은 루주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잘 아는 사람처럼, 오랜만에 만난 사람처럼.
노인이 그의 옆에 와서 앉았다.
“검치가 죽었다.”
노인이 불쑥 한 말이다.
3
‘죽어? 늙은이가…… 죽어?’
그렇게 헤어진 것이 마지막 만남이었나? 그렇게 죽으려고 그 먼 길을 온 것인가.
아니다. 천하제일인이 그렇게 간단히 죽을 수 없다. 말이 안 된다. 그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오직 십검을 수련한 자신뿐이어야 한다.
루주는 주먹을 꽉 쥐었다.
“늙은이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노인장의 말을 믿을 수 없군요. 노인장은 대체 뉘십니까?”
“나? 멍청한 놈. 그냥 멍청한 놈이라고 부르게.”
“좋습니다. 그럼 늙은이가 누구에게 죽었습니까?”
“네가 팔을 잘랐더구나.”
그 노파!
사실이다! 검치가 죽었다!
노파는 검치를 죽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노파의 무공이라면…… 십검을 무너트린다.
이게 무슨 말인가? 검치가 노파에게 죽었는데, 그는 노파의 팔을 잘랐다. 그렇다면 그가 검치보다 더 강하다는 말인가? 검치를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단 말인가?
그렇다. 그의 십검은 검치보다 한 단계 위다.
검치와 겨뤘을 때, 그는 검치를 죽일 수 있었다. 그의 십검에는 그만한 힘이 담겨 있었다. 예전과는 정반대로 검치가 칠 검에서 막혔다. 그런 걸 무승부로 결정지었다.
검치를 불러올 때는 검치에게 의존하고 싶은 생각이 컸다.
사총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검치가 없으면 안 될 상황이었다. 누가 사총을 막는단 말인가.
그런데 검치는 즉각 움직이지 않았다. 사총에 대해서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 대신에 장난이라도 하듯이 그를 두들겨 팼다. 나중에는 팽가연까지 끌어들여서 매일 타작했다.
그 결과, 그의 검이 완성되었다.
검치의 매타작은 그냥 매타작이 아니다.
전신 혈도를 골고루 타작한다. 살과 뼈를 굳건하게 만들고, 혈을 강건하게 다져준다. 금제시켜놨던 경혈을 풀어주고, 그동안 정체 되어있던 울혈을 뽑아낸다.
검치보다 나은 십검을 가진 것은 검치의 힘이다.
그런 검으로도 노파를 어쩌지 못했다.
검에 걸렸다 하면 죽음을 피할 수 없다고 믿었는데, 노파는 검에 맞고도 팔만 내놨다.
노파는 초절정고수다.
만약 노파를 다시 만난다면 그때는 어떨까? 이번에 팔을 잘랐으니 반드시 이길 수 있을까?
자신하지 못한다.
팔을 잘랐다고 해서 다음에 또 이기란 법은 없다.
자신 정도의 무인들은 본인의 무공보다는 외부적인 요인에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다.
뛰어난 궁수도 바람을 탄다.
바람의 강약에 따라서 활의 정확도가 유지되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한다. 백발백중을 자신하는 천하 최고의 궁사도 돌풍이 불 때는 자신하지 못한다.
그런 일이 초절정고수들 사이에서 벌어진다.
이번에는 이겼다. 다음에는 질 수 있다.
검치가 노파에게 죽었다.
자신이 검치보다 나은 십검을 가지고 있다지만 그 차이는 실낱보다도 가늘다. 너무 작은 차이라서 차마 차이라도 말 할 것도 없다. 이번에는 이겼지만 다음에는 모른다.
검치가 졌다. 죽었다.
‘바보……’
왜 그럴까? 정말 싫은 인간인데……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후우!”
루주는 깊은 숨을 토해냈다.
노인이 말했다.
“네 어미…… 쯧! 뭐라고 부를꼬? 기왕이면 좋은 게 좋겠지? 성녀라고 부르지 뭐. 지금부터 성녀가 팽가촌에 머무는 이유를 말해줄 테니 잘 듣게.”
루주는 눈을 부릅뜨고 노인을 쳐다봤다.
“아십니까?”
“알지. 흐흐흐!”
노인이 히죽히죽 웃었다.
루주의 눈빛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노인은 누군가? 누구기에 이 모든 일을 아는가. 이 대화가 끝난 다음에는 어찌 되는가. 싸워야 하는가? 그럴 것 같다. 그냥 이야기만 툭 던지고 돌아서기에는 이야기의 내용이 너무 깊다.
노인을 쳐다본다.
노인이 어미의 일을 아는 게 신기하다. 어미가 팽가촌에 머물고 있는 이유, 새삼 궁금하다. 여러 가지 일들이 한꺼번에 몰아쳐서 머리가 정리되지도 않는다.
쳐다보는 수밖에 없다.
노인이 말했다.
“하북 팽가에 무결이라는 무공이 있지.”
“무결? 처음 듣습니다.”
하북팽가에 대해서 그처럼 자세히 아는 사람도 이제는 드물 것이다. 하북 팽가의 무공을 속속들이 안다. 혼원벽력도의 무서움도 안다. 하지만 그 속에 무결이라는 무공은 엇다.
“히히! 그, 이야기를 하려면 사연이 길지.”
“……”
“검치 그놈이 아무 말도 해주지 않은 거야?”
“아무 말도 못 들었습니다.”
“그놈…… 히히! 그럴 놈이지. 그러고 말고.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놈이야.”
노인이 검치를 ‘그놈’이라고 불렀다.
검치를 그놈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 검치의 친구이거나…… 아니다. 검치보다 훨씬 연배가 많다. 검치도 노인이고, 이 사람도 노인이다. 그렇지만 이 노인이 훨씬 늙었다. 검치보다 이십여 년은 더 많은 것 같다.
‘동배는 아니고……’
“그렇게 머리 굴리지 마라. 그놈 십검을 나한테 배웠다.”
“엇!”
루주는 깜짝 놀랐다.
그럼 이 노인이 사부의 사부? 사조(師祖)란 말인가?
루주가 예를 갖추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러나 노인이 어깨를 찍어 눌렀다.
“넌 검치 놈을 스승으로 인정하지 않잖아?”
“지금은 인정합니다.”
“시끄러, 이놈아! 네 놈이 그렇듯 검치 그놈도 마찬가지야. 나한테 십검을 배운 건 맞지만 스승이니 하는 개떡 같은 건 몰라. 그저 무공만 전수한 사이지.”
“존함이……?”
“그런 게 왜 필요해. 곧 죽을 늙은이인데.”
노인이 등에 짊어지고 있던 바둑판을 풀어내면서 말했다.,
“네놈 어미 이야기를 하려면 참 오래 전의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돼. 너무 오래 되어서 기억이 가물거리는 이야기부터.”
“말씀하시지요.”
사실은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다.
어미가 팽가촌에 있는 이유부터 듣고 싶다. 먼저 그 이야기부터 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노인이 먼저 하고픈 말이 있는 모양이다. 들을 수밖에 없다.
“옛날에 재미있는 노인네가 있었지. 그 노인네는 천하무적이야. 정말로 강했어. 그런데 너무 강하니까 무림에 흥미를 잃은 거야. 모두 어린아이로만 보이니 뭐 싸울 거리가 있나. 강호출도라는 걸 해봤는데 모두가 허수아비란 말이지. 뭐 장문인이라는 작자들도 일초만에 나가떨어지고.”
루주는 숨이 턱 막혔다.
이야기만 들어도 노인의 강함이 상상된다.
“이게 검치삼령 중 하나야. 각 문파의 장문인들의 수치스러운 과거. 괜히 까불지 마라 이거지. 지금 장문인들도 검치를 이길 능력은 되지 않았고.”
알고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검치 삼령은 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옛날에 장문인들을 허수아비처럼 다룬 고수가 검치의 사부일 것으로 생각했다. 헌데 아닌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검치가 십검을 창안한 줄 알지만, 검치삼령을 아는 사람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현 장문인의 사부쯤 되는 사람들은 장난감처럼 가지고 논 사람.
그 사람의 이야기다.
“그래서 이 노인네가 고향으로 돌아와 버렸어. 강호에 흥미를 잃고 말이야.”
십검을 창안한 노인이다.
십검의 유래다.
루주는 노인이 누구를 말하고 있는지 짐작했다.